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the law RAW novel - Chapter (900)
* * *
“이게 무슨…….”
조현아의 가족은 당황했다.
그들에게 날아온 손해배상 청구.
다행히 가압류까지 오지는 않았지만 그렇다고 해서 상황이 좋아지는 것은 아니었다.
“이런 독한 새끼! 네가 그러고도 사람이야!”
조정을 하기 위해서 나온 정서범에게 삿대질을 하는 그들.
하지만 정서범은 대꾸하지 않았다. 그저 입을 꾹 다물고 있을 뿐이었다.
“입조심하세요. 여기 법원입니다.”
보다 못한 노형진이 한번 슬쩍 겁을 주자 그제야 입을 다무는 그들.
“애초에 당신들이 폭행을 먼저 시작하지 않았습니까?”
“그거야 저 멍청한 새끼가 말이 안 통하니까 그렇지.”
발끈하는 아버지.
노형진은 그걸 보면서 속으로 어이가 없었다.
‘이런 병신 같은 새끼들이 있지.’
과거에 자신에게 쩔쩔매던 사람은 나중에도 쩔쩔매리라고 생각하는 놈들. 그래서 영원히, 언제나 그럴 거라 생각하는 놈들.
딱 그런 타입이었다.
실제로 그런 일이 있다.
그러나 그건 대부분 어려서의 일이다. 그리고 사람은 성장하기 마련이다.
법과대학에 들어가면 배우는 사례 중에 그런 사례들이 많다.
학교 폭력으로 상대방을 가지고 놀던 녀석이 그 버릇을 고치지 못하고 사회에서 똑같이 상대방을 무시하다가 도리어 역습당하는 사건들.
학생과 성인의 갭은 어마어마하다. 그런데 그걸 이해하지 못하는 녀석들.
‘이 노친네도 마찬가지군.’
과거에는 그래도 돌아올 가능성이 있다고 생각해서, 그리고 두 쌍둥이의 외가 쪽이라서 대우해 줬던 것뿐이다.
그러나 사실상 연을 끊었고, 그것도 모자라서 간신히 살아남은 아이를 죽이려고 한 시점에서 동일한 대우는 꿈도 꾸지 못한다.
“뭐, 당신들하고 떠들어 봐야 무슨 의미가 있겠느냐마는.”
“뭐라고?”
발끈하는 조갑정.
하지만 정서범은 여전히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자, 자. 진정하시고. 여기는 싸우러 온 거 아닙니다.”
조정관은 어떻게 해서든 사태를 무마시키려고 했다.
“각자 의견을 말씀해 주세요. 마냥 싸우려고 하는 건 아니잖습니까?”
“저희 쪽은 간단합니다. 그쪽에서 사실상 아내가 도망치고 바람피운 걸 안 후에도 조현아와 연락하면서 사실상 가정 파탄을 유도하셨으니까 그에 관련된 배상을 하라 이거지요.”
“이 개새끼야! 그러면 다른 건 뭐야!”
“그건 당신들이 구타한 것에 대한 손해배상.”
“뭐라고!”
“엄밀하게 말하면 그건 전혀 다른 사건입니다.”
“그게 왜 다른 사건이야!”
“조정관님, 한 말씀 하시죠.”
“에, 그러니까…… 엄밀하게 말하면 다른 사건 맞습니다.”
그건 형사이고, 명백하게 저들이 전과자가 될 만한 범죄다.
그에 반해서 고의적으로 가정을 파탄 낸 그들의 행동은 형사적으로 처벌할 수 있는 규정이 없다.
그렇지만 민사적으로는 충분히 할 만한 일이다.
민사라는 것은 형식이 중요한 게 아니라서 어떤 식으로든 피해를 주면 배상해야 하기 때문이다.
“증거 있어?”
“증거요?”
노형진은 피식 웃었다.
“증거야 있지요. 조현아가 말소된 주민등록번호를 살리러 갔을 때, 마치 약속이나 한 것처럼 거기에 가서 증인 노릇을 해 주셨지요. 안 그런가요?”
“우연이야, 우연. 오랫동안 연락한 적이 없다고!”
“글쎄요. 당신들 계좌는 다른 이야기를 하던데요?”
“뭐?”
“당신들한테 들어오던 돈, 그거 조현아가 계좌에서 보내 주던데요.”
“돈만 보낸 거야!”
“돈만 보낸 거라……. 글쎄요. 그럴 수도 있지요. 하지만 당신들 전화기는 다른 이야기를 할 것 같은데요? 이미 통화 내역을 법원을 통해서 요청해 놨습니다. 과연 통화 내역은 뭐라고 할까요?”
얼굴을 확 찌푸리는 가족들.
