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the law RAW novel - Chapter (979)
“동양계 여성에 대한 주문요.”
“이런…….”
물론 동양이라고 하면 중국일 수도 있고 일본일 수도 있다. 동남아 쪽도 분명히 동양이기는 하다.
‘하지만…….’
영상에 나온 장면은 확실히 한국인이었다.
몇 시간 동안 계속된 강간과 고문 그리고 살인. 그 와중에 계속된 비명은 분명 한국어였다.
“그나저나 골치 아프군요, 이걸 수사를 어떻게 할지…….”
“수사야 뭐 방법이 없는 건 아닙니다. 문제는 의지지요.”
“의지?”
“아이피를 변환해서 파는 거야 다른 놈들도 다 하는 방법이니까요.”
주영민 검사는 고개를 끄덕거렸다.
“아이피 추적이 대표적이기는 하지만 방법이 그것만 있는 건 아닙니다. 방법이 그것뿐이면 인터넷 범죄를 추적도 못 하게요?”
“그럼 잡을 수 있나?”
김성식은 기대에 차서 물었다.
그런데 노형진도 주영민도, 얼굴이 어두웠다.
“왜 그러나? 설마 방법이 없는가?”
“뭐, 함정수사나 다른 방법이 없는 건 아니지만…….”
“아니지만?”
“노 변호사님의 말씀대로 의지가 문제가 될 것 같네요.”
“의지라니, 이런 걸 조사 안 하려 드는 미친놈도 있나?”
노형진은 씁쓸하게 웃었다.
김성식은 검사를 하고 왔다고 하지만 인터넷에 익숙한 세대가 아니기 때문에 이해를 못 하고 있는 것이다.
‘단순히 그런 문제라면 얼마나 좋겠어.’
“무슨 의미인지 말을 해 보게.”
“김 변호사님, 김 변호사님은 이런 걸 위해서 수천만 원을 내실 생각이 있습니까?”
“미쳤나?”
“아니, 아니. 질문을 잘못한 것 같네요. 진짜로 좋아하는 취미 생활을 위해서 수천만 원씩 지출할 의사가 있나요?”
“그건 무리지. 아무리 나라고 해도…… 아!”
그제야 김성식은 문제가 뭔지 알아차렸다.
“일반인은 이런 영상에 정상적으로 반응합니다. 이런 것으로 흥분하는 녀석들은 미친 것도 미친 거지만, 사소한 자극에는 반응 안 하는 경우도 있지요.”
“설마…….”
“설마가 아닙니다. 저도 스너프 필름에 대해서는 알고 있습니다. 미국에 연수 갔을 때 들었지요.”
주영민 검사는 심각한 얼굴로 말했다. 그도 아예 모르지는 않았던 것이다.
비록 직접 본 건 처음이고 또 수사를 해야 하는 것도 처음이지만, 미국에 연수 갔을 때 그 수사와 관련된 이야기를 들은 적이 있었다.
“그 당시에 그쪽에서 수사했던 사람이 이야기하더군요, 아이피나 인터넷의 문제가 아니라 그 소비자가 문제라고.”
이런 동영상을 주문하는 놈은 제정신도 아니지만 경제적으로도 만만한 놈이 아니다.
복제해서 파는 것도 1천만 원이 넘고, 아예 주문생산으로 하는 경우 억 단위로 요구한다고 한다.
“그걸 낼 수 있는 놈들이 문제인 거죠.”
그 말인즉슨 상당한 능력을 가진 자라는 것이다.
“가진 자들은 보통 이것저것 자극을 겪어 봤습니다. 그래서 사소한 것에는 즐거움을 못 느끼죠.”
“끄응…….”
“저도 미국에서 그런 소리를 많이 들었습니다, 힘들게 추적해서 잡으려고 하면 거물이라 손대지 못한다고.”
노형진은 고개를 끄덕거렸다.
“주문생산이라는 게 그냥 생긴 말이 아닙니다.”
기존에 있던 걸 그냥 복제해서 파는 놈도 있지만, 가끔은 피해자의 타입을 선정하거나 콕 집어서 누구를 해 달라고 하는 놈도 있다는 것이다.
“스너프 필름이 도시 전설로 남는 데에는 다 이유가 있습니다.”
노형진은 씁쓸하게 말했다.
대한민국에서 스너프는 도시 전설이라고 치부한다.
마치 한국에는 장기 매매 조직도 없고 인육 유통도 없다고 하는 것처럼.
하지만 이미 수차례 드러난 것처럼 모든 것이 존재한다. 다만 국가에서 인정하지 않을 뿐이다.
“눈을 돌린다는 건가.”
“네.”
인정하고 싶지 않지만 그게 현실이다.
“그리고 이런 걸 주문하는 놈은 하나만 가지고 만족하지 못하니까요.”
“미국에서 한 놈이 잡혔는데 소장한 스너프 필름이 예순 개가 넘는다고 하더군요.”
