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the law RAW novel - Chapter (836)
* * *
“피의자 최유정은 자신의 범죄 사실에 대해서 인정합니까?”
재판정에서 천종관은 눈앞에 있는 최유정을 바라보았다.
“아니에요, 흑흑……. 전 절대로 그런 의미에서 그런 게 아니에요, 흑흑.”
“하지만 같은 반 학우들의 진술서는 이야기가 다르던데요?”
“그건 그 애들이 거짓말하는 거예요. 전 진짜 바르게 살았다고요. 전 전교에서 3등을 할 정도로 모범생인데 그런 짓을 할 리 없잖아요!”
눈물까지 흘리면서 말하는 최유정.
하지만 천종관은 그런 그녀의 모습이 가증스러울 뿐이었다.
‘그렇지. 내가 저런 꼴 한두 번 보냐.’
말로는 잘못했다고 하지만 반성은 하지 않는다. 그저 재 수 없게 걸렸을 뿐이다.
‘네가 그렇게 나오면 나도 별수 없다 이거지.’
천종관은 노형진과 만났던 일이 생각났다.
-어차피 이건 형사사건이라 제가 뭘 어떻게 할 수는 없잖아요? 그러니까 부탁드리려는 거죠.
-부정 청탁은 안 받는다. 아무리 나라고 해도 없는 죄를 만들어 뒤집어씌울 수는 없어.
-알아요. 그러니까 부탁하는 겁니다. 형님 좀 곤란해지라고.
거기까지 생각하던 천종관은 씁쓸하게 미소를 지었다.
‘썅노무 시키. 머리는 좋아 가지고.’
천종관의 성격을 아는 노형진은 그를 슬쩍 흔들어 놨고, 천종관은 그것에 휘말릴 수밖에 없었다.
‘망할 놈, 다음번에는 삼겹살로 안 끝난다. 한우는 얻어먹어야 해.’
그는 이를 박박 갈면서도 속으로는 살짝 고소한 기분이 들었다.
‘이참에 못을 박아 두면 다른 녀석들도 찍소리 못 하겠지?’
이미 이 판결은 끝난 것이나 마찬가지다.
어차피 미성년자라 그다지 강한 판결은 못 내린다. 잘해 봐야 5호 처분 정도? 장기 보호관찰을 하는 것이다.
그리고 저 깜찍한 여자애가 또 그 짓거리를 할 건 안 봐도 비디오다.
‘그래, 내가 한 번만 넘어가 주마, 썅놈의 시키.’
그렇게 생각하면서도 사실 천종관은 자신의 복수도 겸하고 있었다.
그렇지 않다면, 하지 않아도 될 말을 이렇게 굳이 할 필요는 없기 때문이다.
“피의자 최유정의 아버지가 행자부 차관 맞습니까?”
“네!”
그걸 들은 최유정은 신나서 외쳤다.
‘역시 아버지 백이 작동하는구나. 윤보라, 황미래, 이 썅년들! 돌아가면 죽었어.’
그녀가 아무리 머리를 쓴다고 해도 결국은 중학생이다. 그러니 자기 딴에는 아버지가 무서워서 그렇게 확인한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애석하게도 천종관은 그가 무서워서 그런 게 아니었다.
“본 사건은 개인적 사정으로 인하여 더 이상 본 판사가 재판을 진행할 수 없는 점이 확실하므로 다음 판사가 내정될 때까지 사건의 진행을 정지시킵니다. 다음 판사가 내정되고 난 후 사건은 진행될 것입니다.”
“헐?”
“뭐야?”
뒤에 서 있던 기자들은 그 말을 듣고는 순간 어리둥절했지만, 아까 천종관이 했던 말을 들은 기자들의 머릿속에서는 한 가지 가능성이 떠오르고 있었다.
* * *
“저는 아무런 압력도 넣지 않았습니다! 판사님도 사건을 거부한 이유가 담당 변호사와 개인적 관계가 있어서 그런 거라고 해명하지 않았습니까!”
최유정의 아버지는 어떻게 해서든 상황을 풀어 보고 싶었다. 하지만 그럴 수가 없었다.
“그런데 왜 판사님이 피의자의 부모의 신분을 확인한 거죠?”
“그거 말고 다른 이유가 없지 않습니까?”
“아, 글쎄, 전 모른다니까요!”
“한마디만 해 주십시오!”
그는 어떻게 해서든 그곳을 벗어나고 싶었지만 기자들은 집요하게 달라붙었다.
그때 먼 곳에서 그들을 바라보던 노형진은 보고 있던 사건 서류철을 탁 소리가 나게 덮었다.
“끝!”
“진짜 끝난 거야?”
“그렇지. 이제 저쪽에서 쓸 수 있는 카드는 이미 다 막혔거든.”
