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the law RAW novel - Chapter (907)
은소민 경사는 바로 노형진이 이야기하는 것이 뭔지 알아차렸다. 그리고 경찰답게 그 이후에 걱정하는 것도.
“사회적인 약자라는 것은 여성이나 노인, 아이나 장애인인데, 어느 쪽이든 건장한 군인을 제압하는 데에는 한계가 있지요.”
아무리 좁은 골목이라고 해도 말이다.
아니, 도리어 좁은 골목이라서 더 그렇다.
일반적으로 도움을 청하는 경우 도움을 청한 사람이 앞서서 가기 마련이다. 갑자기 뒤를 돌아서 공격하게 된다면 마주 보는 형태가 되는데, 약자가 그런 상황에서 싸움을 건다면 이길 수 없다.
“누군가 도와줬다는 뜻인가요?”
“네.”
노형진이 도달한 결론은 그것이다.
“더군다나 차량을 가져다 두었다가 사람을 태우고 떠나기 위해서는 한 명으로는 안 됩니다. 상대방이 저항할 것은 당연한 일이니 무력화시키고 난 후에 트렁크나 차량에 태우겠지요.”
현장에 사람이 없는 것과 주변에 사람이 없는 것은 전혀 다르다.
협소한 공간이고 사람이 잘 안 들어오는 공간이기는 하지만, 누군가 소리를 지른다면 들을 수 있는 공간이다.
만일 살려 달라는 비명이 들리면 순식간에 사람들이 몰려올 수 있는 위치.
“즉, 누군가가 한 번에 제압할 수 있는 수단을 가지고 있다는 뜻입니다.”
“그게 무슨 뜻인지 아십니까?”
노형진의 말에 무태식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압니다. 그리고 그게 어떤 반향을 불러올지도.”
무태식이 심각한 얼굴이 되자 김상엽은 고개를 갸웃했다.
살인범이야 흔하게 존재하는 놈들이 아니던가?
“뭐가 문젠가요?”
“후우, 두 명 이상이라는 거죠.”
“두 명 이상?”
“네.”
“그게 왜요?”
“지금까지 대한민국에, 연쇄살인범은 가끔 있었지만 두 명 이상이 함께 연쇄살인을 한 적은 없습니다.”
“네?”
김상엽은 깜짝 놀랐다. 은소민 역시 어두운 얼굴이 되었다.
“심각한 문제군요.”
“으음…….”
대한민국에서 유명한 살인범들을 찾아보라고 하면 대부분 단독 범행을 저지른 미친놈들뿐이다.
지금까지 대한민국에서 공식적으로, 두 명 이상이 살인을 목적으로 모여서 체계적으로 살인한 경우는 한 번도 없었다.
“하지만 영원히 벌어지지 말라는 법도 없지요.”
노형진은 그게 걱정스러웠다.
한국의 경찰은 ‘살인범=단독범’이라고 생각하는 성향이 강하다. 그래서 대부분 수사를 그 방향으로 한다.
하지만 단독정범과 공동정범은 행동 패턴도 목적도, 전혀 다르다.
“두 명, 어쩌면 세 명 이상의 살인 집단이라…….”
노형진의 말에 다들 소름이 돋는다는 얼굴이 되었다.
“살인 집단은 다른 살인범과 다릅니다.”
“뭐가요?”
“절대로 멈추지 않는다는 것이 다르지요.”
일반적으로 살인범은 여러 가지 이유로 멈추기도 한다.
감옥에 가기도 하고, 때로는 정신적인 이유로 멈추기도 한다.
하지만 살인 집단은 그렇지 않다.
살인 집단은 누구 한 명이 빠져도 계속되며, 끊임없이 세력을 확대한다.
“살인 집단이라니…….”
생각지도 못한 결론에 다들 어두운 얼굴로 컴컴한 골목 안쪽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3장. 함정수사>
“개소리 말래요.”
은소민 경사는 어깨를 으쓱하면서 고개를 흔들었다.
“우리 관할도 아닌데 다른 곳에서 무슨 수사냐고.”
“예상은 했습니다. 결국 관할서로 가야 한다는 건데…….”
노형진은 무태식을 바라보았다.
그러자 무태식은 그 시선의 의미를 알아채고는 고개를 흔들었다.
“미친놈 취급을 하더군요. 한국에 살인 집단이 어디 있느냐면서, 술 좀 작작 먹으랍니다.”
“끄응…….”
하긴 연쇄살인범도 안 믿는 판국에 살인 집단이라니, 과연 경찰들이 그걸 믿으려고 하겠는가?
“언제나 처음은 있는 법인데…….”
지금까지 한국에 살인 집단이 없었다고 해서 앞으로도 생기지 않는다는 법은 없다.
