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the law RAW novel - Chapter (854)
>1장. 인생은 술에 술 탄 듯, 물에 물 탄 듯, 술에 약 탄 듯?>
“3차 가자, 3차.”
“난 여기까지 하고 그만 갈란다. 내일 출근도 해야 하고.”
노형진이 슬쩍 발을 빼자 친구들은 어이가 없다는 얼굴이 되었다.
“또 튀는 거야?”
“튀는 게 아니라 이제 가야지, 언제나처럼.”
“거참.”
친구들과의 만남은 언제나 즐겁다, 한 가지만 빼고.
“넌 아직도 술 안 먹냐?”
“안 먹는 게 아니라 못 먹는 거라니까.”
체질적으로 술을 좋아하지 않는 노형진은 친구들과의 약속이 언제나 술집으로 이어지는 것이 영 고달플 수밖에 없었다.
“몸이 별로 안 좋아해서 말이지.”
“거참, 유난스럽기는.”
“유난스러운 게 아니라 현실이야. 다른 사람들은 말을 못 하는 거고.”
한국에서 10% 이상의 사람들이 체질적으로 술이 받지 않는 사람들이다. 하지만 그들은 술을 먹지 않으면 안 되는 사회 분위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술을 먹게 되는 것이다. 물론 노형진이야 그럴 이유가 없지만.
“너랑 같이 있으면 다 좋은 게 3차가 없잖아, 3차가.”
“너희들끼리 가면 되는 거지, 뭘.”
“에잉.”
1차는 일반적인 식당에서 저녁을 먹으면서 소주 한 잔, 2차는 노래방에서 노래 한 곡. 그리고 3차는 전문 술집으로 가는 것이 일반적인 과정이다. 그래서 노형진은 보통 2차까지는 군소리 없이 따라가지만 3차에서는 빠지는 경우가 많았다.
“난 갈란다.”
“나쁜 놈의 시키.”
“그러면 술 안 먹는 모임을 만들든가.”
“내가 한번 만들고 만다.”
친구들은 툴툴거리면서 3차를 갈 사람들끼리 뭉치기 시작했고 노형진은 그걸 보면서 싱긋 웃더니 방향을 돌려서 집으로 가기 시작했다.
‘뭐, 가끔은 이런 것도 나쁘지는 않지.’
바쁜 일상에서 친구들을 만나는 것이 나쁜 일은 아니기 때문에 노형진은 즐거운 마음으로 그곳을 나왔다. 내일이면 다시 일에 집중할 수 있을 거라 생각하면서 말이다.
* * *
다음 날, 노형진은 언제나처럼 출근해서 다음 사건을 준비하고 있었다.
“일단…… 이 사건은 조만간 결심이 나올 것 같고…….”
서류를 정리하면서 이런저런 생각을 하는 노형진에게 때마침 전화가 왔다.
“응? 문식이 아냐?”
석문식은 어젯밤에 헤어진 친구였다. 친하기는 하지만 어제 보고 이 이른 아침 시간에 또 전화할 만큼은 아니었다.
“여보세요? 문식이냐? 이 시간에 어쩐 일이야?”
-야, 우리 좆 되어 버렸다.
“좆 되다니 무슨 소리야?”
-우리, 사기당한 것 같아.
“사기? 뭔 소리야. 친구들끼리 무슨 사기를 당해?”
-씨발, 우리가 4차 갔는데.
“갔는데?”
-술값이 무려 1,200만 원이 나왔다.
“뭐?”
노형진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술값으로 1,200만 원이나 나올 리 없지 않은가?
“뭔 놈의 술을 그렇게 많이 마셨어?”
-그게 아니라…… 아오, 진짜. 우리가 3차까지만 가려고 했거든.
아무리 친구가 좋아도 다들 다음 날이면 출근해야 하는 사람들이었기 때문에 3차 정도에서 끝내려고 했다고 한다. 그런데 3차에서 술이 과했는지 다들 정신을 못 차렸고 그들은 해롱대다가 눈을 떠 보니 어느 모텔이었단다.
“그런데?”
-그런데 우리는 기억을 못 하는데 어느 사이엔가 모텔에 와 있는 거야.
그리고 그의 눈에 보인 것은 현금 서비스를 받은 기록과 부모님들에게서 온 엄청난 양의 전화들.
‘당했구나.’
노형진은 그 소리를 듣고 바로 무슨 상황인지 알아차렸다. 그리고 상대방 역시 무슨 일인지 알아차린 모양이었다.
“그래서 어떻게 된 거야?”
-도대체 어떻게 된 건지 모르겠어…….
-왜 1,200만 원이나 썼는지 모르겠어. 술집에 간 것 같기는 한데 그것도 기억이 확실하지 않고.
