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the law RAW novel - Chapter (954)
한 달만 지나면 대부분 그 사실을 잊어버릴 테고, 그러면 똑같은 요구가 다시 들어올 것이다.
“그런데?”
“그래서 내가 락스피릿을 선택한 거야. 현존하는 팬클럽 중에서 제일 극단적이고 극성인 게 락스피릿의 팬클럽 소울이거든.”
“그건 알죠. 이상할 정도로 극단적이기는 해요. 근데 그거랑 저랑 무슨 관계죠?”
고연미는 그게 이해가 가지 않는 모양이었다.
그들이 화를 내는 것은 당연하다. 그게 팬들의 심정이니까.
하물며 나이가 어린 팬들이라면 더욱 그렇다.
그런 마음을, 아이돌이었던 고연미는 안다.
문제는 그게 자신과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것.
“세상에서 가장 길게 유지되는 감정이 뭐라고 생각하십니까?”
“가장 길게 유지되는 감정?”
“네.”
“글쎄요.”
고개를 갸웃하는 고연미.
그녀는 여자답게 자신이 생각한 것을 말했다.
“사랑?”
“땡!”
“음…… 그럼 우정?”
“땡.”
“그럼?”
“분노와 증오.”
“뭐?”
“영화나 소설에서는 사랑이나 우정이 모든 일의 원동력인 것처럼 이야기하지만 말이야, 사실 진짜 독한 원동력은 증오와 분노야.”
“정말?”
“응.”
그 감정은 쉽게 사그라드는 것도 아니다.
집요할 정도로 무섭고 두려우며 경계해야 하는 감정인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내가 락스피릿을 고른 거야. 그들의 팬이 극단적이라는 것은, 이런 일이 생기면 그들이 분노하고 고연미를 주시한다는 뜻이거든.”
“하지만 그것 역시 영원한 건 아니잖아?”
“맞아. 영원한 건 아니지.”
노형진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농담처럼 하는 말이지만 영원한 것은 ‘영원한 것은 없다.’라는 명제뿐일 것이다.
한때 이들만큼이나 극단적인 팬클럽이 없는 것은 아니었다. 그러나 그런 사람들도 나이 먹고 성장하면서 그때의 행동을 흑역사로 기억하며 발로 이불을 찰 게 뻔했다.
“하지만 중요한 건 지금 그들이 극단적이라는 거지.”
“그래서?”
“그 분노를 개인에 대한 공격으로 바꾼다면?”
“응? 그게 무슨 소리야?”
“말 그대로야. 개인에 대한 공격으로 바꾼다면 어떤 일이 벌어질까?”
“좀 소름 끼치네요.”
고연미는 부르르 떨었다.
역시나 경험자로서, 무슨 일이 벌어질지 예상한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스스로 욕먹고 싶은 사람은 없으니 도세창도, 태양도 노형진과 자신이 이 일을 꾸민 것을 모를 것이다. 그리고 이 계획 덕분에 자신이 그들의 마수에서 벗어날 가능성도 아주 높아졌다는 것을.
“마음에 드는 계획이네요.”
‘역시 머리가 좋네.’
연예계를 경험해 보아서 그런지 그녀는 바로 알아차렸고, 노형진은 씩 웃었다.
“자, 그러면 도발을 해 볼까요?”
“이 상황에서도 도발하자고?”
손채림은 가득 쌓인 협박 편지와 쥐와 고양이의 사체를 보면서 핼쑥해진 얼굴로 멍하니 중얼거렸다.
* * *
“이번 사태에 대해서 저는 그냥 넘어갈 생각이 없습니다. 전 더 이상 아이돌이 아니지만, 변호사로서 사회적 범죄자들에게 자비를 베풀 생각이 없습니다.”
그녀는 몇 년간 언론을 타지 않았다.
물론 아예 안 탄 것은 아니다. 하지만 가십 정도로 특이한 이력을 가진 변호사로 소개되는 경우였지, 자발적으로 인터뷰를 한 것은 아니다.
그러나 이번에는 달랐다. 자발적으로 기자를 불러서 인터뷰를 했다.
“저에 대한 협박과 모욕에 대해서는 고발을 진행하겠습니다.”
그녀가 그렇게 말하고 나자 락스피릿의 팬클럽 소울은 거의 고연미를 때려죽일 것 같은 분위기가 형성되었다.
하지만 노형진은 그 덕분에 일이 편하게 되었다면서 히죽거릴 뿐이었다.
“진짜 위험하지 않겠어?”
“안 위험해. 팬클럽이라는 게 한계가 뚜렷하거든.”
“뭐?”
“집단이지, 개인이 아니야.”
“무슨 소리야?”
