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the law RAW novel - Chapter (96)
“그게…….”
졸업하고 난 후 그녀는 오디션을 보러 다니다가 우연히 길거리 캐스팅을 받았단다. 잔뜩 기대하고 간 곳에는 노래 연습실과 댄스 연습실까지 있는 제대로 된 기획사가 있었고 그녀는 행복한 미래를 꿈꾸면서 계약서에 사인했다.
처음에는 어느 정도 지원이 들어왔다. 멤버들도 구성되고 곡도 받았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지원이 끊어지기 시작했다. 춤추는 시간보다 알바를 하는 시간이 더 늘어나기 시작했고 나중에는 아예 행사 자체도 잡히지 않았다.
일단 앨범을 내기는 했지만 홍보 자체가 되지 않았기 때문에 앨범은 완전히 망했고 회사는 사무실을 제외한 다른 곳을 팔아서 빚을 갚아 버렸다고 들었단다.
미안한 마음에 정산은 말도 못 하고 있었는데 우연히 대형 소속사가 접근했다. 그래서 그들과 계약했는데 원래 소속사 쪽에서 계약 위반을 이유로 30억을 요구하는 상황이라는 것이다.
“미안한 건 미안한 거예요. 우리를 위해서 노력했음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되었다는 건 미안하지만 아무런 지원도 없는 상황에서 방법이 없는데, 저라고 어쩌겠어요.”
“흠…….”
노형진은 듣다가 턱을 쓰다듬었다. 얼핏 보면 양쪽 다 불쌍한 느낌이 드는, 결국 사회의 희생자인 듯한 그런 상황.
‘하지만 그 내면을 봐야지.’
희생자인 것처럼 꾸미는 방법은 많다. 그리고 그렇게 되면 법적으로도 유리한 부분이 있다.
“그래서 계약 무효 소송 중이라는 거죠?”
“네.”
“그럼 한 가지만 물어보죠. 캐스팅에서 데뷔까지 얼마나 걸렸죠?”
“한 다섯 달요.”
“5달?”
“네.”
‘너무 빨라.’
자신이 이런 사건을 해 봐서 안다. 보통 짧다고 해 봐야 1년이다. 진짜 재능이 있거나 다른 곳에서 장기간 연습생을 했다면 모를까, 고작 다섯 달 만에 곡에 춤에 후다닥해서 내보내는 사람은 드물다.
“멤버는 몇 명입니까?”
“저 포함해서 네 명요.”
“네 명이라……. 혹시 그 안에 사장이랑 친한 사람 없었습니까?”
“어…… 맞다! 친한 언니가 한 명 있었어요. 리더 언니가 사장하고 무척 친했어요.”
“그리고요? 한 명 더 있을 것 같은데.”
“어? 어떻게 아세요? 다른 언니 한 명도 친했어요.”
“그 두 사람은 끝까지 의리를 지킨다며 거기 남았죠?”
“네, 신기하네요. 어떻게 그걸 아시는 거예요?”
그 말을 들을수록 노형진의 얼굴은 점점 어두워지고 있었다.
“그럼 한 가지만 물어볼게요. 그 연습실 주소, 압니까?”
“알아요. 서울시 강동구…….”
그녀에게 주소를 받은 노형진은 바로 일어나서 그녀를 데리고 등기소로 갔다. 그러고는 그 주소의 등기부 등본을 한 부 복사해 왔다. 그러고는 한숨을 쉬었다.
“제대로 당하셨습니다.”
“네?”
“제대로 당했다고요.”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
“이 녀석들, 프로네요.”
노형진이 등기부 등본을 펼치자 거기에는 파리 연습실이라는 상호가 붙어 있었다.
“어?”
“소속사 이름이 코모리엔터테인먼트라고 하셨죠?”
“네.”
코모리엔터테인먼트가 그녀가 있던 소속사의 이름이었다. 그런데 파리 연습실이라는 전혀 생소한 이름이 붙어 있었다.
“어떻게 된 거예요?”
“이거…… 사기꾼이 제대로 함정을 판 겁니다.”