애초에 살인 집단이 없다는 건 단 한 번도 붙잡힌 적이 없다는 뜻이지, 100% 진짜로 없었으리라는 보장은 없으니까.
‘시체가 없으면 살인도 없다.’
매년 수많은 실종자가 나오는 대한민국이니 살인 집단이 있다 해도 이상할 것은 없다.
애초에 그런 가능성을 감안하지 않고 오로지 단독범만 추적한다면 살인자 집단은 잡는 게 불가능하다.
당장 사건이 벌어지는 순간에 알리바이가 성립하기 때문이다.
“도대체 경찰들은…….”
김상엽 기자는 이를 박박 갈았다.
처음에는 그냥 단순히 건수 하나 건지려고 시작한 일이지만 살인 집단이라니 등골이 오싹해졌던 것이다.
최악의 경우 자신이 그 희생자가 될 수도 있는 것이 현실.
“방법은 한 가지뿐인 것 같군요.”
“한 가지?”
“함정을 파는 것 말입니다.”
다들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
함정을 판다는 것이 누군가가 피해자가 되어서 그들과 접촉해야 한다는 뜻이라는 걸 모르는 이는 아무도 없었기 때문이다.
“그게 무슨 말씀이십니까? 누군가가 그들에게 잡혀가야 한다는 건가요?”
“네.”
자신들이 할 수 있는 것은 없다.
경찰에 신고해 봤지만 경찰은 관심도 가지지 않는다. 증거가 없이 그냥 의심만으로는 그들이 수사해 줄 리 없는 것이다.
“그들은 한 달 간격으로 살인을 할 겁니다. 시기상으로는 이때쯤이겠군요.”
“하지만 우리 중에는 그렇게 젊은 사람이 없는데요?”
“적당한 사람이 있지요. 나이도 적당하고요.”
“누구 말입니까?”
무태식은 그럴 만한 사람들을 떠올려 보려고 했지만 마땅한 사람이 없었다.
군에 가는 나이는 대부분 20대 초중반. 하지만 사회에 뛰어드는 나이는 대부분 그것보다 많다.
일부 어린 직원도 있기는 하지만 대부분 사무직이다.
“정보 팀 남자 중에서 제일 어린 사람이 서른세 살인데요?”
아무리 그래도 너무 늙은 사람을 군복만 입혀서 보낼 수는 없다.
그들도 표적을 고르는 눈이 있을 테니까, 나이 많은 사람은 의심할 것이다.
“바로 저입니다.”
“네?”
노형진의 말에 움찔하는 사람들.
“노 변호사님요?”
“네. 이건 생명이 달린 일입니다. 다른 사람을 보낼 수는 없습니다.”
“그건 말도 안 됩니다.”
“안 되지는 않습니다. 저 나름대로는 동안이라고 생각하는 편입니다만.”
“그거야 그렇지만…….”
노형진의 나이는 20대 중반. 딱 군대에 갔다 올 나이다.
더군다나 그는 피부가 좋은 편이라 동안으로 보여서 잘만 꾸미면 상당히 젊어 보인다.
그리고 이번 사건에 대해서 잘 알고 있고 이해도 하고 있다. 더군다나 나름 자신을 지키기 위한 방법도 알고 있고.
“그럼 다른 사람 있습니까?”
“끄응…….”
무태식은 신음 소리를 낼 수밖에 없었다. 마땅한 인재가 없었기 때문이다.
경찰이라면 도와줄 수 있을지도 모르지만, 경찰은 지금 상황에서는 자신들의 말을 무슨 장난쯤으로 받아들이고 있다.
“대안은 저뿐입니다.”
“하지만…….”
“충분히 준비한다면 위험하지는 않을 겁니다.”
“충분히 준비한다고요?”
“네, 충분히요.”
노형진은 사람들에게 계획을 설명하기 시작했다.
* * *
“신호 상태는 어떻습니까?”
“좋습니다.”
모니터를 보면서 고문학은 엄지를 올렸다.
“녹음 상태는?”
“잘 들립니다. 깨끗하네요.”
“모든 준비가 끝난 것 같군요.”
소위 국방색이라고 하는 얼룩 무늬 군복을 입은 노형진은 이상한 얼굴로 거울 속 자신을 바라봤다.
“어색하다.”
“응?”
손채림은 그런 노형진을 보면서 왠지 안쓰러운 얼굴이었다.
“너 군복 입은 거 처음 보는 것 같다.”
“그런가?”
“그래. 그런데 꼭 네가 해야겠어?”
“다른 사람이 없잖아. 네가 할 수 있는 것도 아니고.”
“그거야 그렇지만.”
노형진은 피식 웃으면서 다시 한 번 복장을 확인했다.
“걱정하지 마. 안전하게 준비했으니까.”
