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the law RAW novel - Chapter (895)
“네…… 제발 부탁드립니다.”
고개를 몇 번이나 숙이면서 사과하는 정서범.
그리고 그가 떠나고 나자 노형진은 한숨을 쉬었다.
“이거 완전 골 때리는구만.”
“아니, 왜 그런 거야?”
“저런 타입은 진짜 도망갈 구석이 없을 때까지 밀어붙이지 않으면 계속 도망 다녀. 아까도 봐서 알잖아.”
“그거야 그렇지만…….”
손채림은 아까 모습을 떠올리며 안타까운 듯 입맛을 다셨다.
확실히 자신이 피해자인데 도리어 가해자들에게 굽실거리는 그 모습. 아마도 읍소해서 돈을 받아 내서 병원비로 쓰고 싶어서 온 것이리라.
“하지만 줄 리 없지.”
보자마자 다짜고짜 소새끼니 개새끼니 하는 녀석들이 과연 돈을 줄까? 그럴 리 없다.
“하지만 거기에 무슨 의미가 있지요?”
“뭐가 말입니까?”
“아까 받은 각서 말입니다. 합의 권한과 소 취하 권한을 포기한다니, 그건 포기할 수 있는 게 아니잖습니까?”
법적으로 합의 권한과 소 취하 권한은 피해자인 정서범에게 전속되어 있다. 각서든 계약서든 뭘 쓰든, 그건 법적으로 인정받을 수 없다.
“압니다. 하지만 정서범 씨는 그걸 모르지요.”
“네? 아!”
“아마도 우리가 공격을 시작하면 상대방은 정서범 씨를 직접 공격하려고 할 겁니다. 그들은 정서범 씨의 성격을 아니까요.”
그들은 정서범이 마음이 약하다는 것을 알고 있다.
물론 다른 곳으로 대피하면 좋겠지만 당장 자신의 아이가 죽을지 살지 모르는 상황에서 그곳을 떠나려고 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우리가 스물네 시간 같이 있을 수는 없으니.”
손채림도 노형진이 왜 그런지 알아차렸다.
자신들이 없는 사이에 정서범을 압박한다면, 어쩌면 정서범은 그들에게 합의해 줄지도 모른다.
‘한 5천쯤 준다고 하면 덥석 합의해 줄지도 모르지.’
다급한 마음에 실제로 그럴 가능성도 있다.
그리고 그렇게 되면 자신들이 아무리 노력해도 그 이후는 어쩔 수가 없다.
“하지만 우리한테 권한이 있다고 생각하면…….”
일단 정서범 씨는 마음대로 합의해 주지 않을 것이다.
설사 찾아온다고 하면 자신들에게 연락할 테고 말이다.
“마음 약한 의뢰인을 두는 건 참 골치 아픈 일이군요.”
손예은은 짜증스럽다는 듯 중얼거렸다.
“골치 아픈 일이지요.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우리 같은 변호사가 있는 거 아니겠습니까?”
중요한 것은 조현아를 찾았으니 이제는 그녀의 영혼을 털어 낼 것이라는 사실이다.
“아마도 죽고 싶어지게 만들어야지요.”
노형진의 그 말은 절대 농담이 아니었다.
* * *
“절반을 가지고 오는 것은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하지만 나머지 절반이 문제입니다.”
총배상액은 3억 5천. 그중 1억 7,500만 원은 가지고 올 수 있다. 어머니에게 권한이 있듯, 아버지에게도 권한이 있으니까.
“아마 조현아는 계좌가 동결된 것이 주민등록번호가 말소되어서 그런 거라 생각하는 모양이지만요.”
그러나 해당 계좌는 그 돈을 청구하기 위해서 가압류한 상태다. 그러니 조만간 그걸 알아차리고는 어떻게 해서든 그걸 풀려고 할 것이다.
‘절대로 그렇게 하면 안 돼.’
한번 묶여 봤으니 바보가 아닌 이상에야 풀리는 순간 그걸 다 꺼내서 현금으로 어딘가에 감춰 두려고 할 것이다.
“그러면 나머지는 어떻게 하려고?”
“일단은 양육비지.”
“양육비?”
“그래. 그녀는 아이들을 버리고 도망갔어. 그 증거는 넘치다 못해 쌓여 있지. 그걸 가지고 양육비를 청구할 거야.”
“흠…….”
“그게 가능할까요?”
손채림은 고개를 갸웃했다.
이미 아이는 죽었다. 병원비는 원칙적으로 그 여자의 책임이 아니니 그걸 청구할 수는 없다.
“가능합니다. 사람들은 잘 모르지만요.”
“네?”
“원래 양육비는 미래에 대한 재산을 분할하자는 게 아닙니다. 잘 알려지지 않은 판례이지만요.”
