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the law RAW novel - Chapter (862)
“벽 쪽이 왜…… 어라? 닳았네요?”
벽 쪽에 있는 실리콘은 어째서인지 닳아 있었다. 이건 말도 안 된다. 실리콘의 목적은 어느 부위를 고정시키고 막기 위한 것이다. 그런데 그게 닳았다는 것은 그 부위가 움직였다는 소리다.
그러는 사이 사람들이 모여서 노형진과 검사를 이상하다는 듯 바라보았다. 변호사와 검사 두 사람이 바닥에 엎으려 있으니 그럴 만도 했다.
“이거, 덜그럭거리네요.”
노형진이 일어나서 소변기를 흔들었다. 미세하지만 확실히 흔들리는 느낌.
“그런가요?”
검사도 그걸 흔들어 봤는데 확실히 흔들리는 느낌이 있었다.
“이거…… 움직일 수 있겠는데요?”
노형진은 그걸 보면서 말했다. 다만 그걸 움직이기 위한 방법은 알 수가 없었다.
“김덕배에게 물어봐야 할 것 같습니다.”
“글쎄요. 김덕배가 이야기해 줄 것 같지는 않은데요?”
입구 쪽에서 얼굴이 파랗게 질린 김덕배를 발견한 노형진이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그런 그의 표정에 고개를 돌린 검사도 김덕배를 발견하고는 씩 웃었다. 그 얼굴색이 자신이 방향을 제대로 잡았다는 것을 알려 주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래요? 그러면 하는 수 없죠.”
그는 씩 웃으면서 김덕배에게 질문을 던졌다.
“이봐. 이거 얼마야?”
“네?”
차마 검사에게 반말하지 못한 김덕배는 존대로 다시 물었다. 그러자 그런 그에게 검사는 다시 한 번 물었다.
“소변기 가격 얼마냐고.”
“그, 글쎄요? 저도 잘…….”
“확실한 건 100만 원은 안 넘는다는 거지?”
“글쎄요.”
“안 넘습니다.”
마지막 대답은 노형진이 한 것이다. 그리고 그걸로 결정이 났다.
“그래요? 그렇다면야.”
검사는 씩 웃었다.
“열 필요가 없지요.”
어떤 방식인지 모르지만 어떤 방식을 쓰면 이게 분명히 움직일 것이다. 그러나 자신들은 그 방식을 모른다. 그리고 김덕배가 알려 줄 리도 없다.
“부수면 그만이지요.”
“안 돼! 그거 부수면 신고할 거야!”
순간 발악하는 김덕배.
‘큭큭, 이럴 줄 알았다.’
소변기가 깨끗한 이유가 있을 수밖에 없다. 수시로 열고 닫아야 하는 건데 누가 더러운 걸 만지려고 하겠는가?
마약에 취한 손님들이 여기 와서 오줌을 눌 리는 없고 직원들은 아니까 이 소변기를 사용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래서 유독 깨끗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그리고 그게 패착이었다.
“나 말이야…….”
검사는 잠깐 나갔다 오더니 주먹을 불끈 쥐었다. 그리고 그의 손에는 커다란 쇠망치가 들려 있었다. 벽에 감춰진 물건이 있는 경우 그걸 꺼내기 위해서 가지고 온 장비였다.
“해병대 나온 사람이야. 해병대의 모토가 뭔지 알아?”
“안 돼!”
비명을 지르는 김덕배. 그리고 하늘을 나는 커다란 쇠망치.
“안 되면 되게 하라야!”
콘크리트도 아니고 사기로 된 소변기가 쇠망치를 버틸 수 있을 리 없었다.
요란한 와장창 소리와 함께 소변기는 박살이 나 버렸는데, 그 뒤로 휭하니 뚫린 구멍이 보였다.
“휘유.”
일반적으로 벽이 있어야 하는 자리에 보이는 것은 커다란 구멍과 그 구멍 너머에 보이는 뭔가에 연결된 유압식 장비였다. 그리고 그 아래 있는 수많은 서류들과 맨 위 칸에 있는 상자.
“아…….”
노형진이 상자를 열자 절망적으로 털썩 주저앉는 김덕배.
딸깍 소리와 함께 열린 상자에는 상당한 양의 물뽕이 작은 유리 캡슐 안에 찰랑거리면서 담겨 있었다.
“이거, 못해도 200인분은 되겠는데요.”
“200인분은요. 400인분은 됩니다.”
검사는 헤죽 웃으면서 그걸 바라보았다.
* * *
“나중에 소고기 사 주마.”
“고작 소고기로 끝이냐? 나 변호사야, 인마.”
“그러면? 룸살롱?”
“아직도 정신 못 차렸네. 가서 물뽕 한 잔 더 하시려고?”
