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the law RAW novel - Chapter (883)
노형진이 어떤 방향으로 공격하는 건지 알아차린 최식환은 어쩔 줄 몰라 했다. 자신이 뭐라고 할 만한 게 아니었기 때문이다.
“아까도 말씀드렸다시피 포경수술은 비급여 수술, 그러니까 의료보험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수술입니다. 그런데 피고 측 변호인의 말씀대로 필수적인 수술이라면, 국가는 왜 이걸 비급여로 둘까요?”
“에…….”
“그렇지 않습니까? 비급여라는 건 국민의 건강과는 그다지 상관없는 수술이거나 일반은들은 대부분 모르는 아주 희귀한 질병일 경우에 해당됩니다. 일반적으로 국민의 안전을 위하여 필수적이라고 인정된다면 그건 국민 건강보험상의 급여 대상이 되며 국가에서 의료비를 지원해 줍니다. 그런데 이 포경수술이라는 것은 어째서 비급여일까요?”
설마 의료보험을 들고 나올 거라 생각하지 못한 것인지 최식환은 순간 말이 턱 막혔다.
이런저런 과학적 논쟁이 오갈 거라 생각해서 그쪽으로 많이 준비하기는 했다. 하지만 국민 건강보험 쪽은 전혀 예상하지 못한 질문이었다.
“그거야…….”
맞는 말이다.
국민 건강보험, 속칭 의료보험이라고 하는 것은 국민들에게 필수적인 치료에 관해서는 모두 지원해야 한다.
“감기나 폐렴에서부터 암까지, 사람들이 주로 걸리는 질병은 대부분 급여 처리가 됩니다. 그런데 왜 포경수술은 급여 처리가 안 될까요?”
“의료보험 공단에서 일을 제대로 하지 않아서 그런 겁니다.”
“그게 말이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애초에 대한민국 남성 대부분이 받는 수술입니다. 그리고 피고 측 주장대로 필수적이라면, 비급여가 되어서는 안 되죠. 의사들도 적극적으로 보장을 요구해야 하구요.”
“…….”
‘헹, 그건 말을 못 하겠지.’
의학적으로 그게 필수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에 말을 못 하는 것이다.
더군다나 비급여에서 급여로 바뀌게 된다면 대한민국에서 그 진료비를 통제하게 된다.
현재 포경수술의 비용은 최하 30만 원이다. 그나마도 지방을 기준으로 한 거지, 경기권만 해도 40만 원은 줘야 한다.
‘그런데 급여로 하면 어떻게 될까?’
그 난이도나 필요성을 따지게 된다면 잘해 봐야 몇만 원 나올 것이다.
“그 부분에 대해서는 몇 차례 항의해 봤습니다만…….”
“글쎄요. 공식적으로는 항의 기록이 없던데요?”
“뭐라고요?”
“의료보험 공단에 정식으로 질의해서 답변을 받았습니다. 공식적으로 의료 단체 또는 의사로부터 포경수술에 관련되어 비급여 문제로 항의 및 급여 요구를 받은 적이 없음. 이게 그쪽 답변입니다. 진짜로 필수적인 수술이라면 의사들이 급여 요구를 해야 하는 거 아닌가요? 설사 수익률 때문에 안 한다고 해도, 국가에서 급여로 처리해 줘야 하는 거 아닌가요?”
“…….”
최식환은 이를 갈면서 노형진을 바라보았다.
간단한 문답만으로 국가라는 세력을 등에 둔 형태가 되어 버리자 공격하기 쉽지 않았기 때문이다.
‘어쩌겠어?’
이걸 반박하려면 국가의 무능에 대해서 논해야 한다. 당연히 준비가 미흡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대법원장이라는 존재가 그렇지.’
대법원장은 훌륭한 성품과 능력만으로 올라갈 수 있는 자리가 아니다.
그 자리에 올라가기 위해서는 소위 말하는 정치적 행위도 있어야 한다.
‘그리고 그런 정치적 행위의 뒤쪽에는 정부가 있지.’
즉, 한평생을 정부라는 존재의 앞잡이로 살아온 그에게 정부의 무능에 대해서 말하라고 하면 순간 말을 못 할 건 당연한 일이다.
모르니까.
그쪽으로는 전혀 들은 적도 없을뿐더러, 있다고 해도 부정하는 것이 그의 업무 중 하나니까.
“그 부분에 대해서는 나중에 확인해 보도록 하겠습니다.”
진땀을 흘리면서 뒤로 물러나는 최식환.
그러면서 재빨리 판사에게 눈치를 줬다.
그러자 그 눈치를 받은 판사는 재빨리 재판을 끊었다. 제대로 시작된 것도 없는데 말이다.
