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the law RAW novel - Chapter (97)
“네.”
“그걸 우리 방송국에서 한다고요?”
“정확하게는 방송국에 출입하는 연예인들을 대상으로 할 겁니다.”
“아니, 무슨 설문 조사를 그렇게 한다는 거요?”
“필요하니까요.”
“거참, 안 돼요. 나가요, 나가.”
“경비원님.”
“안 된다니까요.”
“경비원 각하!”
노형진은 경비원에게 끈덕지게 달라붙었고 경비원은 절대 안 된다면서 질색을 했다. 아니, 좋은것도 아니고 방송국에서 연예인을 대상으로 설문 조사를 한다니.
“어?”
그런데 등 뒤에서 들리는 목소리.
“형진이 맞지? 노형진?”
“응?”
노형진이 고개를 돌리자 거기에는 한 여자가 서 있었다.
“누구세요?”
“누구냐니? 나 기억 안 나?”
“음…… 네…… 죄송합니다.”
“하긴. 생얼과 화장한 얼굴이 극단적으로 다르기는 하지. 나 선주야, 선주.”
“선주…… 선주……? 선주 누나?”
선주라는 말에 노형진은 깜짝 놀랐다.
“여기서 뭐 해요?”
“나? 방송국 AD야.”
AD는 쉽게 말해서 촬영을 도와주는 일종의 무대감독 같은 역할을 하는 사람이다.
“누나가요?”
“호호호, 솔직히 내가 가수를 할 얼굴은 아니잖니.”
“얼굴은 둘째치고 아직도 음치예요?”
“윽.”
선주는 그가 학원에서 공부하던 시절에 만난 소녀들, 즉 노형진의 표현을 빌리자면 작은 아씨들이라 부르던 집단의 한 명이었다. 그런데 여기서 만나게 될 줄은 생각도 못 했다.
“너 변호사 되었다는 소식은 들었는데, 어쩐 일이야?”
“아, 사실은 설문 조사를 할 게 있어서요. 그런데 아무래도 연예인들, 특히 가수들 쪽에 해야 하는데 방법이 없어서 무작정 왔죠.”
“음…… 그거라면 내가 도와줄 수 있을 것 같은데.”
“그래요?”
노형진은 의외였다. AD가 일반 직원보다 높은 직급이기는 하지만 그렇다고 연예인들에게 감 놔라 배 놔라 할 정도로 높진 않기 때문이다. 그 정도가 되려면 방송 자체를 총괄하는 PD쯤 되어야 한다.
“뭐야, 그 믿음직스럽지 않다는 그 얼굴은?”
“흐흐흐흐.”
“나 말고 우리 아빠를 믿으면 돼.”
“아버님요?”
“뮤직탱크 PD.”
“엥? 방송국에 다니는 분이셨어요? 근데 왜 그런 시골에?”
“아, 모르니? 지방 순환 근무 때문에 그때는 지방에 있었던 거야.”
“그래요?”
어찌 되었건 덕분에 도움을 받을 수 있다는 사실에 노형진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뭐 씹은 듯한 표정을 하고 있는 경비원에게 손을 흔들면서 안으로 들어갔다.
잠시 후 두 사람은 안에서 선주의 아버지이자 뮤직탱크의 PD를 만날 수 있었다.
“반갑습니다.”
“반갑소, 선주 아비 되는 사람이오.”
“노형진입니다.”
“남상주입니다.”
“아, 노형진. 선주한테 많이 들었지. 위험할 때 도와줬다면서?”
“아, 네. 하하하…… 어쩌다 보니.”
“그런데 어쩐 일인가?”
아무래도 나이가 있는 데다 딸의 동생이니 그는 말을 놨으나 노형진 역시 그다지 신경 쓰지 않았다. 거들먹거리는 게 아니라 실제로 자신이 선주의 친구가 되니 한참 어른이기 때문이다.
“사실은 이러저러해서…….”
몇 마디 말을 하면서 부탁드리자 그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음…… 하긴 그게 심각하기는 하지.”
