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the law RAW novel - Chapter (976)
* * *
다음 날 법원 앞에 있던 플래카드의 내용이 바뀌었다.
처음에는 3억이라고 쓰여 있었는데 그 플래카드에 천을 덧대어서 숫자 3을 가리고 2억 5천이라고 고쳐 써 넣은 것이다.
“그 아저씨, 죽을 맛이겠네.”
노형진이 들어갈 때와 나갈 때 분명히 수갑을 봤다. 그리고 다음 날 갑자기 2억 5천으로 줄어든 금액.
“똑똑한 개인이라면 날 의심하겠지만 말이야, 집단적 광기는 때로 무척이나 멍청하거든.”
상식적으로 받아 갔다는 티를 내기 위해서 플래카드의 숫자를 줄이는 사람은 없다. 그러니 조금만 의심한다면 누군가는 알아차릴 것이다.
그러나 배신자라는 낙인이 가진 힘은 어마어마했다.
“우리는 기다리면 되는 거야.”
“헐.”
“그나저나 이제 경찰에 잠깐 들를까?”
노형진은 씩 웃었다.
* * *
그들의 단단한 공조는 사소한 곳에서부터 무너지기 시작했다.
접대라면 당연히 이루어져야 하는 것. 그것부터 말이다.
의리고 뭐고 없는 것이 현실이니까.
“확실한가요?”
“그럼요.”
눈앞에서 다리를 꼰 자세로 앉아 있는 여자를 보면서 노형진은 다시 물었다.
“그 당시에 그 가해자 측 변호사라는 녀석하고 판사하고 같이 왔어요.”
그녀는 술집에서 일하는 여자였다.
술집에서 일한다고 해서 그냥 호프집은 아니었다. 속칭 ‘나가요 걸’.
그런 그녀가 가장 먼저 정보를 들고 찾아온 것이다.
‘당연하다면 당연한 건가.’
불법적이고 사회적으로 좋은 소리를 듣지 못하는 직업이다 보니 아무래도 자신과 연고가 없는 곳에서 일하는 것이 저쪽 업계의 룰이다.
이는 다시 말하면 여기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다는 뜻이다.
그녀는 돈만 받아서 다른 동네로 뜨면 그만이다. 그러니 그녀의 입장에서는 거리낄 게 없었다.
“처음에는 몰랐죠. 하지만 이번에 거기서 이야기하는 걸 들어 보니까 알겠던데요?”
히죽 웃은 여자.
그녀는 자신이 받을 보상에 대해서 잔뜩 기대하는 얼굴이었다.
“증거는요?”
“증언으로는 안 되는 건가요?”
“아무래도요. 같은 업소 사람들이 한꺼번에 증언한다면 모르지만, 저쪽에서 돈 때문에 하는 거짓말이라고 할 수도 있어서요.”
“그렇다면야 뭐.”
마치 예상이나 한 듯 지갑에서 뭔가를 꺼내 드는 그녀.
노형진은 그걸 받아 들고는 움찔했다.
그건 그녀가 찍은 셀카였다.
그녀의 옆에 보이는 남자는 헐벗은 채로 비몽사몽하고 있었고, 건너편에 있던 남자는 아예 정신이 나간 듯 소파에 누워서 잠들어 있었다.
“이건 언제 찍은 겁니까?”
“같이 일하던 여자가 바깥에 나갔을 때 찍었지요.”
“헐.”
노형진은 그 두 사람의 얼굴을 기억하고 있었다. 판사와 변호사였다.
그들은 얼마나 술을 퍼먹었는지 제대로 정신도 못 차리고 있었다.
“언젠가 쓸 만한 일이 있으면 쓰려고 했지요.”
“쓸 만한 일?”
“이쪽 동네가 텃세가 좀 심해서요.”
어깨를 으쓱하면서 말하는 그녀.
맞는 말이다.
시골이 인심이 좋다고 하지만 그건 어디까지나 동향 사람을 기준으로 하는 거고, 외부에서 온 사람들에게는 엄청난 텃세를 부린다.
실제로 낙향했다가 텃세에 시달려서 포기하고 다시 도시로 돌아오는 사람도 적지 않다.
그리고 자기들끼리 뭉치는 지역일수록 그 텃세는 더욱 심하다.
“더러워서 그만두려고 하고 있었거든요. 솔직히 잘사는 동네도 아니고 말이죠. 잘살기라도 하면 돈이라도 벌지, 그렇지도 않으면서 얼마나 거들먹거리던지. 그래서 광주나 부산 쪽으로 가 보려구요.”
마침 옮기려고 하는 와중에 제법 큰돈을 만질 수 있는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어때요? 이 정도면 충분한가요?”
“그럼요. 다만…….”
“알아요. 이미 짐 다 빼 놨어요.”
