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the law RAW novel - Chapter (9)
“…….”
너무도 날카로운 말에 강소영은 할 말을 잃어버렸다. 단순히 이 자리에 나온 것만을 가지고 그 모든 것을 유추해 낼 줄이야.
“변호사를 사서 하려면 소송이 끝나도 승소 비용을 달라고 하겠죠.”
“300만 원을 달라고 하더군요.”
선불금 500만에 승소 비용 300만. 돈이 없어서 미혼모 시설에서 애를 낳아야 했던 그녀에게는 꿈에서도 보기 힘든 돈이다.
“제가 도와 드리죠.”
“하지만…… 변호사 없이 어떻게…….”
“원래 소송은 자기가 하면 됩니다.”
변호사들이 말해 주지 않지만 사실 민사소송은 직접 할 수 있다. 물론 쉬운 건 아니다. 서류에, 답변서에, 고소장에, 증거에, 반박 서면에, 추가 서면 등등. 그러나 밥 먹고 하는 게 그거였던 노형진에게는 너무나 쉬운 일일 뿐이었다.
‘뭐, 이 문제를 해결하는 데에 내 인건비만 희생하면 되는 거면 싼 거지.’
“필요하시면 제가 해 드리죠. 불안하시면 미리 소장을 써 드리겠습니다. 소장을 보시면 제 실력을 아실 테니까요.”
“그건 변호사법 위반이라고…….”
“그건 변호사들이 자기 밥그릇 깨질까 봐 하는 소리입니다. 금전적 이득 없이 선의로 해 주는 건 변호사법 위반이 아닙니다.”
다른 사람이 소장을 써 주는 걸 변호사들은 싫어한다. 그래서 저런 말도 안 되는 소리를 하는데, 사실 반은 맞고 반은 틀리다. 변호사나 법무사가 아닌 사람이 돈을 받고 써 주면 변호사법 위반이 맞지만, 단순히 호의로 무료로 써 주는 것은 위반 사항이 아니다.
“난…….”
잠시 고민하던 강소영은 드디어 결심을 굳혔다. 품 안에서 쌔근쌔근 자고 있는 아이를 키우기 위해서라도 돈이 필요했다.
“뭘 어떻게 하면 되나요?”
분리수거 하는 날(1)
“이래도 되는 거야?”
“그래, 나한테 맡겨.”
노형진은 강소영을 만나고 난 후 윤미영을 설득하는 데 성공했다.
윤미영도 결국 용기를 가질 수밖에 없었는데 그도 그럴 것이, 노형진이 강소영을 만나러 간 날 이규성이 강제로 그녀를 끌고 모텔로 가려고 했던 것이다. 다행히 그녀의 전화를 받은 노형진이 강소영과의 대화가 끝나자마자 바로 택시를 타고 달려온 덕분에 이규성의 퇴근 시간 전에 도착해서 그녀를 빼내는 데에 성공했지만 말이다.
그동안 노형진의 보호 덕분에 안심하고 있다가 그런 일을 당하자 윤미영은 더 이상은 버틸 수 없다는 사실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일단은 너희 아버지 문제를 해결해야 해.”
분명 고소를 해도 그는 합의금을 받고 취하해 줄 것이다. 물론 일단 윤미영에게 손대는 것은 포기하겠지만 그 돈은 윤미영이 정신적 치료를 받는 데에 써야 할 돈이다. 그러나 그 아버지라는 인간이 도박으로 날릴 확률은 100%였다.
“일단 너희 아버지가 돈에 손대지 못하게 해야지.”
“무슨 수로? 내가 하지 말라고 해서 안 할 게 아니잖아.”
“그러니까 내 말대로 해.”
“그러니까 그분이 심각한 알코올중독자라는 거죠?”
“말도 마. 아주 그냥 술만 취하면 개가 된다니까.”
노형진은 동네 사람들에게 여러 가지 정보를 모으고 다녔다. 그들의 대화를 녹음하고 윤미영의 아버지가 저질렀던 일에 대해서 말했다. 그뿐만 아니라 통장을 확인하고 대출 상황과 그 변제 내역 등을 확인하기도 했다.
“이게 무슨 관계가 있는 거야?”
성범죄와 전혀 상관없는 것들을 조사하자 윤미영은 불안한 모양이었다.
하긴, 성범죄자를 처벌하는 데에 자신의 아버지를 조사하는 게 필요하다는 건 이해하지 못할 일일 것이다.
“널 보호할 준비를 먼저 해야 하니까.”
아버지가 돈을 다 써 버리면 이번 사태의 정신적 피해로 그녀의 인생이 망가질 것이다. 당장 멀리 갈 필요도 없이 강소영이 그 산증인이 아닌가? 누가 미혼모로 살고 싶어 하겠는가?
“하지만 무슨 수로? 그는 어른이고 우리는 애라고.”
“그래, 하지만 가능한 게 있지.”
“가능한 거?”
“그래, 일단은 증거를 모아 놔야 해. 그래야 일이 편해지니까.”
“뭐라고?”
서류를 접수하는 남자는 중학생 두 명이 들고 온 서류를 보고는 기가 막혔다.
