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the law RAW novel - Chapter (874)
그가 벌인 일은 간단하다. 계약한 것이다. 그런데 그 계약의 규모가 문제다. 무려 오백 곳.
“미친 거 아냐!”
일반적으로 체인점을 개업할 때는 정해진 양만큼 오픈한다. 그래야 나중에 문제가 생기지 않기 때문이다.
체인점은 그냥 오픈만 해서 해결되는 것이 아니다. 재료의 공급 문제도 해결해야 하고 너무 가까운 거리에 오픈하면 동일 상권을 두 곳이 나눠 먹는 문제도 생긴다.
“설마 성화와 대동이 뭉쳤는데 그 정도 체인점도 감당 못 할 거라 생각하나?”
피식하고 비웃는 김두만.
맞는 말이다. 아무리 성화가 몰락했다고 하지만 그 정도는 감당할 수 있다. 하물며 다른 곳도 아니고 대동이 도와준다.
“그런 문제가 아니잖아!”
하지만 요시 히무로는 불안할 수밖에 없었다. 단순히 숫자가 많은 걸로 시장을 다 집어삼킬 수 있다면 그렇게 복잡하게 머리를 쓸 이유가 없다.
애초에 자신들이 성화라는 방패를 이용해서 진출하는 이유가 뭔가? 친일 기업인 자신들이 쓸 가면이 필요한 것도 있지만 한편으로는 위험부담을 최소화하기 위해서다.
“무려 오백 곳이라고!”
“알아. 그리고 그 정도면 우리 성화는 다시 살아날 수 있지.”
“이런 미친.”
한 곳당 계약금과 가입비가 5천만 원. 그들이 모두 가입한다고 하면 무려 250억이다. 대룡의 공격에 흔들리고 있는 성황에는 기사회생을 할 수 있는 기회다.
“어차피 분식 시장을 일통하려고 한 거 아닌가? 우리나라에 있는 분식집이 고작 오백 곳밖에 안 된다고 생각해? 최소한 2만 개는 될걸.”
“그걸 한꺼번에 집어삼키겠다는 거냐?”
“못할 건 없지.”
“이런 미친.”
요시 히무로는 등골이 오싹해졌다.
‘이 새끼, 생각보다 위험하다.’
똑똑해서 위험하다는 게 아니다. 재벌의 자식으로 태어나서 재벌로 살아왔기 때문에 기본적인 기업의 성장이라는 것에 대해서 전혀 아는 바가 없었다.
‘실수다.’
자신의 통제력이 약해진 틈을 타서 이런 사고를 칠 줄은 몰랐던 히무로는 등골이 오싹했다. 문제는 이미 계약은 되었고 일은 진행되고 있다는 것이었다.
‘막아야 한다.’
물론 이론적으로는 된다. 하지만 이론과 실전은 전혀 다르다. 대표적인 게 음식이다.
프랜차이즈 식당은 기본적으로 같은 맛을 추구해야 한다. 그런데 자신들이 계약한 곳 중에서 오백 곳에 동시에 음식을 공급할 만한 곳은 없다. 이는 즉, 다른 곳에서 음식을 공급해야 한다는 뜻이자 식당마다 맛이 달라지는 사태가 벌어질 수도 있다는 뜻이기도 하다.
‘미친놈.’
물론 공장을 늘릴 수도 있겠지만 문제는 돈에 눈이 먼 김두만이 계속 확장할 기세라는 것이다.
‘막아야 한다.’
사실 그래도 오백 곳이나 되는 식당과 계약한 것은 어찌어찌 해결할 수 있을지도 모르는 문제다. 하지만 이런 사고를 치는 녀석이라면 더 큰 사고도 칠 수 있다.
“당신! 이 일에 대해서 책임을 물을 겁니다!”
요시 히무로는 격하게 화를 냈다. 화를 잘 내지 않는 일본인의 성격을 생각하면 엄청난 분노였다.
하지만 김두만은 피식하고 비웃을 뿐이었다.
“네가 어쩔 건데?”
‘으윽.’
자신은 현재 왕따를 당하고 있다. 그걸 수습하지 못해서 제대로 업무 진행이 안 되고 있는 상황.
“물을 수 있으면 물어 봐.”
히죽거리는 김두만을 본 요시는 이를 박박 갈면서 그곳을 뛰쳐나왔다. 그리고 바로 대동으로 전화를 걸었다.
“저, 요시입니다. 여기 문제가 생겼습니다.”
-나도 들었네.
“당장 해결하지 않으면 일이 커질지도 모르겠습니다.”
-그런데 왜 자네는 자네 신분을 감춘 건가?
“네?”
말하던 그는 정신이 멍해졌다.
