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the law RAW novel - Chapter (92)
“있다구요?”
“네.”
물론 확실한 건 아니다. 하지만 일단 해결책이 있기는 하다. 시도는 해 봐야 한다. 남은 것은 바로 과실수들.
“저걸 먼저 해결해야겠네요.”
“이름을 빌려 달라?”
유민택은 노형진의 부탁에 고개를 갸웃했다.
“네.”
“누굴 압박할 사람이 있나, 법적으로 무리해서라도?”
“그게 아닙니다. 핑계가 필요해서요.”
“핑계?”
“네, 저쪽에서 꼼수를 쓰는데 그게…….”
설명을 듣고는 유민택은 헛웃음이 나왔다.
“허허, 그런 짓을 한단 말이야?”
“네.”
“그런데 이름을 빌려주는 거랑 그게 무슨 상관인데?”
“저쪽에서 법적인 꼼수를 이용해서 우리한테 덤빈다면 우리 역시 같은 방법으로 해결하는 수밖에 없습니다. 이런 사건은 법원에 가지고 가 봐야 유리할 게 하나도 없으니까요.”
“하긴 그렇지.”
청계가 아니랄까 봐 확실하게 법적인 방어를 해 놨다. 당연히 법원에 제소해 봐야 명확한 증거가 없이 고소하는 꼴밖에 안 된다.
“그렇다면 법적으로 해결해야지요.”
“그래서 명의를 빌려 달라는 건가?”
“네.”
“허허, 참.”
유민택은 헛웃음이 나왔다. 다른 사람도 아니고 대룡그룹의 회장인 자신에게 고작 이름만 빌려 달라니.
“뭐, 어려운 부탁은 아니군. 자네가 우리에게 해 준 게 있으니 말이야.”
아슬아슬하게 밀리고 있던 싸움이 확실하게 대룡 쪽으로 넘어온 것을 그는 느끼고 있었다. 알로에 농장을 빼앗은 것이 그들에게 생각보다 큰 타격을 주고 있었던 것이다.
“뭐, 회장님이 잘하신 거죠.”
“아닐세. 자네가 아니었다면 선점할 생각이나 했겠는가?”
미래가 알로에 농장 건을 순순히 넘긴 건 상대적으로 다른 기업보다 싸기 때문이다. 그 덕분에 김화자가 운영하는 성화 건강식품은 치명적일 정도로 타격을 입었다.
“자네들이 청계에 한 방 먹인다면 우리에게도 좋은 거지.”
“그 말이 사실인가 보군요.”
“자네도 아나?”
“네, 얼마 전에 들었습니다. 청계가 성화와 계약하고 본격적으로 전면에 나서기로 했다고.”
“그렇지. 이제 전면전이야.”
그동안 성화와 대룡은 서로를 견제하면서 시장 싸움을 하고 있었다. 아무리 거대 기업이지만 바로 전면전을 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아니, 거대 기업이기에 전면전으로 들어가는 게 쉽지 않았다. 정부에서도 어떻게 해서든 화해시키려고 윽박도 지르고 설득도 해 봤다. 둘 중 하나만 무너져도 경제가 휘청거릴 게 뻔하니까.
하지만 그러기에는 원한이 너무 깊었다.
“성화가 나섰으니 자네들이 좀 더 나서 줘야 할 일이 많아질 걸세.”
“끄응…… 부담 주지 마십시오.”
“부담이라니. 자네들이 요즘 법률계 쪽에서 얼마나 성장했는지 모르는 사람도 있던가?”
“하하하…….”
“하여간 명의는 빌려주겠네. 문제가 있으면 내 적극적으로 나서 주지.”
“걱정하지 마십시오. 그럴 일은 없을 테니까요.”
이장을 비롯한 마을 사람들은 황급하게 마을 회관으로 향했다. 지금 벌어진 최악의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서였다.
“무슨 일입니까? 차가 들어오지 못한다니?”
아무래도 개발이 덜된 지역인지라 길이 많은 것도 아니다. 그런데 방금 전 들은 이야기에 따르면 차들이 이 마을에 들어올 방법이 없다고 한다.