“그래서 뭐? 그게 왜 잘못이야! 지질하게 가난하게 사는 새끼한테 시집가서 고생하는 내 딸년 볼 수가 없어서 모른 척했다! 그래서 그게 잘못이야?”
사실 엄밀하게 말해서 그건 잘못이 아니다. 도의적으로 미안할 수는 있지만
“하지만 그걸 이용해서 이득을 챙긴 거라면 이야기가 달라지지요.”
“뭐라고?”
“정서범 씨에게서 생활비 조로 돈 받은 거, 기억 안 납니까?”
“그게 뭐 어때서? 사위가 장모한테 돈 주는 게 잘못된 거야?”
“잘못된 건 아니죠. 하지만 당신들이 사실상 결혼 생활을 파토 낸 주범이라는 게 문제지요.”
딸이 도망갔다. 그런데 설득도 하지 않고 감춰 주며 딸이 보내 주는 돈으로 생활했다.
더군다나 그것도 모자라서, 정서범이 마음이 약한 것을 이용해서 그에게 생활비가 부족하다면서 매달 100만 원이나 받아 챙겼다.
“거기에다가 월세 보증금이 올랐다고 돈 더 달라고 하고 돈 빌려 가서 안 갚고…….”
노형진은 그 이야기를 듣고 기가 막혀서 말이 안 나왔다.
정서범이 게으르거나 무능해서 가난한 게 아니었다.
‘씨발, 목수라고, 목수.’
사람들은 대부분 막노동을 한다고 하면 가난하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건 반만 맞는 소리다.
소위 말하는 잡부들은 가난할 수도 있다. 일을 구해도 20%는 소개소에서 떼어 가는 데다가 일을 매일 구하지도 못하니까.
하지만 전문 기술을 가진 사람은 다르다.
특히 목수는 일당이 상당히 비싼 직업인데, 초보 목수만 해도 10만 원이고 중급은 15만 원, 공사 전반을 지휘할 수 있는 전문 목수는 20만 원이다.
문제는 정서범이 경력이 20년이 넘은 전문 목수라는 것.
‘이게 뭔 개 같은 소리인가 싶었다.’
딸 병원비를 구하기 위해서 매일같이 노가다를 나가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래서 가난한 줄 알았다.
그런데 일당 20만 원짜리다.
거기에다가 그의 근무 기록을 보면 한 달에 평균 25일 근무했다. 단순 계산을 해도 한 달에 500만 원은 벌어야 한다.
그 정도면 대기업의 과장급은 되어야 받을 수 있는 돈이다.
“그런데 당신들이 이런저런 핑계를 대면서 빼앗아 갔더군요.”
“우리도 가난하니까! 먹고살아야지!”
“그래요? 얼마나 찢어지게 가난하면 당신 명의로 집이 다 있어요?”
“뭐?”
“등기부 등본 다 떼어 봤습니다.”
노형진은 비웃으면서 말했다.
이건 진짜 가족 전체가 사람 새끼가 아니라고 할 만큼 개놈들이었다.
“월세 보증금을 올려요? 뭐, 틀린 말은 아니네. 당신네들이 받는 사람이라서 그렇지.”
“그게…… 무슨 개소리야?”
“당신들이 온갖 핑계를 대면서 돈을 뜯어 가는 동안 정서범은 제대로 딸도 키우지 못하고 허덕거렸다는 거죠.”
월 500만이라고 하면 못해도 한 달에 세금을 20%는 내야 한다. 그러면 400만 정도.
그런데 조현아 가족이 가지고 간 돈을 계산하면 한 달에 100만 원에서 150만 원선.
그나마도 가끔 보증금이 올랐네 집을 고쳐야 하네 하는 식으로 거짓말하면서 한꺼번에 많이 빌려 간 것은 뺀 것이다.
“사위가 장인 먹여 살리는 게 뭐 어때서…….”
슬쩍 고개를 돌리는 조현아의 아버지.
“그런데 사실상 당신들은 사위 취급이나 했습니까?”
결혼하고 처가댁이 집을 가지고 있는지 어떤지 아는 방법은 그쪽에서 말해 주는 것뿐이다.
장인어른의 재산을 뒷조사하고 다니는 사람은 없으니까.
그리고 착해 빠지기만 한 정서범은 그런 사람들을 꼴에 아이들 외가라고 어떻게 해서든 도우려고 힘든 일이 있을 때마다 대출받아서 도와줬고, 그들은 그걸 집어삼켰다.
그러니 그는 그걸 갚느라고 언제나 가난할 수밖에 없었다.
“그래서 뭐 어쩔 거야? 장인한테 준 건데.”
“아니죠. 그건 사기죠.”
“뭐?”
“가족 관계를 유지하는 걸 방해하면서 또 가족 관계를 유지하는 명목으로 돈을 요구했잖습니까? 더군다나 보증금이라는 명목으로 받아 간 돈이 1억이 넘고.”
