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the law RAW novel - Chapter (905)
“한 달? 열 명인데?”
“모든 피해자들 가족이 이곳을 아는 건 아니니까.”
이곳을 몰라서 여기에 등록하지 않은 사람도 있을 테니 그렇다면 대략 한 달 간격을 잡아도 된다.
“전형적이야.”
자신이 우려하던 일이 터지자 노형진은 한숨을 깊이 내쉴 수밖에 없었다.
>2장. 그들은 누가 지키는가?>
“이봐요, 낮부터 술 한잔했습니까?”
경찰은 노형진의 말에 피식하고 비웃었다.
노형진은 애써 설득했지만 그들은 여전히 심드렁한 얼굴이었다.
“그게 아니라, 전형적인 연쇄살인범이지 않습니까?”
“이 양반, 미드를 너무 많이 봤네.”
“연쇄살인범이 우리나라에 어디 있어요?”
“변호사 양반, 일 방해하지 말고 가요.”
“여기는 경찰이라고요. 군인 문제는 헌병대에 가야지.”
귀찮다는 듯 손을 휘휘 젓는 경찰들을 보면서 노형진은 이를 박박 가는 수밖에 없었다.
‘빌어먹을.’
증거가 없는 상황에서 그리고 의뢰를 받은 것도 아닌 상황에서 그가 경찰에게 뭐라고 할 수 있는 처지가 아니다.
더군다나 군인이라는 특성상 그 권한이 헌병대에 있기 때문에 그들에게 떠넘기니 뭐라고 말할 수가 없었다.
“후우.”
노형진은 결국 설득을 포기하고 바깥으로 나왔다.
때마침 헌병대에 다녀온 무태식이 노형진을 찾아오고 있었다.
“왜 여기로 오신 겁니까?”
“아, 여기에 계신 겁니까?”
“그래야지요. 경기 지역 전반의 사건이니까요.”
경기지방경찰청에 왔던 무태식은 고개를 흔들면서 다가왔다.
“개소리 말래요.”
“군대도 그러던가요?”
“네.”
하긴 군인들의 입장에서는 탈영으로 처리하는 것이 훨씬 일이 편하니까. 다치는 사람도 적고 말이다.
“그나마 한다는 말이, 그러면 가해자는 일반인일 테니까 경찰에 가 보라고 하더군요. 그래서 이쪽으로 온 겁니다. 그런데 왜 여기서 나오시는 건가요?”
“여기는 피해자가 군인이니 헌병대로 가 보랍니다.”
“미친…….”
무태식은 그 소리에 어이가 없어서 입을 쩍 벌렸다.
“둘 다 일하기 싫은 거죠.”
“연쇄살인일 가능성이 있는데도요?”
“증거가 없지 않습니까?”
“끄응…….”
이해는 한다. 증거가 없는 일까지 수사하려 들면 일이 너무 많아진다.
하지만 그래도 그렇지, 이건 너무한 것이다.
연쇄살인이면 증거랑 상관없이 심증만으로 움직여야 정상이다. 그만큼 중요한 사건이다.
하물며 실종 기록이 표시된 기간이 7년이고 매년 열 명씩 죽었다면, 일흔 명 정도가 죽은 셈이다.
“그런데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너무 전형적인 거 아닌가요? 미드 보면 막 뭘 감추던데.”
“그건 영화니까요.”
연쇄살인은 그냥 ‘심심해서 죽여야지.’ 하는 게 아니다. 연쇄살인을 하는 놈들에게는 다 특정한 이유가 있다.
“단순히 이득을 위해서 죽이는 건 갱단도 합니다. 하지만 그 녀석들을 연쇄살인범이라 부르지는 않죠.”
연쇄살인범들에게는 특정한 뭔가가 있다. 그리고 그건 정신적인 부분의 문제이기 때문에 절대로 멈추지 못한다.
“전형적이라는 것은 그만큼 많은 사건이 그 형태로 벌어졌기 때문입니다. 더군다나 한국에서는 연쇄살인이 제대로 수사된 적이 많지 않지요.”
“흠…….”
미국은 인구가 많다 보니 미친놈도 많다. 그래서 연쇄살인범도 많다.
미국의 FBI의 경우는 미국 전역의 관할권을 가지고 그런 범인들을 추적한다.
“그런데 한국은 그런 게 없습니다.”
한국은 그런 존재가 없다.
물론 광역수사대라는 존재가 있기는 하다.
하지만 그 광역수사대조차 대한민국 정부 소속이 아니라 각 지방경찰청 소속이다. 즉, 그들의 관할 영역은 전국이 아니라 그 지방뿐이라는 것이다.
“그들은 증거가 없으니 움직이지 않을 겁니다.”
노형진은 한숨을 쉬면서 말했다.
광역수사대가 함께하면 좋겠지만 이미 그들에게 거절당한 상황.
