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the law RAW novel - Chapter (929)
“훈련이라는 건 뭡니까?”
“절제죠.”
“절제?”
“아까 말했다시피 사디스트는 위험하니까요.”
마조히스트는 결국 고통이 있으면 된다. 그게 심해져서 고통으로 인해서 죽는 것까지는 원하지 않으니까.
하지만 사디스트는 아니다.
인간은 외부의 자극으로 쾌락을 얻으면 더 많은 쾌락을 얻기 위해서 더 강한 자극을 받고 싶어 한다.
다른 거야 상관이 없지만, 사디스트의 경우는 결국 상대방에게 가해지는 고통이 심해진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그저 때리거나 하는 정도로 시작되지만 나중에는 구타로, 그리고 살인까지도 갈 수 있지요. 특히 흥분이 심해지면 자기 조절을 못하니까.”
결국 그 끝은 상대방의 사망이라는 것이다.
“남궁선태가 남주미와의 관계에서 미적거렸다고 했죠?”
“네. 죄책감을 느낀 건지, 아니면 그걸로 성적인 감각이 약해서 그런 건지…….”
“아닐걸요.”
“아니라고요?”
“네, 마조히스트 중에는 부부 생활도 잘하는 사람 많아요. 여기 오는 사람들 중에서 70%는 기혼자니까.”
“그래요?”
그렇다면 그가 왜 남주미와의 관계에서 미적거린 것일까?
노형진은 그가 양심의 가책 때문에 그랬다고 생각했다.
그러데 그것도 아니라면…….
“심적으로 상대방에게 예속된 거죠.”
“예속?”
“네.”
선생님은 자신의 생각을 피력했다. 그리고 그게 아무래도 맞는 듯했다.
“보아하니 이 피해자라는 인간은 조르기 성향에 사디스트 성향이 있어요. 그리고 이런 타입은 극도로 수동적이기 마련이지요. 제 경험상 이런 사람들은 노예 기질이 충분해요.”
“노예 기질?”
“네. 누군가에게 노예처럼 굴복하는 거죠.”
“흠…….”
“그리고 그 경우, 단순히 성적인 관계만이 아니라 정신적인 면에서도 굴복하는 거죠.”
“정신적인 면이라 하면?”
“법적으로야 남주미와 부부일지 모르지만 정신적으로는 다른 사람이라는 거죠.”
노형진은 얼굴을 찌푸렸다.
그동안 남주미에게 보여 준 여러 가지 행동이 설명되는 말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여전히 이해가 가지 않는 게 있습니다. 도대체 왜 다른 사람의 흔적이 나오지 않았을까요?”
어떤 관계든 관계했다면 그곳에서 어떠한 유전자가 나와야 한다. 다른 사건도 아니고 살인 사건을 조사하면서 유전자 검사도 하지 않았을 리 없다.
문제는 그러고도 유전자 하나 나오지 않았다는 것.
그것이 남주미가 범인으로 취급받는 가장 큰 이유였다.
“그래요?”
“아무리 사람이 깔끔해도, 더군다나 선생님의 말대로 자신의 흥분을 이기지 못해서 한 거라면 흔적이 남았어야 하는데요.”
“흠…….”
그녀는 잠깐 고민하더니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구석에 있는 캐비닛으로 갔다.
“그 사람, 나이가 적지 않다고 했죠?”
“네.”
“그러면, 만일 일찍 이쪽에 발을 들였다면 슬슬 지겨울 때가 되었네요.”
“지겹다고요?”
“네, 자극은 뻔하니까요. 그리고 자극이 강해지면 더 강한 자극을 갈구하기 마련이니까.”
그러면서 뭔가를 꺼내는 그녀.
그걸 본 노형진은 그제야 사건이 눈에 보이는 듯했다.
>2장. 취향입니다만 존중은 무리인 듯>
“헐.”
참고 자료로 가지고 온 사진을 보면서 손채림은 혀를 내둘렀다.
“이런 곳이 있으면 날 데려가야지. 재미있어 보이네.”
“네가 그럴까 봐 못 데려간 거다. 그런 거 싫어하거든?”
“아깝네. 그나저나 이런 옷도 있어?”
“옷이라기보다는…… 아니, 옷이라고 해야 하나?”
전신 타이즈 형식으로 만들어진 실리콘 재질의 복장. 수영복과는 비슷하면서도 전혀 다른 형태.
변태성욕이 끝까지 갔을 때 보통 등장하는 복장.
“이건 실리콘으로 된 한 벌이야. 손부터 머리까지 뒤집어쓰면 외부로 드러나지 않지.”
그렇다면 유전자의 흔적이 남지 않은 것도 당연한 일이다.