그녀가 그 지역에 남아 있으면 보복당할지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증거를 제출하려면 그녀가 여기 있으면 안 된다.
“그렇다면야.”
노형진은 그 사진을 받고 3천만 원을 건넸다.
그녀는 그걸 흡족한 표정으로 받아 들었다. 사진 한번 잘 찍어서 큰돈이 생긴 것이다.
“아, 그리고 내가 아는 녀석이 물어봐 달라고 하던데요.”
“뭘요?”
“자기 룸살롱에 접대하러 왔던 장면이 찍혀 있는 CCTV가 있는데 얼마에 살 거냐고 하던데요?”
노형진은 그녀 쪽으로 몸을 수그렸다.
“그래요? 그러면 자세한 이야기를 좀 해 볼까요?”
노형진은 웃으면서 거래를 시작했다.
* * *
집단 강간 가해자들, 사건 은폐를 위해서 배우를 협박
해당 경찰의 사건 은폐 증거 나와
당시 판사 사건 기억 안 난다고 발뺌
하나씩 들어온 증거들은 노형진을 통해서 언론사로 빠르게 빠져나가기 시작했다.
고발해 봐야 어차피 자기 사건을 자기가 조사하는 꼴이 될 게 뻔하기 때문이다.
‘언론의 힘은 강하지.’
언론에서 강하게 때리면 상부에서 조사할 수밖에 없다.
그리고 그렇게 조사하면 사건은 처음부터 조사를 새로 할 수밖에 없다.
일사부재리의 원칙으로 인해서 기본적으로는 처벌을 못 한다고 해도, 그건 어디까지나 합당한 경우에 해당한다.
만일 압력이나 로비, 기타 범죄로 사건을 은폐한 경우에는 처벌도 다시 새로 할 수 있다.
그렇게 되자 똥줄이 타는 것은 바로 범인들이었다.
“제발요.”
무릎을 꿇고 싹싹 빌고 있는 남자.
아니, 청년이라고 해야 하나?
그는 눈물 콧물을 좍좍 흘려 가면서 빌고 있었다.
그럴 수밖에 없었다.
“다시는 감옥에 가기 싫어요, 흑흑흑.”
“엄밀하게 말하면 거기는 감옥이 아니라 구치소야.”
노형진은 눈앞에 있는 남자에게 말했다.
“그리고 죄를 지었으면 가야지.”
“다시는 안 그럴게요. 다시는 안 그래요. 진짜예요.”
“누차 말하지만 다시 안 그러는 게 아니라 다시 못 그럴 거라니까.”
노형진 때문에 인생이 망가질 상황에 처하자 사람들의 반응은 세 가지로 나타났다.
하나는 법대로 하라며 변호사를 선임하는 무리.
다른 하나는 어떻게 해서는 협상해 보려고 하는 무리.
마지막 하나는 그러지도 못하고 빌기만 하는 무리.
‘그리고 내가 노리는 건 바로 세 번째 놈들이지.’
지금까지의 모든 것들이 세 번째 녀석들을 자극하기 위한 사전 작업이나 마찬가지였다.
첫 번째 타입은 집이 부자인 녀석들이다.
그 녀석들은 반성하지도 않고 자신들의 권력을 이용해서 사건을 덮었다.
두 번째 녀석들은 그래도 어느 정도 사는 녀석들.
그 녀석들은 권력은 없어도 어느 정도 돈을 주고 사건을 무마할 수 있다.
‘하지만 세 번째 녀석들은 아니지.’
돈도 백도 없는, 학교 다닐 때 소위 말하는 시다바리 처지였던 녀석들.
그리고 일진이랍시고 주먹 하나 믿고 깝치던 녀석들.
그런 녀석들은 이 상황을 타개할 수가 없었다.
“각오는 하고 일 시작한 거 아냐?”
“하지만 제 인생은요!”
“내 알 바 아니지, 네가 피해자 인생 알 바 아니었던 것처럼.”
단호하게 선을 그어 버리는 노형진의 태도에 절망이 가득해지는 녀석.
“다만 합의서는 써 줄 수 있는데.”
“네?”
“너도 알다시피 말이다, 이건 친고죄지.”
고개를 번쩍 드는 녀석.
“그러니까…….”
조용히 말하려고 하는 노형진. 그 사이로 손채림이 잽싸게 끼어들었다.
“배신하면 넌 산다는 뜻이야.”
“헐.”
노형진이 하려고 하는 말을 가로챈 손채림은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너도 그 사건에 대해서 잘 알지? 현장에 있었잖아?”
“네.”
“그리고 무슨 로비를 했는지도 대충은 알고?”
“네.”
“그걸 까발려. 그러면 우리가 합의서도 써 줄게. 그러면 넌 처벌받지 않겠지.”
“그, 그렇지만…….”
“어차피 너희, 거기서 쫓겨났잖아?”
