This is the law RAW novel - Chapter (828)
그냥 공사 핑계를 만들려고 대대적으로 침수시킨 줄 알았더니 벽에 붙어 있는 충격 감지기를 먹통으로 만들어 버리기 위해서였던 것이다.
“카메라 역시 같은 이유로 작동은 안 할 테고.”
노형진은 조용한 공간을 걸어서 안쪽으로 들어갔다. 그곳에는 두꺼운 강철 문이 서 있었다.
“이거, 침수로 안 열리는 거 아냐?”
“아닙니다. 침수로 인해서 이쪽으로 물이 스며들기는 했지만 그건 벽 내부 배선만 건드린 거지, 아예 따로 있는 이런 시스템은 물이 접근도 못 했지요.”
충격 감지기나 카메라는 어쩔 수 없이 배선을 벽 안으로 넣을 수밖에 없다. 그렇다 보니 옆 건물이 침수되면서 그 물이 스며들어 벽 내부에 있던 회선들이 모조리 엉망이 된 것이다.
그러나 문에 달린 시스템은 물이 여기까지 온 게 아니기 때문에 멀쩡하게 작동하고 있었다.
“이다음이 문제이지요.”
노형진은 봉투에서 신발 두 켤레를 꺼내 들었다.
나시르가 신고 있던 그 신발과 똑같은 신발이었다. 아니, 그 신발이라고 하는 게 맞을 것이다.
“나시르는 속았습니까?”
“속았대. 하긴 양발에 깁스를 하고 있는데 자기가 신어 볼 거야, 어쩔 거야?”
애초에 나시르는 발을 다치지도 않았다. 다만 신발을 신어 보면서 확인하는 것을 막기 위해서 해 둔 것에 지나지 않았다.
다행히 나시르는 똑같이 생긴 신발이 봉투 안에 있는 걸 확인하고는 안도했고 말이다.
‘여기서 이들이 실수했지.’
사실 미국은 회귀 전에 여기까지는 무난하게 왔다. 자신과 다른 방식을 쓰기는 했지만 말이다.
그러나 이다음 순간을 몰라서 증거를 몽땅 날려 버렸다.
“이건 몇 가지 함정이 있는 문입니다.”
“문?”
“네. 첫 번째는, 고정관념이죠.”
“고정관념?”
“네.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순서 없이 그냥 위에서부터 열거든요. 하지만 여기는 순서가 있습니다.”
노형진은 가장 먼저 중간에 있는 지문 인식기에 가짜 손가락을 올렸다.
“그 후에 보통 망막을 하지요. 하지만 그렇게 하면 문은 잠기고 안쪽에 있던 모든 자료는 폐기됩니다.”
그는 신발을 뒤집어서 뒷굽을 강하게 당겼다. 그러자 구두의 뒷굽이 벗겨지면서 신발에서 이탈했다.
“헐?”
“요즘 카드는 외부에 드러나지 않아도 작동합니다. 그러니까 이렇게 아예 뒷굽 자체에 매몰시키면 카드를 찾을 방법이 없지요.”
이탈시킨 뒷굽을 스캐너에 올리자 삑 소리가 빈 공간에 울려 퍼졌다.
“그 후에 다시 위로 올라가서 망막을 검증합니다.”
작은 화면에 찍혀 있는 나시르의 망막을 확인시키자 다시 들리는 삑 소리.
동시에 뒤에 있던 요원들이 다급하게 들어가려고 했다.
“아직 안 끝났습니다.”
“아직 안 끝났다고? 세 개 다 했잖아?”
“분명히 함정이 있다고 했죠. 그리고 세 개가 전부라고 한 적도 없습니다.”
노형진은 다시 반대쪽 구두의 뒷굽을 당겼다. 그러자 그쪽도 굽만 구두에서 이탈되었다.
“헐!”
“누가 카드가 한 개만 있다고 하던가요?”
노형진은 다시 이탈한 굽을 리더 부위에 올렸다. 그러자 ‘삑’ 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런 식이면…….”
만일 자신들이 모르는 채로 왔다면 절대 들어가지 못했을 거라는 생각에 로라는 부르르 떨었다. 실제로도 그랬고 말이다.
“함정은 아직 안 끝났습니다.”
“아직도 안 끝났다고?”
“네.”
노형진은 문 옆에 있는 작은 벽을 더듬거리더니 힘을 줘서 슬쩍 당겼다. 그러자 그 안에서 무언가를 걸 수 있는 작은 고리가 나왔다.
“그건 뭐야?”
“마지막 보안장치죠. 굽이 이탈된 신발은 양쪽 다 정해진 무게가 나오기 마련입니다.”
