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life is real estate RAW novel - Chapter (317)
외전 17화. 부동산은 인생이다 (2)
2029년 12월 31일.
새해를 맞이하기 하루 전이다.
대명은 워크플레이스 서울역 지점에 있는 대표실에 앉아서 처리해야 할 서류를 마저 보고 있었다.
염색하지 않은 대명의 머리는 제법 희끗희끗했다.
똑. 똑.
노크와 동시에 이미경 본부장이 문이 열고 들어왔다.
“대표님, 내일 몇 시까지 가면 될까요?”
“흠…. 12시까지 와요.”
“대표님, 이사 간 집은 마음에 드세요?”
“아직 어색해요.”
“곧 적응하시겠죠. 그럼, 남편 데리고 내일 갈게요. 2029년 마지막 날, 잘 보내세요.”
“이 본부장도요.”
문이 닫혔다.
대명의 집에서 하던 떡국 모임이 이제는 제법 커졌다.
대명과 10년 넘게 일한 이미경 본부장을 비롯해서 태호 선배 가족도 몇 년 전부터는 함께했다.
거기다 이번에는 이사까지 해서 겸하는 거라 벌써 며칠 전부터 구명회는 와인과 소고기를 보냈고, 전명호 대표는 호텔 셰프를 부른다고 난리였다.
10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세상은 많이 변했고, 부동산도 그 세월 동안 수없이 요동쳤다.
대명은 자리에서 일어나 대표실을 나섰다.
워크플레이스 곳곳에는 대명의 얼굴이 찍힌 포브스 매거진이 놓여 있었다.
– 가장 영향력 있는 대한민국의 기업인 1위, 기대명.
영광스러운 타이틀이었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멋쩍기도 했다.
기사는 대명과 부동산 공유 사업으로 대한민국을 넘어 세계 1위에 오른 워크플레이스를 소개했고, 대기업인 성산그룹과 현재그룹도 어쩌지 못하는 마의 인맥을 가진 인물로 그려 놨다.
거기다 대명이 가진 부동산을 언급하면서 개인으로 대한민국에서 가장 많은 부동산을 소유한 사람으로 추측했다.
또한 대명의 부동산 예측은 90% 이상 적중했다는 이야기도 곁들였다.
-2020년 이후 기대명 대표의 부동산 예측이 크게 틀린 경우는 미국 뉴욕에 대테러가 일어난 10. 10 사건 이후로 한 번도 없었다.
마치 신화와 같이 대명의 일생을 나열한 통에 대명은 민망할 뿐이었다.
대명은 주차장으로 내려왔다.
시큐리티 직원이 깍듯하게 인사를 했다.
대명도 웃으며 받았다.
서울역 워크플레이스 건물을 3년 전에 대명이 인수했다.
지난 10년 동안 대명은 공실 대란이 난 서울 곳곳의 건물을 사들여서 다양한 형태의 스타트업 기업들이 들어올 수 있는 공유 사무실로 확장했다.
회사는 사이즈를 줄였고, 온라인 위주의 사업이 강화됐다.
거기에 맞춘 공유 사무실 서비스를 제공하면서 워크플레이스는 살아남았다.
물론 이제 워크플레이스는 전 세계에 지점이 있었다. 그리고 세계 어디서나 그 지점들을 이용할 수 있었다.
대명은 차 문을 열었다.
10년째 타고 다니는 오래된 SUV였다.
다들 바꾸라고 핀잔을 주지만, 대명은 오래된 게 좋았다.
자심도 점점 오래된 사람이 되어가고 있었으니까.
대명의 차는 서울역 워크플레이스를 떠나 압구정동으로 향했다.
넷째 서진이가 태어나고 최근까지 서촌집에서 살았다.
하지만 선희의 출판사 일이 바빠지면서 단독주택에서 사는 일이 조금 버거워졌다.
서촌집은 리모델링을 해서 선희의 출판사와 감나무 재단이 같이 쓰기로 했다.
여전히 한쪽에 우뚝 선 감나무는 세월이 무색할 만큼 건강했다.
대명의 차가 아파트 주차장으로 들어섰다.
