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the law RAW novel - Chapter (878)
>1장. 고래 사냥>
“요즘은 날씨가 쌀쌀하네요?”
“이제 슬슬 겨울로 들어가니까요.”
재판을 마치고 들어오는 길에 무태식과 김성식은 부르르 떨었다.
덥다 덥다 하면서 다닌 게 바로 얼마 전 같은데 벌써 날씨가 춥다 춥다 소리가 날 정도로 서늘해졌기 때문이다.
“이런 날씨가 참 골치 아파요. 더 입으면 낮에는 덥고 안 입으면 밤에는 춥고.”
“감기 걸리기 딱 좋은 날씨죠. 그나저나 이런 날씨에 고생 좀 하겠네요.”
“그러게 말입니다.”
오늘 재판을 받은 사람은 노형진이 노력한 덕분에 벌금으로 끝나기는 했지만 애석하게도 그걸 낼 돈이 없었다.
“어쩔 수 없이 노역으로 때워야지요.”
“골 때리는군요. 노역하면 먹고살기도 힘든데.”
“그러게 말입니다. 이놈의 나라는 힘든 사람을 더 힘들게 하네요. 어지간하면 집유해 주지.”
“요즘 정부가 돈이 없다는 소리가 있던데요?”
엄밀하게 말하면 집유가 벌금보다 더 강한 벌이지만, 벌금은 없는 사람에게는 타격이 크다.
“그래요? 도대체 뭔 짓을 하는 건지.”
“저야 모르죠.”
노형진은 그렇게 말하면서 어깨를 으쓱했다.
물론 그들이 무슨 짓거리를 하는지 안다.
하지만 자신이 멈출 수 있는 것도 아니다. 돈이 있다고 해도 결국 현실은 시궁창인 것이다.
“일단은 들어가서 이야기하죠. 이런 피해자들을 어떻게든 구제할 방법을…… 응?”
그런데 그들이 막 사무실로 들어갈 때였다.
평소와는 다른 모습이 건물의 로비에서 벌어지고 있었다.
“이 애들은 뭐야?”
“무슨 일입니까?”
로비를 가득 메운 아이들.
족히 서른 명은 되어 보이는 아이들이 뭉쳐 서 있었다.
초등학생으로 보이는 남학생들이었다.
“아, 노 변호사님.”
“무슨 일입니까, 수혜 씨?”
안내를 담당하는 수혜는 곤란한 얼굴이 되었다.
“얘들이 의뢰를 한다고 다짜고짜 와서요.”
“의뢰? 아니, 아무리 봐도 초등학교 한 3학년이나 될 만한 애들인데요?”
“네, 그런데 이렇게 몰려왔네요.”
“흠…… 의뢰라.”
“애들 장난 받아 줄 시간은 없는데요.”
무태식은 기가 막히다는 듯 아이들을 바라보았다.
“장난하러 여기까지 오지는 않았을 텐데요?”
“그런가요?”
“그리고 애초에 일을 맡기려고 한다는 것 자체가 장난은 아니죠.”
“제가 실수했군요. 하지만 애들이 무슨 일인지 모르겠네요. 우리가 맡아 주고 싶다고 할 수 있는 것도 아닌데.”
“그건 그렇죠.”
무슨 중학생이나 고등학생도 아니고 초등학생, 그것도 3~4학년쯤 되어 보이는 아이들의 일을 무단으로 일을 담당할 수는 없다.
법정대리인, 즉 부모의 동의가 있어야 한다.
“설명을 해 줬는데도 안 가요.”
“부모님이랑 와야 한다고 해도요?”
“네. 부모님한테 소송을 걸어야 하는 거라나?”
“네?”
노형진은 아이들을 바라보았다.
‘아동 학대?’
일말의 가능성을 가지고 봤지만 아무리 봐도 그건 아니었다.
‘키도 정상적이고 살도 찐 편이고 옷도 깔끔해. 아동 학대의 증후는 안 보이는데.’
그렇다면 부모가 싫다고 그냥 소송하겠다고 온 걸까?
‘그건 아닌 것 같은데.’
물론 그런 철없는 생각을 하는 아이들이 없는 것은 아니다.
그냥 부모가 싫어서, 부모에게 반항하고 싶어서, 어떻게 해서든 집에서 일탈하고 싶어서 소송하겠다고 하는 애들도 아주 가끔은 있다.
하지만 대부분 그저 상상으로 끝날 뿐이고, 결국 소송은커녕 부모에게 끌려가서 뒈지게 혼나고 만다.
‘더군다나 한 명도 아니고 족히 서른 명은 되어 보이는데.’
“누가 한다고 하니 친구라고 따라온 거 아닐까요?”
노형진과 비슷한 생각을 한 무태식이 그렇게 말하자 수혜가 고개를 흔들었다.
