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the law RAW novel - Chapter (871)
“아까도 말했다시피 당신은 시위에 아주 익숙합니다. 사람이 배 속에서부터 그걸 알고 나왔을 리 없으니 다른 곳에서 배웠겠지요. 안 그렇습니까?”
“뭐?”
“이 사진은 어떻게 설명하실 겁니까?”
다른 사진을 꺼내는 노형진. 그러나 이번에는 아까처럼 건물이나 가게를 찍은 게 아니라 서구섭 본인을 찍은 사진이었다. 다만 다른 곳에서 찍혔다는 것이 문제였다.
“이건 공항 소음 시위에서의 당신. 이건 방사능 대책 위원회에서의 당신. 이건 기름 유출 사고 때의 당신. 그리고 이건 태풍으로 인한 과실피해배상대책위원회에서의 당신 등등. 더 드릴까요?”
다른 장소에서 시위한 수많은 증거들이 나오자 서구섭은 할 수 있는 말이 아무것도 없었다.
“야! 이 새끼들아!”
사람들은 흥분했다. 자신들은 절박했다. 그래서 여기까지 온 것이다. 그런데 고작 이용당한 것뿐이라니.
“애초에 시위하자고 꼬신 것도 저들 아닙니까?”
생각해 보면 그렇다. 자신들은 그런 것에 대해서 전혀 알지도 못한다. 그런데 동종 업계 사람이라면서 설득한 것이 저들이었다.
“이 개새끼들!”
“죽여 버릴 거야!”
조리를 위해서 배치된 칼까지 드는 사람들. 그리고 그걸 본 서구섭이 선택할 수 있는 것은 하나뿐이었다.
“씨발, 튀어!”
집행부가 도망가는 걸 보면서 노형진은 비웃음을 흘리다가 문득 생각난 것이 있는지 성화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자신의 손으로 커다란 뻑큐를 만들어서 그쪽을 향해 날렸다.
>7장. 구멍은 작은 곳에서부터 시작된다>
“씨바알!”
김두만은 흥분은 감추지 못한 채로 길길이 날뛰고 있었다. 어떻게 돌아온 이곳인데 또다시 노형진이 방해하고 있었던 것이다.
더군다나 어제는 아주 대놓고 자신에게 뻑큐를 날렸다. 다 알고 그런 건지는 알 수 없었지만 성화 쪽으로 노형진은 뻑큐를 날렸는데, 때마침 그가 망원경으로 그 장면을 보고 있었던 것이다.
“빌어먹을 개자식! 죽여 버릴 거야! 죽여 버릴 거라고!”
길길이 날뛰는 김두만을 요시 히무로는 무심한 눈으로 바라보았다.
“으아아!”
“그만하시죠. 그렇게 흥분해 봐야 당신에게 좋은 거 하나도 없습니다.”
“뭐라고? 지금 나한테 덤비는 거야!”
“아니요. 경고하는 겁니다.”
“큭.”
오만한 말이었지만 김두만은 그에게 뭐라고 저항할 수가 없었다. 자신이 아무리 다시 돌아왔다고 해도 과거와 같은 힘을 가지고 있지 않다. 자신은 명백하게 후계 구도에서 쫓겨난 상황.
‘다시 안으로 들어가려면…….’
요시 히무로의 힘이 절대적으로 필요하다. 그러니 그가 부사장이라고 하더라도 그에게 저항할 수는 없다.
“그런데 의외군요. 이런 방식을 꿰뚫어 보는 녀석이 있을 줄이야. 조센징 주제에 제법이군요.”
“지금 한국인을 무시하는 거야?”
“꼴에 한국인이라고, 조센징이라는 말에 발끈하는 겁니까? 몰락을 막기 위해서 우리한테 손을 벌린 주제에?”
“…….”
“하여간 놀랍습니다. 일본에서는 한 번도 안 걸렸는데 말이지요.”
누구도 이런 방식이 있다고는 생각도 못 했다. 그래서 단 한 번도 문제가 된 적이 없었다.
물론 리더가 이끌면 이끄는 대로 가는 일본 특유의 문화 탓도 있지만 자신의 계획을 알아차리는 사람이 없어서 그런 것도 있었다.
‘노형진이라……. 재미있는 녀석이군.’
자신의 계획이 망가지기는 했지만 아예 실패한 것은 아니다.
“어차피 광고를 위해서 써먹으려고 하던 녀석들이니 광고는 다른 쪽으로 해야겠군요.”
“마약김밥은 그럼 계속하는 거야?”
“저들에게는 법적으로 마약김밥을 막을 권한이 없습니다. 그러니 걱정하지 않아도 됩니다.”