“이런 걸 누가 가르쳐 준 거냐?”
“제가 공부한 겁니다.”
“공부한 거라고?”
그 말에 다시 서류를 확인하는 직원. 하지만 빠진 것 없이 완벽했다.
“그럼 학생 본인은 맞고?”
“네, 여기 동사무소에서 떼어 온 신분 확인증요.”
“음.”
주민등록증이 없으니 미리 신분 확인서까지 동사무소에서 떼어 온 모양이다.
“거참.”
“접수 안 해 주시나요?”
“하기는 해야지.”
서류를 다시 바라보는 접수원. 그곳에는 ‘한정치산자 신청서’라고 써 있었다.
한정치산자.
간단하게 표현하자면 사회적으로, 또는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어서 정상적인 사회 활동을 하지 못하는 사람의 행동을 막는 법률이다.
윤미영이 심각한 알코올중독과 도박 중독으로 아버지에 대한 한정치산을 결정하자, 노형진은 그의 아버지에 대한 금전적 활동 중 대출 및 출금, 법정대리인 금지 신청을 낸 것이다. 그렇게 된다면 그는 대출받지도 못하고 기존에 있던 자금을 출금하지도 못하며 법정대리인으로서 범죄에 대한 합의도 하지 못한다. 물론 문제가 없는 것은 아니었다.
“이 개 같은 년이 키워 주고 재워 주니까 버릇없이 자기 아버지를 고소해?”
“꺄아악!”
“죽어라, 쌍년아!”
그의 아버지가 눈이 벌게져서 윤미영을 공격하기 시작했던 것이다. 술을 먹고 개가 된다고 하지만 이건 개가 아니라 완전히 짐승이었다.
‘뭐, 내가 예상은 했지만.’
문 너머로 들리는 목소리에 노형진은 얼굴을 찌푸렸다. 사실 이런 일이 벌어졌을 때 그녀의 아버지가 저런 행동을 할 거라는 사실은 예상하고 있었다. 그리고 그 때문에 그가 윤미영 몰래 준비한 것이 있었다.
“이런, 이런.”
황급하게 달려온 남자는 너머에서 들리는 소리에 얼굴이 창백해졌다.
“빨리 막아야지요.”
“자네 말이 맞군. 빨리 어떻게 해서든 막아야겠어. 문 여세요. 담당 관리자입니다.”
“뭐라고? 이 씨발 개놈이! 여기가 어디라고 기어들어 와!”
그는 법원에서 정한 그의 아버지의 법정대리인이었다. 그의 아버지가 한정치산을 받으면서 법정대리인이 필요해졌는데 윤미영 같은 경우는 미성년자이기에 그 대상이 될 수 없었던 것이다. 그래서 법원에서 법정대리인을 지정해 줬고, 노형진은 그녀의 아버지가 공격을 시작하자 그를 재빨리 부른 것이다.
“진정하시고.”
“진정하게 됐어? 이 개 같은 년이 아비를 고소해?”
“고소한 게 아니라 치료가 필요하니까…….”
“치료? 치료? 내가 치료가 필요하다고? 닥쳐, 이 씨발 새끼야!”
“꺄아악!”
“으어억!”
갑자기 칼을 꺼내서 마구 휘두르는 그녀의 아버지. 그걸 보고 노형진은 얼굴을 찌푸렸다. 아무리 술기운이라지만 해도 되는 일과 안 되는 일이 있기 마련이다.
“안 되겠습니다. 위험합니다. 들어오세요!”
결국 법정대리인은 고개를 흔들고 바깥으로 신호를 보냈고 바깥에서는 하얀 옷을 입은 남자 두 명과 경찰 두 명이 안으로 들어왔다.
“뭐야? 뭐야? 이 개새끼들아! 뒈져! 뒈져!”
마구 발악하는 그녀의 아버지. 법정대리인은 아슬아슬하게 칼을 피하고는 경찰들에게 고개를 흔들었다.
“타인에게 치명적인 위협을 가할 수 있습니다. 법원에서 지명한 법적 대리인으로서 제압을 부탁드립니다.”
그 말에 전기 충격 총을 꺼내서 조준한 경찰은 서슴없이 방아쇠를 당겼다.
“끄어어어억!”
전기 충격 총을 맞아서 부들부들 떨던 아버지는 그대로 쓰러졌다.
“공식적으로 기록합니다. 현 시간부로 타인에 대한 극도의 공격성과 폭력성이 위험하다고 판단되어 정신병원의 감금을 요청합니다.”
그 말에 하얀 옷을 입고 있던 두 남자는 고개를 끄덕거리고는 기절한 그를 끌고 수송용 차량으로 향했다.
“위험했구나. 그래도 네가 빨리 발견해서 다행이다.”
“네.”
노형진은 씁쓸하게 웃었다. 빨리 발견한 게 아니라 이렇게 될 거라 예상해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흑흑…….”
공포에 굳어서 바들바들 떠는 윤미영을 노형진은 다독거리면서 진정시켰다.
“괜찮아, 괜찮아. 진정해.”