“입구를 틀어막았답니다.”
“말이 됩니까? 어떻게 마을 입구를 틀어막아요?”
“맞습니다! 도대체 누가 이런 짓을 한 겁니까?”
버럭 화내는 마을 사람들.
“그 대룡이라고 하던가? 하여간 그렇더군요.”
“대룡? 그 회사가 왜요?”
대룡은 거대 그룹이다. 그러니 입구를 막을 이유는 없다.
“그곳에서 무슨 수로 길을 막아요?”
“그게…… 길을 사서…….”
“길을 샀다?”
“네, 마을로 들어오는 길 중에 사유지가 있답니다.”
“그게 무슨 소리입니까?”
“마을로 들어오는 길의 상당 부분이 사유지로 되어 있답니다.”
이게 무슨 소리냐 하면 우리나라는 땅을 팔 때 따로 길을 빼고 팔지 않는다. 그렇다 보니 길 역시 엄밀하게 말하면 누군가의 땅이다.
문제는 그렇게 만들어진 땅은 쓰지도 못하고 팔지도 못하는 계륵 같은 존재라는 것이다. 당연하게도 주인으로서는 미치고 환장할 노릇이다. 그런데 노형진은 그런 곳을 구입한 것이다.
“그게 말이나 되는 소리입니까!”
버럭 화내는 사람들.
“가서 따집시다!”
이 마을로 들어오는 도로는 고작 두 개뿐이다. 그나마 하나는 고속도로에서 내려오는 길이라 그 길을 쓰기 위해서는 고속도로로 올라가서 무려 35킬로미터를 빙 돌아야 한다. 당연히 톨게이트비도 내야 한다.
“따지러 갑시다!”
우르르 몰려가는 사람들. 그들이 도착한 곳은 마을 입구의 도로였다. 그런데 그곳에 생긴 것은 다름 아닌 연구소.
“뭐…… 뭐야?”
“무슨 일입니까?”
“여기 길을 막았다고 해서 왔습니다. 이 뒤가 사람들이 사는 곳인데 왜 길을 막은 겁니까?”
“우리 연구소에서 자동 주행 실험실을 만든 것입니다만?”
대룡의 이름을 빌린 노형진은 그들의 이름으로 그곳을 임대하는 형식을 빌렸고 그 결과, 마을 입구에는 떡하니 연구소가 생긴 것이다.
“그럼 우리는 어떻게 다니라고?”
“재주껏 다니세요.”
“뭐라고요?”
“길을 만드시면 되는 거 아닙니까?”
“그런 말도 안 되는!”
“안 될 건 없죠.”
그 순간 노형진이 그들의 등 뒤에서 튀어나왔다.
“네놈은!”
“말조심하십시오. 저, 변호사입니다. 모욕죄로 한번 고소당해 봐야 정신 차리시겠습니까?”
그 말에 마을 사람들은 입을 다물었다. 자신들이 처벌받는 것은 원하지 않기 때문이다.
“도대체 왜 이렇게 입구를 막은 겁니까?”
“입구를 막다니요. 무슨 큰일 날 말씀을 하십니까? 우리는 그저 연구소를 세운 것뿐입니다.”
“그게 뭐가 달라요!”
“아주 많이 다르지요. 우리가 우리 땅에 대한 사용권을 포기한 건 아니니까요.”
“그게 무슨 소리요!”
그 말에 노형진이 피식 웃었다.
“이 땅을 우리가 어떻게 쓰든 그건 우리 마음이라는 거죠.”
현행법상 통로를 막아 버리는 건 불법이다.
하지만 자신들이 사용하는 대지에 통로가 있다면 대책이 없다. 목적이 있어 막는 것이기에 아무리 법원이라고 해도 사용권을 박탈할 수는 없기 때문이다.
‘사용하지 않고 막으면 문제겠지만 사용하면서 막으면 대책이 없지.’