구해 준 사람이 장관인지라 전국으로 소문이 다 났다. 그래서 범죄를 감출 수도 없는데 천종관의 마지막 질문 덕분에 최유정의 아버지가 압력을 넣었다고 생각하는 기자들이 그 부분을 집요하게 파고들고 있었다.
물론 아무리 최유정의 아버지가 차관이라고 해도 압력을 지금 넣는 것은 위험한 일이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장관이 끼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뉴스에서는 그렇게 안 보이지, 후후후.”
누가 봐도 판사가 압력에 굴해서 판단을 못 하겠다 생각해서 뒤로 물러난 것이다.
“재판장님을 속인 거 아냐?”
“어, 속인 거 아니야. 어차피 선배는 이거 내 사건이라고 하면 물러날 거거든.”
약간은 고지식한 타입인 만큼 자신과 친밀한 변호사가 담당이라고 하면 그는 물러난다.
“그래서 그냥 저 질문 하나만 해 달라고 했지. 어차피 이건 형사사건이라서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딱 여기까지니까.”
“헐…….”
“질문 하나의 무게가 어마어마하지?”
공식적으로 그가 위에다 언급한 것은 노형진과의 친분이고, 그건 위에서도 납득할 만한 일이었다.
그러나 저 질문 때문에 언론에는 마치 다른 이유가 있는 듯 비쳤고, 그 근본이 된 최유정의 아버지는 혹독한 대가를 치르게 될 게 뻔했다.
“딸은 범죄를 저지르고 부모는 그걸 덮으려고 했다면, 과연 어떻게 될까?”
“최소한 감봉이겠지.”
그리고 차관급의 고위 공직자들에게 감봉이라는 처벌은 생각보다 무섭다.
단순히 돈을 받지 못하는 게 아니라 차관급이 감봉을 당하면 사실상 승진은 물 건너가는 셈이고, 특히 교육부 장관이나 유민택같이 정재계 인물까지 섞여 있는 사건인 경우 그들이 말하지 않는다고 해도 한직 확정이다.
“딸 잘못 둬서 인생 꼬였네.”
“뭐, 철 밥통 공무원이니 잘리지는 않겠지. 하지만 이제 승진은 꿈도 못 꿀걸.”
노형진은 다급하게 도망치는 행자부 차관을 보면서 미소 지었다.
얼마 후 판결이 나왔다. 예상대로 5호 처분. 그리고 강제 전학.
“조금 불만족스럽지?”
노형진은 윤보라에게 물었다. 하지만 윤보라는 고개를 흔들었다.
“이 정도면 충분해요. 사실 포기하고 있었으니까.”
“그래?”
“네. 변호사님 아니었으면 방법도 없이 친구 자살할 뻔했다니까요.”
“하하하, 뭐, 다행이기는 하네.”
더 이상 피해자가 생기지 않으리라는 것은 다행한 일이다.
“최유정은 다른 학교에 갔는데 은따당하나 봐요. 우리한테 한 정도는 아니고, 그냥 애들이 상대를 안 해 준대요.”
“어떻게 알아?”
“말했잖아요, 우리 보육원 크다고. 우리 학교에만 다니는 거 아니거든요.”
노형진은 대충 알 것 같았다.
“친해지려고 하지 않겠지.”
범죄자로 찍혀 있고 또 무슨 짓을 했는지 소문이 다 난 상황에서 누가 최유정과 친해지려고 하겠는가?
“이제 어쩔 거야?”
“뭘요?”
“이제 네가 여왕벌이잖아?”
“아, 그거요? 그냥 다른 거 한번 해 보려고요.”
“다른 거?”
“네? 여왕벌이 공식 직함은 아니잖아요?”
윤보라는 자신의 미래에 대해서 이번에 많이 생각했고, 방향을 정확하게 잡았다. 그리고 그걸 위해서는 새로운 길을 갈 필요가 있다는 것도 인식하고 있었다.
“학생회장에 도전해 볼까 해요.”
“학생회장에?”
“네. 여왕벌이라는 어감도 안 좋고, 그년 꼴 날까 봐 걱정도 되고.”
“좋은 생각이기는 하네.”
합법적으로 학생들을 대표하겠다는 건 결코 나쁜 행동이 아니다. 아니, 도리어 권해 줘야 하는 행동이다.
“학생회장이 학교 폭력에 반대하면 박멸하는 건 어려운 일이 아니지.”
“새로 바뀐 교장 선생님은 그쪽으로는 치를 떨 것 같은데요?”
“하하하.”
전임 교장은 결국 모든 책임을 지고 해직당했다. 책임자였던 선생님들도 일부 징계를 받았다.
위에서 내려온 분노는 생각보다 더 큰 파괴력을 가졌던 것이다.