“몇 명이나 갔는데?”
-네 명.
“헐.”
결국 한 사람당 300만 원씩 뜯겼다는 소리가 된다. 노형진은 기가 막혀서 말이 안 나왔다.
“경찰에는 갔어?”
-그렇기는 한데……. 여기 경찰서야. 그런데 증거가 없으면 자기들은 아무것도 할 수가 없다고…….
‘이런 미친놈들.’
경찰은 수사해서 증거를 모으는 게 임무다. 그런데 증거가 없다고 수사를 안 하다니.
“그래서 지금 뭐 하고 있는데?”
-일단 지금 경찰서 앞이야.
“내가 바로 갈게. 기다려.”
-빨리 좀 와. 염병할. 지금 카드값 때문에 집에서 전화 오고 난리야.
노형진이 사회생활을 한다고 하지만 대부분의 사람들은 아직 그럴 때가 아니다. 일반적으로 노형진 나이면 대부분은 대학에 있다. 특히 남자라면 말이다.
결국 그들이 가지고 있는 카드는 부모님의 카드라는 뜻인데 집으로 통지가 갔으니 난리가 날 수밖에 없다.
“기다려. 바로 갈게.”
노형진은 바깥으로 바로 나가려고 하다가 막 들어오던 손채림을 만났다.
“어, 어디 가?”
“석문식이가 일이 생겼단다.”
“일이라니?”
“술집에서 약을 탄 것 같아.”
“약?”
손채림 역시 그런 소식을 알고 있었기 때문에 바로 알아들었다.
“얼마나 뜯겼는데?”
“1,200만 원.”
“뭐?”
“네 명이서 뜯겼대.”
“미친 거 아냐?”
손채림은 기가 막히다는 얼굴이 되었다.
“잘하는 짓이다. 쯧쯧.”
손채림 역시 그들과 동창이다. 그러니 그들이 아무리 미쳐도 그 정도로 술을 먹을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다. 이제 대학 졸업반인 사람이 무슨 술을 그렇게 먹겠는가?
“같이 가자.”
“너도?”
“어차피 이건 우리가 같이 해결해야 하는 거 아니야?”
“하긴…….”
이런 사건은 절대로 그냥 달라고 해서 해결할 수 있는 사건이 아니다.
‘이거 참 골 때리는구먼.’
노형진으로서는 이 사건을 어떻게 해결할지 생각이 많아질 수밖에 없었다.
* * *
“어, 너희가 왜 같이 와?”
“같이 일한다.”
“응?”
같이 일한다는 사실을 몰랐던 친구들은 어리둥절했다. 하지만 손채림의 다음 말에 풀이 죽은 듯 고개를 숙였다.
“지금 중요한 건 그게 아닐 텐데? 어쩌다가 당한 거야?”
“아…….”
“망할…….”
다들 고개를 푹 숙였고 석문식이 대표로 상황을 설명했다.
“아까도 말했지만…….”
3차까지 가고 난 후에 다들 휘청거리면서 집으로 갔는데 그 후에는 기억이 안 난다는 것이다.
“한 가지 기억나는 건 누군가 우리를 부축해서 끌고 갔다는 것.”
“끌고 가?”
“그래.”
“아니, 거기에 끌려갔다고? 네 명이?”
“그러니까…… 우리도 돌겠다고.”
기가 막혀 하는 그들을 보면서 손채림이 어이없어 하자 노형진은 그런 그녀를 말렸다.
“그 녀석들은 취한 사람만 노리거든.”
“취한 사람?”
“그래, 너도 뉴스에서 많이 봤을 거 아냐?”
“그건 그렇지.”
“그런데 그 사람들이 바보라서 거기에 당하겠어?”
“그건 아니겠지.”
“그 녀석들이 도가 튼 거야.”
이런 방식의 범죄는 무척이나 간단하다. 술에 취해서 제대로 정신 못 차리는 사람을 마치 부축하는 척해서 자신의 술집으로 끌고 간다. 그 후에 결제하게 만드는 것이다.
“아니, 카드 취소 안 되는 거야? 전화해서 취소하면 되잖아?”
“그 녀석들은 바보가 아니야.”
카드는 긁으면 정해진 출금일에 나간다. 그렇기 때문에 카드 회사에 전화해서 바로 막을 수 있다. 그러나 그 점은 그 녀석들도 안다는 것.
“술에 취해서 해롱대는 사람들에게 계속 카드 비밀번호를 물어. 그리고 현금 서비스를 받지.”
“헐.”
“카드는 막으면 그만이니까.”
체크카드는 그 안에서 돈을 꺼내고 신용카드는 현금 서비스를 받는다. 그런 식으로 상대방에게서 돈을 갈취하는 것이다.
“그런데 경찰이 그냥 둬?”