“오늘은 첫 재판이고 하니 이쯤에서 끝내는 게 좋겠군요. 피고 측이 충분히 준비되지 않은 듯하니.”
‘그렇지. 이게 전관의 좋은 점이지.’
노형진은 속으로 씁쓸하게 웃었다.
전관을 쓰는 이유. 그건 재판의 흐름 자체를 뒤집을 수 있기 때문이다.
판사 자체가 전관의 승리를 위해서 움직이게 되니까.
물론 당당하게 폐정을 신청해도 받아 주기는 한다. 하지만 신청을 한다는 행위 자체가 자신이 불리하다는 것을 인정하는 짓이다.
‘그리고 그 행동을 하기 싫다는 거지.’
최식환은 그 행동이 싫어서, 자신이 불리하다는 것을 인정하고 싶지 않아서 눈치를 준 것이다.
‘좀 골 때리는 사건이 되겠군.’
노형진은 입맛을 다실 수밖에 없었다.
* * *
“전관이라…….”
송정한은 사건 기록을 보면서 곤란하다는 얼굴이 되었다.
“최식환이면 그만둔 지 좀 되기는 했지만 그래도 파워가 아직 살아 있는 사람인데 말이지. 의사들이 다급하기는 한 모양이군.”
“우리가 언론에 뿌려 버렸으니까요.”
만일 언론에 뿌리지 않았다면 그들은 신경을 쓰지 않았을 것이다.
이기든 지든, 흔해 빠진 사건으로 끝났을 테니까.
“하지만 언론이 뿌려지면 이야기가 달라집니다. 이건 대한민국 포경수술의 정당성 판단을 하는 재판이니까요.”
“이해는 하네. 상대방이 어떻게 나올 거라 생각하나?”
“글쎄요……. 뭐, 그들이 주장하는 것은 언제나 똑같았으니까요.”
그들의 이야기를 들으면 진짜 1800년대 의술을 논하는 것 같다. 모든 질병이 포경수술을 안 해서 발생하는 것처럼 슬쩍슬쩍 끼워 넣는 것이다.
“어차피 사건에 관련해서 준비는 모두 끝났습니다. 논리적으로 이쪽이 이길 수밖에 없죠.”
“문제는 전관이군.”
“네.”
전관의 문제점은 논리적으로 이쪽이 옳다고 해도 결국은 저쪽 편을 들어 주게 된다는 것이다.
“대법관이라……. 대법관 전관이면 살인도 면한다는 말이 있지.”
특히 대법관 정도 되면 진짜로 살인도 면할 수 있다.
“일단은 논리로 밀어붙여 봐야지요. 논리가 안 된다면…….”
그때는 다른 방법을 쓰는 수밖에 없을 것이다.
>3장. 내 거시기 돌려줘!>
다시 시작된 재판.
그 재판에서 최식환은 아니나 다를까, 의사들이 준 자료를 그대로 읽는 수준이었다.
‘전관도 약점이 없는 건 아니야. 이게 문제지.’
오랜 시간 판결만 하다 보니 공격법을 모르는 것이다.
특히나 대법원에서 나올 정도면 나이가 있어서 실력만 따지고 보면 일선 변호사보다 공격 방식에 있어서는 많이 약한 것이 사실이다.
“포경수술은 오래전부터 시작된 수술입니다. 미국에서는 무척이나 유행하고 있고, 또한 미국의 의사들도 추천해 주는 수술입니다. 포경수술을 하게 되면 위생적으로 안정될 뿐만 아니라 그 편리성도 증대됩니다.”
‘내가 한국을 등에 업었다고 미국을 끼워 넣겠다 이건가?’
노형진이 물어봤던 한국 의료보험이 왜 포경수술을 비급여로 두는지에 대해서는 대답하지 않고 다른 주제로 밀어붙이는 최식환.
이는 분명 대답하기 곤란하다는 의미일 것이다.
“재판장님.”
“말씀하세요.”
“제가 지난번 재판 때 왜 비급여인지 답변해 달라고 했는데 피고 측은 아직 그 답변을 하지 않았습니다.”
노형진은 그 부분을 그냥 쉽게 넘어가고 싶지 않았기 때문에 정확하게 물어봤다.
그러자 어물쩍 넘어갈 생각을 하던 최식환은 순간 얼굴을 찌푸렸다.
“아직 정식으로 답변이 오지 않았습니다.”
‘그렇겠지.’
노형진은 피식 웃었다. 답변이 안 올 수밖에 없다.
“질문한 게 있어야 답변이 오지요. 어제 저희가 질문한 것에 대해서는 답변이 왔습니다. 포경수술의 비급여에 관련하여 정식으로 질문이 접수된 것이 없다고 말입니다.”
