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the law RAW novel - Chapter (95)
“어이! 부르주아.”
“왜 그러십니까, 프롤레타리아님?”
“헐.”
노형진과 송정한의 농담을 듣던 직원들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좋냐?”
“좋습니다.”
“그래서 그만둘 거야?”
“아뇨, 벽에 똥칠할 때까지 할 겁니다.”
해가 바뀌고 노형진은 스물두 살이 되었다. 그리고 가장 많이 바뀐 것은 역시 뭐니 뭐니 해도 노형진의 통장에 그려진 ‘0’의 개수였다.
“몇 배나 뛴 거야?”
“스무 배요.”
“미친.”
판교 신도시가 재개발 결정이 나면서 노형진이 아버지와 사 놓은 땅값은 순식간에 스무 배나 뛰었고 노형진은 주저하지 않고 털고 나왔다.
‘뭐, 당분간은 망할 테니까.’
당연하다. 지금이야 신도시가 된다고 비싸게 올랐지만 미래에는 실질적으로 그다지 성공한 신도시로 취급받지 못하기 때문이다. 그게 다 경기가 안 좋아진 탓이지만.
“그게 얼마야?”
“한 1,600억?”
“그런 거 있으면 나 좀 알려 주지.”
“하하하.”
어찌 되었건 급상승하자 노형진은 그곳을 팔았고 신도시로 은퇴하고 싶지 않다며 아버지도 동의했다.
“그나저나 아버님께서도 지금 다니시는 회사에 민폐군.”
“왜요?”
“그 돈이면 아버지가 다니는 회사도 살 수 있을 것 같은데.”
“하하하하.”
부정은 할 수 없었다. 사실 아버지의 말에 따르면 회사에서 사장 친척이라고 막 나가는 놈이 한 명 있었는데 아버지가 부자가 되었다는 소문이 들리자 찍소리도 못 한다고 한다.
“그래도 열심히 일해야지요. 돈은 원래 버는 것보다 쓰는 법이 더 힘든 겁니다.”
“노 변호사가 할 말은 아닌 것 같지?”
“후후후.”
노형진은 그저 미소로 답할 뿐이었다. 물론 이들이 아는 건 그것뿐이다. 하지만 실제로 노형진이 벌어들이는 돈은 더욱 상상을 초월했다.
>전우의 길>을 소개시켜 준 인맥을 바탕으로 노형진이 성공한 영화들에 대해서 막대한 투자를 시작했기 때문이다.
‘역시 돈이 돈을 부른다고.’
막대한 돈을 투자하자 그 돈이 다시 돈을 엄청나게 불러오고 있었다.
“노 변호사는 그렇게 돈을 모아서 뭘 하고 싶은 건데?”
“그냥 법무법인?”
“우우, 라이벌 행세야, 벌써?”
“그건 아닌 거 아니지 않습니까?”
노형진은 돈을 가지고 좀 더 사회적인 법무법인, 아니 법률 지원 회사를 만드는 게 꿈이다. 전부터 가진 꿈을 좀 더 체계화시켰달까?
“알지, 알아. 만인에게 평등한 법이라. 변호사로서 격하게 공감은 하는데 쉽지는 않을 거야.”
“알죠.”
돈이 있어야 유능한 변호사를 살 수 있다는 현실적인 문제는 둘째 치고 상당수 사람들이 돈이 없어서 국선을 선임하는 경우가 많다. 그나마 형사는 국선이라도 해 주지, 민사는 그것도 안 된다.
‘민 변이 있기는 하지만.’
민주 사회를 위한 변호사 모임이 있지만 그곳은 인권이나 아니면 정치적인 문제 전문이다. 실제로 사람들에게 도움이 되는 실용법은 해당되지 않는다.
“어차피 판례 하나만 만들어 두면 나중에 도움이 되니까요.”
“그렇지.”
노형진의 계획은 간단하다. 한국은 판례가 있으면 그걸 따라간다. 문제는 작은 사건들은 돈이 없어서 판례를 만들지 못한다는 것.
예를 들어 체불임금을 가지고 소송하게 되면 대법원까지 갈 수가 없다. 대법원까지 가는 데에 들어가는 소송비가 훨씬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누군가 도와줘서 대법원까지 간다면?
그렇다면 한국 현행법상 하위 판사들은 상위 법원인 대법원에서 나온 판례를 따를 수밖에 없기 때문에 지금처럼 적당하게 부자들의 편을 들어 주지 못한다. 그렇게 되면 한국의 체불임금 문제는 무척이나 줄어들 것이다.
노형진이 생각하는 회사는 그런 실생활에 도움이 되는 판례를 만드는 것을 지원하는 곳이다.
“우리야 그럼 편해지지.”
그렇다면 변호사들도 편해진다. 일단 판례가 있으면 그걸 내밀면 되니까. 법률 체계화의 한 부분인 셈.
“그나저나 노 변.”
“네?”
“여친 안 만들어?”
“아니, 무슨 뜬금없는 말씀이세요?”
순간 노형진은 당황했다. 뜬금없이 여친이라니?
“내가 죽을 것 같아서 그래.”
“네?”