“그건…… 틀린 말은 아니지. 우리도 보증금을 빼 줘야지. 그래야 다른 사람이 들어오지.”
“그러면 그 다른 사람이 들어오면 빌린 돈은 갚아야 하는 거 아닙니까?”
“…….”
다급할 때는 빌렸을지 모르지만 돈이 들어오고 나니 아까웠을 것이다. 그러니 갚지 않았을 테고.
“이거, 참.”
조정관은 이야기를 듣다가 기가 막혀서 말이 안 나오는 얼굴이 되었다.
조정관 노릇을 하다 보면 별의별 개놈의 자식을 다 보게 된다.
그런데 보아하니 이건 한두 명이 아니라 가족 전체가 다 개놈이다.
“조정하실 겁니까?”
뜬금없이 물어보는 조정관.
그의 업무는 조정해서 사건을 종결하는 것이다.
하지만 꼴을 봐서는 차라리 조정하지 않는 게 나을 듯했다.
그리고 노형진은 조정할 생각이 없었다.
“아니요.”
“그러면 조정 불성립으로 하죠.”
조정관은 빠르게 결정했다.
차마 저런 개 같은 집안사람들을 위해서 한 번 더 생각해 보라는 말을 할 자신이 없었던 것이다.
“흥!”
“지랄한다.”
반성도 하지 않고 나가는 가족들.
조정관은 그들이 나가고 나자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사기로 처벌하시죠, 차라리.”
“저도 그러고 싶은데요, 그게 불가능하더라고요.”
일단은 가족이었다는 관계 때문에 사기죄가 되기 힘들다.
더군다나 저 녀석들이 아예 돈을 안 준 건 아니다. 이자라는 명목으로 돈을 주기는 했다. 300만 원.
‘그게 문제지.’
대한민국에서 사기죄가 되려면 아예 돈을 주면 안 된다.
이자라든가 수익금이라든가, 하여간 어떤 이유에서라도 돈을 극히 일부라도 돌려주면 사기로 보지 않는다.
그래서 사기꾼들은 사기를 칠 때, 처음에 소액을 노릴 때는 돈을 넙죽넙죽 고이율로 준다.
자신을 믿게 해서 큰돈을 투자받으려는 목적도 있지만, 사기죄로 처벌받는 것을 면하려는 목적도 있는 것이다.
“이기기를 바라겠습니다.”
조정관의 진심을 담은 인사를 받으면서 나오는 노형진.
그런데 그 옆에서 따라오던 정서범이 뜬금없이 입을 열었다.
“변호사님.”
“네?”
“임플란트 비싼가요?”
“네? 비싸기는 하죠.”
“그런데…… 제가 그 임플란트를 해 줄 만큼 돈을 벌 수 있나요?”
노형진은 아까 떠들던 노인의 입이 생각났다.
여기저기 구멍이 났던 이들.
‘이 인간, 어디까지 바보인 거야?’
이 상황에서도 그걸 해 주고 싶은가 하는 생각에 노형진은 차갑게 말했다.
“뭐, 적지 않게는 벌 겁니다. 못해도 수억이겠지요.”
“그렇군요.”
그는 그렇게 말하고는 멍하니 하늘을 바라보았다.
* * *
“수진이가 깨어났대!”
사무실에서 일하던 노형진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뭐? 진짜야?”
“그래! 방금 병원에서 연락이 왔어! 수진이가 일어났다고!”
“다행이다. 별문제는 없대?”
“그냥 멍한 것 말고는.”
다행히 정수진이 살아났다는 소식에 노형진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시간이 상당히 지났음에도 불구하고 일어나지 않아서 혹시나 두 쌍둥이 모두 죽는 거 아닌가 하고 걱정했는데 다행히 깨어난 것이다.
“일단은 정서범 씨가 그곳으로 갔어. 우리도 갈까?”
“나중에. 뭐, 우리는 급한 게 아니니까.”
“그렇지?”
일단은 정서범 씨가 우선이다.
죽다 살아난 딸과 얼마나 함께 있고 싶겠는가? 자신 같은 변호사들이 낄 만한 자리가 아니다.
“더군다나 이야기는 해 봐야 할 테니…….”
“아…….”
노형진은 입안이 씁쓸했다.
깨어난 것은 다행이지만 그렇다고 해서 모든 게 나아지는 것은 아니다.
그녀는 살았지만, 그녀의 언니는 결국 깨어나지 못할 길을 갔으니까.
“안타까운 일이네…….”
정서범의 가장 힘든 일은 아마 언니의 죽음을 알려 주는 것일 것이다.
그리고 그로 인해서 생기는 충격을 상쇄하는 것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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