공짜로 대대적인 광고를 하지 못하게 된 것이 아쉽기는 하지만 아직 이 나라에서 돈을 뽑아낼 방법은 많았다.
“다만 다음번에 다시 부딪칠 것 같군요. 기대해도 되겠어요.”
요시 히무로는 왠지 기대된다는 얼굴로 해가 지는 창밖을 바라보았다.
* * *
“서구섭이 도망가고 나자 갑자기 사무실에서 쫓겨났다 이건가?”
“네, 계약 당사자가 나가라고 하더군요.”
“그렇겠지. 성화가 배알이 꼴려서 그냥 두겠나.”
“그렇지요.”
서구섭이 실패한 것은 금방 알려졌으니 성화가 돈을 내줄 리 없다. 그러니 바로 방을 빼 버린 것이다.
“일단 서구섭이 빠져나가고 난 후에 강수찬이 사람들을 다시 모아서 저항 세력을 만들었습니다. 현재로써는 제대로 된 집단이기는 합니다만.”
“여전히 문제가 해결된 건 아니다 이거지?”
“그렇지요.”
저들의 노이즈 마케팅만 막았을 뿐 마약김밥의 한국 입성을 막은 것은 아니다. 당연히 그들을 막기 위해서는 다른 방법이 필요하다.
“그래서, 방법 좀 생각해 봤나?”
“글쎄요. 가장 좋은 방법은 일본에서 냉동식품과 레토르트식품을 수입해서 시중에 뿌리는 것이기는 한데.”
“그건 나도 알고 있네. 하지만 쉽지 않더군.”
유민택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수입이라는 게 쉽게 되는 게 아니라서 말이지. 더군다나 대동이 어떻게 한 건지 쉽게 뚫리지가 않아.”
“대동도 바보가 아니니 우리의 수입을 막으려고 하겠지요.”
가장 효율적인 대처법이니까 대동도 예상하고 있을 것은 당연한 일.
“그러니 수입하더라도 당장은 안 될 겁니다.”
“흠…… 국내 생산을 해 볼까?”
“무리입니다.”
한국 음식도 아니고 일본 음식을 한국에서 제 맛을 낸다는 것은 힘들다. 더군다나 어찌 되었건 레토르트나 냉동 기술은 일본이 한국보다 훨씬 뛰어나다.
“그러니 똑같이 만든다고 해도 밀릴 겁니다.”
“그런다고 그냥 둘 수는 없고.”
노이즈 마케팅을 막았다고 해서 다 끝난 게 아니다. 그들의 한국 진입을 막을 수 있어야 한다. 최소한 늦추기라도 해야 한다.
‘마지막 말은 뭘까…….’
노형진이라고 해도 그걸 그냥 무조건 막을 수도 없는 상황. 그 상황에서 노형진은 계속 꺼림칙한 게 있었다.
‘고향이라…….’
남상진은 노형진에게 요시 히무로의 고향에 대해서 알아보라고 했다. 그러나 노형진이 조사한 바에 따르면 고향이 딱히 특이한 점도 없었다. 그저 시골일 뿐이었다.
“왜 그러나?”
“아니, 요시 히무로에 관해서 정보가 있는데 그걸 어떻게 이해할지 모르겠어서 말입니다.”
“정보?”
“네.”
노형진이 아는 바를 이야기해 주자 유민택 역시 고개를 갸웃했다.
“그냥 흔한 지명 같은데?”
“그러니까요.”
“한국인이 모르는 뭔가가 있는 거 아닐까?”
“그럴까요?”
“그래, 일본인에게 물어보는 건 어떤가?”
“일본인에게요?”
“대룡에 설마 일본인 한 명 없겠는가?”
“아!”
대룡은 큰 기업이다. 그리고 일본에서 한국으로 와서 취업한 사람들도 적지 않다.
“그런 사람들에게 물어보면 뭐라도 나오지 않을까?”
“그렇지요.”
“내 한번 알아보지.”
그는 바로 비서실에 전화했고, 얼마 지나지 않아서 한 청년이 회장실로 불려 올라왔다.
그는 잔뜩 긴장한 얼굴로 노형진과 유민택을 바라보았다.
“아, 안녕하십니까? 카구야라고 합니다!”
어색한 한국어지만 대화는 어렵지 않았기 때문에 노형진은 그와 인사를 나누고 바로 질문을 던졌다. 어차피 오래 있으면 스트레스를 받는 건 그니까.
“혹시 노메가 현이라는 곳에 대해서 압니까?”
“네?”
“그곳에 대한 정보가 필요한데요.”
“거기는…… 잘 모릅니다만…….”
모른다고 딱 잡아떼는 그였지만 얼굴에서는 약간의 당혹감과 불쾌감이 드러났다.
‘단순히 지역명만 듣고 불쾌감을 드러내?’