“…….”
그 지역이 강간범을 옹호한다고 해서 모든 지역민이 그러는 건 아니다.
힘과 돈을 가지고 있는 놈들은 어쩔 수 없지만 세 번째 타입, 즉 돈도 백도 없는 녀석들은 더러운 강간범 취급 이상도 이하도 아니었다.
“어차피 취업이라도 할 수 있는 건 아니잖아? 어차피 거기서 살지도 않고.”
“그거야 그런데…….”
“그러면 네가 뭘 걱정해?”
“그건…….”
남자는 고개를 푹 숙였다. 그리고 작게 중얼거렸다.
“그러면 합의서 써 주시는 거예요?”
“물론이지.”
그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그리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저기…… 다른 애들은…….”
“다른 애들?”
“저 말고도 저랑 비슷한 처지가 된 애들이 많거든요.”
학교 다닐 때는 같이 사고를 쳤지만 이제 성인이 된 상황이다.
그리고 부모는 자식이 못된 짓을 저지르면 자기 자식이 못된 놈이라고 생각하지 않고 그 친구가 나쁜 놈이라고 생각한다.
당연히 최우선은 그들을 잘라 내는 것이다.
‘알지.’
노형진은 히죽하고 속으로 웃었다.
학교 다닐 때는 일진이랍시고 몰려다니면서 의리니 어쩌니 하지만, 학교에서 나오고 성인이 되는 순간 인간은 급이 나뉘어 상위 인간이라 생각하는 녀석들은 하위 인간들을 무시하기 시작한다.
더군다나 이런 경우는 더더욱 말이다.
‘자기 자식을 감옥에 보내기 싫어서 사건을 은폐한 거지, 저 애들이 불쌍해서 그런 건 아니거든.’
결과적으로 성인이 된 후에는 서로 다른 길을 간다.
“그 녀석들도 증언해 주면 당연히 합의해 드립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단! 선착순 열 명입니다.”
“네?”
“반성도 안 하는 녀석들을 봐줄 수는 없지 않습니까? 나중에 합의해 준다는 말에 기웃거리는 녀석은 사절하지요.”
그는 격하게 고개를 끄덕거리기 시작했다.
그가 가고 난 후 노형진은 손채림을 바라보면서 툴툴거렸다.
“아까 그거 내 대사 아냐?”
“어떤 거?”
“까발리라는 거.”
“그러니까 내가 한 거야.”
“응?”
“넌 말을 너무 어렵게 해.”
“뭐?”
노형진은 기가 찼다.
자신은 그래도 변호사치고는 상당히 말을 쉽게 하는 편이다. 대부분의 변호사들은 무슨 말을 하는지도 모르게 빙빙 돌려서 말하는 습관이 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사법연수원에서 그런 식으로 배우니 당연한 거다.
노형진이야 서민들을 대하면서 많이 쉽게 고친 거지만.
“나, 쉬운 편이거든.”
“그래도 저런 애들이 알 것 같아? 네가 돌려서 말하는 거 하나도 못 알아듣는 눈치더만.”
“응?”
“저 애들은 공부 잘하는 타입이 아니잖아?”
“아…….”
보통 사람들은 일진이라고 하면 공부 못한다고 생각한다, 바로 지금 만난 사람처럼.
물론 공부 잘하는 일진도 있다. 보통 부모가 돈이 많으면 그렇다.
하여간 그런 아이들은 제대로 학업을 배우지 않아서 약간만 난해하게 말해도 못 알아듣는다.
“그냥 대놓고 말하니까 바로 알아듣잖아.”
“쩝.”
노형진은 입맛을 다시면 고개를 스윽 돌렸다.
“뭐, 그럴 수도 있지.”
“그래서 이제 어쩔 거야?”
“응?”
“원하는 대로 내부에서 고발자가 나왔잖아. 이제 내부 고발이 시작되면 저들은 무너질 텐데.”
“뭐, 그렇기는 하지.”
노형진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이제 끝?”
“아니. 그러면 복수의 의미가 없지.”
노형진은 고개를 흔들었다.
“복수는 말이야, 내가 당한 것의 열 배는 돌려줘야 한다고. 은혜는 열 배로 원수는 백 배로 몰라?”
“하지만 어떻게?”
“기억나, 영화배우 한 명 공격당한 거?”
“기억하지.”
얼마 전에 이번 사건의 고발 영화를 찍던 여자 배우를 누군가 습격했다.
차 문을 부수고 차의 창문을 깨고 패악질을 하고는 도망갔다.
그러나 범인은 잡지 못했다.
용의주도하게, 촬영이 끝나고 돌아가는 으슥한 도로에서 습격한 데다가 차량의 번호판을 종이와 테이프로 가려 뒀기 때문이다.
“그 짓을 한 건 가해자들 중 한 명이라고 생각했잖아?”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