일반적으로 사람들은 양육비라고 하면 키우는 데 들어가는 돈을 청구하는 줄 안다.
그러나 법적으로 그리고 판례적 해석에 따르면 사후 청구, 그러니까 아이가 성장하고 나서 한꺼번에 청구하는 것도 인정된다.
“그런 판례가 있었나요?”
“네.”
노형진이 모든 판례를 기억하는 것은 아니지만 그런 판례가 있다는 것을 알고는 있다.
“그런 건 몰랐네요.”
“그래서 많은 사람들이 받는 걸 포기하는 겁니다.”
변호사들도 그렇게 생각하고 아이가 다 큰 다음에는 포기하라고 하는데 일반인들의 생각이야 어떻겠는가?
“하지만 사후에 받아 낼 수도 있습니다.”
“사후라…….”
“일반적으로는 아이가 성인이 되거나 대학을 졸업하고 난 뒤를 이야기하지만, 이 경우는 아이가 사망한 시점을 이야기하지.”
씁쓸하지만, 이기기 위해서는 죽은 아이를 이용하는 수밖에 없다.
“그래도 잘해 봐야 1억 정도일 텐데요?”
“그 후에는 손해배상을 요구해야지요.”
“손해배상?”
“부모에게는 아이를 보살필 관리 책임이 있습니다. 그리고 조현아는 그걸 버리고 도망갔지요.”
“아이의 이름을 대신해서 소송하겠다?”
“네. 법적으로도 그리고 상황적으로도 아이의 대리인은 정서범 씨니까요. 그리고 양육비 문제도 1억이 아니라 2억입니다. 뭐, 좀 깎이겠지만, 최소한 1억 5천은 나오겠지요.”
“그런가요?”
“아이가 한 명이 아니라 두 명이었으니까요.”
“흠…….”
독하게 마음먹고 소송하면 방법이 없는 건 아니다.
다만 이런 식으로 당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남편이든 아내든 도망간 가족이 돌아올까 봐 차마 이혼을 못 할 만큼 마음이 약한 유형이기 때문에 이런 방법을 쓰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대부분 이런 사람들은 인신공격에 약하지.’
이런 소송이 들어가면 상대방이 공격하는 방법은 비슷하다.
상대방이 마음이 약한 것을 이용해서 돈독이 올랐다느니 자기 자식 팔아먹어서 돈 벌려고 한다느니 하는 말로 공격한다.
‘정작 버린 자식으로 돈 벌려고 하는 건 자기들이면서 말이지.’
문제는 그런 짓을 하는 놈들은 독해서, 그런 모욕에 꿈쩍도 하지 않는다는 것.
“그 정도면 배상금을 충분히 환수하겠네.”
“내 목적은 배상금이 아니야. 애초에 배상금만 목적이었으면 내가 안 나섰어.”
“응?”
“그냥 손 변호사님에게 말하고 말았지.”
“그러네요.”
손예은도 바보는 아니다.
경험이 부족하고 넓게 보는 능력이 부족할 뿐, 정확한 방법만 알면 어렵지 않게 대처할 수 있다.
노형진에게 그동안 배운 것도 있는 데다 이번 사건은 워낙 확실하게 양육비 청구 조건이 완비되어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그 이상이야.”
“그 이상이라…… 복수?”
“그래.”
“하지만 복수할 대상이 누가 있다고?”
“처가라는 인간들 말이야. 이번 사건으로 알았겠지만, 그 집안은 조현아랑 계속 연락하고 있었어. 즉, 아이들을 버린 방조범인 셈이지. 아마 아이가 죽었다는 것도 그 인간들이 이야기해 줬을걸.”
“그렇겠네.”
조현아가 아이들을 버리고 도망간 건 아이들이 두 살이 되던 시점이다. 그러니 그 아이들이 어떤 학교에 갔는지 알 리 없다.
방송에 피해자 이름이 나왔다고 해도 한국에서는 동명이인이 넘쳐 나니 확실하게 자기 자식이라고 말할 수도 없다.
“거기에다 이야기를 들어 보니 그래도 처가라고 꼬박꼬박 챙긴 모양이더군. 아내가 없어도 자식들에게 외가는 만들어 주고 싶었던 모양이야.”
“끄응.”
정작 그쪽에서는 연을 끊었는데 말이다.
“그러니까 그들에게 복수해야지. 조현아는 당연히 복수의 대상이고. 그리고 등장하지 않은 남자 한 명.”
“남자 한 명?”
“이상하지 않아?”
“뭐가?”
“조현아가 집에 돌아오지 않은 것.”
“응?”
“세상을 여자 혼자 사는 건 쉽지 않아. 더군다나 집에서 도망친 여자가 혼자 산다? 그건 말도 안 되지.”