“심각합니까?”
다른 사람도 아닌 PD의 입에서 심각하다는 말이 나오자 남상주는 의외라는 얼굴이었다.
“아무래도 심각하지요. 연예인을 지망한다는 것 자체가 어리고 예쁘다는 건데. 아직 세상 물정 모르는 애들이 예쁘기까지 하니 그걸 어떻게든 이용해 먹으려고 온갖 잡놈들이 다 모입니다. 별별 쓰레기가 다 모이죠.”
“그 정도입니까?”
“한국 내 유수의 연예 기획사들 중에 조폭 자금이 안 들어간 곳이 드물 정도입니다.”
“왜요?”
“어리고 예쁜 애들이니 적당히 훈련시키다가 못 뜨면 겁줘서 텐프로 같은 데에 보내기 좋거든요.”
생각지도 못한 말에 얼굴이 찡그려지는 남상주였다.
“텐프로요?”
“네, 뭐, 자기가 원해서 가는 거라면 모르겠지만 대부분은 앨범이 망하면 그 손실을 애한테 뒤집어씌우면서 협박해서 가는 겁니다.”
그렇게 끌려간 아이는 끝내 인생이 망가진 채로 빠져나오지 못할 구렁텅이로 들어가고 만다.
“그러다 보니 아무래도 문제가 많은데 통제가 안 돼요.”
“정부에서는 대책이 없답니까?”
그 말에 그는 코웃음을 쳤다.
“그게 될 리가 없지 않소. 그런 곳에서 성 접대를 받는 주요 인사들 중에 그 정부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생각보다 심각한 문제라는 사실에 남상주는 깜짝 놀랐지만 이미 알고 있던 노형진은 별말 하지 않았다.
‘완전 개판이지, 진짜.’
회귀 전, 소송해 본 경험에 따르면 노예 계약은 기본이고 아주 대놓고 연습생을 창녀 취급을 하는 놈들도 있었다.
심지어 자신이 먼저 맛본답시고 강간하고는 질려 버리니까 이적이란 이름으로 다른 소속사에 팔아넘기는 놈도 있었다. 문제는 그렇게 사 간 녀석도 비슷한 놈이라는 것이다.
“소송도 못 합니까?”
“아무래도 조폭 자금이 들어간 곳이다 보니…….”
‘아, 내가 그 생각을 못 했구나. 일단 안전 대책부터 세워야 하나?’
이 시대에는 의외로 이런 문제에 대한 소송이 적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아직은 조폭의 영향이 강할 때이기 때문이다.
“조성민이라고 아시오? 몇 년 전만 해도 날렸는데.”
“알죠. 그러고 보니 요즘은 안 나오네요?”
“그 사람이 왜 못 나오는지 아시오?”
“……?”
조성민은 1집부터 대박이 난 말 그대로 초대형 슈퍼 가수다. 그런데 요즘은 방송 자체가 뜸하다.
“왜 그런 겁니까?”
“소속사를 옮겼잖소이까.”
“그래서요?”
“PD들의 안전을 누가 지켜 주는 건 아니니까.”
“헐.”
쉽게 말해 조성민이 소속을 옮기자 기존에 있던 기획사가 조폭을 동원하여 PD들을 협박한다는 것이다, 출연하지 못하도록.
“그뿐이겠소? 루저스는 어떤데.”
“루저스?”
루저스는 한창 잘나가는 힙합 그룹이다.
“멤버 중 한 명이 아침마다 신문 배달을 하고 있소.”
“네? 뜬 지 한참 되지 않았나요?”
“잘되면 뭐 합니까, 돈을 만지지도 못하는데?”
생각지도 못한 말에 남상주 변호사는 깜짝 놀랐다. 이렇게까지 개판인 경우는 처음이었기 때문이다.
“아니, 왜요?”
“노예 계약 때문이죠. 보통 아무리 가수가 떠도 소속사에서 투자비 회수 명목으로 짧게는 2집, 길게는 3집까지 땡전 한 푼 안 주는 경우가 많아요.”