대명이 이사한 곳은 바로 압구정 현재 아파트가 재건축된 곳이었다.
한강을 접한 이곳은 50층 규모의 대단지 아파트가 가득 들어섰다.
대명은 차에서 내려 엘리베이터에 올랐다.
그리고 50층을 눌렀다.
맨 꼭대기 층이었다.
대명이 문을 열고 들어서자 제일 먼저 반기는 건 얼마 전 입양한 유기견 순돌이였다.
곧 선희의 목소리가 들렸다.
“대명 씨, 저녁 안 먹었지?”
“응. 애들은?”
“다들 할아버지댁 갔어. 거기서 자고 내일 떡국 먹으러 온대.”
다행히 부모님과 장인어른, 장모님 모두 아직까지 건강하셨다.
첫째 서희와 둘째 주원이는 대학생이 된 후에 현재는 미국에 교환 학생으로 가 있었다.
이제 남은 것은 셋째 준형이와 넷째 서진이뿐이었지만 아직 어린 서진이 때문에 집안은 정신이 없었다.
그런 녀석들이 사라지니 집안이 쥐죽은 듯 고요했다.
대명의 눈앞에 한강이 펼쳐졌다.
대한민국 최고의 입지에 들어선 최고의 아파트.
그중에서도 펜트하우스에 지금 대명이 살고 있었다.
이 뷰를 볼 때마다 대명은 자신이 이곳에 사는 것을 실감했다.
그리고 그때마다 이상하게 30년 전 대명이 회귀했던 창문 하나 없는 고시원이 떠올랐다.
모든 게 꿈만 같았다.
옷을 갈아입은 대명은 팔뚝을 걷어붙이고 부엌으로 들어갔다.
선희가 부엌에서 손부채질을 하며 저녁을 준비 중이었다.
요즘 갱년기가 와서인지 종종 열이 오른다며 얼굴에 손부채질을 했다.
“대명 씨, 전명호 대표님이 내일 셰프를 부르신다고 했는데…. 괜찮을까?”
“하지 말라고 안 할 사람 아니잖아.”
“사람 참 안 바뀌어.”
“오십 년 정도 사니까, 진짜 그렇지?”
“그러니까. 참, 내일 몇 명 정도 모이는 거야?”
“글쎄…. 가족들도 다 모인다고 했으니까 한 30명은 족히 되지 않을까?”
“다음부터 떡국 돌아가면서 먹으면 안 돼?”
“아마, 안 될걸.”
대명은 빙긋 웃었다.
이미 굳어진 행사였다.
거기다 다들 외로운 사람들이었다.
대명의 집을 모두들 친정 같이 생각했다.
“오랜만에 우리 둘이 저녁 먹네.”
“그러게. 맨날 바빠서 대명 씨 얼굴도 요즘 못 봤잖아.”
선희가 빙긋 웃었다.
선희도 흰머리가 희끗희끗했지만, 환한 미소는 여전했다.
대명이 와인을 한 병 땄다.
구명회 대표가 보낸 거였다.
“참, 수연 씨는 내일 촬영 때문에 오기 힘들 것 같대.”
“아쉽네. 우리 서진이가 연예인 본다고 기대하고 있었는데. 참, 대명 씨, 종수 씨네도 오는 거야?”
“응. 종수도 이번에 여기 아파트로 이사 왔잖아.”
“드디어 포기한 거야?”
“응. 완전히 포기했데.”
최종수는 딱 한 번만 도전해본다던 시의원을 두 번이나 도전했지만, 모두 낙방했다.
그리고 다시 서울로 돌아왔다.
어느새 차려진 간단한 저녁과 와인을 두고 대명과 선희가 마주 앉았다.
다이닝룸 창으로도 한강의 야경이 펼쳐졌다.
선희가 잠시 감상에 젖었다.
“아이들이 워낙 아파트, 아파트해서 이사 오긴 했지만 여기도 나름 괜찮아.”
“사람들이 왜 한강 보고 싶어 하는지 나도 알 것 같아. 그래도 막내까지 대학 보내고 나면 우리는 서촌집으로 돌아가는 거 어때?”
“그땐 관절 아파서 계단 못 오르락내리락하는 거 아니야?”
