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is the law RAW novel - Chapter (999)
>1장. 얼굴 두께 30밀리미터>
“대한민국의 법은 진짜 잘못되어 있다니까.”
친구를 만나서 술을 마시다 보면 별별 이야기를 다 하기 마련이다.
그런데 노형진이 변호사라는 특성상, 가장 많이 듣는 말이 바로 법에 대한 분노였다.
“현직 변호사한테 할 말이냐?”
“현직 변호사라서 하는 말이다. 넌 우리나라 법이 멀쩡하다고 생각하냐?”
“그렇지는 않지.”
노형진은 씁쓸하게 말했다.
그 자신도 느끼는 거지만 대한민국의 법은 그다지 잘 만들어진 것은 아니다. 철저하게 무전 유죄 유전 무죄에 기반을 뒀다고 봐도 무방하다.
물론 극단적으로 잘못 만든 것도 아니기는 하지만.
‘문제는 그걸 집행하는 놈들이지.’
5천 원을 훔치면 실형이고, 300억을 훔치면 집행유예.
이게 대한민국의 기본적인 법적 시스템이다.
돈이 많을수록 법을 피해 갈 수 있는 구멍이 많아지는 것이다.
“아무리 그래도 그렇지, 이건 아니지.”
“도대체 뭔데? 얌마, 그래도 친구 사이에 설마 상담료를 내라고 하겠냐?”
노형진은 친구의 말에 피식 웃으면서 말했다.
보아하니 뭔가 물어보고 싶은 것 같은데 차마 대놓고 물어보기는 미안했던 모양이다.
“아, 씨발. 나 모욕이랑 명예훼손을 고발당했다.”
결국 노형진이 상담해 주겠다고 하자 친구는 마지못한 듯 입을 열었다.
“모욕? 명예훼손?”
“응.”
“아니, 왜? 어쩌다가?”
“아, 씨발……. 댓글 잘못 썼다가…….”
“그거면 방법이 없지. 잘못한 건 잘못한 거니까.”
아무리 노형진이라고 해도 잘못한 것까지 다 막아 줄 수는 없다.
특히나 모욕이나 명예훼손은 사람들이 모르고 하는 범죄 중 흔하게 하는 실수다.
“아, 그래도 씨발, 이건 아니지.”
“도대체 누군데? 연예인?”
“연예인? 얌마, 내가 연예인한테 악플이나 달고 다니는 그런 개새끼로 보이냐?”
술이 약간 들어가자 화를 버럭 내는 친구.
“아니면 말지, 뭘 그렇게 화를 내?”
“아, 씨발. 진짜 빡쳐서 그래.”
그리고 다시 술을 마시는 친구.
노형진은 그런 그를 보면서 고개를 갸웃했다.
이 친구가 법 없이도 살 사람은 아니라고 하지만, 그래도 최소한 기본적이 상식조차 없는 사람은 아니다. 그래서 명예훼손을 할 만한 성격도 아니고.
‘누구지?’
댓글이라고 하는 걸 보니 주변 인물은 아닌 것 같은데, 그렇다고 아무나 쫓아다니면서 악플을 달았을 리는 없고.
“누군데?”
“우상춘.”
“우상춘?”
노형진은 얼굴을 찌푸렸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게, 우상춘이면 그도 아는 사람이다.
아니, 알 수밖에 없다. 현재 대한민국에서 과연 우상춘을 모르는 사람이 있을 수가 있을까?
“그 새끼가 왜?”
우상춘은 이번에 잡혀 들어간 강간범이다.
피해자의 강간 동영상을 찍어서 신고하면 뿌린다고 협박하거나 다시 찾아가서 그걸 핑계로 재강간을 하는 등, 악질 중의 악질이었던 것이다.
그에게 당한 사람만 세 명.
“몰랐냐? 하긴, 언론사 새끼들도 이런 건 모르려나?”
“언론은 왜?”
“아, 씨발. 그 새끼가 지금 인터넷에서 자기 욕하는 사람들한테 마구 고소를 넣고 있다고.”
“그 녀석 욕 안 하는 놈도 있냐?”
“그러니까, 씨발.”
우상춘이 연쇄 강간으로 체포당하고 난 후 사람들은 그에 대한 욕을 하기 시작했다. 그러자 우상춘이 그들을 무차별적으로 고소하기 시작했다는 것.
‘이놈이 미쳤나?’
노형진은 고개를 갸웃했다.
잘못했다고 고개를 푹 숙이고 빌어도 시원치 않을 판국에 그렇게까지 마구 고발한다는 것은 반성하지 않는다는 뜻이다. 당연히 처벌도 강해진다.
‘아니지, 애초부터 반성을 할 새끼는 아니었지.’
