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the law RAW novel - Chapter (894)
그런 실랑이를 하는 경찰과 조현아의 가족 사이에 끼어드는 노형진.
“당장 죽은 사람 신분증을 무단으로 사용하고 있는데, 현행범이죠.”
“죽은 사람?”
“네.”
“무슨 개소리야!”
“15년 전 실종된 사람의 신분증을 가지고 살아오신 것 같은데 말이죠.”
“그게 무슨…….”
“안 그런가요?”
경찰은 눈썹을 치켜세웠다.
“잠깐 신분증 좀 봅시다.”
“뭐?”
“신분증 좀 보자고요.”
“거참, 별 거지 같은 새끼들이.”
피식 비웃으면서 신분증을 꺼낸 조현아는 그걸 경찰에 건넸다.
그러자 경찰은 그걸 즉석해서 조회했다.
‘멍청하긴.’
노형진은 그런 그녀를 보면서 피식하고 웃었다.
그녀가 왜 저러는지 안다. 자신의 신분증을 방금 살렸으니 문제가 없을 거라 생각한 것이다.
그러나 그건 그녀가 현실을 너무 몰라서 하는 오산이었다.
‘잘도 처리되었겠다. 우리나라 공무원이 왜 욕먹는지 이해를 못 하는구만.’
접수했다고 해서 신분증이 바로 살아나는 게 아니다.
고작 접수만 하는 직원들이 신분증 부활 같은 복잡한 일을 결정할 수는 없다.
결국 이건 상부의 허가를 받아야 하는데, 접수한 지 잘해 봐야 20분밖에 안 지난 상황이니 허가가 나기는커녕 그 사람은 자리에서 일어나지도 않았을 것이다.
더군다나 신분증이 살아났다고 해도 그걸 경찰 기록과 비교하는 것은 전혀 다른 일이다.
전산상에서 바로 살아났다고 해도 경찰 기록에는 전혀 다르게 나온다.
“어? 사망자인데?”
“뭐?”
“이 사람, 사망자인데?”
“잠깐! 내가 왜 죽었어? 난 살아 있다고!”
깜짝 놀라서 외치는 조현아.
하지만 그녀가 아무리 외쳐도 전산상에는 사망자로 되어 있었고, 그 신분증을 가지고 있는 사람은 다름 아닌 조현아였다.
“이거 위조 신분증 아니야?”
의심스러운 눈빛으로 바라보는 경찰들.
그러고 보니 사진 속에 있는 사람과 좀 달라 보이기도 했다.
“무슨 소리야! 내 딸이 죽었다니!”
“이 사건, 사망자의 신분증을 도용해서 돈을 갈취한 사건입니다. 조사 중이죠.”
노형진이 옆에서 살짝 찔렀다.
당연히 경찰로서는 그 부분만으로도 충분히 의심스러워질 수밖에 없었다.
“같이 가 주시죠.”
“뭐야! 안 가! 내가 왜 가! 못 가!”
“현행범으로 체포하겠습니다.”
“무슨 소리야! 현행범이라니!”
“사망자의 신분증을 들고 사칭하고 다니고 있잖아요.”
“사칭 아니라니까! 가족이 여기 있잖아!”
“그것도 사칭인지 어떻게 압니까? 당신 신분증도 위조한 것 같은데 다른 사람 신분증이라고 위조하지 말라는 법도 없고.”
가족이라는 말에 살짝 당황하는 경찰들을 보고 노형진은 슬쩍 추임새를 넣었다.
그러자 그게 맞다고 생각한 건지 경찰들이 단호하게 나왔다.
“함께 가 주시죠. 아니면 여기서 강제로 체포할까요?”
“크윽.”
“긴급체포는 스물네 시간 동안 구금이 가능합니다. 그러니까 그냥 가시는 게 좋을 텐데요.”
“넌 뭐야, 이 새끼야!”
“아, 지나가던 정의로운 변호사.”
“변호사?”
“네, 정의로운 변호사.”
노형진은 히죽 웃었다.
그러나 다른 사람들은 그게 무슨 뜻인지 알 수가 없었다. 아니, 알 기회가 없었다.
“연행해!”
“잠깐…….”
“무슨 짓이야!”
그들은 저항하려고 했지만 주변에 가득한 사람들 때문에 경찰에 저항도 하지 못하고 그냥 끌려갈 수밖에 없었다.
“배우들은 다 모았네.”
노형진은 잡혀가는 그들을 보면서 피식 웃었다.
“남은 건 이제 쇼를 할 차례군.”
노형진은 잡혀가는 그들을 차가운 눈빛으로 바라보면서 말했다.
* * *
“진짜 인간이 염치가 없어도 유분수지.”
“네가 이럴 수 있어!”
