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the law RAW novel - Chapter (959)
여러 가지 기능이 들어가는 현대 냉장고에서는 그걸 통제할 수 있어야 제대로 된 맛이 난다.
가령 똑같은 냉장고라고 해도 어떻게 통제하느냐에 따라 김치냉장고가 되고, 거기서 또다시 과일 저장 모드나 김장 김치 모드 등이 분류된다.
“그리고 여러분에게는 그런 시스템을 만들 기술력이 없지요.”
“음…….”
“크흠…….”
사장들은 왠지 불편한 얼굴이 되었지만 부정하지는 못했다. 맞는 말이기 때문이다.
“그래서요? 우리가 대룡에 공급하고 우리는 하청을 받아라 이건가요? 그게 우리에게 무슨 의미가 있지요?”
누군가 피식하고 비웃음을 날렸다. 아무래도 그는 노형진의 말을 제대로 이해하지 못한 모양이었다.
노형진은 그를 위해서, 그리고 다른 사람들을 위해서 차분하게 설명했다.
“우리가 하청을 드리는 게 아니라 우리가 하청을 받는 겁니다.”
“그게 말이 되느냐고요! 대룡인데 대룡이 하청을 받는다?”
“하청이라는 말이 변질되어서 그렇지, 엄밀하게 말하면 하청이라는 것은 갑과 을을 나누는 단어가 아닙니다. 누가 누군가에게 돈을 주고 일을 부탁하는 게 하청이지요.”
“그런데요?”
“대룡은 그런 시스템을 개발하고 공급할 능력이 됩니다. 그리고 여러분은 그게 들어갈 하드웨어, 즉 냉장고를 제작할 능력이 되지요.”
“그러니까 우리가 냉장고를 만들어서 공급하라 이건가요?”
“그렇습니다.”
“말도 안 되는 소리!”
“말도 안 된다고 생각하십니까?”
노형진은 피식하고 웃었다.
물론 그들의 말이 반은 맞다. 틀린 말은 아니다.
다만 그걸 깨부수는 데 익숙하지 않을 뿐.
“생각해 보시오! 누가 우리가 하청을 준다는 걸 믿는단 말이오? 그것도 다른 곳도 아니고 대룡에? 설사 준다고 한들 그걸 어디다 팔고?”
“판매 라인은 이미 대룡이 가지고 있지요.”
“결국 달라지는 게 없지 않소? 우리가 만들어서 납품하고 판매는 다른 사람이 하고……!”
“달라지는 건 있습니다. 여러분이 직접 만들어서 팔게 되겠지요.”
“직접?”
“네, 그리고 당연히 제품의 가격은 하락할 테고요.”
“하락이라?”
“그렇습니다.”
성화의 물건이 잘 팔리는 이유는 간단하다. 다름 아닌 대기업이라는 믿음 때문이었다.
한국에서 물건을 살 때 소비자들이 가장 많이 신경 쓰는 것은 A/S다.
중소기업이 기껏 완제품을 만들어도 잘 안 팔리는 것은 추후 A/S가 제대로 되지 않을 거라는 의심 때문이다.
“하지만 그 부분은 대룡이 책임질 겁니다.”
“흠…….”
대룡의 이름을 걸고 대룡에서 판매하며 대룡에서 서비스 센터를 지원한다. 그게 노형진의 기본적인 계획이었다.
“하지만 대룡은 제작자가 아니라 지원 업체죠. 말 그대로 여러분에게 하청을 받아서 서비스 센터를 운영하는 겁니다.”
“그래서? 뭐가 달라지는데?”
“가격이 떨어지겠지요. 만일 성화라는 브랜드 타이틀을 떼어 낸다면 제품의 가격은 얼마나 떨어질까요?”
“그거야…….”
사장들은 입을 다물고 머릿속으로 열심히 계산했다.
성화라는 타이틀은 상당한 가치를 지닌다. 그 때문에 성화라는 브랜드에서 나온 물건에 사람들은 더 비싼 값을 지불한다. 그럴 용의가 있기 때문이다.
“아마도…… 30퍼센트 이상.”
성화는 최소한의 인원을 투입하고 난 후에 완제품에서 무려 30퍼센트의 수익을 얻는다. 자신들이 판매 라인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그걸 저희가 노리지 않는다면?”
“응?”
“여러분이 공급하는 재료를 조합하고 그 후에 저희가 하청해서 드린 시스템을 장착하게 되면 가격이 30퍼센트 이상 떨어질 수 있습니다. 과연 그러면 사람들이 그저 무시만 할까요?”
“흠…….”
다들 침묵을 지켰다. 확실히 가능한 말이기 때문이다.
다른 곳에서 100만 원짜리인 똑같은 성능의 물건을 60~70만 원에 살 수 있다면 사람들은 무슨 생각을 할까?