“큭.”
설마 정말 질문을 했는지까지 확인했을 거라 생각하지 못한 최식환이었다.
‘너희가 하겠니?’
할 리 없다. 하면 날아올 답변은 뻔하니까.
그 답변을 피하고 싶은 자들이 질문을 할 리 없다.
“일정이 촉박하다 보니 아직 질문을 못 했습니다.”
‘말이 되는 소리를 해라.’
질문 여부를 확인하는 질문에는 답변이 왔다. 그렇다면 시간은 넉넉했다는 뜻이다.
“자, 자! 일단 정식 답변이 오지 않았으니 그 부분은 나중에 질의하도록 하지요. 피고 측 변호인의 변론에 원고 측은 할 말 없습니까?”
슬쩍 질문을 무마해 주는 판사.
노형진은 그런 그를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고개를 끄덕거렸다.
‘뭐, 이쯤에서 넘어가 주지.’
저들을 공격할 방법은 많다. 작은 것에 매달려 봐야 재판만 길어질 뿐이다.
“일단 미국에서 포경수술이 유행한 것은 인정합니다. 그러나 그건 한때입니다.”
“한때?”
“네.”
“미국에서 포경수술이 유행한 것은 60년대입니다.”
“그거 봐요. 미국이 더 선진국이니까 선견지명으로 그런 거 아닙니까?”
당당하게 말하는 최식환.
하지만 그는 미국에서 60년대에 유행했다는 사실을 노형진이 알고 있다는 점이 더 무서운 거라는 걸 이해하지 못했다.
“그 당시 포경의 목적은 자위를 막기 위해서였습니다.”
“뭐라고? 자위?”
“그렇습니다. 여러분은 다들 자위행위를 많이 하면 뼈가 삭는다는 말을 많이 들어 보셨을 겁니다. 그 당시 의사들은 비슷한 생각을 했지요. 자위행위로 인해서 여러 가지 질병이 발생한다고 생각했고, 이를 막기 위한 수단으로 포경이 시술되었습니다.”
“무슨 그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합니까? 헛소리…….”
피식하고 비웃는 최식환.
물론 누가 들으면 헛소리라고 할 만하다. 하지만 역사가 언제나 올바른 것은 아니다.
과거에는 목욕하면 병에 걸리는 줄 알아서 귀족들이 목욕을 하지 않았고, 그 지독한 냄새를 감추기 위해서 향수가 발달했다고 한다.
이처럼 특정 국가가 지금 잘산다고 해서 그들이 언제나 지혜로웠던 건 아니었다.
“재판장님, 이를 증명하기 위해서 그 당시 미국의 과학 논문을 제출하는 바입니다.”
“뭐라고?”
최식환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 말은 오늘 자신이 해 온 방어 준비를 노형진은 이미 깰 준비를 해 왔다는 뜻이 되기 때문이다.
‘그러고 보니…….’
최식환은 등골이 오싹해졌다.
분쇄기라 불리는 남자.
재판을 해 보지는 않았지만 그에 대한 소문은 많이 들었다.
이쪽에서 어떤 방어를 준비하든 그걸 예상하고 깨트릴 준비까지 하고 오는 남자.
‘이놈이?’
그리고 그 대상이 되었다는 생각에 최식환은 분노에 차서 부들부들 떨었다.
‘당해 보니 어이가 없나 보군.’
노형진은 그의 시선을 모른 척하면서 속으로 웃었다.
하긴 당하는 사람 입장에서는 열 받을 만한 일이니까.
노형진은 그저 변론에 집중할 뿐이었다.
“이 기록에 따르면 포경의 목적은 자위행위 차단을 통한 생리적 에너지의 보존이 목적입니다. 현재 미국은 포경수술이 거의 진행되지 않는 나라 중 한 곳입니다. 미국뿐만 아니라 대부분의 나라들이 그렇지요.”
“헛소리! 포경수술은 전 세계적으로 이루어지고 있는 일반적이고 보편적인 수술입니다. 선진국들은 다 해요! 일부 지역에서나 안 하지!”
“그래요? 그러면 이 지도는 어떻게 보십니까?”
“그건……?”
“국제 의료 학회가 제출한, 전 세계 포경수술에 관련된 지도입니다. 이 지도는 성인 남성을 기준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포경수술을 했는지를 알려 줍니다. 그리고 이 기록에 따르면 미국의 포경수술의 수준은 고작 20%에 불과합니다.”
“음…….”
최식환은 그 지도를 바라보면서 침을 삼켰다.
‘모른 척하고 싶겠지.’
하지만 현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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