“그게 말이 돼?”
“이 바닥은 됩니다. 견제 장치가 없으니까요.”
연예 기획사들이 그 난리를 치면 견제할 수 있는 가장 강력한 집단은 역시 방송국이다. 하지만 그들로부터 성 상납이나 금품을 받는 방송국은 견제 자체를 포기했다.
“그래서 개판이죠.”
“음…….”
남상주는 생각보다 심각하다는 말에 신음성을 흘렸다. 견제가 없는 세력은 통제할 수 없기 마련이다.
‘과연 이길 수 있을까?’
지금까지의 모든 것이 일단 범죄가 성립되고 있었다. 그러나 이건 범죄지만 실상 재판에 들어가면 이권 문제가 될 가능성이 높다. 그렇다면 평소 로비한 사람들이 승리하기 마련이다.
“뭐! 진다고 생각하면 아무것도 못 하잖아요. ‘구더기 무서워서 장 못 담그냐.’라는 말이 있듯이 말입니다.”
“하긴 자네 말이 맞군. 그런데 도대체 그 설문 조사라는 건 뭐에 쓰려고 하는 건가?”
“다 쓸데가 있답니다. 후후후.”
“생각보다 쉽게 설문 조사를 했네요.”
다른 사람도 아니고 음악 프로의 PD가 여론조사를 부탁하자 거절하는 사람은 없었다. 더군다나 나쁜것도 아니고 자신이 생각하는 대로 쓰라고 한 것이기 때문에 다들 기꺼워하면서 조사에 응해 줬다.
“그게 쓸데가 있는 건가?”
“네.”
남상주는 도대체 왜 여론조사를 한 건지 알 수가 없었다. 더군다나 대상인 코모리엔터테인먼트에 대한 것도 아니다.
“그날 가서 보시면 압니다. 그다음은 술 한잔하러 가죠.”
“술?”
“네.”
“아니, 자네는 술 별로 좋아하지 않지 않나?”
노형진이 술을 못 먹는 건 아니지만 술을 먹고 자기 통제에서 벗어나는 걸 끔찍하게 싫어하는 타입이라 피치 못할 경우가 아니라면 술을 마시지 않는 타입이다. 그런데 술을 먹으러 가자니?
“엄밀하게 말하면 남 변호사님이 술을 마시고 전 이야기를 하려는 거죠. 후후후.”
“도대체 어디로 가려고 하는 건가?”
“따라와 보시면 압니다.”
남상주는 노형진을 따라서 어떤 가게로 향했다. 그리고 무척이나 놀랐다.
“룸살롱 아닌가?”
“네.”
“여기는 도대체 왜 온 건가?”
“만날 사람이 있어서 왔습니다.”
“이렇게 이른 시간에?”
“안 그러면 못 만나거든요.”
노형진은 안으로 들어갔고 그곳에서 한 여자를 불렀다.
“연주랑 태희를 불러 주세요.”
“알겠습니다.”
웨이터는 바로 나갔고 얼마 후 안으로 두 사람이 들어왔다.
“연주예요.”
“태희예요.”
“반갑습니다. 새론 법무법인의 노형진 변호사입니다. 이쪽은 남상주 변호사입니다.”
“네?”
두 사람은 고개를 갸웃했다. 물론 손님 중에는 변호사들도 많다. 하지만 대부분 거들먹거리면서 자신들을 무슨 성 노예 취급을 하지, 이렇게 정중하게 자신을 소개하지는 않는다.
“두 분, 김광준 사장에 대해서 아시죠?”
그 순간 두 사람의 눈에서 놀라움과 증오가 스치고 지나갔다.
“우리를 어떻게 찾아오신 거죠?”
“사람 찾는 거야 잘하는 사람들이 있지 않습니까?”
그 말에 두 사람은 말을 못 했다. 실제로 돈을 떼먹고 도망가는 여자들을 끌고 오는, 전문적으로 사람들을 찾는 사람들이 있기 때문이다.