그걸 위해서 노형진은 대룡의 이름을 빌려서 연구소를 세운 것이다. 공식적으로 이 땅은 노형진의 땅이지만 그 땅을 빌린 사람은 대룡이었다.
“그럼 우리는 어떻게 다니고!”
“저기 길 있잖습니까?”
노형진이 가리킨 것은 작은 제방 길이었다. 사람은 다닐 수 있지만 차는 다닐 수 없는 곳.
“현행법상 통로는 사람이 다닐 수 있는 길만 있으면 된다고 되어 있지요. 그러니 차까지 다니라는 법은 없습니다.”
워낙 오래된 법이다 보니 고쳐지지 않은 법들이 있는데, 이 법 역시 그중 하나다. 먼 미래에도 고쳐지지 않았다. 중요한 법이 아니기 때문이다.
“그럼 차들은?”
“두고 가시든가 하셔야지요.”
“뭐라고!”
“저희라고 별수 있겠습니까?”
어깨를 으쓱하는 노형진이었다.
“여기서 마을까지 6킬로미터야! 말이 되는 소리를 해!”
“운동한다 생각하고 걸으세요.”
“이이익!”
말이 안 통한다는 사실은 안 이장은 전화기를 들었다.
“구청에 전화해서 민원 넣을 거야!”
“그러시던가요.”
공무원들에게 민원은 공포의 대상이다. 그러나 그건 공적인 부분에 한해서 그런 것이지, 이와 같은 사적인 부분에 대해서는 그들에게 책임이 없다.
“자! 그럼 가 주시겠습니까?”
노형진은 씩 미소를 지었다. 이들에 대한 공격은 지금부터 시작이었다.
“넌 우리가 아니라 청계에 갔어도 잘했겠다.”
“솔직히 이렇게까지 하고 싶지 않았거든요. 청계야 미친놈들이지만 이게 기분 좋은 짓은 아니지 않습니까?”
눈에는 눈, 이에는 이라고 청계에서 편법을 이용해서 괴롭힌다면 자신들 역시 같은 방법으로 반격하면 그만이다.
다만 그걸 써먹으면 누군가가 크게 피해를 보기 때문에 안 하는 것뿐이다.
“그나저나 저 차들은 어쩌지?”
차단한 지 일주일째.
마을 사람들은 철조망이 세워진 연구소의 벽 바깥쪽에 차를 세우고 어쩔 수 없이 안으로 들어가기 시작했다. 구청에 민원을 넣었으나 구청 역시 어쩔 수 없다는 답변을 받았기 때문이다.
“그나저나 저쪽에서도 소송하려고 하지 않을까요?”
“제가 왜 우리가 직접 안 쓰고 대룡을 사이에 넣었는데요.”
이은영의 말에 노형진은 미소를 지었다.
“이런 경우에는 이 행동의 주체가 애매해집니다. 일단 우리는 이 땅을 빌려준 것이기 때문에 모든 책임은 대룡에 있다고 우길 수 있죠. 반대로 대룡은 자신들은 땅 주인에게서 빌린 것이므로 책임을 우리에게 미룰 수 있습니다. 그런 경우는 사건이 복잡해지기 때문에 못해도 3년은 갈 겁니다.”
“3년이나?”
“1심에서 3심까지요. 길면 5년은 가겠지요.”
“그런데 그 후에는?”
“그 전에 대룡의 사용 계약은 끝날 거고 그때는 대룡이 여기서 철수하면 됩니다. 그 후에는 다른 제3자가 들어오는 거죠. 그러면 그 소송은 의미가 없어지니까 처음부터 다시 해야지요.”
그 말에 송정한은 헛웃음이 나왔다.
“그게 뭐야?”
“여기에는 손해배상책임이 없습니다. 어차피 자기 재산권을 이용하는 거니까요. 그러니까 기간마다 기업을 바꿔 가면서 무제한으로 틀어막을 수 있는 겁니다.”
“그런다고 저들이 나무의 소유권을 포기할까요?”
“저 나무들이 저 사람들의 것이라고 생각하세요?”
“네?”