“그건 나중에 이야기하자. 일단 급한 게 있으니까.”
“급한 거?”
“그래, 너희들 지금 거기서 나온 지 얼마나 된 거야?”
“한…… 세 시간 좀 넘은 것 같아.”
노형진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 정도면 다행히 가능한 시간이었다.
“당장 병원부터 가자.”
“병원? 웬 병원?”
“우리는 다친 게 아닌데?”
그들은 고개를 갸웃했다. 누군가 맞았다면 병원을 가는 게 맞지만, 맞은 사람은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다.
“다친 게 아니라 피 때문에 그래.”
“피?”
“그래, 아무리 술에 취했다고 해도 비밀번호를 그렇게 사람들이 쉽게 말할 것 같아? 그리고 그걸 말한 후에 술에 취해서 잠든다고? 너무 쉽지 않아?”
“설마?”
“대부분 그런 곳에서는 약을 타기 마련이지.”
“아!”
그런 술집들은 제대로 장사하는 게 아니라 술에 약을 타서 그걸 먹인 뒤에 갈취한다.
“그 약들은 시간이 지나면 몸 안에서 사라져. 가장 강력한 증거가 사라지는 셈이지. 놈들이 노리는 것도 그거고. 그 녀석들이 왜 겁만 주고 안 때리는지 알아?”
때리면 병원을 가게 된다. 그리고 병원에서는 혈액을 채취해서 검사한다.
“당연히 그 검사에서 약이 걸리거든.”
“설마.”
“‘물뽕’이라고 하는 건 신진대사 시간이 대략 스물네 시간 정도 걸려. 그 후에는 몸 안에서 사라지지. 그 전에 검사해서 약을 썼다는 것을 알아내야 해.”
노형진은 그들을 데리고 바로 병원으로 달려갔다.
그리고 그들이 검사하는 사이 이번 사건을 해결할 수 있는 방법을 구상했다.
“잡을 수 있을까?”
“일단 저 녀석들이 술집을 기억하지 못한다는 게 가장 큰 문제야.”
“카드를 긁었다면서?”
“현금 서비스를 받은 거지. 이런 짓을 하는 새끼들은 절대로 자기 가게에서 안 긁어. 그런 놈들은 초짜고, 경찰에 잡히는 놈들은 대부분 그런 놈들이야.”
“그래?”
“그래, 이것도 일종의 공생 관계나 마찬가지거든.”
아무것도 모르는 초짜 범죄자들은 카드로 자기네 가게에서 긁어 버린다. 그러나 그런 경우는 대부분 경찰이 쉽게 잡아낼 수 있고 또 증거도 있다.
“그런데 이런 타입의 녀석들은 초짜가 아니야. 한두 번 해 본 게 아니라는 거지.”
증거를 남기지 않기 위해서 자기네 가게에서 절대로 긁지 않는다.
“심지어 자기네 가게 주변의 현금인출기도 안 써.”
“그게 무슨 소리야?”
“돌아다니면서 출금하는 녀석이 따로 있다는 거지.”
걸어 다니는 게 아니라 아예 오토바이를 타고 돌아다니면서 주변 은행이나 입출금기에서 랜덤하게 돈을 뽑아내는 것이다.
“그래야 자기네 위치가 탄로 나지 않으니까.”
“그 정도야?”
“이런 짓거리 하는 놈들이 과연 하루에 한두 명만 잡을까?”
“그렇겠구나.”
당한 사람들은 대부분 경찰서로 가서 신고할 것이다. 하지만 대부분 또 그걸 포기하게 될 것이다.
“못 잡으니까. 아예 안 잡는 것도 있고.”
“안 잡는다고?”
“경찰이 과연 진짜 수사 방법이 없어서 안 잡는 것 같아?”
“쩝…….”
손채림은 알겠다는 듯 입맛만 다셨다.
그녀가 새론에서 일한 것이 오래되지 않았지만 경찰이라는 조직은 믿음을 잃어버릴 만큼 충분히 봐 왔기 때문이다.
“아무리 경찰이 무능하다고 해도 피해자가 백 단위를 넘어가는데 수사를 안 한다는 건 말이 안 되지, 일반적으로는.”
“로비인가?”
“뻔한 거 아냐? 신고자가 백 단위는 넘어가는데 왜 수사를 안 하겠어?”
석문식 일행의 사건의 경우 일단 접수하고 미결로 넘기는 게 아니라 아예 방법이 없다고 못을 박아 버렸다. 이는 즉, 접수 자체를 하고 싶지 않다는 뜻이다.
“일반적으로 미결로 넘기면 자기네 인사고과가 떨어지니까.”
그러니 어떻게 해서든 사건을 받고 싶지 않은 것이다.
“아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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