그가 그 양쪽의 고리에 굽을 벗겨 버린 신발을 걸자 그와 동시에 철컥하는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뭐 이런…….”
“흔한 방식이지요. 그리고 고전적인 방식이기도 하고요. 하지만 그게 현대적 방식하고 호환되면 영 골치 아프단 말이지요.”
로라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다들 이러한 문은 그저 암호를 풀어서 열려고 하지, 현대의 누가 이런 몇 가지 함정을 순서대로 풀어서 열려고 하겠는가?
그런데 이건 전자 암호도 풀어야 할 뿐만 아니라 순서까지 맞춰야 한다.
“들어가 보실까요?”
노형진을 따라 요원들은 후다닥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거기에 있는 자료를 보면서 비명을 질렀다.
“이거, 랩터 조종석 설계도 아냐?”
“야, 이거 반사 도료 조성 비율인데?”
드디어 몇 년간 미국의 제1 기밀인 스텔스 기술을 빼내던 스파이들에 대한 명확한 증거가 발각된 것이다.
“이건…….”
그중에서 가장 반가운 것은 미국 내에 있는 중국 스파이의 목록이었다.
물론 전부는 아닐 테고 자신들과 일하던 자들의 연락처일 테지만, 그것만으로도 미국은 엄청난 이득을 볼 수 있게 된 것이다.
“못해도 이백 명은 넘겠다.”
목록을 보면서 로라는 이를 악물었다.
이것만 있으면 자신은 당당한 국토안보부의 요원으로 인정받을 수 있다. 아니, 그 정도가 아니라 승승장구할 수 있다.
그때 노형진이 그녀의 감동에 초를 쳐 버렸다.
“자, 그러면 제 문제에 대해서 이야기해 볼까요?”
* * *
국정원장은 자신에게 와 달라는 미국 대사관의 연락에 고개를 갸웃하면서 그곳으로 향했다.
‘미 대사관이 우리를 부를 이유가 없는데?’
현 정부는 미국과 친밀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고, 미국이 자신들에게 딱히 불만을 표현한 적은 없었다.
더군다나 자신은 외교 쪽도 아니고 국정원이다.
물론 스파이들의 세계에는 영원한 적군도, 영원한 아군도 없기 때문에 미국에서 활동하는 요원이 없는 것은 아니나 그건 서로가 다 아는 사실이고, 최근에는 그들의 심기를 건드리지 않기 위해서 극도로 조심하고 있었다. 그런데 자신을 부르다니?
“반갑습니다.”
“네, 대사님. 그런데 어쩐 일로?”
안내된 장소에서, 국정원장은 왠지 모를 불안감을 느껴야 했다.
일반적인 만남은 접견실에서 이루어진다. 아니면 대사의 사무실이나.
그런데 이곳은 두 곳 다 아니다.
보안실. 서재라고 불리며, 외부에서 어떤 방식으로도 도청할 수 없는 공간이다.
국정원장의 불안감을 안 건지, 미국 대사는 단도직입적으로 말을 꺼냈다.
“요즘 국정원에서 곤란한 걸 건드리더군요.”
“건드리다니요? 저희는 외부 업무를 그다지 하지 않고 있는데요.”
“CIA 쪽에서 불만이 있습니다. 왜 자기네 비선 조직을 건드리냐고 말입니다. 지금 그쪽에서는 국정원이 전쟁이라도 하려는 거 아니냐고 의심하고 있습니다.”
“네? 그, 그럴 리가요?”
아무리 국정원이 대단하다고 해도 미국의 비선 조직을 건드릴 자신은 없다.
더군다나 다른 곳도 아니고 CIA.
그들을 건드리는 순간 전 세계에 나가 있는 국정원 요원들의 이름은 모조리 까발려질 테고, 국정원은 사실상 운영도 불가능하게 된다.
“무슨 말씀이십니까? 저희가 CIA를 건드릴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그쪽에서 이 말 한마디만 해 달라고 하더군요.”
“무슨?”
“미다스.”
“큭.”
국정원장은 침을 꿀꺽 삼켰다.
익히 아는 이름이다. 윗선에서 뒤 좀 캐 보라는 명령이 나왔던 그 이름.
“그게…….”
“더 이상 진행하면 저희로서도 전면적으로 대응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
국정원장으로서는 더 이상 할 말이 없었다.
그쪽에서 이렇게 강하게 나올 정도면 절대로 좋은 게 아니기 때문이다.
‘젠장, 어쩐지 드럽게 수익률이 좋더라니.’
전 세계 어느 조직이든 비밀리에 운영하는 기업이 있기 마련이다.
요원의 신분을 감추기 위한 것도 있지만, 스파이 활동이라는 것이 공개적으로 지원을 받기는 힘든 업무이다 보니 수익을 내서 그걸로 운영을 하기 위해서이기도 했다.
