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life is real estate RAW novel - Chapter (44)
제44화. 스카우트 (2)
2003년에도 인터넷 강의가 없는 건 아니었다.
하지만 이 시절만 해도 인터넷 속도도 느려서 인터넷으로 강의를 듣는 것 자체를 불편하게 여겼다.
대명은 맥주를 연거푸 마셨다.
어떻게 하면 태호 선배를 설득할 수 있을까.
하지만 아직 뾰족한 수는 떠오르지 않았다.
태호 선배는 학원을 차린 지도 얼마 안 됐다. 그런데 인터넷 강의까지 하자니 버거운 건 당연한 일이었다.
걷기도 힘든 사람에게 달리라는 꼴이었다.
태호 선배가 차가워진 대명의 눈을 바라봤다.
“기 선생, 자네가 일타강사고 여러모로 나를 많이 도와주는 건 잘 아네. 하지만 난 이번만큼은 잘 이해가 안 가서 말이야. 보통 일타강사들은 학원 수강이 더 돈이 되니까, 인터넷처럼 싼 값에 무한반복으로 보게 되는 강의를 선호하지 않잖아?”
“대신 한 번 녹화하면 강의를 듣고 싶은 모든 이들이 들을 수 있잖아요. 꼭 서울이 아니더라도 강원도 깡촌에서도 인터넷 선만 연결되어 있으면 목동이나 대치동의 일타강사 수업을 들을 수 있는 거라고요.”
“그렇긴 한데. 아직 우리나라 인터넷망이 그 정도는 아니잖아.”
“그건 정말 얼마 멀지 않았어요.”
“그럴까?”
태호 선배의 얼굴에는 의문이 가득했다.
“선배, 나우누리 천리안으로 인터넷 하던 게 불과 몇 년 전이에요. 그땐, 다들 핸드폰도 아니고 삐삐 들고 다녔잖아요. 그런데 지금은 어때요? 다들 핸드폰은 기본이고, 나우누리 천리안 대신 인터넷을 바로 접속해서 사용하잖아요. 한 번 물고가 트인 기술이 진보하는 것은 한순간이에요.”
“그렇긴 하지만…. 난 확신이 안 서네. 나야 자네 같은 좋은 강사가 들어와서 학원만 제대로 키워도 감사한 일이지. 사실, 사업을 확장할 여유도 없고….”
태호 선배는 말끝을 흐렸다.
“프론티어 정신, 아시죠?”
“미구 서부 개척 시대 말하는 거야?”
“그때, 아무도 서부에 뭐가 있을지 몰랐어요. 그들은 그저 저 땅에 무엇이 있을 지도 모른다는 기대감으로 달려가기 시작했는데, 거기에 바로 서부가 있었잖아요. 그런 정신 없이는 뭐든 성공하기 힘들잖아요.”
“흠…. 성공이라.”
태호 선배는 한숨을 푹 쉬었다.
“기 선생, 나는 성공이 별 게 아니라고 생각해. 물론 학원으로 자리 잡고 돈도 많이 벌면 좋겠지. 그런데 말이야. 내가 진짜 원하는 성공은 그런 게 아니야. 우리 와이프, 아이들 잘 먹고 잘 키우는 거, 그거면 돼. 만약, 내가 그 일을 시작한다면 지금도 아이들 잠자기 전에 들어가서 얼굴 보기 힘든데, 내가 아이들 커가는 거나 볼 수 있겠나?”
“…….”
대명은 한동안 말을 할 수 없었다.
대한민국의 모든 아버지들이 그러하듯 대명 역시 회귀 전에 그랬다.
아이들이 잠자기 전에 집에 들어간 기억에 손가락 안에 꼽을 정도였다.
그나마 주말은 아이들과 함께 시간을 보내려고 했지만, 시험기간이라도 겹치면 그마저도 불가능했다.
대명은 태호 선배의 마음을 충분히 이해했다.