“갚는다고 하세요. 이렇게 와서 깽판 치지 않아도 갚습니다.”
연주는 표독스러운 얼굴이 되었다. 노형진은 그런 그녀를 진정시켰다.
“자자, 진정하십시오. 우리는 그들이 보낸 거 아닙니다. 도리어 반대죠. 두 분이 당하는 것과 똑같이 당하는 사람이 소송 중입니다.”
“하아.”
그 소리를 듣고 태희는 한숨을 쉬었다.
“그거랑 무슨 관계죠? 설마 그 재판에 나와서 증언이라도 해 달라는 건가요?”
“네.”
그 말에 얼굴에 썩소가 올라가는 연주.
“그래서 무슨 소용이 있다는 거죠? 저나 태희나 무려 15억을 갚아야 하는 처지입니다. 그것도 매년 20%의 이자로 말이죠. 평생 이렇게 살다 죽어야 하는데 당신을 도와줘 봐야 불리할 뿐이지, 좋을 거 하나 없는데요?”
이 두 사람은 김광준 사장에게 벌써 사기당했던 사람들이었다. 결국 돈을 갚기 위해서 이런 곳까지 끌려왔다. 그들이 갚아야 하는 돈은 15억.
매년 20%의 이자만 하더라도 1년에 2억이 넘는다. 아무리 룸살롱에서 일한다고 해도 녹록치 않은 돈이다. 더군다나 지금은 어리고 예뻐서 인기라도 있지, 나이 먹고 퇴출된다면 죽는 수밖에 없는 것이다.
“우리는 어차피 재판에서 졌습니다. 우리가 할 수 있는 건 없는 것 같네요.”
별로 도와주고 싶은 생각도 없다는 투로 말하는 연주. 그리고 말은 하지 않았지만 그다지 관심 없어 보이는 태희.
“압니다. 그럴 거라고 예상했지요. 하지만 그렇기 때문에 여러분들은 저를 도와줘야 합니다.”
“왜 그런지 말해 보시죠.”
노형진은 물로 목을 축이고는 천천히 입을 열었다.
“지금 제가 담당하고 있는 사람은 여러분과 똑같은 방식으로 당했습니다.”
노형진은 고문학에게 이야기해서 사장이 패한 사건이 아닌 사장이 승리한 사건에 집중해 달라고 했다.
보통은 패배한 사건에 집중하지만 전과를 달았다는 것은 제대로 작전이 들어가기 전에 형사처벌을 받았다는 것이니 지금의 자신에게는 도움이 되는 정보가 적다.
하지만 패배한 사람들은 다르다. 손해배상 규모의 특성상 아마도 노예나 마찬가지인 삶을 살고 있을 게 뻔하다.
“그래서요?”
“다시 말해서 이번 사건에서 저희가 승리한다면 녀석은 똑같은 방법은 못 쓴다는 뜻입니다.”
“누차 말하지만 우리랑 상관없는 소송이라니까요. 우리는 재판에서 졌습니다.”
“재판은 뒤집으면 됩니다.”
“항소 기간도 지났어요.”
태희는 포기한 듯 말을 꺼냈다. 노형진은 그런 그녀를 바라보았다.
“항소가 아니라 채무 부존재 소송이라는 게 있습니다.”
“채무 부존재 소송?”
“잘못된 정보로 잘못된 판결을 내린 경우라면 채무 부존재 소송이 가능합니다. 그리고 그 잘못된 판결을 뒤집기 위해서는 두 분의 도움이 필요합니다.”
그 말에 두 사람의 눈꼬리가 파르르 떨렸다.
“그러니까 당신이 소송에서 이기면 그걸 증거로 삼아서 채무 무슨 소송을 하면 더 이상 돈을 갚을 필요가 없다는 건가요?”
“없는 정도가 아니라 준 돈도 다시 돌려받을 수 있습니다.”
“진짜로요?”
“네, 두 분, 얼마 정도 됩니까?”
“…….”
“저도 이런 삶이 어떤지 알고 있습니다. 말씀하세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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