그리고 당연히 CIA도 비선 조직을 통해서 기업을 운영한다.
‘그게 미다스였어?’
그렇다면 그 터무니없는 수익률도 이해가 간다.
그런 비선 조직들은 망하려고 하는 경우가 아니면 망할 수가 없다. 세상의 비밀 정보에 접근해서 다 알 수 있는데 망할 리가.
하물며 한국의 국정원이 운영하는 비선 조직조차 그런데 미다스가 CIA의 비선 조직이라면 자신들과는 비교도 못 할 만큼 터무니없이 많은 정보를 가지고 있을 것이다. 그러니 이런 터무니없는 수익률도 이해가 간다.
“바로 조치를 취하겠습니다.”
“이런 일로 뵙지 않았으면 좋겠군요.”
“네.”
국정원장은 더 이상 말하지 않고 나왔다.
마음이 다급했다. 그는 대사관에서 나오자마자 바로 핸드폰을 들었다.
“나야. 당장 VIP 쪽에 연결해. 잘못 건드렸어, 젠장.”
그는 명령을 내리면서도 이 사태를 어떻게 해결할지, 머리가 지끈거리는 느낌이었다.
* * *
“요즘 말이야, 전 세계가 평화로운 것 같지 않아?”
“응?”
“아니, 그냥 뉴스 보고 있으면 세상이 참 평화롭다 싶은 것 같아서.”
손채림은 신문을 넘기다가 문득 느끼는 게 있는지 노형진에게 말을 건넸다.
“뭐가 조용한데?”
“글쎄…… 뭐랄까. 그냥 그런 느낌?”
“혹시 중국이 좀 조용하다거나?”
“아, 맞네! 전에는 중국이란 미국이 싸우는 분위기였잖아? 그런데 요즘은 그런 게 없네. 중국이 정신 차린 거야?”
“그럴 리가.”
“그럼?”
“기밀.”
“뭐야, 네가 왜 그런 말을 하는데?”
“진짜 기밀이니까.”
“아, 뭔데.”
“기밀입니다.”
말하라고 성화인 손채림에게 기밀이라는 말만 하면서 싱긋 웃는 노형진.
‘그래, 조용할 수밖에 없겠지.’
명단을 확보한 미국은 진짜 번개같이 움직였다. 채 이틀도 되기 전에 명단에 있던 모든 자들이 체포된 것이다.
증거도 있고 명단도 있으니 체포 자체가 어려울 리 없었다.
‘그리고 정치라는 건 참 애매해진단 말이지.’
엄청난 간첩 사건이기는 하지만 정작 미국도 이걸 발표할 수는 없다. 중국과 극단적으로 사이가 안 좋아지면 미국도 손해이기 때문이다.
중국의 입장에서도 블랙 요원이 잡히거나 사망하면 부정하는 게 기본이라고 하지만 한두 명도 아니고 이백 명이니 이건 대책이 서질 않았다. 그야말로 부정할 수도 없는 상황이 된 것이다.
결국 중국은 미국에 엄청난 정치적 양보를 하고 그들을 돌려받을 수밖에 없었고, 당연히 국제적 발언권은 극도로 약화되었다.
전 세계가 바보도 아니고, 이 정도의 사건을 모를 리 없기 때문이다.
당연히 각국은 국내에 있는 중국 폭력 조직과 그들과 연계되었을지도 모르는 중국 스파이들에 대한 대대적인 체포를 시작했고, 급성장하는 경제력을 바탕으로 큰소리를 치던 중국은 아차 하는 순간에 국제적 발언권이 축소된 것이다.
“뭐, 그런 날도 있는 거지. 세상이 매일 시끄러우면 어떻게 살아?”
“쳇, 그놈의 기밀이 뭔지는 끝까지 말 안 해 주네.”
“하하하.”
“그나저나 지난번에 무슨 문제가 있었다면서, 해결된 거야?”
“깔끔하게.”
“더 이상 문제없어?”
“아마도?”
미국에서는 미다스가 자신들의 비선 조직인 것처럼 표현했다. 그리고 국정원은 사실을 확인하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그들과 전쟁하느니 차라리 모른 척하는 게 훨씬 이득이라는 것을 알기 때문이다.
‘그리고 당분간은 알아보려고 하지 않겠지.’
비록 당분간이기는 하겠지만, 한 가지는 확실했다. 충분한 힘을 가질 때까지는 시간을 벌 수 있다는 것.
“가끔은 세상이 평화로워야 하지 않겠어? 하하하.”
각국의 정보 전쟁을 격발시킨 노형진은 정작 자신은 평화롭다고 미소를 짓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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