“선배, 그래도 전 이 사업 선배랑 같이 꼭 하고 싶어요.”
“그 제안 너무 고맙지만, 내 배포가 아닌 것 같네.”
대명은 알았다며 자리에서 일어났다.
일타강사가 안 먹히다니.
씁쓸한 마음이 들었다.
대명은 택시를 잡아탔다. 평소 같으면 돈 아깝다고 잘 하지 않는 행동이었지만, 오늘 따라 집으로 향하는 발걸음이 무거웠다.
대명이 뒷좌석에 기댔다.
“고연대 구삼아파트로 가주세요.”
“네.”
택시 기사가 목동을 벗어났다.
대명이 까무룩 잠에 빠진 사이에 바지 주머니에 든 핸드폰 진동이 요란하게 울렸다.
대명은 전화기를 꺼내들었다.
모르는 번호였다.
“여보세요?”
– 기대명 선생님 맞으시죠?
“누구세요?”
– 안녕하세요. 저는 굿에듀 학원 원장 강치성입니다. 혹시 시간 되시는 날 얼굴 한 번 뵙고 싶어서요.
“무슨 일로 그러시나요?”
– 학원 원장이 목동에서 제일 잘나가는 수리영역 강사 보자는 이유가 따로 있을까요?
대명은 고개를 일으켜 바로 앉았다.
설마 스카우트?
– 주말 강의 없는 걸로 아는데, 이번 주 토요일에 저녁 같이 드시죠.
대명은 망설였다.
태호 선배를 배신하고픈 마음도 없었지만, 넋 놓고 앉아서 인터넷 강의를 놓치고 싶지도 않았다.
“좋습니다. 약속 장소 정해서 알려주세요.”
– 네, 그럼 토요일에 뵙겠습니다.
강치성은 곧 전화를 끊었다.
굿에듀는 나름 목동에서도 손가락 안에 꼽히는 큰 학원이었다. 대치동에 본원이 있었다.
강치성이 대치 본원의 원장인지 목동의 원장인지는 대명도 몰랐다. 만나보는 수밖에 없었다.
택시가 구삼아파트 주차장으로 들어섰다.
대명은 택시에서 내려 담배를 꺼냈다. 그리고 하늘의 까만 별을 올려다봤다.
2003년 여름.
원래의 대명이라면 3학년을 준비하며 편의점 알바와 한 달에 40만원 주는 과외를 번갈아하며 학비를 뼈 빠지게 벌었을 때였다.
하지만 지금 대명은 여름방학 특강료로만 천 만 가까이 선금으로 받았다.
아버지 명의도 서촌시 통천동의 집을 샀고, 자신 명의로 구삼 아파트와 성한시영아파트 두 채를 서울에 마련했다.
열심히 일한 덕분에 구삼아파트를 사면서 받은 대출도 이제 이 천 정도 남았다.
거기다 아직 일 억 정도의 여유 자금이 있었다.
대명은 담배 연기를 길게 내뿜었다.
이번 생에 돌아오면서 부쩍 담배가 늘었다.
고민이 많다는 증거겠지.
굿에듀 강치성.
그 자는 이번 생에서 대명과 어떤 인연으로 엮일까.
* * *
최종수는 아버지 최우 앞에 앉았다.
최우가 최종수를 빤히 쳐다봤다.
“뭐니?”
“아버지, 저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해봐라.”
꿀꺽.
최종수는 마른 침을 삼켰다.
“물건 하나 본 게 있습니다.”
“네가 본 거니? 아니면, 대명이가 본 거니?”
“제가 본 겁니다.”
“대명이가 아무 도움도 안 준 거니?”
“힌트는 줬지만….”
최종수는 말끝을 흐렸다.
잠실의 선수촌 아파트를 찾은 것은 사실 대명이 재개발 가능성이 있는 구축을 보라는 말 덕분이었다.
거기다 성한시영아파트처럼 공원이 많은 곳을 찾다가 찾은 거였다.