사기라는 것은 일반적으로 아예 갚을 생각이 없을 때 성립하는 것이다. 문제는 아주 조금이라도 갚거나 투자한 흔적이 있다면 사기가 성립하지 않는다는 불편한 진실도 있었다.
“그 법의 허점을 이용한 사기입니다. 최소한의 투자는 하는 겁니다. 아마도 이 투자 비용은 잘해 봐야 300만 원 정도일 겁니다. 의상도 싸구려 시장표로 대충 하면 되는 거고 곡이야 대충 싸구려 곡 하나에 100만 원이면 받습니다. 그렇게 되면 명실상부하게 투자했으니까 자기네 전속 가수가 되는 거죠.”
“그럼?”
“그게 함정입니다. 그렇게 묶어 두고 어느 순간 투자를 딱 끊어 버리는 거죠. 낭중지추라고 하죠? 재능 있는 사람은 당연히 다른 쪽에서 발견하고 손이 들어오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면 소송을 하는 거죠, 전속이라고 하면서.”
“그…… 그럴 리가…….”
“그럴 리가가 아닙니다. 투자 비용이 일반적인 경우를 생각하면 터무니없이 낮아요. 더군다나 녹음 시간이 고작 세 시간요? 제대로 노래 한 곡을 녹음하려면 수십 시간씩 한 곡만 부르는 경우도 있습니다. 어떤 가수는 일주일 내내 한 곡만 불렀다는 얘기, 못 들어 보셨습니까? 그런데 앨범 전체가 세 시간이라는 건 말이 안 됩니다. 그리고 이 연습실도 그래요. 간판도 없고 아무것도 없게 한 뒤에 마치 자기네 회사인 것처럼 속였겠지만 전혀 다른 회사입니다. 즉, 공간만 빌려주는 다른 회사라는 거죠. 간판이 없으니 마치 자기네들 것처럼 속이고 빌려서 사용했을 겁니다. 판 것이 아니라 그냥 임대 기간이 끝났을 거예요.”
노형진이 말을 할 수록 점점 얼굴이 새파랗게 질리는 윤채미.
“그리고…… 멤버 문제인데…….”
어찌 보면 이 부분이 가장 힘든 부분일 수도 있었다. 함께 움직이고 먹고 마시며 활동하던 사람의 배신이니까.
“애초에 사기꾼 멤버일 겁니다.”
“뭐라고요?”
믿을 수 없다는 얼굴이 되는 윤채미. 하지만 노형진이 봤을 때 이건 이미 잘 짜인 한 편의 연극 같은 함정이었다.
“그들은 멤버로 들어온 척 함께하다가 사건이 진행되면 불리한 증언을 하는 게 목적일 겁니다. 가장 가까이에서 봐 온 멤버의 불리한 증언이 들어가면 당연히 당사자는 불리하게 되는 거죠.”
“헉!”
“아마 이 사정을 모르는 사람은 채미 씨를 포함해 그곳에 있던 다른 한 사람일 겁니다.”
그 말에 윤채미는 벌벌 떨리는 몸으로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 아이는…… 아직도 연락하고 지내요……. 저보다도 더 어린데…….”
“아마 그 아이는 재능이 있겠지요?”
“네.”
“그리고 두 언니라는 사람은 얼굴은 예쁘지만 재능이라고는 안 보일 테고요.”
그 말에 고개를 끄덕거리는 윤채미.
“쩝…… 제대로 작정했네요.”
“어…… 어떻게 그런…….”
“어떻게가 아니라 흔한 사건 중 하나입니다.”
털썩.
윤채미는 그대로 허물어지듯 쓰러졌다. 믿어 의심치 않았다. 소송에 들어갔다고 해도 대화를 통해서 해결할 수 있을 거라 믿었다. 그런데 사기라니?
“그곳은 규모에 비해서 연습생이 많지 않았습니까?”
“네? 아! 맞아요!”
“죄다 사기의 희생자인 거죠. 그중 한 명만 제대로 걸려도 본전의 몇십 배는 빼고 남으니까요. 그리고 아마 대부분 회사를 찾아간 게 아니라 길거리 캐스팅을 당했겠지요.”