“그러면 일단 사건이 벌어진 곳을 캐는 게 중요한 거 아닌가요?”
노형진과 무태식은 그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거기에는 어떤 사람이 서 있었다.
“누구신지?”
“아, 김상엽 기자라고 합니다.”
“아아.”
경기도 경찰청같이 한 지역의 경찰을 다 관리하는 곳은, 상주해서 기삿거리를 찾는 기자가 한두 명은 있기 마련이다. 그도 그런 사람들 중 한 명인 모양이다.
‘그리고 대부분은 힘없는 사람이지.’
상식적으로 비공개인 경찰 수사를 그들이 알려 줄 리 없다. 큰 건이 터지기도 하지만, 그러면 상주 인력이 아닌 다른 사람이 들어온다.
‘그러니까 그냥 대기 타는 장소지.’
그래서 보통 경찰서 상주 인원은 들어온 지 얼마 안 된 사람이 많이 배치된다. 아니면 순환제로 하든가.
대기실이 있기는 하지만 그다지 큰 사건이 아니면 정보를 얻기 힘들기 때문이다.
“저희가 아는 곳은 한 곳뿐이라서요.”
“아까 들어 보니 무슨 연쇄살인이라면서요?”
“추정일 뿐입니다.”
“흠…….”
김상엽은 약간은 고민하는 얼굴이 되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모 아니면 도이기 때문이다.
‘냄새는 나는데 말이야.’
변호사가 와서 경찰에 도움을 요청한다는 것은 단순 추정이라고 해도 작지 않은 건수다.
하지만 증거가 없다는 건, 해결 못 할 가능성도 높다는 뜻이다.
‘만일 여기서 나가면…….’
회사에서는 자신에게 여기서 대기하면서 기삿거리를 찾으라고 했다.
‘확실히 맞는 상황이기는 한데.’
문제는 그게 자신이 취재하라는 게 아니라, 쓸 만한 거 있으면 선배를 부르라는 소리라는 거다.
‘썅놈의 새끼들.’
그러면서 자신은 정작 실적이 없다고 지원도 안 해 준다.
“왜 그러십니까?”
“아닙니다. 뭘 좀 생각하느라고요.”
김상엽은 맘을 독하게 먹기로 했다.
‘그래, 이거 물자. 어차피 시간만 보내는 거.’
기다려 봐야 경찰은 알려 주는 것도 없다. 더군다나 이걸 알려 줘 봐야 남 좋은 일만 시켜 줄 뿐이다.
‘꽝이면 시말서 좀 써야겠지만.’
대신 성공하면 자신은 엄청난 건수를 물어 오는 것이다.
“혹시 관련된 이야기를 좀 들어 볼 수 있을까요?”
“네?”
“상부상조하자는 거죠.”
“무슨 말씀이신지?”
“아무래도 기자라는 이름은 상당히 강력하지 않습니까?”
그게 무슨 말인지 알아차린 노형진은 씁쓸하게 미소 지을 수밖에 없었다.
* * *
“그래서 조사차 오셨다고요?”
“네.”
히죽거리면서 웃는 김상엽.
그리고 그 앞에 있는, 지역 경찰서의 강력계 형사.
‘역시.’
노형진은 그를 끼워 넣은 것이 확실히 도움이 된다고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사정을 모두 들은 그는 합류하자마자 자신의 기자 신분을 십분 이용했다.
“이곳에 연쇄살인범이 있다는 소문이 있습니다.”
“허허, 그거참.”
“그래서 조사 중인데 협조 좀 부탁드립니다.”
천연덕스럽게 웃는 김상엽.
그는 경기도 지방경찰청에서는 누가 알아주지도 않는 생초짜 기자이지만, 다른 곳에서는 그런 그의 신분을 모른다. 그저 기자 신분증만 볼 뿐이다.
‘그리고 지방경찰서에서는 기자 신분증이 상당히 강력하지.’
가령 이번 사건의 경우, 그의 힘을 알고 있는 중앙에서야 가뿐하게 씹거나 더 친한 선배 기자에게 말하면 그의 기사를 막는 거야 일도 아니겠지만, 지방경찰서에서는 그가 ‘연쇄살인으로 의심되는 사건을 현지 경찰이 수사 거부’ 같은 식으로 한 번만 기사 쓰면 말 그대로 폭탄 터지는 셈이 되어 버리기 때문이다.
“그럼요, 도와 드려야지요.”
미소로 답하는 경찰.
“마침 한 명이 있습니다. 어이, 은 경사!”
그가 부르자 한 명이 일어서서 이쪽으로 오는 게 보였다.
그리고 그걸 보고 노형진은 씁쓸한 기분에 속으로 울컥했다.
‘또야?’
눈앞에 보이는 사람은 여자였다.