“그리고 그 보증을 대룡에서 한다고 하면, 사람들은 뭐라고 할까요?”
“일단은 한번 써 보려고 하겠지.”
사장은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그렇게 되면 성화에서 물건을 사던 사람들은 혹하게 된다.
충성도라는 것은 비슷하거나 그것 나름의 특징이 있어서 그걸 좋아할 때 생기는 거다. 그러나 이런 식으로 비슷한데 가격이 엄청 차이 나면 충성도가 개입될 여지가 적어진다.
“더군다나 기본적으로 하드웨어적인 부분은 성화와 똑같습니다. 소프트웨어야 작동 방식은 달라도 기능은 똑같을 테고요.”
대룡이야 수익 자체가 줄어들 것이다.
“도대체 왜 우리한테 그런 조건을 다는 거요?”
누가 봐도 자신들에게 유리한 조건이다. 그러니 그들은 도리어 의심스러울 수밖에 없었다.
“첫 번째 이유는 상생입니다.”
“상생?”
“그렇습니다. 대룡은 상생을 모토로 기업을 운영합니다. 그걸 모르지는 않으실 텐데요?”
“그거야 알지.”
상생을 목적으로 활동하는 대룡이라는 이름은 다른 사람들에게 놀라움을 주곤 했다. 그러니 모르지는 않는다.
“하지만 그것 때문에 노다지를 빼앗긴다? 말도 안 되지 않소?”
자신들에게 하청을 주고 그걸 팔면 더 많이 팔 수 있고 더 많은 수익을 낼 수 있다. 그런데 그걸 포기하다니.
그걸 그냥 상생이라고 볼 수는 없다.
상생은 함께 잘먹고 잘살자는 뜻이지, 내 이익을 포기한다는 뜻은 아니니까.
“뭐, 다른 목적이 있다는 걸 부정은 안 합니다.”
“역시 성화와 대룡의…….”
말을 흐리기는 하지만 대부분 이해는 하고 있었다.
두 집단의 싸움을 모르는 사람이 어디 있단 말인가?
경제 쪽에 몸 좀 담근 자들 중에서 그걸 모르는 자가 있다면 그는 아마도 무능의 극치일 것이다.
“끄응…… 이러다가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지는 게 아닌지.”
“저희는 여러분을 새우 취급하려는 게 아닙니다. 도리어 고래 싸움에서 편들어 줄 고래로 만들어 드리고 싶은 거지요.”
“아군을 만들겠다?”
“네.”
“후우.”
사장들은 머리를 부여잡았다.
‘언젠가 이런 날이 올 거라 생각은 했지만…….’
대룡가 성화가 싸운다는 소식에 자신들에게 어떤 식으로든 영향이 있을 거라는 것은 알고 있었다.
그러나 단순히 계약이 아니라, 아예 성화에서 나오라고 할 줄이야.
“솔직히 전…… 탐탁지 않습니다만…….”
누군가 말했다. 그의 입장에서는 부담이 가득했다.
“만일 우리가 나가는 순간 성화는 우리를 죽이려고 할 겁니다. 우리처럼 작은 곳은 그런 걸 감당할 준비가 되어 있지 않습니다.”
“그건 어디까지나 혼자서 나가려고 할 때의 이야기죠.”
“혼자서……?”
노형진의 말을 이해 못 한 그는 고개를 갸웃했다.
그리고 구석에 있던 다른 사장은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노형진을 바라보았다.
“성화에 대한 공격이라고 한다면 냉장고만 노릴 리 없지.”
처음 말을 꺼낸 사장은 흠칫 떨었다.
생각해 보니 그렇다. 자신들에게 이야기할 정도면 다른 주요 부품 회사들 역시 같은 조건을 받아 들고 있을 것이다.
“여러분은 손해 보는 게 없을 텐데요? 한 가지만 묻겠습니다. 여러분 중에서 현재 손익분기점을 넘도록 돈을 받는 분 계십니까?”
서로 눈치를 볼 뿐, 아무도 손을 들지 못했다.
물론 일부 그런 곳도 있기는 하다. 하지만 현재 상황이 어떤지 모르는 바가 아니니 섣불리 말할 수는 없는 것이다.
‘역시나.’
노형진은 자신의 예상대로라고 생각하자 미소를 지었다.
이들은 대부분 간신히 원가만 받거나 원가에 못 미치는 돈을 받는 상황인 것이다.
그렇다고 그만두자니, 섣불리 그럴 수도 없는 상황.
“그런 분들이 손해 보면서 버티는 이유는 하나뿐이지요. 시간을 끌면서 해결책을 만드는 것. 아닌가요?”
“…….”
부정을 못 하는 사람들.
‘자, 이제는 그럼 채찍을 써 볼까?’
자신들은 당근을 썼다. 하지만 당근만으로는 안 된다.
그러니 이쯤에서 채찍질도 필요한 법.