“저들은 농사꾼입니다. 하지만 과일나무는 키워 본 적도 없을 겁니다. 주변을 보세요. 과수원이 하나라도 있습니까? 그런데 그런 그들이 척 봐도 과실수가 자랄 수 없는 곳에다가 식생도 무시하고 무려 2천 그루의 나무를 심는다는 게 말이나 됩니까?”
“……!”
“아마도 그것도 전 땅 주인이 장난쳐 둔 걸 겁니다. 그래야 보상금을 받을 수 있을 테니까요.”
아마도 자기 자식이 경매로 땅을 받았다면 저런 식으로 주장하지는 않았을 것이다.
“좋은 생각이죠. 분묘기지권과 나무의 소유권 문제가 이렇게 엮여 있으면 땅은 말 그대로 똥값이 되고 아들이 사면 실질적으로 양도세나 상속세를 내지 않아도 됩니다. 더군다나 얼마 후에는 재개발 발표가 나겠지요. 그렇게 된다면 이장비와 나무에 대한 손해배상까지 더블로 받을 수 있고요.”
“근데 왜 나무는 주인이 직접 주장하지 않은 거죠?”
고개를 갸웃하는 이은영.
“토지에 속해 있는 나무는 기본적으로 토지주의 소유로 인식됩니다. 즉, 경매로 나왔다고 해도 그건 경매 비용에 들어가는 거죠.”
“하지만 마을 사람들이 제3자처럼 꾸미면 남들은 손대지 않는다?”
“그렇지요.”
당장 배보다 배꼽이 훨씬 커지는 땅을 누가 사려고 하겠는가? 당연히 유찰되고 유찰되고 또 유찰된다.
“그런데 이런다고 마을 사람들이 저걸 포기할까?”
“포기하게 만들면 됩니다.”
노형진은 전화기를 들었다. 그러고는 어디론가 전화를 하기 시작했다.
“여보세요? 아, 여기 대룡 연구소 부설 판교 연구소인데요. 여기 불법 주차한 차들이 많은데 단속 안 합니까?”
그걸 본 사람들은 뭐 하냐는 표정이 되었다. 그러자 노형진은 미소를 지었다.
“민원을 넣는 게 저들만의 특권은 아니거든요.”
누구를 속이려고?(1)
“이장님, 기름이 떨어졌습니다.”
“바깥에서 못 사 와?”
“그게…… 방법이…….”
이장은 돌아 버릴 지경이었다. 짭짤하게 돈이 생길 거라고 해서 받아들인 일이 터무니없는 지경까지 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차를 끌고 바깥으로 나갈 수가 없어서 기름을 채워 올 수도 없는 데다가 마침 나가 있던 차를 공용으로 쓰려고 하니 집요하게 불법 주차 민원을 넣어서 하루가 멀다 하고 견인되어 가고 있었다.
그 덕분에 안쪽에 있는 차들뿐만 아니라 농기구까지 기름이 없어서 돌리지 못하고 있었다. 게다가 기름이라도 채우려면 고속도로를 타고 빙빙 돌아야 한다. 하지만 문제는 그뿐만이 아니었다.
“이장, 나 좀 보세.”
안으로 들어오는 남자를 보고 이장은 얼굴을 찌푸렸다.
“무슨 일인가?”
“우리 벌금은 어떻게 해결해 줄 건가?”
“벌금이라니?”
“지금 모른 척하는 거야? 우리 불법 주차 딱지 벌금 말일세! 벌써 30만 원이야! 30만 원!”
“그걸 왜 우리가 내나?”
“뭐라고? 지금 장난해? 우리 차가 바깥에 있다고 마치 무슨 택시처럼 굴려 놓고 못 낸다고?”
문제는 바로 바깥에 있는 차였다. 어찌 되었건 움직여야 하니 때마침 바깥에 있는 차들을 이용했는데, 하루가 멀다 하고 불법 주차 신고를 해 대서 바로바로 견인되어 가는 바람에 불법 주차 벌금이 엄청 나왔던 것이다.
‘젠장! 적당히 모른 척해 주면 덧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