“아니요. 다 맡긴대요.”
“엥?”
그렇다는 건 무려 의뢰인이 서른 명이 된다는 뜻이니 대형 사건이 된다.
“애들이 그냥 와서 하려고 하는 건 아닌 것 같고, 무슨 일인데요?”
“그게…….”
왠지 말을 못 하고 배시시 웃는 수혜.
“말하기가 좀……. 그냥 무시하셔도 돼요.”
“네?”
수혜의 얼굴을 보니 진짜 별거 아닌 것 같기는 했다.
“그래도 한 번은 이야기를 들어 봐야지요.”
“진짜 별거 아니에요. 그냥 제가 말해서 돌려보낼 테니 노 변호사님은 들어가세요. 사건도 많으신데.”
“이것도 사건입니다. 애들 말이라고 무시하다가 큰일 터지면 어쩝니까? 아동 성범죄 같은 것도 결국은 그러다가 큰일 나는 겁니다.”
“그런 건 아닌데…….”
수혜는 잠깐 애들을 보다가 한숨을 쉬었다.
노형진의 성격상 납득하지 않으면 올라가지 않을 거라는 걸 알기에 그녀로서는 그냥 말하는 게 나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하긴 자신이 생각해도 터무니없는 사건인데 누가 이걸 담당하겠는가?
들어 보니 벌써 여러 곳에서 쫓겨나서 여기까지 온 모양인데.
“얘들은 그냥 겁먹어서 그래요.”
“겁?”
“네.”
“무슨 일인데요? 아이들이 겁을 먹어서 변호사까지 찾을 정도면 보통 일은 아닌데.”
“그게…… 좀 멋쩍은 일인데…….”
잠깐 침묵을 지키던 수혜는 결국 상황을 이야기했다.
“고래 잡는다고…….”
“고래요? 고래를 왜 잡아요? 애들을 포경선에 팔기라도 한답니까?”
노형진은 순간적으로 이해하지 못하고 고개를 갸웃했다.
애초에 포경선은 그다지 많지도 않고 또 일이 힘들어서 애들은 할 수 없다.
더군다나 포경 자체가 국제적으로도, 한국에서도 불법이다.
“그게 아니라…….”
왠지 어색해하는 수혜.
그걸 본 무태식이 먼저 알아들었다.
“고래? 아! 포경!”
“포경선이 있습니까?”
“하하하하, 아닙니다, 아니에요. 그 포경이 아니라 다른 포경 말입니다. 포경수술 말이에요, 포경수술.”
“포경수술? 아아아!”
고래 잡는다는 표현 자체가 동음이의어를 이용한 장난일 뿐이다.
포경수술이란 남자의 성기의 표피를 잘라 내는, 널리 진행되는 수술이다.
“네. 이야기를 들어 보니 친구 중 한 명이 그걸 하고는 아파하는 걸 본 모양이에요. 그런데 부모들이 그걸 시키려는 걸 알고 겁먹고 막아 달라고 온 거예요.”
“난 또 뭐라고. 하긴, 그럴 만하기는 하지.”
무태식은 피식 웃었다.
하긴 겁먹을 만하다.
남자의 성기는 무척이나 예민한 부위이고, 한번 수술을 하면 한 달 정도는 지옥에서 산다고 할 만큼 고통스럽다.
아니, 한 달도 짧은 기간이고 그나마 익숙해지는 기간이 그 정도인 거지, 길게는 세 달까지 은근히 고통스럽다.
“이놈들! 별 쓸데없는 걸로 변호사 아저씨들을 귀찮게 해?”
무태식이 장난스럽게 말하자 아이들은 다소 우울한 얼굴이 되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수혜의 말에 따르면 이미 여러 곳을 거쳐서 여기까지 온 모양이니까.
“우우우.”
“우리는 하기 싫어요!”
“진짜로 하기 싫다고요.”
“그게 다 어른이 되는 과정이야.”
싫다고 투덜거리는 아이들에게 한 소리 하는 무태식.
“너희들도 이제 어른이 되어야지.”
“하지만 아픈 걸요.”
“난 아픈 게 진짜 싫어!”
어떤 아이는 진짜 겁을 먹었는지 눈물까지 뚝뚝 흘렸다.
“왜 그렇게 싫어하는 건데?”
“우리 친구가 실려 갔단 말이에요.”
“실려 가?”
“우리가 장난삼아서 툭 쳤는데…….”
“웁스…….”
포경수술을 하고 그곳의 신경이 익숙해질 때까지 그 고통은 말로 못 할 정도다. 그래서 포경수술을 하면 거기에 종이컵을 씌워서 접촉을 막기도 한다.
그만큼 아픈 건데 그걸 누군가 쳤다면…….
‘실려 갈 만하지.’
