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the law RAW novel - Chapter (963)
자신의 미래를 위해서 비밀을 들고 나오는 녀석들도 적지 않고, 최측근으로 일하다 보면 자연스럽게 더러운 부분을 볼 수밖에 없으니 말이다.
“그러니까 그걸 내놓으신다면 당신을 살 수 있습니다.”
“······.”
소규한은 침을 꿀꺽 삼켰다.
‘이걸 까발린다면······.’
성화의 보복이 들어올 것이다.
그러나 말하지 않는다면 당장 망할 것이다. 그 후에 성화가 자신을 보살펴 주면 좋겠지만······.
‘그럴 리 없지.’
지금도 버려졌다.
기업의 세계에서 효용성이 다한 도구는 버려지기 마련이다. 그리고 인간은 그저 도구일 뿐이다.
“전 이만 가지요.”
그런데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는 노형진.
소규한은 엉겁결에 그를 말렸다.
“자, 잠시만요. 벌써 가실 필요까지야······.”
자신도 모르게 존댓말을 하고 있었지만 그는 전혀 의식하지 못했다.
“당신만 있는 게 아니니까요.”
“뭐라고요?”
“당신만 당하는 게 아니라는 것쯤은 알고 있을 텐데요?”
“······.”
자신을 포함해서 성화에서 나온 열 명. 그들이 똑같은 처지에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다.
순간 그의 머릿속이 복잡해졌다.
‘그러고 보니 내가 의리를 지켜도 그 새끼들 중 한 명이 떠벌리면 의미가 없잖아?’
그러면 자신은 망하는 거고 인생은 끝장나는 거다.
‘김 이사는? 의리를 지킬까? 확실히 과묵한 타입이기는 하지만······. 박 이사 그 녀석은? 아니, 그러고 보니 최 이사가 있잖아? 그 새끼는 분명히 떠벌릴 텐데.’
사람이 열 명이 있으면 그중 한 명은 켕기기 마련이다. 그리고 그게 켕기는 순간 믿음은 박살이 난다.
남이 떠벌려서 자신이 망하게 생겼다면 차라리 자신이 떠벌려서 자신이 살아남는 것을 선택하는 것이 인간의 본성.
“말하겠습니다, 제가 본 모든 것을.”
“단순히 말하는 것만으로는 곤란한데요? 대한민국은 법치주의 국가라서요.”
“즈, 증거도 있습니다.”
힘겹게 말하는 소규한. 노형진은 그런 그를 보면서 다시 몸을 돌렸다.
“자, 그러면 이야기를 들어 볼까요?”
* * *
“자네는 악마야.”
“하려면 깔끔하게 해야지요.”
“깔끔? 이 증거들이 무슨 의미인지 아나?”
성화전자에서 나온 이사들은 살기 위해서 비밀을 까발렸다. 그리고 자신들이 들고 있던 증거 역시 내밀었다.
그 증거는 무서울 정도였다.
“아무리 재벌이라고 하지만 이 정도면 5년 이상 안 나올 수가 없어.”
“그래 봤자 대법원 가면 집유로 나올 텐데요, 뭘.”
일단 1심에서는 언론을 타고 시끄러우니 처벌하고, 시간이 지나 좀 잠잠해지면 집유로 풀어 주는 것이 대한민국 재벌에 대한 법률구조다.
그것도 안 되면 대통령이 사면으로 풀어 주고.
“그래도 그렇지.”
뇌물 정도는 아무것도 아니다. 이득을 위해서 폭행을 사 주하고 불법적으로 협박하고 심지어 로비해서 중소기업을 망하게 하기까지 했다.
그중 하나는 어떤 제품에 대한 비밀이었다.
전 세계에서 독일만 제작이 가능한 물품이었는데 중소기업이 그걸 개발했다.
철저하게 기밀로 개발해서 성공했는데, 화재로 인해서 모든 자료와 증거가 소실되었다.
결국 엄청난 개발비를 감당하지 못한 중소기업이 망했다. 그게 성공했다면 매년 수백억을 벌 수 있었을 텐데 말이다.
그런데 얼마 후 성화전자가 그 개발에 성공했다고 발표하고 그 후부터 막대한 이득을 챙겼다.
“그런데 그 화재가 성화가 일으킨 사건이었다니.”
그건 유민택도 아는 사건이었다.
불을 끄는 과정에서 연구원 한 명이 사망한 사건이었기 때문이다.
만일 이 증거대로라면 화재로 증거를 지우라고 한 김두필은 실형을 면할 수가 없다, 일단은.
“한번 찔러본 게 제법 짭짤하더군요.”
노형진은 히죽거렸다.
사실 이건 전혀 생각도 안 해 보다가 혹시나 하는 마음이 들었다.