-나는 딱히 차별하는 사람은 아니지만 주변에서 자네에게 불만을 가진 사람이 많아.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중요한 건 그게 아니잖습니까?”
-그러니까. 하지만 나이 먹은 이사회에서 나한테 뭐라고 하더군.
‘이런 미친…….’
결국 자신의 신분에 대한 얘기가 그쪽까지 들어간 것이다.
‘큰일 났다.’
요시 히무로는 정신이 아득해지는 느낌이었다.
한국은 왕따가 진행되더라도 업무에 진행을 줄 정도로 진행되는 경우는 드물다. 하지만 일본은 왕따가 심각할 정도로 강해서 업무에 지장을 주는 경우도 흔하다.
하물며 자신은 단순 왕따가 아니라 부라쿠민이라는 신분을 가지고 있다. 공인된 왕따, 불가촉천민 같은 존재. 그리고 버러지 같은 존재.
‘씨발…….’
그나마 젊은 사람들도 그런 생각에서 벗어나지 못했는데 나이 먹은 꼰대들은 얼마나 자신을 싫어할지 알고 있는 요시 히무로는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이번 프로젝트…… 망했다.’
물론 시간이 있다면 그 모든 걸 타파하고 자신이 프로젝트를 성공으로 이끌 수 있다고 생각하고 있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대룡이 반격을 안 할 때의 이야기다.
‘빌어먹을…….’
요시는 원인 모를 패배감에 부르르 떨 수밖에 없었다.
>8장. 개미 군단>
“기회는 역시 만드는 거라니까.”
노형진은 조종수가 보낸 보고서를 보면서 흡족하게 웃었다. 자신이 부라쿠민이라는 약점으로 요시 히무로를 잠깐 뒤흔들어서 통제력을 상실시키자 그사이를 못 참고 김두만이 대형 사고를 친 것이다.
“이렇게 될 줄 알았어?”
“그렇지. 그래서 내부에 스파이까지 심은 거고. 김두만은 현재로서는 코너에 몰린 상황이거든.”
성화는 몰락하고 있고 김두만은 후계 구도에서 밀려났다. 어떻게 해서든 그 모든 상황을 뒤집어야 하는데 문제는 김두만을 통제하는 요시 히무로라는 존재였다.
“그 녀석이 브레이크 역할을 하니 김두만의 입장에서는 배알이 꼴릴 수밖에.”
전이라면 있을 수 없는 일이지만 지금은 김두만은 마음대로 움직일 수 있는 상황이 아니었다.
“그래서 기회를 준다면 뭐든 할 거라 생각했지.”
“그게 부라쿠민이라는 함정이고?”
“그래, 솔직히 부라쿠민이라는 소속이 오래 문제를 일으키기는 어려워.”
일단 기분 나빠하는 거야 당연한 일이지만 반대로 어찌 되었건 그가 상급자라는 것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더군다나 요시 히무로는 그걸 이겨 내고 일어선 놈이야. 그러니 그게 그 녀석에게 직접적으로 타격을 주기는 힘들지.”
하지만 타격을 주는 것과 그가 다른 곳에 신경을 쓰지 못하게 하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다. 히무로는 그 일을 해결하기 위해서 마약김밥의 일을 신경 쓰지 못한 것이다.
사실 부라쿠민이라고 무시하는 것은 현행법상 불법이고 또 그가 상관이라는 점에서 그가 작심하고 사건을 수습하고자 한다면 오래갈 문제는 아니었다.
“하지만 다급한 김두만이 사고를 치기에는 충분한 시간이지.”
완전히 통제에서 벗어난 김두만이 사고를 거하게 쳐 버렸다. 무려 오백 곳에 달하는 체인점 계약을 해 버린 것이다. 체인점 계약을 한 당사자들은 아마 모르고 있겠지만 아마 사실을 알고 나면 기가 막혀서 말이 안 나올 것이다.
‘더 웃긴 건 더 많은 계약을 하려고 한다는 것이지.’
어떻게 보면 서로의 목적이 딱 맞아떨어진다고 볼 수도 있다. 성화는 다급하게 돈이 필요한 반면, 대동은 한국의 분식 시장을 모조리 집어삼키는 것이 목적이다. 그러니 이렇게 급박하게 숫자가 늘어나면 모두에게 좋은 결과가 나올 수도 있다.
“그런데 이러면 우리가 도리어 불리해지는 거 아냐?”
갑자기 오백 곳이나 되는 분식집이 일거에 포문을 여는 셈이다. 물론 아직 일본에서 정식으로 수입되지 않고 있으니 일단은 큰 위협이 되지는 않겠지만 정식으로 일본에서 음식이 수입되기 시작하면 한국의 분식 시장은 위협이 될 수밖에 없다.