최우는 담담하게 물었다.
“그 힌트가 뭐였니?”
“부동산 호황기에는 구축이 오른다고요. 그리고 사람들은 이제 공원 같은 녹지를 중요시한다고요.”
“그래서 네가 찾은 물건이 뭐니?”
“선수촌 아파트요.”
“잠실?”
“네.”
최종수는 고개를 끄덕였다.
최우의 입꼬리가 슬며시 올라갔다.
자신의 아들이었지만, 최종수의 감각도 꽤 쓸 만했다.
‘대명이 놈 그 자슥 이야기 듣고 바로 고른 게, 선수촌 아파트라. 쓸 만하네.’
최우는 겉으론 웃음기를 거두고 아들 최종수를 내려다봤다.
“네 계획이 뭐고?”
“지금 선수촌 아파트 시세가 40평 기준 7억 중반쯤 합니다. 아버지가 도와주신다면 한 번 베팅해보고 싶습니다.”
“굴려봐라.”
“진짜요?”
최종수의 두 눈이 동그래졌다.
최우는 빙그시 웃었다.
“진짜지. 아들놈이 간만에 제대로 된 먹이 물어왔네. 이건 대명이 몫은 없는 거지?”
“네. 그렇게 말했습니다.”
“일처리도 잘 했네.”
“뭘요.”
최종수는 난생처음으로 아버지에게 칭찬을 받고 있었다.
최우는 최종수의 성장에 흐뭇하게 속으로 미소 지었다.
최종수는 곱게만 자라 영 감각이 떨어진다고 여겼는데, 대명이 같은 놈이 붙으니 경쟁하며 성장하는 게 눈에 보였다.
최종수는 분명 최우를 닮았다.
누구에게도 지기 싫어하는 성격.
타고난 부동산 감각.
최우는 한편으로 최종수에게 자신의 재산을 모두 물려줘도 좋을 것만 같았다.
드르륵.
최종수의 핸드폰이 울렸다.
최종수가 급히 핸드폰의 발신자를 보더니 껐다.
“아버지, 그럼 계약해도 될까요?”
“대신 조건이 있다.”
“뭔가요?”
“대명이가 산 물건도 따라 사봐라.”
“그건 왜?”
“적을 알아야지.”
“적이요?”
최종수는 말을 뱉고는 아차 싶었다.
누구도 믿지 마라.
그건 아버지 최우가 늘상 입에 달고 사는 말이었다.
“니, 대명이랑 피를 나눴니?”
“아니요.”
“그럼 대명이랑 평생 같이 할 거니?”
“친구잖아요.”
“친구가 밥 먹여주니?”
“그건 아니지만.”
“그럼, 됐다. 네 입에 쌀밥 든 숟가락 넣어주는 놈 아니면 다 적이야. 그게 친구든 뭐든. 알아듣니?”
“네.”
최종수는 무겁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방으로 들어갔다.
좀 전의 전화는 이미진이었다.
메시지기 와 있었다.
[오빠, 이번 주 일요일 명동 엘백화점에서 보자.] [그래.]최종수와 이미진은 연애를 시작했다.
그리고 이미진은 이제 대놓고 최종수에게 명품을 요구했다. 하지만 최종수도 그게 기분 나쁘지 않았다.
벤츠.
롤렉스.
명문대에 다니는 예쁜 여자 친구.
이걸 다 가진 자가 20대엔 최고니까.
최우는 방에 조르륵 들어가는 최종수의 뒤꽁무니를 보면서 혀를 찼다.
“쯧쯧.”
최우는 사람을 시켜 최종수의 뒤를 밟았다.
처음엔 대명이 아들 최종수에게 소개해주는 물건을 알아볼 생각이었다.
그런데 이 기대명이란 녀석이 이상한 짓을 하는 게 보였다.
여자를 소개시켜줘?
최우는 기대명이란 놈이 보통 놈이 아니라는 생각이 들었다.