기업까지 챙겨 주는 퇴직 이사들. 과연 그들이 아는 게 얼마나 많을까 하는 호기심.
그리고 그 호기심 덕에 생각보다 더 많은 걸 알아낼 수 있었다.
“더 재미있는 건 성화전자의 중국 이전 건입니다.”
그 증거들 중에는 상당히 재미있는 것도 있었는데, 그중 하나가 바로 성화전자가 중국으로 시설을 모조리 이전한다는 것이었다.
“이 말대로라면 5년 안에 성화전자는 모두 이주하게 되어 있습니다. 계획대로 된다면 말이지요.”
“그렇지.”
“과연 이걸 납품 업체들이 알게 되면 어떻게 될까요?”
안 그래도 성화전자는 부품을 구하지 못해서 제대로 돌아가지 못하고 있다. 그나마 단가를 높여서 간신히 공급하고 있지만, 성화의 입장에서는 수익률이 상당히 떨어진 상황이었다.
“분노하겠지.”
당장 몇 년 후면 자신들은 토사구팽이 된다는 가장 확실한 증거가 눈앞에 있다.
갑자기 성화가 거래를 딱 끊으면 지금 납품 업체들은 성화를 따라서 중국으로 가든가 고사하는 수밖에 없다.
그러나 성화를 따라서 중국으로 간다고 해도 계속 이용해 준다는 보장은 없다.
중국은 더 낮은 가격으로 납품을 하려고 하는 곳들이 넘쳐 나니까.
결국 언젠가는 토사구팽된다는 것이다.
“이탈이 가속화되겠군.”
“그럴 겁니다.”
버려질 걸 좋아하는 사람은 없으니까.
“기자들이 좋아하겠군요.”
노형진은 책상 가득히 쌓여 있는 성화전자에 대한 서류를 보면서 눈을 반짝였다.
* * *
“한마디 해 주시지요!”
“방화를 사주한 것이 사실인가요?”
“사망한 연구원에 대해서 하실 말이 있습니까?”
“주가도 조작한 혐의를 받고 있는데요, 이에 대해서 할 말 없습니까?”
“성화전자의 모든 기업을 중국으로 이전하려고 한다면서요? 그럼 한국의 납품 업체들은 어떻게 되는 건가요?”
“한마디만 해 주세요!”
검찰에 출두하는 김두필은 초라한 모습으로 꾸부정하게 휠체어에 앉아 있었다.
“비키세요!”
“비켜요!”
경호원들은 그런 그를 보호하면서 검찰청 안으로 들어갔다.
기자들은 한마디라도 듣기 위해서 악다구니를 썼지만 결국 아무런 말도 듣지 못한 채로 저지당해야 했다.
“개판이구만.”
좀 떨어진 곳에서 따뜻한 커피를 들고 선글라스를 쓰고 구경하던 유민택은 혀를 끌끌 찼다.
“이걸 구경하러 여기까지 오고 싶으셨나요? 이렇게 추운데?”
“지금이 아니면 이런 구경을 언제 해 보겠나?”
“하긴 그러네요.”
성화전자는 급격하게 몰락하고 있었다.
그나마 가격을 올려 주고 안심시켜 주자 공급을 재개했던 하청 업체들이 이전 계획이 발표되자마자 벌 떼처럼 들고일어난 것이다.
버려질 게 확실하다면 미리 버리는 게 인간이다.
그들은 성화에 이전을 포기하겠다는 각서를 요구했지만 성화는 이전 계획은 없다고 하면서도 각서는 써 주지 않았고, 그 때문에 누구도 그들의 말을 믿지 않았다.
“연구소에서 연락이 왔네. 냉장고 제어 시스템이 거의 완성되었다고 하더군.”
“전자연합에서 최초로 나오는 상품은 냉장고가 되겠군요.”
“그렇겠지.”
기존의 제품은 대기업, 아니면 중소기업의 이름을 달고 나왔다. 하지만 이번에는 완전히 새로운 형태의 기업이다.
전자연합이라 불리는, 중소기업이 뭉쳐서 대규모 집단을 만든 형태.
그들은 생산을 담당하고 판매는 대룡이 담당한다.
“벌써부터 반응이 좋아.”
“그렇겠지요. 중소기업의 가장 큰 문제가 해결되었으니까.”
중소기업의 가장 큰 문제는 확실하지 않은 품질과 사후 A/S다. 한국 사람들이 대기업 물건을 좋아하는 가장 큰 이유이기도 하다.
“하지만 연합이라는 이름이 있으면 상황이 달라지지요.”
연합인 만큼 갑자기 날아갈 가능성은 없다.