“다만 미래는 당분간 더 정신과 치료를 받아야 할 것 같지만.”
“그렇겠지.”
이러한 정신적 고문은 쉽게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하지만 일단은 더 이상 괴롭힘은 없으니까 나아지지 않겠어요?”
“그래야지……. 그래야 할 텐데.”
지금의 상처가 얼마나 큰지 알고 있는 노형진은 그렇게 말하는 것 말고는 아무런 말도 할 수가 없었다.
아마도 은따의 상처는 오래갈 것이고 평생에 걸쳐서 영향을 줄 것이다. 아직은 이 아이들이 모를 수밖에 없는 현실의 문제였다.
“그래야지.”
노형진은 그 말을 마법처럼 중얼거릴 뿐이었다.
>3장. 쌍방이라니>
“역시 술은 나한테 영 안 맞아.”
노형진은 툴툴거리면서 거리를 가고 있었다.
노형진은 술을 별로 안 좋아한다. 그래서 마셔도 기껏해야 와인 한두 잔 아니면 맥주 한 잔 정도다.
하지만 회식이 있거나 그런 경우는 어쩔 수 없이 참석해야 한다.
그리고 한국의 문화상 그런 회식 자리에 술이 안 낄 수가 없다.
강제로 마시라고는 하지 않지만 술을 좋아하지 않으니 당연히 술자리도 별로일 수밖에.
“이제 날씨가 슬슬 더워지네.”
밤인데도 불구하고 살짝 더운 듯한 날씨.
다른 사람들은 이런 날씨에 시원한 맥주 한 잔이 당기겠지만 노형진은 시원한 콜라 한 잔이 더 그리웠다.
“무슨 놈의 술집에 콜라가 없어?”
사실 술을 안 먹으니 분위기라도 맞춰 보려고 콜라를 시켰는데 콜라가 다 떨어졌다는 황당한 답변에, 노형진은 직접 콜라를 사러 바깥으로 나온 것이다.
“응?”
노형진이 그렇게 바깥으로 나와서 콜라를 사 들고 가려고 하는 찰나, 좀 떨어진 곳에서 경찰과 사람들이 웅성거리는 것이 보였다.
“뭐지?”
경찰이 있다는 것은 법적인 문제가 생겼다는 뜻이기 때문에 노형진은 호기심이 생겨서 가 보았다.
경찰이 그곳에 있던 사람들을 경찰차에 강제로 태우는 모습이 보였다.
“무슨 일인가요?”
노형진처럼 구경하러 온 사람들이 많았기 때문에 물어보는 데에 지장은 없었고, 그 답도 금방 나왔다.
“저 덩치 큰 놈들이 사람을 팼다고 하더군요.”
“사람을 팼다고요?”
“네. 그래서 경찰에 신고했는데, 둘 다 잡아가네요.”
“그래요?”
노형진은 무심하게 그들을 바라보았다.
날씨가 더워지기 시작하고 맥주 같은 주류의 판매가 늘어나자 술에 취해서 싸우는 사람이 늘어나기 시작한 것이다.
“뭐야? 노 변호사, 왜 안 들어와?”
노형진이 그들을 보는 사이에 바깥으로 나온 송정한이 노형진을 뒤에서 툭 쳤다.
“아, 깜짝이야.”
“뭘 그리 놀라?”
“아니, 경찰이 출동해서요.”
“경찰?”
경찰이라는 말에 잠깐 멈칫한 송정한이었다. 그도 변호사로서 호기심이 든 것이다.
하지만 그 순간은 짧았다.
“그냥 나중에 알아봐, 나중에.”
“네?”
“회식인데 여기까지 와서 일 찾아야겠어? 쉴 때는 쉬어야지.”
“그건 그렇지요.”
노형진은 그렇게 말하면서도 어쩐지 신경이 쓰여서 방금 경찰서로 간 사람들이 있던 자리를 바라보았다.
‘그래, 나중에 알아보자.’
어차피 경찰서에 갔다면 그들이 알아서 할 일이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노형진은 그렇게 생각하고 다시 안으로 들어갔다.
하지만 영 불안한 느낌 때문에 자리에 그냥 있을 수가 없었다.
“왜 그러나?”
“아니요, 아까 그곳에서 뭔지 이상한 느낌이 들어서요.”
“이상한 느낌?”
“네. 이상하게 뭔가 켕기는 느낌이랄까?”
“거기에 무슨 사건이 있었는데?”
“뭐, 폭행이라는 것 같던데.”
“흠…….”
송정한은 노형진의 말에 잠깐 고민했다. 그러다가 다시 그를 보면서 고개를 끄덕거렸다.
“영 켕기면 한번 가 보는 것도 나쁘지 않지. 변호사가 오는 손님만 받으라는 법은 없으니까.”
“그건 그렇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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