노형진과 주영민 검사의 말에 김성식은 경악을 금치 못했다.
그렇다면 예순 명이 넘게 살해당했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남 말 할 처지는 아니지.’
한국에서도 비슷한 일이 있었다.
미성년자 두 명을 납치해서 강간 살해한 녀석이었는데, 그의 집에서는 일흔 개가 넘는 스너프 필름이 나왔다.
그런데 마치 전 언론이 짠 것처럼 그것에 대해서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도시 전설이라…….”
앞으로의 수사가 쉽지 않을 거라는 생각에 모두들 침묵을 지킬 수밖에 없었다.
* * *
“신분이 나왔습니다.”
얼마 뒤에 검찰 측에서 연락이 왔다, 실종자를 뒤져서 신분을 알아냈다고.
“이름은 서주희. 스물다섯 살이래요.”
역시나 한국인이었다.
“참혹하군.”
송정한은 안타깝다는 듯 말했다.
이렇게 딸이 죽었다는 사실을 안 부모들은 기분이 어떻겠는가?
아마도 세상이 무너지는 기분일 것이다.
“잔인한 말일지 모르지만…… 중요한 건 신분이 아니야. 다른 말은 없었어?”
노형진은 한숨을 쉬고는 말했다.
서주희는 죽었다.
물론 그녀가 불쌍하지 않다는 건 아니다. 하지만 더 이상의 피해자는 막아야 하지 않겠는가?
손채림은 얼굴을 찡그렸다. 노형진의 말이 맞기 때문이다.
그러나 결코 그게 마음에 드는 말은 아니었다.
“나도 잔인한 건 알아. 하지만 상황이 급하잖아. 단순 연쇄살인범과 업자는 달라.”
연쇄살인범은 자기 기준이 있다. 그러니 그 기준이 충족되면 살인을 멈춘다.
그러나 업자는 아니다. 특히나 이런 스너프 업자는 더욱더 멈출 리 없다.
“하아, 알기는 하는데…… 일단…… 서주희는 여권도 없어. 실종 당시에도 한국에 있었고.”
다들 침묵을 지켰다.
이게 뜻하는 건 한 가지뿐이기 때문이다.
“소문이 사실이군.”
이수종이 했던 말. 한국에 스너프 제작 업자들이 들어왔다는 소문.
그게 사실이었던 것이다.
그렇지 않다면 국내에만 있는 피해자가 당할 리 없으니까.
“망할…….”
김성식은 분노한 얼굴로 주먹을 꽉 쥐었다.
설마 이런 일이 벌어질 줄은 몰랐던 것이다.
“수사 중이기는 한데 증거가 너무 없대.”
“그렇겠지.”
영상 내에서는 위치를 추적할 만한 지표가 전혀 없었다.
신문도, 소리도 없었다. 회색의 완벽한 방.
“그리고 검찰에서는 표적이 된 것 같다고 하더라.”
“표적?”
“서주희 씨 직업이 캐디였어.”
“캐디?”
“그래. 고등학교를 졸업하고서 캐디로 바로 들어갔대. 못해도 수년간 세 곳의 골프장을 거쳤고.”
노형진은 얼굴을 찌푸렸다.
캐디라는 직업은 골프장에서 골프를 치는 사람들을 서포트하는 것이다. 당연히 부자들과 접점이 많다.
문제는 그거다. 너무 많다는 것.
그녀가 직접 서포트해 준 사람도 있을 테지만 다른 팀원이나 다른 식으로 접촉했을 사람도 많다.
더군다나 그들이 캐디에게 추근거리는 거야 일상이니 누군가 그녀를 점찍어서 주문했다고 해도 너무 숫자가 많다.
“더 이상 우리가 할 건 없나?”
송정한은 심각한 얼굴로 말했다.
“한계죠.”
자신들은 의뢰받은 상태도 아니고, 그렇다고 공권력의 지원을 받는 상황도 아니다.
단독으로 조사한다고 해서 파고들 만한 권력도 없고.
“이럴 때는 그냥 검사로 있어야 했나 하는 자괴감이 드는군요.”
김성식은 절망감을 느끼는 것 같았다.
하긴 변호사로서 더 이상 뭔가를 하는 데 한계가 있으니까.
“하면 되죠.”
“뭐라고?”
“물론 형사사건이기는 합니다. 하지만 변호사라고 해서 사건을 조사하지 말라는 법은 없습니다.”
“검찰도 조사하고 있지만 뭐가 없다고 하지 않나?”
“그건 그들의 생각이고요.”
노형진은 이를 악물었다.
“이 사건, 어떻게 해서든 해결할 겁니다. 그 미친놈을 잡을 때까지 절대로 멈추지 않을 겁니다.”
노형진은 피해자의 비명이 귀에 울리는 듯했다. 그리고 그 비명은 그 범인을 잡을 때까지 멈추지 않을 것 같았다.