설사 기업 중 한 곳이 망해도 계약에 따라서 다른 기업이 그 자재의 생산을 계속하기로 되어 있기 때문에 중소기업에서 흔하게 벌어지는, 부품이 없어서 못 고친다는 식의 일은 벌어지지 않는다.
더군다나 대기업 이름을 빼 버렸기 때문에 가격도 무척이나 낮아졌다.
“성화에는 기업들이 부품 공급을 안 하려고 해서 중국 쪽을 알아보는 모양이더군.”
“뭐, 망하지는 않을 테지만······.”
국산이 아니라 중국산이라는 이미지가 박혀 버리면 당연히 판매량은 떨어질 수밖에 없다.
‘이거, 참······ 내가 잘한 건지.’
노형진은 그렇게 말하면서도 영 찝찝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자신이 나서서 상당히 많은 역사를 바꿨지만 전자연합이라는 형태의 기업은 전혀 없었던 기업이기 때문이다.
‘거의 대룡이 망하지 않는 정도인가? 아니······ 그것보다 역사에 미치는 영향이 더 클지도.’
전자연합이 대룡처럼 자신의 통제에 따라서 정상적인 기업이 될지, 아니면 성화처럼 거대한 육식 공룡이 될지는 아직 모를 일이다.
‘결국 시간이 말해 주겠지. 미래는 이제 시작이니까.’
시간은 언젠가 답을 알려 주리라.
그렇게 생각하는 것 말고는 답은 없었다.
>6장. 알바 천국? 알바 지옥이겠지>
사람은 먹기 위해 산다는 말과 살기 위해서 먹는다는 말이 있다. 어느 쪽이든 먹는다는 행위가 인간이 살아가기 위해서 꼭 필수적인 것임은 누구도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그건 돈이 아무리 많아도 어쩔 수가 없는 것이다.
물론 과학적으로 영양소를 혈관에 투입해서 사는 것도 가능하다고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사정이 있는 사람들의 이야기지, 대부분의 사람들은 먹는다는 행동에서 기쁨을 느낀다.
그리고 노형진 역시 그런 많은 사람들 중 한 명이다.
“아뜨뜨뜨.”
뜨거운 국물을 쭈욱 들이켠 노형진은 방방방 뜨면서 어쩔 줄 몰라 했다.
“캬, 국물 죽이네.”
점심시간에 먹는 시원한 탕 하나의 맛은 사회생활을 하는 사람들의 또 다른 활력소다.
“의외네요.”
“네?”
맞은편에서 바라보던 고연미는 고개를 갸웃했다.
“아니, 맛있는 거 사 주신다고 해서 왔더니 알탕이라니?”
“맛이 없나요?”
“아니, 확실히 맛있어요.”
“맛있지요.”
이 주변에서는 소문난 알탕집이기 때문에 노형진은 흡족한 얼굴이 되었다.
특히 요즘처럼 쌀쌀한 날씨에 한 그릇 들이켜면 오후에 일하는 데 상당히 도움이 되곤 했다. 졸린 것만 빼고.
“전 비싼 걸로 사 주실 줄 알았어요. 부자시라면서요?”
“저거, 부자이기는 한데 짠돌이에요, 언니.”
손채림은 옆에서 히죽거리면서 말했다.
그리고 그 부분은 부정할 생각이 없기 때문에 노형진은 히죽 웃었다.
“비싼 게 꼭 맛있다는 뜻은 아니잖습니까? 솔직히 비싼데 맛없는 집도 많아요.”
“확실히 그렇지요. 여긴 진짜 사람이 많을 만하네요.”
그녀도 여기저기 많이 먹어 봤지만 이렇게 시원하게 알탕을 끓이는 집은 처음이었다.
“아, 시원하다.”
마지막 한 방울까지 쭈욱 들이켠 노형진은 느긋하게 몸을 기대어 앉았다.
“생각과는 다른 분이시네요.”
고연미는 신기하다는 듯이 바라보았다.
지난번 사건 이후에 고연미는 태양과의 계약을 해지했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쫓겨났다. 그리고 약속대로 새론으로 왔다.
“뭐, 다 똑같은 건 아니죠. 돈을 떠나서 전 기본적으로 서민이라고 생각하거든요.”
“서민?”
“네.”
“하지만 재산이 적지 않다고······.”
“아, 돈의 문제가 아니라 마인드의 문제지요. 저 자신이 부자라고 생각하면 과연 저는 누구를 지킬까요?”
고연미는 이해가 간다는 듯 고개를 끄덕거렸다.
나는 부자다, 그러니 나는 특별한 사람이라고 생각하는 순간 그들의 세계는 남과는 달라진다.
“서민이니 중산층이니 하는 건 정치적 단어일 뿐입니다. 사실 의미가 없죠. 말장난일 뿐이고.”
“말장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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