“하…… 하지만 어…… 어떻게 제가 지망생인 줄 알고…….”
하루에도 수만 명이 다니는 것이 길바닥이다. 거기에서 어떻게 연예인 지망생인 줄 안단 말인가? 물론 그건 일반적인 생각이고 노형진이 봤을 때는 뻔했다.
“원래 소속사들이라는 건 어느 정도 동선이 짜여 있기 마련입니다. 방송국에 바로 움직일 수 있는 정도의 거리에 있어야 하며 또한 공연장으로 움직이기 위한 위치에 있어야 하지요. 강원도나 전라도에 연예 기획사가 있다는 소리, 들어 보셨습니까?”
그 말에 고개를 흔드는 윤채미.
“그런 곳에 다니는 사람들은 아무래도 지망생인 경우가 높아질 수밖에 없습니다. 그리고 그중 아예 화장하지 않거나 간단하게 입고 다니는 사람은 그들의 대상이 아닙니다.”
“어째서요?”
“일단 일반인인 경우도 있고 제대로 된 다른 소속사의 연습생일 경우도 있으니까요. 격하게 운동하고 땀을 흘리는 게 연습일 텐데 화장을 진하게 하지는 않을 테니까요. 하지만 반대로 과도할 정도의 화장을 하고 옷을 신경 써서 입고 나왔다는 건 어딘가에 지망하러 왔다는 뜻입니다. 아무래도 그런 때 입는 옷은 소개팅이나 그런 때에 입는 옷과도 다르니까요.”
그 말에 윤채미는 털썩 눈물을 흘리기 시작했다. 자신이 길거리 캐스팅이 된 그날, 그날은 다른 소속사에서 오디션을 보고 가는 길이었기 때문이다.
‘쩝…….’
연예 기획사들의 사기 문제는 어제오늘 일이 아니다. 오죽하면 연예계 근무자가 기획사의 70%는 생양아치 사기꾼이라고 말했을 정도였다. 적당하게 한탕 하고 털고 나가기 딱 좋은 것이 바로 연예 기획사였다.
“제대로 속으신 겁니다.”
“흑흑흑.”
“자자, 진정하시고……. 일단 해결책을 찾아봅시다.”
노형진은 입맛을 다시면서 그녀를 일으켰다. 그리고 주변의 따가운 시선을 느꼈다.
‘아 진짜. 내가 울린 거 아니거든.’
그는 주변의 시선에 억울한 듯 속으로 중얼거렸다.
“코모리엔터테인먼트. 작년에 생겼습니다. 사장은 김광준입니다. 전과가…… 사기 3범이네요.”
“그렇지.”
이런 치밀한 시스템을 아무것도 모르는 사람이 만들었을 리 없다.
“사기 전과 3범이면 그 외에 안 걸린 사기들도 있겠지?”
“당연히 있겠지요.”
전과라는 것은 결과적으로 말해서 잡혔기에 생긴 것이다. 저들의 표현을 빌리자면 작업 실패로 인한 결과다. 반대로 말하면 작업이 성공한 경우, 그들은 잡히지 않은 채로 잠수를 탄다는 뜻이다.
그러니 전과 3범은 그가 범죄를 저지른 게 세 번이라는 게 아니라 그가 실패한 게 세 번이라는 소리다.
“여러 번 했겠군요.”
“그렇지요. 이런 식이면 걸리기 힘듭니다. 어떻게 아신 겁니까?”
“하하하…… 비슷한 사건이 있었거든요.”
“비슷한 사건이요?”
고문학은 고개를 갸웃했다. 새론에서는 아직 연예계 쪽 사건을 담당한 적이 없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 있을 때 사건입니다.”
“아!”
그 말에 고개를 끄덕거리는 고문학.
“그래도 용케 아셨네요?”
“뭐, 그때 워낙 고생해서요. 그나저나 이 녀석, 프로군요.”
“네, 프로입니다.”
