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the law RAW novel - Chapter (980)
“이 모든 게 그냥 일하기 싫어서라고?”
“공무원들의 가장 강력한 이유지. 안 그래?”
“설마.”
“설마가 아니야.”
실제로 경찰은 보이스 피싱은 절대로 박멸할 수 없다고 주장해 왔다.
그러나 모 지역의 경찰서장이 어떤 사유로 눈이 돌아서 지역을 이 잡듯이 뒤지기 시작하자 그 지역에 있는 모든 보이스 피싱 조직이 박멸되었고, 수년간 그 지역에서 관련 피해는 전무했다.
“결국은 일을 하지 않겠다는 의미지.”
스너프 필름을 가진 놈들은 존재하지 않는다는 식으로 슬쩍 주장하면 그 책임을 지지 않기 위해서 아래에서 일을 하지 않는 것이다.
“소극적 방관이라는 거야?”
“원래 그런 거야.”
대놓고 뭐 하지 말라고 하는 경우는 상당히 이례적이고 드물다.
압력으로 비칠 수도 있거니와, 또 그랬다가 도리어 의심의 대상이 될 수 있으니까.
하지만 공식적으로 뭐가 없다고 생각한다고 발표하면 아래는 그걸 핑계로 일을 하지 않는다.
‘공무원이라는 게 참…….’
실제로 미래에 부정 청탁 금지법이 만들어졌을 때 대부분의 사람들이 그걸 환영했다.
그런데 부작용이 뭐였냐면, 공무원들이 그걸 핑계로 외부로 나가서 누군가를 만나 일을 하려 하지 않았다는 것이다.
결국 정부는 그 때문에 그 가격을 상당히 올려야 했다.
돈이 생길 일이 없자 일을 안 하는 것이 공무원들의 전형적인 방식이었던 것.
“지금도 마찬가지야. 공식적으로는 아무런 의미도 없어. 그러나 위에서 존재하지 않는다고 하면 그냥 존재하지 않는 게 되는 거야.”
“자기가 일하기 싫으면 남이 하는 건 놔두든가!”
“그러면 실적이 되거든.”
노형진은 피식하고 웃었다.
“두고 봐. 이게 어느 정도 해결되면 위에서 사건을 넘기라고 할 거야.”
정식으로 사건을 배당한 것도 아니고, 인지 사건이라고 해서 범죄를 인지하고 그걸 수사하는 중이다.
그리고 관련 보고서가 올라가면 그때는 정식으로 사건이 되는데, 그때는 누구에게 배당시킬지 모를 일이다.
‘그러다가 재수 없으면 다시 도시 전설이 되겠지.’
그나마 넘겨받은 놈이 제대로 수사하면 괜찮은데, 삽질을 하거나 결탁하는 경우도 있기 때문에 노형진은 그게 걱정이었다.
“그렇다고 네가 여기에 매달리면 어쩌자는 거야? 다른 정보 팀도 있잖아.”
“이건 정보 팀이 할 수 있는 게 아니야. 뭔가 보일 듯한데…….”
노형진은 이를 악물었다.
조금만 더 조사하면 보일 듯한데 마치 안개에 가려진 것처럼 뿌연 색으로 안 보인다.
“그렇지만 네 꼴을 봐. 벌써 일주일간 집에도 안 가고 잠도 제대로 못 자고.”
보다 못한 손채림이 막 화를 내려고 하는 찰나였다.
띠리링.
다급하게 울리는 노형진의 핸드폰.
노형진은 무심결에 그걸 받아 들었다가 움찔했다.
‘이수종.’
자신이 고용한 아이이기는 하지만 반가운 건 아니다.
그 아이 성격대로라면 안부차 전화했을 가능성은 없기 때문이다.
반대로 말하면 또 전화를 피할 만한 게 아니라는 뜻이기 때문에 그는 떨리는 손으로 전화기를 받아 들었다.
“여보세요.”
-노 변호사님.
“이 시간에 어쩐 일이야?”
현재 새벽 3시다. 다른 사람은 다 자고 있을 시간이다. 그런데 전화라니.
-메일을 확인해 보세요.
“메일?”
자신의 메일을 열어 본 노형진은 움찔했다.
거기에는 대용량 첨부 파일이 하나 들어 있었던 것이다.
“설마…….”
-새로운 피해자예요.
그 통화를 듣고 있던 손채림은 얼굴이 사색이 되기 시작했다.
* * *
“…….”
동영상을 보는 시간은 짧았다.
대략 5분 미만.
그 안에서 알 수 있는 건 피해자의 얼굴 정도.
“이건 열두 시간 전에 업로드된 거예요.”
이수종은 한심스럽게 말했다.
“그런데 왜 이건 풀 영상이 아니야?”
“원래 풀 영상은 상당한 돈을 내야 해요. 지난번의 건 어떤 사람이 인터넷에서 해킹해서 얻어 낸 거지만.”