“그럼, 뭐 다른 좋은 집으로 이사 가지.”
“그땐 집도 좀 작은 데 살고. 신혼부부처럼 말이야.”
“좋지.”
대명은 와인을 한 모금 마셨다.
선희의 핸드폰이 연실 울렸다.
“뭐야?”
“아하, 여자들끼리 단톡방. 부석 선배가 며칠 전에 송년회하고 늦게 들어와서 예진이가 화가 단단히 났어.”
차부석은 꿈에 그리는 개인 사무실을 오픈했지만, 잘되지 않아 다시 로펌으로 들어갔다.
“성주 씨는 요즘 들어서 더 쫌생이가 됐다고 난리야. 이사 간 아파트에 새 가구 산다니까, 영수증 끊어오라고 난리래.”
김성주는 여전히 호구노노의 대표였다.
그리고 몇 년 전에 재건축된 여의도 아파트로 얼마 전에 이사했다.
“이런 얘기 나한테 해도 돼? 아니지, 내 흉은 뭘 보는 거야?”
“대명 씨 욕이라…. 너무 꼬박꼬박 저녁에 들어와서 밥 먹는 거?”
“그게 욕할 거야?”
“욕이자 칭찬이지.”
선희는 웃으며 와인을 마셨다.
“그 톡방에 또 누구 있어?”
“프렌즈 사인방이자 여의도 사인방 와이프들 모임이야.”
“선혜 씨는 암 말 안 해?”
“선거에 두 번 떨어지고, 대치동 아파트 두 개 팔아먹고 나니까 보살이 다 됐대.”
“내일 기대 되네.”
대명은 미소를 지었다.
* * *
2030년 1월 1일.
새해가 밝았다.
띵동. 띵똥. 띵동.
아침부터 연실 초인종이 울렸다.
구명회와 배준태가 제일 먼저 들이닥쳤다.
두 사람한테는 아직까지 술 냄새가 났다.
“대표님!”
“쌤! 저희 왔어요!”
“둘 다 술을 언제까지 마신 거야?”
“어제 좀 달렸죠. 간만에요. 형수님도 촬영가시고, 애들은 다 외국 가 있고 형님이 적적하다고 아주 노래를 불러서요.”
“너는?”
“우리 와이프가 애들 저 닮아서 공부 못하면 안 된다고, 방학하자마자 쿠알라룸프로 애들 데리고 어학연수 갔어요. 쌤, 저 방학 때마다 아주 기러기 아빠예요.”
배준태가 한숨을 쉬었다.
다행히 배준태는 뒤늦게 같은 업계에 있는 여자를 만나 결혼을 했다.
그리고 10평도 안 되는 작은 사무실에서 시작한 B&G는 이제 이층 건물을 통째로 쓸 정도로 성장했다.
구명회는 어엿한 성산그룹의 회장님이 됐다.
곧이어 주눅이 잔뜩 든 차부석과 김성주 부부가 들어섰다. 다들 뱃살이 두둑해졌다.
김성주는 오자마자 부엌으로 달려갔다.
“야, 나 여기서 와인 마시려고 우리 집 와인은 손도 안 댔어.”
“쯧쯧. 쫌생이짓 좀 그만해.”
김성주의 와이프 고예리는 혀를 찼다.
“난 술 못… 아니, 안 마셔.”
차부석은 아무래도 여전히 첫사랑 한예진에게 단단히 잡혀 사는 모양이었다.
전명호 대표와 선영이도 곧 도착했다.
구명회 대표와 전명호 대표는 여전히 만날 때마다 자신이 보낸 술과 식료품이 얼마나 좋은 건지 한참을 떠들어댔다.
골드미스로 사는 용산의 정혜정이 판교의 최재영과 함께 들어왔다. 두 사람은 각기 지역에서 나름 자리를 잡았다.
그리고 곧이어 이미경 본부장과 태호 선배 부부도 들어섰다.
태호 선배는 요즘 고지혈증 때문에 다이어트 한다더니 뱃살이 제법 줄었다.
“선배, 살 많이 빠졌는데요?”