석문식과 말하면서 노형진은 씩 웃었다.
“안 사 줘도 되니까 어서 졸업이나 해라.”
“짜식.”
“하하하.”
“그런데 왜 말 안 한 거야?”
“뭐?”
“채림이 너희 회사에서 일하는 거.”
“아, 그거 어쩌다 보니 그렇게 된 거야.”
“혹시 너희…….”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바라보는 친구들. 하지만 노형진은 손사래를 쳤다.
“아니야, 전혀. 그런 거 아니거든요.”
“그래?”
“그래.”
“혹시 말이야.”
“응?”
“너 고자냐? 아니면 금단 쪽이라든가……. 후자면 나 볼 생각은 말고.”
“전자도, 후자도 아니다. 설사 후자라고 해도 너를 상대로? 꿈도 꾸지 마.”
키득거리는 친구들. 일이 해결되었고 돈은 모조리 돌려받았다. 그러니 마음이 느긋해진 것이다.
“뭐, 너희가 알아서 할 일이기는 하지.”
노형진과 손채림에 대해서 친구들은 더 이상 묻지 않았다. 손채림의 아버지가 노형진을 극도로 싫어한다는 것은 다 아는 사실이니 말이다, 물론 집안에서 손채림이 쫓겨난 건 모르고 있지만.
“그나저나 사건은 이제 끝난 거야?”
“너희한테는. 하지만 다른 곳은 이제 시작이야.”
검사의 조사 결과, 피해자는 육백 명은 넘어가고 있었다. 드러난 것만 그 정도이고 아직 드러나지 않은 사람까지 생각하면 얼마나 더 있는지 알 수가 없다.
경찰 조직은 단순 갈취 정도로 생각하다가 마약까지 동원되었다는 사실에 기겁하면서 자신들은 모른다고 발뺌했지만 워낙 증거가 넘쳐서 벗어날 수는 없는 상황이었다.
“아마 상당수 해직될 거야.”
직접적으로 관련된 자들은 죄다 해직이다. 그렇지 않는 자들도 징계와 더불어 다른 지역으로 발령되는데, 문제는 이 지역이 아니라 어디 섬이나 저기 산속으로 가게 될 거라는 것이다.
‘그만두라는 소리지.’
내부적으로 편들어 주고 싶어도 마약까지 관련된 사건이라 그럴 수가 없었다. 더군다나 그걸 예상한 건지 검사도 조사를 경찰에 넘기는 게 아니라 직권으로 자신들이 하고 있기 때문에 막을 수도 없었다.
“마약은 말로는 중국을 통해서 가지고 온 모양이야.”
“무서운 놈들. 아니, 그걸 왜 쓴 거야?”
“혹시나 하는 생각이 든 거지. 너희도 겪어 봤지만 물뽕은 기억을 날려 버리는 효과가 있거든.”
술에 취해서 흐느적거리는 사람이라고 해도 기억이 아예 없는 건 아니다. 그러니 그들에게 돈을 뜯어냈다가는 신고도 많아질 테고 재수 없어서 위와 선이 닿은 인간이라면 자신들도 곤란해진다.
“하지만 물뽕을 쓰면 기억 자체가 날아가 버리니까. 그게 괜히 데이트 강간 약이라고 불리는 게 아니다.”
기억이 전혀 나지 않으니 신고해 봐야 의미가 없는 것이다. 유전자가 남아 있을지 모르지만 유전자도 비교 대상이 있어야 특정 하는 거니까.
“자기 딴에는 확실하게 하기 위해서 약을 쓴 거지.”
하지만 도리어 그게 문제가 된 것이다.
“멍청한 거 아냐?”
만일 그냥 돈만 빼앗은 거라면 갈취가 되었을 것이다. 하지만 마약까지 끼는 바람에 형량이 아주 크게 늘어날 수밖에 없다.
“세상은 가끔 멍청한 놈들이 많거든.”
노형진은 그렇게 말하면서 피식 웃었다.
“그리고 말이야…….”
“응?”
“그 녀석들이 멍청한 거면 거기에 당한 너희들은 뭐냐?”
“우리?”
“우리야 뭐 상멍청이지들이! 우하하하.”
“이참에 조직을 만들자. 노형진과 멍청이들 어때?”
“거기 난 왜 끼는데?”
“네가 제일 똑똑하잖아.”
“부정은 못 하겠는데…….”
왠지 자신이 놀아난다는 느낌에 노형진은 자신이 멍청해진 게 아닌가 하는 생각하다가 웃을 수밖에 없었다.
>4장. 너무 이른 축포>
“만세!”
“위하여!”
유민택은 오늘 하루는 너무나 행복했다. 너무나 행복해서 눈물이 날 지경이었다.