“저희 대룡에서는 그 기업을 살 겁니다.”
“뭐라고?”
“그게 무슨 말이오?”
“아마 서로 아실 겁니다, 손해 보는 기업이 어디이며 또 판매하기 위해서 매물로 내놓은 기업은 어디인지. 아닌가요?”
“그게 이번 일과 무슨 관계가 있다는 거요?”
“있지요. 현대는 기업과 기업, 개인과 개인이 부품처럼 엮여 있습니다. 만일 중간에 부품이 빠진다면 어떻게 될까요?”
“부품이 빠진다?”
“네. 그 매물로 나온 기업을 저희가 산다면 어떻게 될까요? 아마도 성화는 거래를 끊을 겁니다. 설사 안 끊어도, 대룡에서 거래를 끊어 버리겠지요. 그러면 여러분은……?”
다들 등골이 오싹했다. 노형진이 노린 게 뭔지 알아차린 것이다.
“이런 미친! 우리를 죽이겠다는 거요?”
“대룡과 성화는 전쟁 중입니다. 무고한 피해자는 최대한 줄여야 하지만 어쩔 수 없는 피해자라는 것도 존재하기 마련이니까요.”
만일 그런 기업에서 더 이상 부품이 들어가지 않게 된다면? 당장 성화의 전 공정이 멈출 것이다.
그리고 그 말은, 자신들의 부품도 성화로 들어가지 못한다는 뜻이다.
“당연히 그러면 돈도 받지 못하겠지요. 그러면 그분들은 적자를 버티면서 원가 이하로 다시 공급할 수 있게 될 시기를 기다릴까요, 아니면 공장을 매물로 내놓을까요?”
“…….”
악순환이다.
성화에서 공장이 멈췄다고 돈을 안 주면 누군가는 매물로 자기 회사를 내놓을 테고, 돈이 있는 대룡은 그걸 사서 다시 공급을 막을 것이다.
성화는 돈이 없어서 몰락하는 시점이니 그걸 구입할 돈이 없다.
결국 제품 생산이 짧아도 3개월, 길면 6개월까지도 미뤄질 수 있다.
“만일 6개월 후까지 미뤄진다면 여기서 버틸 수 있는 분들은 얼마나 될까요?”
“악마 같은 새끼.”
누군가 중얼거렸다.
“원래 좀 나쁜 놈입니다.”
한 번에 돈이 확 나가는 것과 조금씩 나가는 것은 그 충격량이 다르다.
당장 직원 백 명의 기업의 경우, 평균적으로 월급이 200만 원이라고 하면 월 2억의 고정금이 나간다. 그런데 6개월간 버티면 무려 12억이다.
‘그리고 성화가 미치지 않고서야 그 돈을 줄 리 없지.’
준다 해도 성화가 정상화된 시점을 기준으로 줄 것이다.
현재 성화는 대부분의 기업에 자신들이 힘들다는 이유로 최저 금액을 제공하는 상황.
즉, 12억을 갚을 방법이 없다.
그렇다고 돈을 은행에서 빌린다?
매달 이자만 1천만 원이다. 적자가 난 상황에서 월 1천만 원씩의 로스는 엄청난 부담이 된다.
“아, 그리고 대룡이면 은행에 적당히 부탁을 할 수도 있지요.”
“크흑.”
말이 부탁이지, 압력이다. 저 기업에 돈을 주지 말라는 부탁.
그 정도면 대기업도 아니고 중소기업 정도는 대차게 말아먹게 할 수 있다.
성화가 과연 그에 대해 방어를 해 줄까?
‘말도 안 되는 꿈이지.’
그런 작전을 방어하려면 성화가 돈을 주거나 대출을 부탁해야 하는데 전자의 경우에는 성화 자체가 돈이 없으니 불가능하고, 후자의 경우에는 싸움의 주도권이 이미 대룡에 넘어갔으니 은행이 그들의 부탁을 들어줄 이유가 없다.
“크흑…….”
주먹을 꽉 쥐는 사람들.
“참고로 말씀드리자면, 이미 두 분이 저희 쪽에 기업을 넘기기로 약속했습니다.
“뭐라고!”
“누구야! 어떤 새끼야!”
발끈하면서 일어나는 사람들.
서로가 서로를 노려보았지만 누군지 나올 리 없다.
‘있을 리 없거든.’
사실은 기업을 넘긴다고 한 사람은 없다. 노형진이 뻥카를 친 것이다.
당장 공장을 멈추게 할 수 있다는 의미로 말이다.
“그러니 여러분은 선택하시면 됩니다. 자발적으로 나오셔서 스스로 일어나든가, 아니면 성화와 같이 몰락하시든가.”
한꺼번에 몰아닥친 폭풍에 다들 정신을 못 차린 채로 멍하니 서로를 바라볼 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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