“그들은 팬클럽이라는 집단에 속해 있어. 그래서 집단에서 개인에 대한 모욕을 하거나 공격적 행동을 한다면 자신이 집단의 일원으로서 일부 그 행동을 감행하지. 협박장을 보내거나, 좀 과격한 놈들은 짐승의 사체를 보내는 정도?”
“그게 문제가 아니라고?”
“그래. 진짜 무서운 놈들은 소속감이 없는 놈들이야.”
소속감에 범죄를 저지르는 녀석들은 그 조직에서 딱 보호할 수 있다고 하는 만큼만 범죄를 저지른다.
“그래서 팬클럽에서 누군가를 죽인 사건은 없어, 사회적인 물의를 일으키는 건 많아도. 너, 라이벌 팬클럽에서 상대방 가수를 죽였다는 얘기 들어 본 적 있어?”
손채림은 고개를 흔들었다. 그런 얘기는 들어 본 적도 없다.
“하지만 개인은 아니야. 자신의 탐욕을 위해서 극단적 선택도 하지. 그러니까 개인만 조심하면 돼. 우리가 자극한 것은 팬클럽이지, 개인이 아니니까.”
“그건 좋은데 말이야, 이건 좀 애매한 거 아냐?”
고연미가 법적인 과정을 밟겠다고 이야기했으니 당연히 그 과정을 밟아야 한다. 사실 태양에서 말릴 만한 일도 아니고 말이다.
고연미가 사생활로 법적인 과정을 밟겠다는데 다른 곳도 아니고 로펌이 막을 수는 없지 않은가?
노형진은 그런 허점을 노렸다.
“이것도 그렇고 저것도 그렇고, 너무 약한데?”
노형진은 협박과 모욕 등에 대해서 참으로 애매한 건수들만 골라서 고발을 넣기 시작했다. 보통은 가장 강한 것을 뽑아 넣어서 확실하게 처벌받도록 하는데 말이다.
그런데 정반대로 약한 것들을 넣어서 처벌을 안 받도록 한 것이다.
“알아. 고의적으로 그런 거야.”
“고의적으로?”
“그래.”
“왜?”
“상대방에게 용기를 북돋아 주려고.”
“헐?”
그 말이 이해가 가지 않았던 손채림은 이게 무슨 소리인가 했다.
하지만 며칠 지나지 않아서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애매한 것을 고발하자 당연히 처벌도 제대로 될 리 없었기에 대부분은 무혐의로 풀려나기 시작한 것이다.
애매한 것들이라서 고연미가 무고로 반박될 가능성은 없지만, 반대로 그들도 처벌을 받을 가능성은 낮아진 탓이다.
그리고 그러고 나서야 손채림은 노형진이 했던 ‘용기를 북돋아 주려고 했다’라는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가 갔다.
“엄청나네.”
소울 팬카페에 올라오는 무혐의 기록들.
무혐의가 결정되고 나자 그걸 자랑하기 위해서 당사자들은 마구 올리기 시작했고, 그걸 보고 팬클럽의 대다수 멤버들은 용기를 얻었다. 그리고 무차별적인 공격을 하기 시작했다.
농담이 아니라, 협박에 관련된 택배나 문자 그리고 편지가 전보다 두 배 이상 늘어난 것이다.
“우체부랑 택배 아저씨가 절 불쌍하게 보더군요.”
언론에서 이 상황을 모를 리 없으니 신나게 떠들었고 전국의 사람들은 고연미라는 존재에 대해서 모두 기억을 떠올렸다.
그리고 그럴수록 태양은 상황이 곤란해졌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자신들의 목적에 맞게 쓸 수가 없으니까.
“괜찮아, 언니? 뭐, 자살하고 싶다거나 그런 거 아니지?”
“전혀 아니야. 전이라면 모르지만 그 구역질 나는 도세창을 안 보는 것만으로도 행복해 죽겠어.”
씁쓸하게 말하는 고연미.
“더군다나 요즘은 뒤를 따라다니는 사람들이 있어서…….”
“응?”
“안티팬일 겁니다.”
“웬 안티팬?”
“이 사건은 변호사 고연미가 아니라 전 아이돌 고연미와 락스피릿의 찬수의 사건이거든.”
사생팬은 죽자 사자 자신이 좋아하는 가수나 연예인을 따라다니는 사람을 말한다.
하지만 안티들도 따라다니기도 하는데, 그들은 상대방에게 추문이 될 만한 게 있으면 잡아서 터트려서 사회적으로 매장시키기 위해서였다.
“악질 파파라치라고 볼 수 있지.”
“헐.”
“문제는, 그들은 언제나 증거를 모을 준비가 되어 있다는 거야.”
“아!”
당연히 일이 터지면 그걸 찍어서 터트릴 것이다.