회장이 물어보는데 몰라서 당황할 수는 있다. 하지만 결코 불쾌감을 드러낼 수는 없다.
하물며 그는 일본인이다. 일본인은 절대 상관 앞에서 불쾌감을 드러내는 자들이 아니다. 그런데 불쾌감을 순간적으로나마 드러낸 것이다.
“진짭니까?”
“네.”
“그래요? 그렇다면 전 당당하게 당신의 해직을 요구할 수 있겠군요.”
“네? 자, 잠깐, 왜 그러십니까?”
“기업에 다니는 자가 다른 사람도 아니고 회장의 질문에 거짓말을 하는데 그 사람을 어떻게 믿고 고용합니까? 안 그렇습니까?”
“확실히 그렇지. 내일부터 안 나와도 좋네.”
카구야는 깜짝 놀랐다. 그냥 자존심 상하는 질문인지라 대답을 안 한 것뿐인데 설마 자신이 잘릴 거라고는 생각도 못 했던 것이다.
“압니다. 죄송합니다. 다만…… 기분이 좀 안 좋은 지역이라…… 거짓말했습니다. 용서해 주십시오!”
바로 고개를 숙이면서 사실대로 말하는 카구야.
유민택은 그를 바라보면서 다시 한 번 기회를 주는 것처럼 말을 꺼냈다.
“기회는 한 번뿐일세.”
“죄송합니다.”
“그래서 노메가 현은 뭔가?”
“그곳은 부라쿠민입니다.”
“부라쿠민?”
“그게 뭔데?”
낯선 단어에 노형진도 유민택도 어리둥절했다. 한국에서 한 번도 들어 본 적이 없는 말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단어가 뜻하는 현실 때문에 그가 말하는 걸 주저했다는 걸 아는 데 얼마 걸리지 않았다.
“한국으로 치면…… 천민, 아니 그 아래입니다. 인도의 불가촉천민급 되는 지역입니다.”
“뭐라고?”
“불가촉천민?”
불가촉천민이란 인도의 카스트제도상 가장 아래 있는 신분으로, 서로 닿는 것 자체가 불경하다고 해서 불가촉천민이라고 한다. 그런데 불가촉천민이라니?
“그게 무슨 말인가?”
“사실은…… 공식적으로는 인정이 안 됩니다만…….”
부라쿠민은 일본의 천민으로, 가장 하층 계급이라고 사람들은 생각한다. 공식적으로 신분제가 없는 게 민주주의 사회이고, 실제로도 현대에서 신분을 나누는 것은 혈통이 아닌 돈이다.
“하지만 부라쿠민이라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현대 일본에서 상위 계급은 없지만 하위 계급은 남아 있는데 그게 바로 부라쿠민이다.
“그런데 그렇게 차별받을 정도로 그들의 신분이 천한가?”
유민택은 고개를 갸웃했다.
사실 한국은 전쟁으로 모든 게 초토화되면서 신분제 역시 박살 났다. 하지만 일본은 그게 아니다.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는 전쟁의 겁화를 겪지 않아서 신분제가 아주 사라지진 않았다.
“부라쿠민은 최하층입니다.”
“어느 정도인가?”
“그게…….”
“사실대로 말해 주게.”
“국가에서 따로 관리한 적이 있고…….”
“뭐?”
듣다 보니 기가 막혀서 말이 안 나올 지경이었다.
국가에서 그들만 따로 구분해서 관리한 적도 있고, 기업에서는 그들만 구분해 놓은 백서 같은 것을 비밀리에 가지고 있으면서 그걸 통해 지역 출신에 따라 고용을 차단하며, 심지어 정치인조차도 공식석상에서 그들을 대놓고 깔 정도로 부라쿠민의 신분은 엄청나게 낮은 것이었다. 그것도 공식적으로 말이다.
“그런데 왜 말을 안 했나?”
“그게…… 아무래도 외국인들은 모르는 문제니까…….”
“허허, 참. 그러니까 일본의 안 좋은 모습은 인정하고 싶지 않다 이건가?”
“네.”
“전형적인 일본인 스타일의 발상이군요.”
일본은 자신들의 안 좋은 부분은 아무리 증거가 있고 주변에서 명확하다고 해도 절대 인정하지 않는다. 2차 대전 당시의 전범이나 학살 행위, 전쟁 범죄나 성노예 사건 등등 그들이 인정하는 것은 하나도 없다. 자신들에게 좋지 않은 부분이니까.
“그런데 그게 문제가 되나? 어찌 되었건 입사하면 마찬가지 아닌가?”
“그게…….”
“말해 보게.”
“그 사람이 부라쿠민이라는 사실이 드러나면 다른 사람들은 그와 일 자체를 하지 않으려고 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