“이제 끝이 보입니다.”
“수고하셨습니다, 회장님!”
사장단은 유민택을 축하했고, 새론 역시 그런 유민택과 함께 파티를 즐기고 있었다.
“하하하.”
공식적으로는 오늘의 파티는 대룡건설의 아파트 완공 축하파티다. 물론 그건 말 그대로 외부적이고 공식적인 파티의 이름일 뿐이다. 매년 수많은 아파트 단지를 올리는 게 대룡건설인데 그때마다 파티를 하지는 않는다.
“자네들이 도와준 덕분이네.”
유민택은 자신도 모르게 눈물이 찔끔 흘렀다.
“벌써 울면 어쩌십니까? 아직 안 끝났습니다.”
“그렇지.”
오늘 파티를 하는 이유는 다름 아닌 성화 때문이다. 물론 성화와 화해했다거나 그들이 항복한 것은 아니다. 하지만 아주 거대한 승리. 그것도 확실한 승리를 손에 넣었기 때문이다.
“그 성화가 몰락할 거라고는 생각하지 못했네.”
“그동안 타격이 적은 게 아니었으니까요.”
대한민국은 기업의 규모를 구분해서 지원 같은 걸 차등적으로 적용한다. 그리고 대룡과 성화는 분류상 대기업에 들어간다. 그런데 얼마 전 성화가 대기업에서 탈락한 것이다.
“이제 중견 기업입니다, 성화는.”
“그래, 중견 기업이지. 후후후.”
대기업과 중견 기업의 차이는 어마어마하다.
물론 대기업이었던 성화가 중견 기업으로 떨어지면서 그들이 중견 기업 중 1순위가 되었다고 하지만 그 차이는 엄청나게 크다.
야구로 치자면 메이저리그와 마이너리그만큼이나, 아니 그 이상 차이가 난다. 메이저리그는 엄청난 돈이 돌고 또 엄청난 대우를 받지만 마이너리그는 가난한 스포츠일 뿐이다.
“솔직히 성화와 싸움을 시작할 때만 해도 이길 수 있을 거라 생각하지 못했네.”
재계 순위는 거의 비등하다고 하지만 김화자가 기업 자체를 망가트려 놓아서 유민택이 복귀했을 때는 도무지 방법이 없어 보일 지경이었다. 그런데 그 상황에서 모든 걸 이겨 내고 아주 큰 승리를 손에 넣은 것이다.
“아마 지금쯤 눈물 좀 빼고 있을 거야, 후후후.”
단순히 규모가 줄어서 이렇게 파티를 하는 게 아니다.
대기업과 중견 기업이 본격적으로 싸우면 중견 기업이 이기지 못한다. 더군다나 성화의 자산은 대부분 부동산으로 묶여 있고 상당수 돈이 되는 사업에서 대룡에 연전연패하고 있는 상황.
“은행에서도 대출을 꺼리겠지요.”
“그렇겠지.”
일반인은 잘 모른다고 하지만 은행 같은 곳에서 대룡과 성화의 싸움을 모를 리 없다. 지금까지야 상황이 확실하지 않아서 중간에서 눈치만 봤지만 이로써 대룡이 이기고 성화가 지고 있다는 증거가 확실해졌다. 당연히 은행에서는 지고 있는 성화에 추가적 대출을 하려고 하지 않을 것이다.
‘현금 유동성이 끝장나면 기업도 끝이지.’
지금 성화는 가지고 있는 부동산 자산을 다급하게 매각하려고 하는 상황일 정도로 자금줄이 막혀 있었다.
“2년이라고 하더군.”
“네?”
“전략부에서는 성화의 생명이 길어 봐야 2년이라고 생각하고 있네.”
“그렇게 빠르게요?”
“이제 중견이니까.”
“아!”
지금까지 대룡과 성화의 싸움을 구경만 하던 대기업들은 성화의 남은 자산을 털어 먹기 위해서 덤벼들 것이다. 그게 현실이다. 그렇다고 대룡이 공격을 멈출 것도 아니니 성화의 생명은 꺼져 가는 불꽃이었다.
“자네 덕분이네.”
“별말씀을요.”
사실상 승리를 거머쥔 이상 남은 것은 마무리뿐.
다들 그 기쁨에 취해서 잔을 높이 들고 만세를 불렀다.
그렇게 그날의 파티가 한창 즐거운 분위기로 이어 가고 있을 때였다. 갑자기 문이 벌컥 열리면서 한 사람이 들어왔다.
“오? 박 사장, 늦었구먼.”
그는 계열사 중 한 곳을 담당하는 사장이었다. 그다지 큰 곳은 아니지만 그래도 나름 능력이 있는 사람이라고 알려진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의 얼굴은 사색이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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