같은 남자로서 고통을 이해하는 노형진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이 녀석아, 그렇다고 그걸 안 해? 그걸 해야 어른이 되는 거야.”
“우우우.”
아이들은 울 것 같은 표정으로 무태식을 바라보았다.
다들 그런 이야기만 하기 때문에 절망하고 있는 것이다.
‘그걸 가지고 절망이라.’
노형진은 그걸 보고는 피식하고 웃었다.
자기들에게는 과거이고 또 지나간 일이라 웃을 수 있지만 저 아이들은 공포스러워서 죽을 것 같은 기분일 것이다.
‘뭐, 황당한 사건이기는 한데.’
확실히 자신이 끼어들 정도의 사건은 아니다.
‘하지만 해 보는 것도 나쁘지 않겠는걸.’
다행히 중요한 사건도 없는 상황이고 이렇게 재미있는 사건도 드물기 때문에 노형진은 가벼운 마음으로 해 볼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 핸드폰 가지고 있는 사람?”
“네?”
“이 일에 대해서는 다른 사람들이랑 이야기해 봐야겠지만, 일단 결과가 나오면 전화해 주려고 그러지.”
“진짜요? 아저씨, 진짜로 전화해 줄 거예요?”
“확정된 건 아니지만 일단은 이 아저…… 아니, 이 형이 이야기해 보마.”
“아저씨 만세!”
“형이라니까.”
노형진의 말에 무태식은 당황스러운 얼굴이 되었다.
“진심이십니까?”
“네, 진심입니다.”
“하지만 고작 포경수술인데요?”
“고작이기는 하지만 우리가 의뢰인이 얼마나 고통받는지 주관적으로 판단할 이유는 없지 않습니까?”
“그거야 그렇지만…….”
남이 봐서는 별거 아닌 일일 수 있지만 자신에게는 큰일일 수 있는 게 바로 인생이다.
그걸 자신들이 판단한다면 진짜 힘든 사람들은 누구에게 간단 말인가?
“하지만 이건 진짜 별거 아닌 사건인데. 고작 이런 걸 우리가 할 필요가 있나요?”
“가끔은 이런 재미있는 사건도 있어야지요. 맨날 무겁고 어렵고 짜증 나는 사건만 하면 재미없잖아요? 작은 사건이라고 아무도 안 하면 결국 그 사람만 피해 보는 겁니다.”
노형진이 씩 웃으며 말하자 무태식은 이해가 갔다.
그가 자신에게 했던 말이 떠올랐기 때문이다.
“작은 사건이란 없다 이건가요?”
“네, 작은 사건이란 없죠. 누군가에는 하늘이 무너질 것 같은 일이니까 변호사를 찾는 겁니다.”
노형진의 말을 다시 한 번 되새기는 무태식이었다.
* * *
“포경이라……. 하긴 우리 때도 했지.”
송정한은 왠지 추억이 어린 얼굴이 되었다.
“그때는 짜장면에 속아서 갔지.”
“짜장면?”
손채림은 고개를 갸웃했다.
짜장면과 포경이 무슨 관련이 있단 말인가?
“아이들이 포경하러 가자고 하면 안 가니까 속여서 데리고 가는 거야. 그거 수술하고 짜장면으로 퉁 치는 거지.”
“헐.”
“아, 대표님 때는 짜장면이었나요? 저 때는 돈가스였는데요.”
무태식도 피식거리면서 웃었다.
“그러면 요즘은 피자로 하겠군요.”
손예은의 말에 모두의 시선이 그쪽으로 향했다.
그런데 그녀의 표정은 아주 진지했다.
“농담인가?”
“농담이 아닙니다. 짜장면에서 돈가스라면 물가와 식생활 변화에 따라서 선호 음식이 바뀐 걸 감안한 것이니, 지금쯤 피자 정도는 되어야 하지 않을까요?”
“그건 농담으로 해야 재미있는데.”
“전 아저씨 농담은 안 합니다.”
노형진은 속으로 웃었다.
하긴 그녀가 농담을 한다는 것 자체가 어색한 일이기는 하다.
“어찌 되었건 중요한 건, 남자아이들은 그 나이에 수술을 한다는 뜻이군요.”
“딱 그럴 때지.”
너무 어려서 하면 성장하는 중이라 애매하고, 너무 나이 먹어서 하면 더 아파진다.
남자가 클수록 아플 수밖에 없는 게, 더 예민해지는 데다가 성인이 되면 아침마다 자동 발기가 되는데 수술 후 발기는 단순히 아픈 게 문제가 아니라 실밥이 풀어져서 재수술의 위험성도 있기 때문이다.
“더군다나 날씨도 슬슬 선선해지고 있으니.”
날씨가 선선하면 확실히 여름보다 세균이 덜 증식하니 보통 그 나이에 많이 수술하고는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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