유전자가 남으려면 신체가 외부로 드러나야 한다. 대표적인 게 머리카락 같은 것인데, 이런 복장은 전신을 덮기 때문에 흔적이 남을 리 없다.
“그리고 이런 것은 여러 가지 설명이 가능하지.”
“흠…….”
손채림 역시도 이해가 가는 얼굴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런 관계라면 누군가 다른 사람이 있을 수밖에 없다.
“그리고 이건 다른 것도 설명해 줘.”
“뭐?”
“왜 남주미 씨가 팔려 가듯이 결혼했는지.”
“응?”
“남주미 씨는 팔려 가듯이 결혼했잖아?”
“그렇지. 그래서 서로 소원했고.”
“왜 그랬을까?”
“응?”
“보통 누구든 팔려 가듯이 결혼하는 일은, 한 가지 경우에 성립돼.”
일방이 다른 일방에 대해서 마음을 품고 있는데 상대방이 돈이 없는 경우.
이 경우에 팔려 가서 결혼하는 경우가 많다. 남자든 여자든 상관없이 말이다.
그런데 정작 남궁선태는 그녀에 대해서 아무런 감정도 없었다.
눈앞에 있는 20대의 여자를 그저 아무런 관심도 없이 바라볼 뿐이었다.
“그게 무슨 뜻이야?”
“팔려 가듯이 결혼했지만 남궁선태 또한 원하지 않은 결혼이야. 그러면 누가 원했을까?”
“응?”
그러고 보니 전혀 생각하지 못하던 문제였다.
누가 결혼을 원했던 것일까, 남궁선태가 아니라면?
“설마? 가족들이?”
“정확하게는 부모일 가능성이 높아. 남궁선태는 외아들이야. 그 부모 세대의 입장에서는 대를 이어야 한다는 것은 중요한 일이지.”
“아!”
그렇게 생각하자 이해가 간다.
대를 이어야 하는데 자식이 변태성욕자라서 그럴 수가 없다면…….
“아니, 잠깐, 잠깐……. 그러면 말이 안 되잖아? 단순히 대를 이어 가는 것이 중요하다면 상대방이랑 결혼하면 되는 거 아냐?”
“응?”
“그렇잖아. 상대방이 누구든 일단 결혼해서 애만 낳으면 되잖아. 자기들끼리 어떤 성적 취향으로 어떤 성적 행위를 하든 부모들이 알 바가 아니잖아? 설마 몰랐을까?”
“몰랐을 리 없지. 아니까 강제로 결혼시킨 것이겠지.”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일단은 상대방과 결혼한다고 생각하는 게 정상 아니야?”
“그게 말이야…….”
노형진은 그 부분에서 한숨을 쉬었다.
자신 역시 처음에 그 생각을 했다.
그러나 그곳에서 들은 소리는 자신의 상식으로는 이해할 수가 없는 구조였고, 그래서 경찰이 이 사건을 해결하지 못한 채로 남주미에게 뒤집어씌울 수밖에 없었던 것이라는 것도 이해했다.
노형진도 나중에야 깨달았는데 경찰이 그렇게 빨리 알아차리는 것은 무리니까.
“일반적으로는 그렇지. 아마 가족들도 그 생각은 했을 거야. 솔직히 강제로 며느리를 사 올 정도의 다급한 상황이라면 차라리 그 상대방과 결혼시키는 게 나을 수도 있지.”
“내 말이 그 말이야. 그런데 왜 결혼을 안 시킨 거야? 여자가 불임이라도 돼? 아니, 결혼도 하기 전에 그런 검사를 한 건가? 그래도 이해가 안 가는데?”
설사 그렇다 해도 상대방에게 예속되어 있다면 그 둘이서 혼인신고를 하면 그만이다.
여자가 불임이라고 한들, 자기들이 좋다는데 어쩔 건가?
“그러니까…… 생각하지 못한 부분이라는 거야.”
“무슨 소리야?”
“상대방이 아이를 가질 수 없다는 거지.”
“그러니까, 그러면 자기들끼리 혼인신고라도 하든가 하면 어쩔 수가 없잖아? 그런데 왜 팔려 가듯이 온 여자와 결혼을 하냐고. 아무리 여자가 불임이라고…….”
“불임은 아닐걸.”
“무슨 소리야? 불임도 아닌데 왜 서로 취향도 맞고 오래 만나면서 결혼을…….”
말을 하던 손채림은 설마 하는 생각이 들었다.
“변태는 복합적인 경우가 적지 않지.”
“설마? 상대방이 남자라는 거야?”
“그럴 가능성도 존재해.”
“으엑!”