이번 건 해킹한 게 아니라 일부 영상이 올라온 것이다.
정확하게는 피해자의 얼굴과 공간만 나왔을 뿐이다.
“그럼 이건 홍보용이라는 건가?”
“그런 거죠.”
“미친…….”
스너프 필름을 팔아먹기 위해서는 그 존재를 어필해야 한다.
그러니 그걸 미리 알리고 출연하는, 아니 희생자가 누군지 알려서 구매자들을 자극하려는 것이다.
“하, 하지만…… 아무리 봐도 10대인데?”
화면 속에 나온 소녀는 대략 열네 살에서 열다섯 살 정도.
그 아이는 잔뜩 겁먹은 채로 살려 달라고 울고 있었다.
그러나 동영상 내에는 그녀가 우는 것 말고는 아무것도 찍혀 있지 않았다.
“미친놈들이 나이를 따질 것 같아?”
노형진은 피곤한 눈을 비비면서 말했다.
아무리 피곤하다고 해도 이 사건을 멈출 수가 없었다.
“벌써 두 번째 희생자야. 소문이 날수록 희생자는 기하급수적으로 늘어나겠지.”
노형진은 정신이 멍했다. 눈에 보이는 것도 없이 흐릿할 정도였다.
“이미 실종자를 찾기 시작했으니…….”
“실종자가 누군지가 중요한 게 아니잖아? 지금 어디에 있는지, 어떤 상황인지 모르는 게 중요한 거지.”
어쩌면 지금은 살아 있을지도 모른다. 어쩌면 아직 도움을 바랄지도 모른다.
그렇다면 저 아이를 구해 줄 시간이 있다.
‘하지만…….’
누구도 그 이상 말하지 못했다.
똑같은 공간에서 똑같이 진행되고 있는 일이다. 그런데 지난번에는 아무것도 없었다.
“수사가 진행된 건 없습니까?”
“애석하게도요. 그런데 위에서 어떻게 알았는지 사건을 넘기라고 하더군요.”
노형진은 얼굴을 찌푸렸다.
자신의 예상대로 되어 가고 있었기 때문이다.
“공안인가요?”
“네.”
위에서는 공안 검사에게 넘기라고 했다.
공안 검사는 상당히 정치적인 인간이다. 그렇다면 의미하는 것은 두 가지 중 하나다.
“사건을 덮든가 실적을 빼앗든가, 목적은 둘 중 하나겠군요.”
사건을 덮고 싶다면 자신의 말을 듣는 사람에게 배당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다.
아니면, 사건에 진척이 있다면 그걸 빼앗아서 승진시켜 주고자 하는 공안에게 배당시켜 주든가.
“아무래도 전자는 같습니다.”
“전자?”
하긴 당연하다면 당연한 거다.
지금 아무런 조사 결과도 나온 게 없는데 실적을 탐할 수는 없으니까.
“잠깐 말을 섞었는데 대놓고 도시 전설을 파고들어 봐야 좋을 게 없다는 투로 말하더군요.”
“넘겨받을 사람이요?”
“네.”
“끄응…….”
이미 그는 수사의 방향을 정한 것이다. 그리고 결과에 맞춰서 수사를 하게 될 것이다.
과거 2차대전 당시에 독일 과학자들이 아리아계의 우수성을 입증하는 데에 맞춰서 연구한 것처럼 말이다.
“그래서 못 넘긴다고 했습니다.”
“조작이라…….”
노형진은 과연 누가 덮으려고 하는 건지 의심이 들었다.
‘젠장…… 누군지도 모를 녀석인데…….’
결국 누군가 스너프의 진실을 아는 녀석, 아니 그 스너프를 가지고 있는 녀석이 중간에 끼어 있다는 소리였다.
“정치적인 부분은 제가 알아서 하겠습니다. 그쪽도 상당히 힘을 쓰려고 하는 모양이지만 저도 백 하면 적지 않게 있는 놈입니다.”
주영민 검사는 김성식을 염두에 두고 자신 있게 말했다.
‘하긴.’
김성식 변호사 정도면 상당한 백이고 그를 통하면 더 위쪽으로도 올라가니까.
“그쪽 공격은 제가 막을 수 있으니 노 변호사님은 이 문제에 집중해 주셨으면 합니다. 솔직히 저희 쪽에서는 답이 안 보입니다.”
“국과수 쪽에 맡겨 보셨어요?”
“네. 그런데 우선순위에서 밀렸습니다.”
“미친!”
물론 국과수도 일거리가 많아서 난리인 것은 안다.
하지만 이런 걸 가장 우선 조사해 줘야 다른 사람들이 피해를 안 입는다. 그런데 우선순위에 밀렸다니.
“아마도 일종의 언질이 갔겠지요.”