송정한의 말에 순간 이해하지 못한다는 듯 고개를 갸웃하는 노형진.
“주변에서 노 변호사를 소개시켜 달라고 하는 사람들이 너무 많아서 죽겠다, 죽겠어. 빨리 여친을 만들어야 내가 여친 있다고 실드를 좀 치지.”
“하하하.”
순간 노형진은 누군가 생각났지만 그래도 그저 미소로 답할 뿐이었다.
‘아직은 아니야.’
관심은 있지만 그 집안에서 자신을 싫어하는 이유를 아직도 모르고 있었다.
사실 자신이 잘나가면 좀 덜할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손채림의 말을 들어 보니 점점 더 자신을 욕하는 횟수가 많아지고 있다고 한다.
‘도대체 왜?’
단순히 마음에 안 드는 거라면 이해한다. 하지만 갈수록 더 자신을 미워한다는 건 이해할 수가 없었다.
‘더군다나…… 말이 안 되잖아?’
자신을 그렇게 미워한다면서 자신이 어떻게 되었는지는 잘 안단다. 그러니까 어떤 방식으로든 자신에 대해서 지속적으로 듣고 있다는 건데.
‘엄마가 말할 리는 없고, 채림이는 더더욱 아닐 테고.’
친구라고 하지만 한쪽에서 그렇게 싫은 티를 내고 있으니 그다지 연락하지는 않는다. 아니, 사실 거의 왕래가 끊어졌다고 봐도 된다.
채림이야 자기 이야기가 나오면 나오는 게 욕뿐인 걸 뻔히 알고 있으니 아예 이야기하지 않을 테고.
‘이상한 집이야.’
“뭘 생각해?”
“아닙니다.”
고개를 흔들고 정신을 다시 찾는 노형진이었다.
그때였다. 문이 열리면서 직원 한 명이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노 변호사님.”
“응? 무슨 일이에요, 김 양?”
“손님이 왔는데요.”
“손님?”
오늘 약속된 사람은 없었다. 그렇다면 의뢰일까? 그럴 리가 없다. 의뢰라면 의뢰라고 하지, 손님이라고 하지는 않을 테니까.
“누군데요?”
“이예림이라고 하던데요?”
“이예림? 아!”
기억났다. 어려서 자신을 따라다니면서 시집오겠다고 억지를 부리던 어린 아가씨. 하지만 노형진이 군대에 가고 시간이 지나고 멀어지면서 어느 사이엔가 연락하지 않게 된 아이.
“올, 여친?”
“아닙니다. 그냥 아는 동생이에요. 나이 차이가 얼만……데……?”
말하던 노형진은 깜짝 놀랐다. 안으로 들어오는 이예림은 자신이 기억하던 모습이 아니었기 때문이다.
‘아…… 그러고 보니 이제 열여덟 살이구나.’
자신은 이제 스물두 살. 예림이가 네 살 차이가 났으니 이제는 열여덟 살이라는 소리다.
“예림아.”
“안녕, 오빠.”
“잘 지냈어? 이야, 이거, 어디서 보면 못 알아보겠는데?”
군대에 가기 전에 본 것이 다였던 예림이는 어느 사이엔가 생각도 못할 정도로 미녀가 되어 있었다.
“진짜 여친 아니야?”
“아니에요.”
“그래?”
미심쩍은 얼굴로 바라보던 송정한은 피식 웃더니, 몸을 돌렸다.
“아는 사이인 것 같은데 이야기들 해.”
“네.”
바깥으로 나가자 조용해진 사무실. 이예림은 주변을 보더니 탄성을 질렀다.
“역시 오빠는 대단해.”
“내가 뭘?”
“이렇게 유명한 변호사가 될 거라고 누가 알았겠어.”
“하하하, 그나저나 어쩐 일이야? 설마 시집오겠다고 말하려고 온 건 아닐 테고.”
“어머, 그러려고 한 건데?”
하지만 얼굴에 가득한 미소를 보니 농담인 게 분명했다.
“남친은?”
“아직이야. 요즘은 바쁘거든.”
“학교 때문에?”
“응.”
“어디 갔는데?”
“양화예고.”
“예고?”
“응.”
양화예고라면 한국에서도 재능이 있는 아이들만 가는 곳으로 유명하다. 그런 곳에 갔다는 걸 보니 생각보다 재능이 있는 모양이다.
“오페라 전공이야.”
“그래? 잘되었네.”
어려서 집안이 쓰러져 가던 와중에 노형진은 그녀의 집안을 도와줄 뿐만 아니라 못 받은 월급뿐만 아니라 상당한 돈을 쥐여 주는 데에 성공했다.
“근데 어쩐 일이야, 진짜로?”
“음…… 그렇게 티 나?”
“나 변호사거든?”
“하긴……. 오빠 눈치 하나는 빠르니까.”
“하하하.”
노형진은 웃으면서 커피를 가져다가 그녀에게 건넸다.
“우리 회사는 셀프라서 말이지. 의뢰인 경우에만 직원이 가져다줘.”
“그래? 좋은 회사네.”
“방침이야.”