“표정이 왜 그래?”
“남자끼리 뭐를 한다고?”
“여자들은 그런 거 좋아하지 않냐? 사실 그런 관계가 불가능한 것은 아니야. 일단 기본적으로 남궁선태의 성적 취향은 남녀 관계에서 오는 것이 아니라 가학 행위에서 오는 것이니까. 섹스라는 일련의 과정이 필요 없으니 상대방이 누구 든 상관없겠지.”
“취향 나름이지. 난 질색이야.”
손을 흔들면서 절대로 부정하는 손채림.
어찌 되었건 그 모든 걸로 이야기가 성립된다.
왜 남주미가 팔려 와야 했는지, 왜 남궁선태가 그렇게 행동했는지, 왜 사건이 벌어졌는지 등등.
“그나저나 그걸 경찰이 믿을까? 증거도 없는데?”
“믿을 리 없지.”
지금까지 드러난 것은 모두 정황증거일 뿐이다. 그러니 경찰의 입장에서는 믿어 줄 리 없다.
“뭔 막장 드라마여? 아침 드라마도 이것보다는 나을 거다.”
“현실은 가끔은 상상보다 더하다니까.”
남색에, 조르기 집착에, 마조히스트 성향까지.
한 사람이 이렇게 여러 가지 성향을 가지기도 힘들 것 같았다.
“결국 그런 복합적인 상황에서는 강제로 결혼시키는 것밖에 답이 없다고 생각한 것이겠지.”
“잠깐, 그러면 그 집안에서는 범인을 알고 있다는 소리 아냐? 아니, 하다못해 상대방이 누군지 알고 있으니까 그런 거 아냐.”
손채림은 여러 가지 가능성을 생각해 보다가 순간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 집안에서는 남궁선태가 강제로 결혼하도록 했다. 그 말인즉슨 그가 만나는 사람과 결혼하지 못한다는 것을 알고, 한다고 해도 아이를 가지지 못한다는 것을 안다는 뜻이다.
그렇다면 남궁선태의 성적 취향과 여자관계, 아니 남자관계에 대해서 알고 있다는 소리가 된다. 그렇지 않다면 이렇게 극단적으로 강제로 결혼시킬 이유가 없으니 말이다.
그리고 그게 뜻하는 것은 한 가지뿐이다.
“그런데 결혼을 하고도 관계를 유지하다가 결국은 아들이 죽은 거잖아?”
“그런 거지.”
“그러면 그 녀석에 대해서 이야기를 해 줘야 정상 아냐?”
원한인지 실수인지 알 수는 없다. 그러나 상대방은 남궁선태를 죽였고, 그 집안에서는 그런 관계의 남자가 누군지 알 수밖에 없다.
“아마 힘들걸.”
“뭐? 왜?”
“남궁선태의 재산이 60억이야.”
“진짜 많네. 그런데 그게 무슨 상관이야?”
“남주미 씨가 범인이 아니라면, 과연 그 돈은 어떻게 될까?”
“응? 아!”
손채림은 노형진의 질문에 왜 이런 일이 벌어지는지 알고는 한숨이 나왔다.
“돈 때문이구만.”
“그렇지.”
일단 남주미와 남궁선태는 아무리 사이가 소원하다고 해도 결국 법적으로는 부부다. 그러니 남궁선태가 죽은 현 상황에서 그 재산은 남주미에게 넘어갈 수밖에 없다.
그러나 만일 남주미가 죽인 거라면 이야기는 달라진다.
남궁선태에게 자녀가 없으니 그 돈은 남주미가 아니라 다른 가족에게 넘어가는 것이다.
“그게 싫은 거지.”
“미친…… 자기 자식의 복수보다도?”
“때로는 돈이 무엇보다 우선하는 경우도 있지.”
손채림은 노형진과 이야기하다가 무서운 점을 깨달았다.
만일 이 모든 가설이 사실이라면 가족은 범인을 알고 있다는 소리가 된다.
남궁선태의 성적 취향을 알며 그 때문에 대를 잇기 위해서 결혼까지 강제로 시킨 가족이 상대방에 대해서 모를까? 모를 리 없다.
“돈 빼앗기기 싫어서 범인을 알지만 알려 주지는 못하겠다?”
“그럴 가능성이 높지. 아마 사건 현장을 보자마자 알았을걸.”
성적 취향을 알고 있다는 것은 사건 현장을 봤을 때 왜 죽었는지 알았다는 소리다. 그리고 분명히 목을 조르는 행위는 아주 친밀한 관계에서, 믿을 수 있는 사이에서만 하는 것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을 것이다.
그렇다면 누가 저질렀는지 알고도 남았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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