가진 것은 동영상뿐인데 그걸 분석해 줘야 그나마 증거가 나온다. 그런데 그마저도 막혀 버리다니.
“뭐, 싸우려면 싸울 수도 있지만 솔직히 분석해도 뭐가 나올 것 같지도 않고요.”
주영민 검사는 고개를 흔들었다.
수많은 경험이 있었지만 이런 식으로 사방이 완벽하게 막혀 있는 곳에서는 영상을 분석해서 뽑아낼 수 있는 정보에 한계가 있다.
“있는 거라고는 저 망할 공간이 전부이니…….”
“젠장! 이 망할 공간에 뭘 어쩌라는 거야!”
노형진은 절로 탄식이 나왔다.
완벽하게 가려진 공간이다. 보이는 것은 오로지 회색의 벽뿐.
무슨 정보라도 좋으면 있으련만 아무런 정보도 없었다.
“놈들도 자신이 있는 거야.”
송정한은 이제는 알겠다는 듯 말했다.
“뭐가요?”
“우리가 자신들을 잡지 못할 거라는 걸 말이야.”
“큭…….”
맞는 말이다.
아무런 물건도 없는 상황에서 뭘 어떻게 찾으란 말인가?
“공간…….”
노형진은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았다.
공간.
저들이 있는 공간…….
아무것도 없는 회색의 공간.
마치 그 공간에 자신이 갇혀 있는 느낌이었다.
‘머리가 굳었나…….’
어쩌면 손채림의 말이 맞는지도 모른다.
본다고 해서 알게 되는 것도 아니고, 증거도 없이 계속 봐 봐야 자신에 대한 고문이 될 뿐이다.
‘공간이…….’
의자에 기대어 멍하니 천정을 바라보던 노형진.
그는 그다음 순간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왜 그러나!”
“공간! 씨발! 내가 왜 그 생각을 못 했지?”
“무슨 소리야, 노 변호사? 방법이 있는 건가?”
“한 가지 가능성이 있습니다.”
지금까지 한숨도 자지 못한 것이 마치 거짓인 것처럼 노형진의 눈이 활활 불타오르기 시작했다.
* * *
노형진은 바로 주영민 검사와 함께 대학을 찾았다.
주영민 검사는 별로 탐탁지 않은 얼굴이었지만 스스로도 한계에 부딪혔다는 생각을 해서 그런지 순순히 노형진의 방법에 따랐다.
그들을 만나 영상을 본 교수는 기겁했다.
그나마 피해자와 가해자를 모자이크로 처리했는데도, 그는 당장이라도 토할 것 같은 얼굴이었다.
“피해자와 가해자에 대해서는 신경 쓰지 마세요. 중요한 건 공간입니다.”
노형진은 이글거리는 표정으로 말했다.
“배경에 보이는 공간에 대해서 뭐든 좋으니 정보를 말해 주세요.”
“노형진 변호사라고 했나요? 내가 아무리 토목공학과 교수라고 하지만 구조물을 보고 주소를 알아내지는 못해요.”
고개를 흔드는 교수.
하지만 노형진이 원한 건 주소가 아니었다.
“주소가 아니라 저 장소를 특정할 수 있는 다른 정보에 대해서요! 콘크리트의 특성에 대해서 논문 쓰셨잖아요?”
“그거야 그런데…….”
“그러니까 저 공간을 이루고 있는 콘크리트에 대해서 특징을 잡을 게 없을까요?”
“콘크리트라…….”
누구나 피해자와 가해자에 대해서나 신경을 쓰지, 공간 자체를 이루고 있는 회색의 벽에 대해서는 신경을 쓰지 않는다.
하지만 전문가의 관점에서 봤을 때에는 달라 보일 수 있다는 것을 노형진은 생각해 낸 것이다.
“오로지 벽만 보세요. 다른 것도 필요 없습니다. 벽만.”
하얀 종이로 피해자가 나오는 모니터 부분을 가린 노형진.
소리도 끄고 오로지 벽만 표시되게 만들었다.
“벽이라…….”
교수는 고개를 끄덕거리면서 뚫어지게 바라보았다.
그리고 한참이 지나서 조금씩 정보가 나오기 시작했다.
“이상하군요.”
“뭔가 알아내셨습니까?”
“화면상에서 보면 하얀색의 침전물이 흘러나오는데…….”
“그거야 흔하게 보이는 건데.”
“정상적이라면 나오면 안 되는 겁니다.”
원래 콘크리트는 모래와 자갈 그리고 시멘트를 일정량 섞어서 만든다.
“그때 제일 중요한 것은 모래입니다.”
“모래?”
“네. 사람들은 그냥 쉽게 모래라고 생각하지만, 모래는 엄밀하게 말하면 염분이 없어야 해요. 염분이 들어 있으면 시멘트가 부식되면서 저런 현상이 벌어지니까.”
그래서 제일 좋은 모래는 강모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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