의뢰인, 아니 상담하러 온 사람의 경우에는 한 시간 한 시간이 다급하고 걱정된다. 그 와중에 변호사가 느긋하게 커피를 타 줄 수는 없지 않은가? 하지만 다른 사람들은 변호사가 직접 접대하는 게 규칙이다.
“사실은 오빠한테 부탁이 있어서 왔어.”
“부탁?”
“응, 주변 변호사들은 죄다 터무니없는 돈을 불러서.”
“돈? 그럼 의뢰?”
“응, 선배 문제야.”
“선배?”
“선배 한 명이 사기를 당한 것 같은데…… 방법이 없어. 고소를 당했는데 어쩔 줄 몰라 하고 있거든.”
“그래?”
“응, 우리가 돈을 모아서 변호사를 사기로 했는데…… 다들 너무 비싸서.”
“너희들이 돈을 모았다고?”
다른 사람도 아니고 선배들 이야기라는 말에 노형진은 고개를 갸웃했다. 선배라고 하면 그녀의 나이를 생각했을 때 졸업했다고 봐야 하기 때문이다.
그런데 고작 고등학생 후배들이 돈을 모아서 변호사를 선임해 준다는 게 이상했다.
“알아, 왜 그러는지. 하지만 우리 문제가 될 수도 있기 때문에 더욱 그래. 사실 이런 문제가 한두 번도 아니고.”
“시스템적인 문제구나?”
“어찌 알았어?”
“그렇지 않다면 너희 문제가 될 수 없으니까. 한번 이야기해 볼래?”
이예림이 이야기를 시작하자 듣고 있던 노형진은 입맛을 쩝쩝 다셨다.
‘고전적이네.’
선배라는 사람은 재능이 있고 끼가 넘치는 사람이었단다. 노래도 잘하고 말이다. 더군다나 얼굴도 귀엽게 생긴 소위 말하는 미래가 보일 만한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게 문제였다. 그녀가 졸업하고 나서 어떤 엔터테인먼트 회사에 스카우트되어 갔는데 그곳은 아무것도 안 해 주고 실질적으로 방치만 했다는 것이다.
결국 아무런 지원도 받지 못한 상태에서 그녀는 알바로 생활을 이어 가다가 우연히 거대 소속사의 눈에 띄어 이적하기로 했는데 기존 소속사에서 손해배상으로 30억을 요구하고 있는 상황이라는 것.
이 상황이 부담스러운 건지 이적하기로 한 소속사에서 손을 털려고 하는 것이다. 직감적으로 지금이 마지막 기회라는 걸 안 그녀는 이리저리 방법을 알아보고 있지만 길이 보이지 않는다는 것.
“이름이 뭔데.”
“윤채미.”
“윤채미?”
“응.”
형진은 자신의 기억을 더듬었다. 그런 상황이라면 ‘혹시나 미래의 기억이 남아 있을 수도 있지 않을까?’라는 생각이 들었기 때문이다.
“모르겠는데.”
“글쎄…… 활동하는 그룹명은 알려나. ‘비트하트’라는 그룹인데.”
“비트하트?”
이름은 어렴풋이 기억이 난다. 유명한가? 그건 아니다. 멤버 중 한 명이 결국 무명의 설움을 이기지 못하고 자살했다고 뉴스에 나왔던 적이 있었던 것이다.
‘그게 누군지는 모르지만 말이야.’
그게 윤채미인지 아니면 다른 멤버인지 알 수는 없다. 확실한 건 그중 한 명이 죽었다는 것뿐이다.
“오빠가 봤을 때 어때?”
“뭐 고전적인 방법이야.”
“고전적인 방법?”
“그래, 재능 있고 가능성 있는 애들은 죄다 묶어 두는 거지. 그 후에 신경도 안 쓰고 방치하다가 누가 그 애들을 노리면 돈을 뜯어 내는 거지.”
“그런 사기도 있어?”
“그래.”
미래에는 이런 사기를 못 친다. 노예 계약 문제가 심각해져서 이런 식의 계약서는 인정하지 않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금은 아니다. 지금은 무조건 계약서가 우선이라고 봤다. 그걸 파기하기 위해서는 너무 조건이 까다로웠다.
“일단…… 그건 내가 이야기해 봐야겠는데?”
“그 말은 받아 주겠다는 말?”
“그래야지. 도움이 필요한 사람의 도움을 거절하면 변호사가 아니지.”
“오빠! 너무 고마워! 뽀뽀라도 해 줄까?”
“님 자제염.”
시시덕거리는 예림이를 보면서 노형진은 속으로 어쩌면 이 문제가 쉽지 않을 거라고 생각했다.
“안녕하세요.”
“반갑습니다. 노형진입니다.”
“윤채미예요.”
커피숍으로 나온 여자는 피곤한 얼굴이었다. 늘씬한 몸매에다 상당히 아름다운 얼굴까지 가지고 있었을 여자의 얼굴은 이제 어두운 그늘이 져서 더 이상 아름답다는 말을 할 수가 없을 정도였다.
“사기를 당하셨다고요?”
“네.”
“예림이한테 간단하게 듣기는 했지만 자세하게 설명 좀 해 주시겠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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