이쪽에서야 가장 원하는 것이지만, 태양과 도세창은 결코 원하지 않는 것이다.
“아마 상당 기간 따라다닐 거야. 못해도 두 달?”
“헐.”
“그리고 그 녀석들이 따라다닌다는 것은 경호원을 고용할 합당한 이유가 되지.”
“경호원?”
“네. 경호원은 회사에서 해 주지 않을 테니 제가 사비로 고용해야지요. 그리고 그렇게 되면 그 사람은 절 위해서 일하게 될 테고…….”
“아! 그러면 증인이 생기는 셈이구나.”
“그렇지요.”
항시 따라다니는 경호원은 모든 것을 보고 있다.
만일에 대비해서 녹음까지 해 달라고 했으니 비상시 증거로 쓸 수도 있다.
“태양과 도세창은 자신이 원하는 것을 절대로 손에 넣지 못한다는 거지.”
노형진은 자신있게 말했다.
“아마 지금쯤 짜증이 머리끝까지 난 상태일걸.”
* * *
“곤란하군요.”
같은 시각, 태양 내부의 회의에서는 노형진의 예상대로 고연미에 대한 회의가 진행되고 있었다.
“우리 목적하고는 아무래도 거리가 있는 것 같습니다.”
“우리 목적은 고연미를 이용해서 큰손님들을 데리고 온다는 거 아닙니까?”
전직 아이돌이라는 타이틀.
그건 교도소나 구치소에 있는 큰손들에게는 참으로 관심이 가는 타이틀이다.
물론 돈만 적당히 찔러주면 여자를 데리고 들어가는 거야 문제가 안 되지만 그녀는 변호사이니 나중에 말이 나올 가능성도 적고, 거기에다 아이돌 출신이라는 타이틀 덕분에 관심을 많이 끌 수 있었다.
“흠…….”
손하균은 찝찝한 얼굴이 되었다.
자신이 계획한 것과는 많이 달라졌기 때문이다.
‘어째서지?’
사실 언론사 누구도 그녀에게 관심을 가지지 않았다. 그런데 하필이면 지금 이 시점에 이런 일이 터질 줄이야.
‘그러나저나 찬수라니. 연하 취향인가?’
중요한 건 그게 아니다.
부정도 긍정도 하지 않는 현 상황으로 볼 때 그들의 관계는 기정사실화되었다고 볼 수 있다.
‘그렇다는 건, 잘못 쓰면 영 껄끄러운 카드가 된다는 건데.’
물론 남편이나 애인이 있는 여자를 건드리면서 승리감을 느끼는 놈들도 있기는 하다.
하지만 그건 어디서나 바깥에서의 얘기지, 법적으로 예민한 다툼을 하는 구치소와 교도소에서 그럴 수는 없다.
당장 도세창도 일이 커지자 누굴 죽이려고 작정했느냐며 길길이 날뛰지 않았던가?
“그 여자를 써먹을 다른 방법이 없겠습니까?”
누군가의 말.
“글쎄…… 아직 실력이 검증된 사람이 아니니……. 얼굴마담이라면 모를까.”
“얼굴마담은 우리에게 필요한 존재가 아닌데요?”
태양은 서민 변호를 중심으로 하는 새론과 다르다. 상위 몇 퍼센트 안에 드는 자들만 상대하기 때문에 얼굴마담은 필요가 없다.
“그렇다고 실력도 검증 안 된 여자를 변론에 투입할 수는 없지 않습니까?”
이곳에 들어오는 사건은 거의 수십억에서 수백수천억짜리다.
전관도 변변치 않은 사람을 붙이면 엄청나게 욕을 먹는데 아이돌 타이틀 말고는 실력도 검증 안 된 변호사를 붙인다?
“의뢰인들이 싫어하겠지.”
실제로도 몇 번이나 있었던 일이었기 때문에 그녀를 붙일 수는 없다.
그렇다고 다른 변호사와 함께 변론하도록 할 수는 없다. 그건 그녀에게 공짜로 묻어가게 하는 기회를 주는 것이니까.
“방출하죠.”
누군가의 말.
“애초에 우리와 맞지 않는 여자였습니다. 더군다나 우리 쪽에 있으면 똑같은 일이 더 생길 수도 있습니다. 기자들이 바글바글하는 로펌에 오는 손님은 없습니다.”
“끄응…….”
그녀가 문제가 되는 것. 그것은 다름 아닌 기자라는 존재다.
이런 식으로 계속 문제가 되면 기자들이 거의 상주하다시피 할 텐데, 그리되면 예민한 사건을 다루고자 하는 사람들이 올 리 없다.
더군다나 의뢰인 중 일부는 연예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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