물론 그녀가 도망친 시점은 상당히 젊은 나이다. 그러니 뭐든 했을 수도 있다.
그러나 그건 어디까지나 과거.
“사회생활을 하다 보면 누군가는 만나게 되어 있어. 그리고 가난이 싫어서 도망친 조현아로서는, 혼자 벌어서 가난하게 사는 건 끔찍하게 싫겠지.”
“누군가 다른 남자가 있다?”
“그래.”
그럴 수밖에 없다.
“더군다나 조현아도 이혼 청구를 하지 않았어. 왜 그런 건저 모르지만 일단은 그렇기 때문에 지금까지 기록상 부부이자 어머니로 되어 있는 거지.”
“그런데?”
“그러면 여기서 알 수 있는 게 하나 있지. 그 남자가 결혼이야기를 하지 않았다는 것.”
“응?”
“그날 조현아 모습 봤지? 쌍둥이 또래 엄마들에 비해서 아직 젊은 나이라고는 하지만 너무 젊어 보였어. 상당히 관리받은 모습이었지. 그런데 아이들을 버리고 혼자 나온 엄마가 그렇게 피부 관리를 받으면서 산다? 그렇게 여유가 넘칠 리 없지.”
사건 당일, 조현아는 아직 30대의 모습을 하고 있었다. 30대 초중반이라고 할까?
그러나 조현아의 나이는 이제 46세.
피부 관리실 같은 곳에서 따로 관리하지 않으면 그렇게 보이는 것은 불가능에 가깝다.
더군다나 혼자 나와서 살면서 고생한 여자가?
그건 말도 안 된다. 선천적인 동안도 후천적인 고생은 못 이기는 법이다.
“누군가 있다?”
“그래. 아마도 유부남이겠지.”
“유부남?”
“그래.”
상대방이 유부남이 아니고서야 결혼하자고 하지 않을 이유가 없다.
“더군다나 돈을 노리는 조현아라면 상대방에게 결혼을 요구할 수도 있거든. 그런데 이혼 소리가 안 나왔다는 것은, 결과적으로 조현아가 결혼을 요구할 처지가 아니라는 뜻이야.”
“그렇다면 상대방이 엄청난 부자라는 소리네?”
“그렇지.”
조현아가 도망간 초창기라면 충분히 젊은 남자를 만나서 결혼할 수도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그 이후부터 지금까지 이혼 이야기가 없다는 것은, 이혼을 청구할 이유가 없다는 것이다.
“아마도 세컨드쯤 되겠지. 그리고 그런 비양심적인 여자라면 그걸 그다지 창피해하지도 않을 테고.”
“결국 복수하려면 그 남자에게도 공격을 가해야 한다는 거네.”
“그래. 지난번처럼 말이야.”
돈 욕심이 나서 그걸 다 훔쳐 가기는 했지만 만일 그런 남자가 뒤에 있다면 자신이 그 돈을 찾아온다고 해도 그다지 복수라고 할 수는 없다. 그 남자로부터 돈을 받으면 그만이니까.
“도대체 인간이 얼마나 타락할 수 있는 건지, 어이가 없군요.”
노형진의 예상을 듣고 있던 손예은은 부르르 떨었다.
“상상 이상입니다. 인간의 부패와 타락은 인간의 상상을 뛰어넘죠.”
“그런가요?”
“네, 실제로 그런 모습을 보고 내가 이러려고 변호사 했나 자괴감이 든다면서 때려치운 사람도 있습니다.”
“끄응…….”
“하긴.”
손예은도 대충 알 것 같은 눈치다.
그나마 자기들은 사건이 넘쳐서 사건을 골라 받으니까 너무 반인륜적 범죄들은 안 받으면 된다. 그러나 그렇지 못한 곳들은 진짜 그런 사건들도 받을 수밖에 없다.
“뭘 하든 상상 이상, 그게 인간의 더러운 면이지. 솔직히 부자들 세컨드쯤은 뭐 별거 아닌 정도야.”
“우웩.”
손채림이 구역질 난다는 표정을 하자 노형진은 피식 웃었다.
“우웩이고 나발이고, 그 애들이 더럽다고 욕할 건 아니야. 우리는 우리 이득만 챙기면 되는 거야.”
“그러면 일단 양육비를 청구할까?”
“그러자고. 그러면서 동시에 손해배상을 청구하자. 아, 그리고 당분간은 정서범 씨에게 사람을 붙여. 소장이 들어가는 순간 조현아 측은 분명히 어떻게 해서든 정서범 씨를 직접 공격하려고 할 테니까.”
손채림은 고개를 끄덕거렸고 노형진은 주먹을 불끈 쥐었다.
“자, 이제 복수 시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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