원래 사기꾼 하수는 거짓말이 90%지만 고수는 진실이 90%다. 김광준의 경우는 아무리 봐도 법적으로 아무런 문제가 없이 완벽하게 처리한 걸로 봐서 하수가 아닌 고수에 속하는 듯했다.
“이거, 곤란한 사건을 담당하셨네요.”
고문학은 걱정스럽게 중얼거렸다.
“뭐, 저야 곤란한 사건 전문 아닙니까?”
“하하하.”
그게 새론에서의 노형진의 정확한 포지션이었다. 곤란한 사건 전문. 그걸 해결해서 일종의 루트를 만드는 것.
‘내가 게임 공략을 한 번도 안 해 본 인간인데 변호 공략이라니.’
기가 막혀서 말이 안 나온다. 그렇다고 안 할 수도 없는 노릇.
“그럼 어쩌실 생각입니까? 저쪽에서는 방어를 아주 든든하게 하고 있는데요.”
“그렇지요.”
이런 사건이 다른 사건과 다른 점. 다른 사건의 경우 우발적이라든가 아예 범행 후의 은폐, 뒤처리를 하려는 것이 많다.
하지만 이 사건은 애초에 소송전을 벌일 걸 예상하고 그 소송에서 승리하기 위해서 짜 둔 함정이기 때문에 다른 사건보다 훨씬 난이도가 높다.
“일단 몇 가지 확인을 좀 해 봐야겠습니다. 고문학 팀장님, 해당 사건의 피해자들을 좀 알아볼 수 있을까요?”
“뭐, 어렵지는 않지요. 한번 알아보겠습니다.”
“부탁드립니다.”
노형진은 다시 사건 기록으로 시선을 돌렸다.
“남 변호사님, 아니 신참도 아니고 왜 남 변호사님이 나선 겁니까?”
스킬을 전수하기 위해, 노형진이 사건에 나서면 보통 다른 변호사 한 명이 도와주는 경우가 많다. 그리고 대부분 신참이 그런 역할을 한다. 그런데 신참도 아니고 한참 선배, 그것도 스킬이 없는 것도 아니고 자신만의 스킬이 완성된 남상주 변호사가 스스로 나서서 끼어들었다는 것이 의외였다.
“음, 아이돌을 좋아해서?”
“아이돌을 좋아하는 게 아니라 자기 아이를 좋아하는 나이시잖아요?”
“하하하.”
물론 삼촌 팬이라는 말도 있지만 아직은 그런 게 인정될 시대가 아니다. 더군다나 삼촌 팬이라고 해도 유명 걸 그룹이나 그렇지, 이 경우는 데뷔도 제대로 안 한 아이 아닌가?
“뭐, 그냥. 이런 사건들이 더 벌어질 것 같아서 말이지.”
“무슨 말씀이신지?”
“우리에게는 미다스의 손인 자네가 있지 않은가?”
“끄응…….”
그러니까 이런 사건이 더 들어올 것 같으니 아예 제대로 배우겠다는 뜻이다.
“그리고 이런 건 아무리 봐도 신참들이 해결하기에는 좀 역부족인 것 같아서 말이지.”
“그건 그렇지요.”
아무리 노력한다고 해도 안 되는 것. 그건 연륜이다. 더군다나 이런 사건, 즉 아예 고소가 들어올 것을 가정하고 방어 방법을 만들어 놓은 사건의 경우에는 더욱더 변호사의 연륜이 중요하다.
“비슷한 사건들은 연식이 있는 사람들이 담당하는 게 좋을 거야.”
“그럴 겁니다.”
노형진 역시 그 말에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래, 노 변호사, 뭐부터 할 건가?”
“글쎄요……. 기본적인 건 남 변호사님도 아실 테니 의미가 없고.”
자신이 할 수 있는 다른 걸 찾아내는 게 우선일 것 같았다. 그렇게 한참 지나자 노형진은 재미있는 생각을 했다.
“우리 설문 조사를 한번 해 볼까요?”
“설문 조사?”
“네.”
다짜고짜 방송국에 찾아간 두 사람. 그 때문에 방송국 경비는 크게 당황스러워했다.
“재판을 위해 협조를 요청한다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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