그는 잡혀 들어갈 때부터 여자가 먼저 꼬셨다는 둥 자기는 합의하에 한 것이라는 둥 온갖 거짓말로 죄를 면하려고 했고, 증언하러 나온 피해 여성에게 꽃뱀이라면서 법정에서 소리를 지르기도 했다.
전혀 반성하지 않고 있었던 것이다.
“그런데 왜 고발을 해?”
“나야 모르지. 변호사인 네가 알지, 내가 아냐?”
“흠…….”
“아, 씨발. 그 새끼 때문에 전과 달게 생겼네.”
“걱정 마. 전과 안 달아.”
“뭐?”
“상황에 따라서 다르지만, 지금 같은 경우는 기껏해야 벌금이야.”
엄밀하게 말하면 사람들이 말하는 전과에 들어가지 않는다. 범죄 사실을 조회해도 드러나지 않고.
“그러면 그냥 있으면 되는 거야?”
“글쎄…….”
그 부분에 대해서는 노형진도 확신할 수 없었다.
그럴 수밖에 없는 것이, 친구는 그 녀석이 무차별적으로 고소한다고 했다. 그리고 그중 한 명이 친구고.
‘왜 그런지 모르지만.’
우상춘의 목적이 뭔지는 모르지만 그냥 넘어갈 일은 아닌 것이 확실했다.
그렇다면 똑같이 당하는 사람 많다는 뜻이기 때문이다.
“아마도 그 부분에 대해서는 우리가 생각 좀 해 봐야겠어,”
“뭘 또? 왜? 야, 나 변호사 수임료 없어.”
“그 부분은 걱정하지 마. 우리가 알아서 할 테니까.”
노형진은 그렇게 말하면서 고개를 갸웃했다.
* * *
“몇 개?”
“3,890개.”
“장난해?”
노형진은 회사에 와서 그 사건에 대해서 알아봐 달라고 부탁했다.
그리고 손채림이 가지고 온 소식에 어이가 없어서 기가 막혔다.
“지금도 늘어나고 있는 중이야. 지금쯤 4천 건이 넘을걸.”
“미친!”
우상춘이 고소한 모욕 및 명예훼손의 건수가 무려 4천 건을 넘어섰다는 것이다.
물론 그 정도 뽑아내려고 한다면 할 수도 있다.
한국의 인터넷을 발칵 뒤집은 사건이고, 워낙 본인이 뻔뻔하게 나서니까 사람들이 발끈할 수밖에 없었던 것이다.
기자들 앞에서 난 죄가 없다, 나를 꼬신 여자가 잘못이다 하고 당당하게 말하는 강간범이 얼마나 되겠는가?
“이놈, 완전히 미친놈인 것 같은데?”
손채림은 어이가 없다는 듯 자료를 보면서 눈을 흘겼다.
“왜 그러는 거래?”
“끄응, 난 알 것 같은데.”
노형진은 머리를 잡으면서 고민에 빠졌다.
한두 건도 아니고 천 단위가 넘어간다는 건 그 목적이 너무나 뻔했기 때문이다.
“뭔데?”
“돈.”
“돈? 아니, 고소하면 무조건 돈을 받는다고 생각해? 바보 아냐?”
‘풋!’ 하고 웃는 손채림.
하지만 노형진은 생각이 달랐다.
“보통은 그렇지.”
“보통은?”
“돈이 목적이라면 민사까지 갈걸.”
“에이, 설마.”
“설마라고 생각해?”
노형진은 씁쓸하게 웃었다.
설마라고 생각하기에는, 그의 행동이 너무나 공격적이었다.
“아니, 죄가 있어야 민사에서 돈을 받든지 하지.”
“애석하게도 말이야…… 죄는 성립돼.”
“뭐라고?”
“모욕죄와 명예훼손에 관련된 규정을 생각해 봐. 기본적인 정보라고.”
“그거야…… 아!”
손채림은 바로 노형진이 뭘 말하는지 알아챘다.
모욕죄는 상대방이 특정된 상태에서 말 그대로 상대방을 모욕하면 성립한다.
그런데 인터넷에서 소새끼, 개새끼 하는 대부분의 사람들은 우상춘을 특정해서 욕했다.
그의 신분은 뉴스로도 드러났으니 당연히 특정된 상태. 그러니 모욕죄가 성립된다.
명예훼손도 마찬가지다.
명예훼손은 허위 사실에 의한 경우도 물론 처벌받지만 본인이 공개하기 싫은 비밀을 공개하는 것도 명예훼손에 들어간다.
그리고 세상에 자기가 강간한 것을 까발리고 싶어 하는 녀석은 없다.
“하지만 언론사들은…….”
분명히 언론사들은 그에 대해서 계속 후속 보도를 하고 있다.
“그들은 언론사니까.”
언론사인 만큼 언론의자유를 보장받는다.