스물네 시간이면 본인인지 아닌지 알아낼 수 있는 충분한 시간이다. 그러니 조현아와 그 가족이 풀려나는 것은 막을 수가 없다.
하지만 또한, 그 시간이면 충분히 정서범을 불러올 수 있는 시간이다.
“이런 미친…….”
손채림은 정서범이 오고 난 후에 벌어진 사태에 어이가 없어서 말을 못 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잘못한 것은 정서범이 아니라 조현아인데 도리어 그쪽 집안이 정서범을 천하의 개썅놈으로 취급하고 있었던 것이다.
“아니, 잘 살고 있는 내 딸을 데려다가 고생시킨 것도 모자라 죽은 사람을 만들어?”
“어머니, 그런 게 아니라요.”
“아니긴 뭐가 아니야!”
“진짜 그러는 거 아니야. 자식새끼 낳아 준 사람한테 돈이 그렇게 아까워?”
“여보, 그게 아니야! 그 돈이 없으면 애가 죽어! 수진이가 죽는다고!”
“그렇게 무능하니까 현아가 자네를 떠난 거 아닌가! 그런데 그 잘못을 깨닫지도 못하고 병신같이 이제 와서 돈 돈 그러나? 자네 그렇게 돈독이 올랐던 사람이야?”
조현아의 가족은 정서범을 마구 공격했고, 정서범은 어쩔 줄 몰라 했다.
“뭐야? 왜 일이 이렇게 되는 거야?”
“하아, 뻔하지, 뭐.”
상황을 이해하지 못한 손채림에게 노형진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면서 말했다.
“우리 의뢰인은 마음이 너무 약해. 그리고 그 버릇을 아직도 못 고쳤고.”
사실상 적이고, 이제는 둘 중 하나가 죽을 때까지 싸워야 한다. 그런데 정서범은 그러지 못한 채 질질 끌려가고 있었다.
“그러면 어떻게 해?”
“둘 중 하나지. 우리가 손 떼고 딸 죽이든가, 아니면 정서범 씨가 정신을 차리든가.”
“뭐라고? 무슨 소리야?”
“말 그대로야. 이럴 때는 좀 극단적인 방법을 쓰는 수밖에 없겠군.”
노형진은 얼굴을 찌푸렸다.
간혹 의뢰인 중에서 이런 사람들이 있다.
자신들이 피해자이면서 정작 마음이 약해서 가해자들에게 끌려가는 사람들.
그들은 아무리 억울해한다고 해도 도와줄 수가 없다.
결정적인 순간에 상대방에게 휘둘리는데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아니, 휘둘리는 정도가 아니지.’
상대방이 거짓 눈물이라도 흘리면 바로 용서해 주는 건 기본이고, 도리어 그들의 술수에 속아서 자신이 가해자가 되는 서류에 사인하는 사람들도 있다.
즉, 그들의 행동은 결코 끝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결국은, 죽일 놈은 죽여야지.”
노형진은 이를 악물었다.
이대로 두면 절대로 정서범은 저들을 이기지 못한다.
“개 같은 자식.”
정서범에게 욕설을 하고 떠나 버린 가족들.
그리고 혼이 나간 듯한 얼굴로 멍하니 서 있는 정서범.
노형진은 그런 그에게 다가갔다.
“정서범 씨.”
“네?”
“저희는 이번 사건에서 손 떼겠습니다.”
손채림도, 손예은도 깜짝 놀랐다. 그건 전혀 생각하지 못한 말이었기 때문이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손을 떼다니요!”
“그리고 귀댁에 대해서 제가 대신 내 드린 병원비도 청구하도록 하지요. 바로 압류 들어갈 테니 그렇게 알고 계십시오.”
“자…… 잠깐만요, 변호사님!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돈이 없으면 자신의 딸은 죽는다. 그런데 노형진이 손을 떼면 자신은 돈을 받을 방법이 없다.
더군다나 노형진이 그나마 남은 재산에 대해서 압류까지 걸어 버리면 자신의 딸은 그냥 산소호흡기 떼고 죽는 수밖에 없다.
“사건이라는 건 말입니다, 당사자가 이길 생각을 하고 악착같이 싸워야 합니다. 그런데 본인은 싸울 생각이 없잖습니까?”
“왜 없습니까! 싸울 겁니다! 싸울 거라고요!”
“그러면 지금 보여 주신 모습은 뭡니까?”
“그, 그게…… 그래도 애 엄마인데…….”
“애 엄마가 아니라 살인마겠지요. 지금 당신은 살아남은 수진이의 사망진단서에 사인하신 겁니다. 저희는 못 도와 드리니까, 재주껏 알아서 하세요.”
“변호사님!”
“노 변호사님!”
“형진아!”
다들 깜짝 놀라서 노형진을 말렸다.