* * *
그다음 날부터 노형진은 다른 사건은 모조리 미뤄 둔 채로 그 사건에 매달렸다.
며칠이 지나고 검찰과 계속 공조했지만 검찰에서는 마땅한 증거가 없다는 말뿐이었다.
아니나 다를까, 아아피는 가짜였다.
분명히 한국에서 제작된 게 뻔한데 아프리카의 람부탄이라는 도시가 주소지라니.
‘범인도 가면에 전신 타이즈를 입고 있어. 드러난 것은 성기 부분뿐이고. 조명과 카메라가 있기는 하지만 그 녀석들은 드러나지도 않은 상황이고…….’
노형진은 이를 악물면서 다시 화면을 돌렸다.
그날 이후 이 빌어먹을 영상을 몇 번이나 보는지 모르겠다. 작은 증거 하나라도 찾아내기 위해서 계속 그렇게 보고 또 보고 또 보고 있었던 것이다.
“너 미친놈 같아.”
손채림은 노형진의 사무실로 들어오면서 얼굴을 찡그리며 말했다.
“미친놈을 상대하려면 나도 미쳐야 하니까.”
노형진은 지친 듯이 이마를 손으로 짚으면서 의자에 길게 늘어졌다.
“이 망할 것은…… 몇 번을 봐도 익숙해지지가 않아.”
노형진은 눈을 감은 그 상태로 중얼거렸다.
소리도 죽이고 오로지 증거만 모으기 위해서 몇 번이고 보고 있었지만 익숙해질 수가 없었다.
이게 익숙해진다는 것은 제정신이 아니라는 뜻일 것이다.
“차라리 경찰이나 검찰에 맡겨! 거기서도 뭘 하겠지.”
“그래서 뭐가 나왔어?”
“…….”
손채림은 아무런 말도 하지 못했다.
사건을 맡긴 지 벌써 일주일이 지났다. 그러나 그쪽도 꼬투리를 못 잡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었던 것이다.
“그들을 무시하는 건 아니지만…… 솔직히 이런 걸 해결할 능력이 된다고는 못 믿겠다.”
검찰도 경찰도, 이번 정권에 들어서면서 생계형보다는 극도로 정치적인 집단이 되어 가고 있었다.
추적해서 강도를 잡기보다는 딱지나 떼면서 실적을 쉽게 안전하게 쌓으려고 하는 모습만 보여 주고 있었고, 주요 수사는 공안 검사라 하는 작자들이 모두 틀어쥐고 있었다.
“위에서도 뭐라고 한다면서.”
“하아.”
노형진의 말에 손채림은 부정하지 못하고 한숨만 쉬었다.
실제로 얼마 전 주영민 검사가 상부로부터 들은 말이, 조작된 거 붙들고 있지 말고 다른 걸 수사하라는 얘기였다. 이번 사건을 넘기라면서.
“윗선에서 이미 작업이 들어간 거야. 검찰은 이제 믿을 수가 없어.”
“아니, 도대체 왜 이런 걸 막는 거야? 진짜 경찰이나 검찰의 상부에 스너프 필름을 보는 녀석이 있는 거야? 아무리 그래도 그걸 막아? 미친 거 아냐?”
뇌물 같은 거야 누구나 다 받는 게 현실이고 서로 암묵적으로 모른 척한다는 일종의 룰이 있으니까 그걸 가지고 압력을 넣거나 할 수는 있다.
그러나 이건 절대 허용될 수 없는 범죄다. 아주 후진국도 아니고 말이다.
“봐서 문제라기보다는 인정해서 문제인 거야.”
“뭐?”
“전에도 말했다시피 경찰은 인육 유통이나 킬러가 한국에 없다고 말하고 있어. 알지?”
“알지.”
“그런데 진짜 없을까?”
이미 인육 유통에 대해서는 상당한 증거가 나왔다.
방송국에서 수사해서 인육이 제약 형태로 유통되는 것도 증거가 나왔고, 킬러의 경우는 벌써 몇 번이나 경찰에 잡혔다.
물론 개인적으로 부탁받았다고 하지만 킬러라는 게 결국 개인적 부탁 아니던가?
“사건을 은폐하고 싶은 게 아니라 시끄러운 게 싫은 거야.”
“시끄러운 게 싫다?”
“그래.”
킬러고 인육 유통이고 스너프고, 현실적으로 존재를 인정하면 여론은 박멸하라고 난리를 칠 것이다.
문제는 이 세 가지는 박멸하는 게 쉽지 않다는 것.
워낙 은밀한 데다가 조심성이 많기 때문이다.
외국에서는 그런 조직을 잡기 위해서 함정수사나 내부에 경찰을 잠입 수사시키는 경우도 많지만, 한국은 그런 게 전혀 없다. 당연히 박멸은 불가능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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