아들인 최종수의 약점을 파고들었다.
‘이놈, 꼭 능구렁이 같은 게. 스무 살 먹은 놈 같지 않단 말이야.’
최우는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
아무리 집안이 못 살아도 공부만 하던 범생이가 어떻게 자기가 평생을 교육시킨 아들의 속내를 파고드는 거지?
그것을 밝혀내고 싶었다.
따르릉.
거실이 전화기가 요란하게 울렸다.
최우가 받았다.
“누군가?”
“회장님, 회장님. 저 수성제지 김 사장입니다.”
수성제지 김 사장의 목소리가 다급했다.
“회장님, 담보로 맡긴 땅이요. 제가 이번 달 안으로 어떻게든 돈 마련해볼게요. 제발, 제발 시간을 주십시오.”
뚝.
최우는 전화를 끊었다.
더 들을 필요도 없었다.
갑질 논란에 휩싸인 수성제지는 안 그래도 나빠진 재정에 악화일로를 걷다가 부도 위기에 놓였다.
담보로 잡힌 수성제지의 알토랑 같은 공장 부지는 이제 곧 최우에게 넘어오게 생겼다.
최우는 기대명 그놈이 의심스럽지만, 이번 일만은 고마웠다.
그놈이 네이스인지 뭔지에 영상을 올린 덕에 최우의 예상보다 일이 빨라졌다.
최우는 덤덤하게 창밖을 바라봤다.
‘이제 서울도 내 손 안에 넣어야지.’
* * *
수성제지 김사장은 파리한 얼굴로 주차장으로 내려왔다.
최우에게 마지막으로 기회를 달라고 했지만, 꿈쩍도 하지 않았다.
은행 대출은 모두 막힌 지 오래였다. 공장을 살려보겠다고 최우의 돈까지 빌린 게 문제였다.
그때, 최우의 말대로 대명 아버지에게 해코지만 안 했어도….
하지만 이미 늦은 후회였다.
김 사장은 경비실에서 나와 꾸벅 인사를 하는 대명의 아버지를 쳐다봤다.
대명의 아버지가 김 사장을 걱정스러운 눈으로 쳐다봤다.
“사장님, 괜찮으세요?”
“아들 잘 있죠?”
“네. 무슨 일이신데요?”
“내가 할 말이 있는데, 아들 전화번호 좀 알 수 있을까요?”
대명의 아버지는 이상한 낌새를 채고 자세를 더욱 낮췄다.
“사장님, 그냥 저한테 하세요. 제가 전해드릴게요.”
김 사장은 맥없이 웃었다.
“하하, 아저씨. 저 아저씨 아들한테 해코지 할 생각 없어요. 사과하고 싶어서 그래요. 내가 말로 꼭 해야 할 것 같아서 그래요.”
“그렇지만….”
“아저씨, 나 진짜 할 말이 있어요.”
대명의 아버지는 김 사장의 눈에서 간절함을 봤다.
자신도 가방 공장이 부도날 때, 저런 눈으로 사람들에게 애원하고 다녔었다.
전화번호 알려준다고 뭔 일이 생기는 건 아니겠지.
대명의 아버지는 김 사장에게 대명의 전화번호를 알려줬다.
김 사장은 힘없는 눈으로 고개를 꾸벅했다.
“아저씨, 저번에 미안했어요. 근데, 그것만 알아줘요. 저 그렇게 나쁜 사람 아니에요.”
“알죠. 사장님, 나쁜 분 아니에요.”
“그럼, 됐어요.”
김 사장은 무거운 걸음으로 주차장을 빠져나갔다. 김 사장의 발길이 멈춘 곳은 배나리 저주지 앞이었다.
고인 물이 보였다.
검고 깊었다.
김 사장은 핸드폰을 들어 대명의 전화번호를 눌렀다.
뚜. 뚜. 뚜.
신호음이 들리더니 대명의 목소리가 들렸다.
“기대명 학생?”
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