그렇게 진정시키면서도 그는 씁쓸한 미소가 나올 수밖에 없었다. 예상했으면서도 방치했다는 건 역시 기분 좋은 일은 아니니 말이다.
“아버지는?”
“당분간은 정신병원에서 알코올중독 치료를 해야 한대.”
“그렇겠지.”
술에 취해서 딸과 법정대리인 그리고 경찰까지 공격했으니 말이다. 그나마 미리 한정치산을 걸어 놔서 처벌을 면한 거지, 그렇지 않았으면 바로 감옥행이었을 것이다.
“법원에서 금치산을 건다는데, 그게 뭐야?”
“한정치산이랑 비슷한데 좀 더 강력한 거야. 아예 모든 법적인 행위를 못 하게 막는 거지.”
“그렇구나.”
충격이 컸던 것일까? 그녀는 그저 고개를 끄덕거릴 뿐, 아버지를 걱정하진 않았다.
“아버지 문제가 해결되었으니 드디어 우리 문제를 해결할 수 있겠네.”
“될까?”
“이번에는 빼도 박도 못할 거야.”
윤미영을 포함해서 피해자 다섯 명 중 네 명이 고소에 동참했다. 한 명은 결국 포기했지만 네 명의 공통된 고소만으로도 충분하다고 봐도 되는 일이었다.
사실 고소장을 넣는 것은 어려운 일은 아니다. 고소장을 넣는 건 그리 대단한 일도 아니며 강간처럼 대형 사건은 학교 폭력처럼 접수를 거부하려고 하지도 못한다.
문제는 그 후였다.
“미영아! 문 열어 봐! 선생님이랑 이야기 좀 하자!”
컴컴하게 불이 꺼진 집. 그 집 문을 두드리는 남자.
“미영아, 오해한 거야. 선생님이 널 사랑해서 그런 거야. 알지?”
불이 꺼진 집에 대고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남자. 그는 이번 사건의 주범인 이규성이었다. 그가 윤미영의 집에 찾아온 것이다.
“내 말이 맞지?”
그러나 윤미영은 그곳에 없었다. 그가 올 걸 예상한 노형진이 그녀를 빼돌려서 자신의 집으로 데려간 것이다.
“이런 녀석들의 행동은 뻔해. 일단 찾아가서 합의하려고 하지.”
“어떻게…….”
“저 녀석은 선생이니까.”
“하지만 소영이 누나한테도 찾아갔다면서?”
“그건 경찰이 알려 줬을 거야.”
“경찰이?”
“그래, 경찰이 원래 그래.”
좋게 말하면 법률적인 방어권을 인정한다면서 경찰은 강간 피해자들의 연락처와 주소를 마치 당연하다는 듯이 가해자들에게 주고는 했다. 말도 안 되는 짓이다. 그 결과, 대부분의 강간 피해자들은 겁박과 괴롭힘 때문에 합의할 수밖에 없었다. 심지어 온 동네를 돌아다니면서 강간했다고 소문내고 다녀도 모른 척하는 게 경찰이었다. 일하는 것을 무척이나 귀찮아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내가 알아서 할게.”
윤미영의 손을 꽉 잡으면서 진정시키는 노형진이었다.
“아들아.”
“네, 아버지.”
“너, 도대체 무슨 짓을 하고 다니는 거냐?”
“무슨 말씀이신지?”
“왜 네 담임이라는 곳이 여기에 와서 미영이를 찾느냔 말이다.”
노형진의 아버지는 그가 갑자기 여자아이를 데리고 와서 당분간만 여기에 있게 해 달라고 했을 때 깜짝 놀랐다. 하지만 무슨 사연이 있을 거라고 생각해서 순순히 허락해 줬다. 노형진과 누나가 같이 쓰던 방을 윤미영이 쓰고 노형진은 소파에서 자는 조건이었다. 그런데 담임이라는 작자가 여기까지 찾아온 것이다.
‘뭐, 이렇게 나올 줄 알았지.’
고소를 진행했던 네 사람 중 두 사람은 고소를 취하했다. 밤마다 찾아와서 깽판을 치고 주변에 강간당했다는 소문을 내고 다니니 버틸 수가 없었던 것이다. 그러니 남은 것은 윤미영과 강소영인데, 그들에게는 접근도 할 수가 없었다.
미혼모 시설에 있는 사람들은 남자 혐오를 가지고 있다. 그런데 그런 곳에 강간범인 녀석이 오니 미치지 않고서야 접견을 허락할 리가 없는 것이다. 소문이야 어차피 미혼모로 산다는 것 자체가 좋은 소리를 듣고 살 수는 없으니 씹으면 그만이다. 그러니 다급하게 윤미영을 찾는 것이다.
“저한테 찾아올 거라 생각했습니다.”
“했다고?”
“네, 학교에서는 저랑 윤미영이 사귀는 걸로 알고 있으니까요.”
“사귀어?”
“사실 그건 아니구요.”
노형진은 차근차근 아버지에게 지금까지의 일을 말했다. 그리고 실로 오랜만에 아버지가 진심으로 분노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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