“그건 어디까지나 그곳이 제대로 굴러갈 때의 이야기지.”
“제대로 굴러갈 때의 이야기라고?”
“그래.”
“그게 무슨 소리야?”
“나도 이번에 배운 게 있어.”
“네가 뭘?”
“어용비대위라니, 상상이나 했겠어? 난 그건 진짜 상상도 못 했다. 히무로라는 놈이 진짜 왕따만 아니었다면 제대로 성공할 수 있는 녀석이었는데 말이야.”
“엥?”
손채림은 어이가 없었다. 막을 방법을 이야기하라고 했더니 갑자기 어용비대위 이야기를 했기 때문이다.
“그게 중요해?”
“그게 중요하지.”
“아니, 왜?”
“그게 바로 해결책이니까.”
“뭐?”
“이제부터 시작할 거야. 그러니까 너도 좀 도와줘야 해.”
그리고 노형진이 작전을 설명하기 시작했는데, 손채림은 그대로 박장대소를 했다.
“호호호…… 확실히 먹힐 만하네. 이건 진짜 생각도 못 했다.”
“사람이 말이야, 배우면 써먹어야지.”
“그렇기는 한데…… 호호호.”
히무로는 설마 자신을 공격하는 데 자신의 방식이 이용될 거라고는 생각도 못 하고 있을 터였다.
“그러면 나도 어용이라는 걸 한번 해 보자고.”
“그런데 잘될까?”
“잘될 거야. 인간은 본능적으로 희망보다는 공포에 더 반응하기 마련이거든. 그러니 구체적인 공포를 제시하면 이쪽으로 움직이게 되어 있어.”
그리고 그 공포가 마약김밥을 막는 원동력이 될 것이다.
* * *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우리 죽이려고 작정한 거야, 뭐야!”
열을 내는 사람들. 그들은 다름 아는 레토르트와 냉동식품을 만들어 내는 중소업체의 사장단이었다.
“이걸 그냥 둘 수는 없습니다!”
“아니, 대룡이 뭐가 아쉬워서 이 바닥으로 기어들어 오는데!”
그들이 이렇게 화내는 것은 다름 아닌 대룡이 얼마 전 냉동 및 레토르트식품 시장에 진출하겠다고 발표하면서부터였다.
사실 그런 대기업이 한두 곳도 아니니 딱히 그걸 막을 수는 없다. 문제는 그 대상이다.
-저희 대룡은 식자재 납품에 관련한 냉동 및 레토르트식품 시장으로의 진출을 준비 중이며…….
기자회견에서 했던 말. 여기서 문제는 식자재 납품이라는 거다. 기존 대기업들은 소매시장으로 진출했지, 이런 전문 식자재 납품 시장으로는 진출하지 않았다. 그런데 대룡에서는 그 시장으로 진출하겠다는 것이다.
“분식 비대위에서는 뭐랍니까?”
“자기들도 미래를 준비하기 위해서는 대기업으로 갈아탈 수밖에 없다네. 어찌 되었건 돈이 있으니 기술도 더 좋겠지. 소문으로는 기술이전을 받기 위해서 일본 기업들과 접촉했다는 이야기도 있고.”
“미친. 우리를 말려 죽이려고 작정했나.”
그리고 이번 사건에서 제일 큰 문제는 그냥 진출 정도가 아니라 분식 비상대책위원회라는 성화의 마약김밥의 공세에 저항하기 위해서 뭉친 자들이 대룡과 함께라는 것이다.
“틀린 말은 아니야. 마약김밥에 대항하기 위해서는 기존 음식 가지고는 무리겠지.”
얼굴이 사색이 된 채로 말하는 차덕수 비대위원장.
“일본에서 정식으로 수입까지 해서 우리 분식을 말려 죽이려는 판국에 기존 음식으로 되겠는가? 자체적으로 개발할 수 있는 뭔가가 있어야지.”
“끄응…….”
문제는 이들은 대부분 중소 업체라는 것이다. 자체적으로 뭔가를 개발해서 공급하기에는 너무나 재정적으로 열악했다.
“만일 그들이 대량 공급을 시작하면 우리는 말라 죽을 거야.”
“설마요.”
“자네들, 만두 파동 기억하지? 그때 만두 시장이 얼마나 붕괴됐었나?”
“아…….”
만두 파동. 속칭 ‘쓰레기 만두’라 불리는, 뇌물을 주지 않았다는 이유로 경찰과 기자가 가짜 이야기를 만들어 낸 사건이다.
그 사건으로 수많은 중소 만두 업체들이 도산하고 지금처럼 만두 시장이 거대 기업들의 손아귀에 떨어졌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