“내가 오늘을 치팅데이로 삼으려고 한 달을 금주했잖아. 오늘 나 말리면 안 돼!”
“편하게 드세요.”
밖에서 대명을 부르는 소리가 들렸다.
“아빠!”
막내 서진이가 달려와 대명의 허리에 안겼다. 딸이라 서진이는 애교가 많은 편이었다.
뒤로 아버지와 어머니가 들어왔다.
곧 장인어른과 장모님 그리고 처남 가족도 같이 왔다.
처남은 신길뉴타운 아파트 산 것을 인생에서 제일 잘한 일이라며 아직도 종종 이야기한다.
“대표님!”
한선호 대표가 조석진 부부와 함께 들어왔다. 한선호는 여전히 싱글이고, 워커홀릭이다.
조석진은 강릉에서 제법 자리를 잡고 행복하게 살았다.
대명은 주위를 둘러봤다.
“이제 대충 다 왔나….”
그때, 초인종이 울렸다.
띵동.
안 봐도 누군지 알 것 같았다.
최종수였다.
대명이 문을 열자 최종수와 백선혜가 같이 들어왔다.
최종수가 가운뎃손가락으로 안경을 밀어 올리며 들어왔다.
“당최, 서울 왜 이렇게 복잡해.”
“웰컴 투 서울!”
“웰컴은 무슨… 기대명, 여전하네. 너는 왜 뱃살도 안 붙냐?”
“정치는 이제 완전히 접은 거야?”
“그래, 접었다 접었어. 나는 이제 부동산밖에 없어. 내 남은 인생 부동산에 올인할 거야! 날린 대치동 아파트 찾아야지.”
최종수는 여전히 투덜거렸다.
그 모습이 어쩐지 최우와 닮았다.
다들 모이자 진짜 잔칫집처럼 여기저기서 떡국과 와인을 먹기 시작했다.
여자들은 서로 모여서 새로 산 가구며 옷 이야기에 정신이 없어 보였다.
대명은 창가에 우두커니 섰다.
아버지가 곁으로 다가오셨다.
아버지의 머리는 이제 반백에 가까웠다.
“대명아….”
“네, 아버지.”
“[인생부동산> 말이야. 네 부탁대로 다시 연다고 공지는 했는데, 너 바쁜데 괜찮겠니?”
아버지는 5년 전 부동산 하락기에 [인생부동산> 문을 닫았다.
지난 10년 동안 대한민국의 부동산은 2020년부터 시작된 정체기를 지나 코로나19의 재유행과 미국에서 일어난 테러로 하락장을 맞이했다.
그러다 최근 몇 년 사이에 압구정과 여의도가 재건축되면서 새로운 부동산 호황기에 접어들었다.
많은 이들이 또 부동산 때문에 울고 웃고 있었다.
대명은 아버지를 쳐다봤다.
“아버지, 이제 또 사람들이 부동산에 울고 웃을 거예요. 제 조언이 필요하지 않을까요?”
“네가 워낙 바쁜데 몸 상할까 싶어 걱정돼 그러지.”
아버지는 허리를 툭툭 치며 한강을 내려다보셨다.
“아버지, 제가 빚을 진 게 있거든요.”
“빚?”
“네. 지금도 제대하고 고시원에서 눈 뜬 그날이 선명하게 생각나요.”
2002년 10월 10일이었다.
“그래, 젊은 시절 기억은 또렷하지. 몸은 늙어도….”
“그날부터 저한테는 새 인생이 주어진 거거든요. 그래서 부동산 때문에 좌절한 사람들한테 새 기회를 저도 주고 싶어요.”
“사람이 받았으면 갚으면서 살아야지. 그게 맞지.”
대명은 흘러가는 한강을 바라봤다.
그리고 회귀 전 [인생부동산>의 문을 열던 때를 떠올렸다.
그때, 그 문을 열지 않았더라면 대명에게는 이번 생도 없었다.
대한민국에서 부동산은 단지 재산이 아니었다.
부동산은 곧 인생이었다.
대명에게처럼.
– 부동산 때문에 좌절하신 누구나 [인생부동산>을 찾아주십시오.
[인생부동산> 주인 기대명 [외전 완결>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