‘설마.’라고 하기에는, 노형진은 절대로 섣불리 말을 꺼내는 사람이 아니다.
물론 진짜로 사람이 죽을 수도 있다. 하지만 그것조차 감수하는 사람이 노형진이다.
실제로도 사건을 하다 보면 핀치에 몰린 사람이 용서 안 해 주면 자살한다고 하기도 한다.
그럴 때마다 노형진이 하는 말이, 자살할 거면 조용한 곳에 가서 하라는 것이다. 죽든 말든 상관 안 하겠다는 태도다.
그리고 실제로 그렇게 자살한 사람이 나타났을 때 노형진은 후회하거나 양심의 가책을 받는 게 아니라 ‘아, 그럼 돈은 어디서 받지? 이번에 초등학교에 들어가는 아들을 털어야 하나?’ 같은 소리를 아무렇지도 않게 했다.
“노 변호사님, 사람 목숨이 달려 있습니다.”
“그걸 구할 사람은 생각이 없는데 우리가 왜 싸우나요? 누차 말하지만 변호인은 대리인입니다. 당사자가 아니에요. 그런데 당사자에게 싸울 생각이 전혀 없는데 우리가 왜 나섭니까? 우리는 자선사업가가 아니에요. 나도 그렇고요. 저쪽에서 싸우려고 하지도 않는데 우리가 뭐하러 의미 없는 싸움을 합니까? 불쌍하다고 우리가 다 돈 내줄 수 있는 건 아니잖습니까?”
아무렇지도 않게 정서범의 가슴에 비수를 꽂는 노형진.
“그러니까 손 변호사님도 손 떼세요. 이 사건, 우리 로펌에서 정식으로 수임 거부할 테니까 만일 이 사건을 맡고 싶으시다면 로펌에서 나가서 하시면 됩니다.”
“에?”
심지어 아예 사건을 거부한다는 말에 손채림은 깜짝 놀랐다.
새론에서는 사건을 수임하는 부분에 대해서는 뭐라고 하지 않는다.
개인적으로 받은 사건도 정해진 수수료만 내면 알아서 하라고 한다.
하지만 아무리 그래도 거부된 사건을 변호사가 할 수는 없다.
“그럼 이만 가지요.”
“변호사님, 잠시만요.”
다급하게 매달리는 정서범.
“잘못했습니다! 제가 잘못했습니다!”
“뭘 잘못하시는지나 아십니까?”
“그게…….”
“모르시는군요.”
“압니다! 알아요……! 하지만…… 저도 화가 나고 속이 터집니다. 그런데…….”
‘그렇지. 사람이 쉽게 바뀌는 게 아니지.’
착하게 살아온 사람이 악독하게 바뀌는 것은 쉬운 일이 아니다. 하물며 가족이었던 사람에게 말이다.
‘미래를 위해서라도 이 사람은 독해져야 해.’
쌍둥이 언니가 죽었는데 수진이가 깨어난다고 한들 멀쩡할 리 없다. 그 아이를 지켜 주기 위해서라도 이 사람은 독해져야 한다.
‘안 봐도 뻔하니까.’
마음 약한 아버지. 집을 나간 어머니 그리고 가난한 집.
그런 곳에서 그 아이들이 버틸 수 있었던 것은 쌍둥이 자매 때문이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중 한 명이 죽었다. 무너지지 않으면 그게 이상한 거다. 그걸 받쳐 주기 위해서는 다른 누군가가 강해져야 한다.
‘안 된다면…….’
진짜로 방법은 없다.
“제발, 부탁드립니다. 제대로 하겠습니다. 시키는 대로 하겠습니다. 제발…… 제 딸아이를 살려 주십시오.”
아예 무릎을 꿇고 눈물을 흘리면서 양손으로 싹싹 비는 정서범의 모습에 노형진은 한숨이 다 나왔다.
‘아니, 자기가 피해자도 아니고. 돌아 버리겠네.’
웅성거리면서 모여드는 사람들.
하지만 그런 사람들의 시선은 신경도 쓰지 않고 노형진에게 매달리는 정서범.
“좋습니다. 단, 조건이 있습니다.”
“무슨 조건이든 좋습니다. 제발 딸아이만 살려 주세요, 흑흑.”
“합의 권한과 소 취하 권한을 포기하세요.”
“네?”
“당신은 도무지 못 믿겠습니다. 합의 권한과 소 취하 권한을 포기하세요. 안 그러면 이 사건은 저희가 하지 않을 겁니다.”
“아…… 알겠습니다.”
다급하게 고개를 끄덕거리는 정서범.
잠시 후 그는 간단하게 작성된 서류에 도장을 찍었다.
“그럼 이 사건은 우리가 알아서 합니다. 당신은 신경 끄고 있다가 굿이나 보고 떡이나 먹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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