물론 여자가 경찰 하지 말라는 법은 없다.
그러나 노형진은 봤다, 그녀가 앉아 있던 곳이 강력계가 아니라 절도계라는 것을.
‘안 믿는다 이거지?’
기자가 왔으니 적당히 대우해서 보내 준 것뿐이라는 것을.
그걸 모르는 김상엽은 좋다고 웃었지만.
‘뭐, 그래도 치고받고 할 게 아니니까.’
자신들에게 필요한 것은 경찰이라는 일종의 얼굴마담이다.자신들이 조사한다고 해도 한계가 있으니까.
“좋은 결과가 있기를 바라겠습니다.”
히죽 웃는 반장의 얼굴을 노형진은 한 대 까고 싶었지만 그저 꾹 참을 수밖에 없었다.
* * *
“생초짜 둘을 데리고 뭐 하는 겁니까?”
무태식은 어이가 없다는 듯 노형진에게 조용히 말했다.
“어쩌겠습니까? 지금 지원이 이것뿐인데.”
“끄응…….”
일단 필요한 것은 얼굴마담이니 그저 넘어가는 수밖에.
“그러면 어디부터 갈까요?”
김상엽은 그런 노형진과 무태식의 마음을 모르는 건지 두 사람에게 다가와서 다시 물었다.
“일단은 피해자가 어디서 실종되었는지 알아야지요.”
“어디로 갔는지 알 수 있나요?”
“네. 그날 행적에 따르면, 부대에 복귀하기 위해서 일단 시내버스를 탔다고 합니다.”
시내버스를 타고 터미널로 가서 고속버스로 갈아타거나 기차를 타는 것이 일반적인 군인들의 방식이다.
“보통 차를 타고 가지 않나요?”
“피해자의 집에는 차가 없습니다.”
“아.”
은 경사, 아니 은소민에게 대답해 준 노형진은 터미널로 방향을 잡았다.
“시내버스에서 중간에 내릴 이유는 없으니 아마도 터미널까지는 갔을 겁니다. 그곳부터 수사를 시작하지요.”
은 경사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들은 어렵지 않게 터미널에 도착했다.
사실 시골의 터미널이라는 공간은 보통 규모가 그리 크지 않다. 오는 버스도 많지 않고 이용하는 사람이 많은 것도 아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도 모든 사람을 기억할 수는 없다.
“기억할 리 없지요. 2년이나 지났는데.”
“그렇지요?”
2년 전에 표를 끊어 준 기억 같은 것이 직원에게 아직까지 남아 있을 리 없다.
더군다나 그 시간이면 감시 카메라 보관 기간도 훨씬 전에 지났다.
“후우.”
시작과 동시에 갑자기 막혀 버리자 노형진은 어찌해야 하나 앞이 캄캄해졌다.
“좀 빨리 오지 그러셨어요?”
“그게 말이죠…….”
의뢰인인 송하민이 돈이 없어서 변호사 비용을 마련하기 위해서 상당한 시간을 보낸 것이다.
그나마도 처음에는 군대의 말을 믿고 돌아올 거라 기다린 탓에 시간이 너무 오래 걸린 것이 화근이었다.
“발권 기록을 뽑아 보는 건 어떨까요? 그건 전산에 남아 있을 텐데.”
나름 방법을 찾아보려고 한 건지 은소민이 자신의 의견을 건넸다.
전산 기록은 공간을 안 먹으니 남아 있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그건 별 의미가 없는 행동이었다.
“무리일걸요. 군인들은 현금으로 결제하잖아요.”
송하민은 힘들 거라는 듯 고개를 흔들었다.
하지만 노형진은 정신이 번쩍 들었다.
“카드 내역은 확인할 수 있나요?”
“글쎄요. 확인이 가능할지도 모르겠네요.”
무슨 뜻인지 알아차린 직원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가능하다니요? 군인은 현금으로 타는 거 아닌가요?”
김상엽은 고개를 갸웃했다.
그러나 그는 잘 모르는 것이 있었다.
“지금은 아닙니다.”
“네?”
“지금은 나라사랑카드로 월급이 나오거든요.”
과거에는 월급일이 되면 현금으로 돈을 지급했다. 하지만 지금은 금액도 커지고 또 이용의 문제도 있어서, 나라사랑카드라고 하는 군인 전용 카드를 만들어서 거기에 모든 돈을 넣어 준다.
“나라사랑카드?”
“네.”
나라사랑카드는 정부에서 만든 카드로, 20대에서 30대 사이의 징병 대상자들이 쓸 수 있다.
“하지만 그게 그 사람인지 알 수는 없잖아요?”
“글쎄요. 이 작은 터미널에, 휴가에서 복귀하는 군인이 그렇게 많을 것 같지는 않군요. 그리고 여기서 자대로 가는 버스가 없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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