“차라리 그냥 현장에서 잡으면 안 돼?”
“안 돼. 그러면 잔당이 남아.”
“그게 뭐 어때서? 나중에 그 녀석이 말할 수도 있잖아?”
“안 할 수도 있어. 그리고 작은 희망에 기대서 대충 하면 상황이 극단적으로 변할 수도 있어. 이런 범죄 조직들은 보통 내부 규칙이 있으니까.”
일반적으로 이러한 집단들에는 리더, 즉 지도자가 있다.
그리고 그러한 리더는 자신이 통제하는 추종자들을 이끌고 범죄를 저지른다. 대부분의 경우 일선에 나서는 것은 추종자들이며, 리더는 그 뒤에 숨는다.
“만일 우리가 바로 덮치면 리더는 놓치게 될 거야.”
물론 손채림의 말대로 그 녀석을 취조하면 리더에 대해서 알아내게 될 수도 있다. 하지만 그걸 리더 녀석이 모를 리 없다.
“리더가 살아 있으면 그 녀석은 또 다른 추종자를 모아서 똑같은 범죄를 저지를 거야. 설사 그러지 않는다고 해도, 극단적 무차별 살인으로 돌변할 수도 있고.”
당장 한 달에 한 번 벌어지던 살인이 일주일에 한 번이나 이틀에 한 번씩 벌어지게 될 수도 있다.
“설마.”
“설마가 아니야. 우리 예상대로라면 피해자가 백 명 가까이 된다고.”
“그 추종자라는 녀석들도 생각이 있을 거 아니야?”
“아니, 전혀 없어.”
“뭐라고?”
“애석하게도 세상에는 노예근성을 가진 사람이 존재하거든.”
“그게 무슨 소리야?”
“추종자들은 생각을 안 해. 생각하는 걸 두려워하지. 그들은 기댈 뿐이야. 그리고 리더 타입은 그런 녀석들을 귀신같이 알아채.”
그들이 처음부터 살인자인 것은 아니다.
정확하게 말하면 살인자는 리더뿐이고, 추종자는 말 그대로 추종할 뿐이다.
가령 특정 집단들, 즉 정치 집단이나 종교 집단, 기업 등에 맹목적으로 헌신하는 사람들이 있다. 또는 누군가 개인에게 맹목적으로 충성을 바친다.
그런 사람들은 성향이 추종자다.
그들은 절대로 나서지 않는다. 그저 따라갈 뿐이다.
“설마…….”
“설마가 아니야.”
노형진의 표현을 빌리자면 그들은 심리적으로 노예이기를 원한다. 그래서 자신들이 추종하는 자가 시키는 대로 할 뿐이다.
“애초에 스스로 말할 수 있는 의지가 있다면 수년간 살인이 벌어지는데 왜 신고하지 않았겠어?”
“…….”
“추종자 성향을 가진 사람들은 절대로 리더에게 저항하지 않아.”
그리고 리더는 그런 녀석들을 이용해서 욕심을 채운다.
“무차별 살인을 막기 위해서라도 어떻게 해서든 한 번에 소탕해야 해.”
“후우, 알았어.”
손채림은 노형진의 말에 수긍할 수밖에 없었다.
그의 말대로 무차별 살인으로 넘어가면 피해자가 순식간에 배가될 수도 있기 때문이다.
‘경찰이 그 녀석을 잡는 데에는 한계가 있어.’
추종자를 잡는 순간 리더는 지역의 모든 기반을 버리고 다른 지역으로 갈 것이다.
이름과 나이, 주소 등을 알아낼 수는 있겠지만 아예 기반 지역을 버리고 가면 그 녀석을 추적하는 게 쉽지 않다.
게다가 통장 정도는 막을 수 있겠지만 그런 녀석들은 추종자를 고르는 능력이 뛰어나다. 그러니 다른 추종자를 만들어서 그 녀석의 돈을 쓰면 방법이 없다.
“걱정하지 마. 모든 준비는 다 해 놨으니까.”
노형진은 상병 마크가 박혀 있는 모자를 쓰고 심호흡을 했다.
“잊지 마세요. 2킬로미터입니다.”
바깥으로 나가는 노형진을 보면서 고문학은 걱정스럽게 말했다.
“신호기는 2킬로미터까지만 작동됩니다. 만일 비상사태가 벌어지면 전화기를 쓰세요.”
“네. 그나저나 이런 전화기가 있을 줄은 생각도 못 했습니다.”
노형진은 감춰진 전화기를 생각하고는 피식 웃었다.
“스마트폰이 전부가 아니죠, 후후후.”
고문학의 미소를 뒤로하고 바깥으로 나온 노형진은 천천히 터미널로 향했다.
‘군인의 숫자는 적당하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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