그리고 그들은 공익적 목적으로 사건을 알린다는 위법성조각사유에 해당되기 때문에 그들이 말하는 것은 명백한 허위가 아닌 이상 처벌받지 않는다.
“하지만 인터넷의 네티즌 같은 사람들은 아니지.”
그들은 개개인이고, 언론의자유의 보호를 받지 못하며, 또한 대부분 욕설과 인신공격을 퍼부어 댔기 때문에 공익적 목적도 성립되지 않는다.
“헐!”
손채림은 노형진의 말을 듣고는 기가 막혔다.
“아니, 왜?”
“왜겠어?”
“응?”
“생각해 봐, 돈이 얼마인데!”
한 사람당 100만 원씩만 해도 무려 40억이다. 그리고 현재도 피해자는 계속 늘어나고 있는 상황이다.
“미친 새끼 아냐?”
“미친 게 아니라 똑똑한 거지.”
어차피 그렇게 얼굴이 팔리면 세상에 나와서 먹고사는 것은 상당히 힘들 수밖에 없다.
일반적으로는 잘못했다고 하면서 얼굴을 드러내지 않기 때문에 교도소에 갔다 온 후에 이름을 바꾼다거나 하여 취업하는 경우가 많지만, 우상춘은 당당하게 얼굴을 드러내면서 도발했다.
“설마. 그런 식으로 굴면 형량이 늘어날 텐데?”
“늘어 봤자 얼마나 늘어나겠어? 우리나라가 강간에 대해서 이상할 정도로 선처하는 거 알잖아? 기껏해야 5년이겠지. 5년만 버티면 40억이 생기는 거야. 할 만한 짓거리인 거지.”
노형진은 우상춘의 계획을 알고는 구역질이 났다.
“이 새끼, 노린 것 같은데.”
“노려?”
“그래. 안 그러면 이럴 수가 없지.”
대놓고 얼굴을 공개하고, 그 후에 도발까지 했다. 일반적인 범인들이라면 절대로 하지 않을 행동이다.
애초에 경찰도 가해자의 얼굴을 공개하는 것을 꺼리는 것이 대한민국이다. 가해자를 보호한다는 이유로 피해자 부모에게 발길질하는 게 대한민국 경찰의 모습이다.
그런데 당당하게 얼굴을 드러내고 출두한다?
“아마 얼굴을 감추자고 하는데 자기가 거부한 것이겠지.”
그 행동을 보면 이 모든 것을 계획했다고 봐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그렇게 행동할 이유가 없다.
“와, 독한 새끼.”
이런 식으로 노리고 달려든 거라면 노형진의 친구도 벗어날 방법이 없다.
“물론 이런 식이면 건당 합의금은 낮아질 거야.”
“그렇겠지.”
법원도 바보는 아니다. 그러니 왜 이런 짓을 하는지 모를 리 없다.
“하지만 그래도 무죄를 선고할 수는 없지.”
그렇다면 배상금은 50만 원 선까지 떨어질 수도 있다.
하지만 그래도 20억이다. 한 사람이 한평생 떵떵거리면서 살 수 있는 셈이다.
“그럼 어쩌지?”
“일단은 사람을 모아서 대항하는 게 더 나을 것 같기는 한데.”
“대항? 우리는 의뢰를 받은 것도 아니잖아?”
“그건 그렇지. 하지만 의뢰야 문제가 안 되기는 하는데…….”
자신의 친구에게 의뢰하라고 하면 되기는 한다.
‘하지만 다른 사람들이 하려고 할까?’
무려 4천 명이다. 더 늘어났으면 더 늘어났지, 줄어들지는 않을 것이다.
그리고 변호사 의뢰 비용은 300만 원 선.
그에 비해서 싸움은 이길 가능성은 높지 않고, 어찌 되었건 배상은 해 줘야 하는 상황.
“일단은 상황을 보면서 판단해야겠다.”
현재는 기다리는 것 말고는 딱히 확실한 방법이 없어 보였다.
* * *
얼마 후 우상춘은 본색을 드러냈다.
자신이 고소한 사람들 중 형사가 끝난 사람들에게 무차별적으로 내용증명을 발송하면서 그와 동시에 민사를 진행하기 시작한 것이다.
언론에서는 후안무치의 대표적 사례라면서 대대적으로 그를 욕했지만, 그럴수록 늘어나는 것은 고소된 사람들과 피해자였다.
“와, 완전 폭발적으로 늘어나네. 하루하루 늘어나는 피해자 숫자가 어마어마해.”
형사 고발된 사람이 8천 명, 민사는 오백 명에 달한다는 기록에 손채림은 혀를 내둘렀다.
언론에서 그를 욕하고 사람들이 그를 욕할수록, 그는 탐욕적으로 더 달려들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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