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Three Year Old Is a Villainess RAW novel - Chapter (1)
이 3세는 악역입니다 1화.(1/390)
1화.
정신을 차리자 보인 건 호화로운 샹들리에였다.
손바닥만 한 내 자취방에는 절대로 달 수 없는 커다란 샹들리에.
그것을 보자마자 깨달았다.
‘……여전히 이 세계구나.’
할 수만 있다면 욕이라도 한 바가지 시원하게 하고 싶었지만, 그마저 불가능하다.
왜냐면, 이 몸은 욕은커녕 발음조차 제대로 못 하는 세 살짜리였으니까!
내가 할 수 있는 일이라곤, 호빵처럼 몸을 동그랗게 말고 훌쩍훌쩍 우는 것뿐이었다.
내 이름은 유혜민.
아니, 에릴로트 아스트라.
난이도 최강이라는 피폐 소설 악역에 빙의된 3세였다.
‘살려 주세요!’
* * *
3년 전, 서울의 소시민이던 난 병사(病死)했다.
병명은 췌장암이었다.
알아차렸을 땐 이미 치료 시기를 놓쳐서 몇 개월 버티지 못하고 죽었다.
그리고 다시 눈을 떠 보니…….
‘이 몸이었지.’
밀가루떡 같은 작고 동그란 손.
포대기에 폭 싸이는 포동포동한 육체.
우따우따조차 나오지 않는, 말 그대로 ‘갓난애’의 몸.
아무도 설명해 주지 않았지만, 난 직감했다.
‘환생이로구나!’
한때, 카카오페이지에 가산을 탕진했던 내게는 익숙한 설정이었기 때문이다.
그러한 이유로 일단 상황 파악이 빨랐다.
‘아기로 환생한 걸로 보아 육아물이다.’
‘방이 호화로운 걸 보면 우리 아빠는 귀족이군.’
‘대공이나 황제일 것이야.’
‘너는 차가운 북부 대공, 하지만 딸에겐 따뜻하겠지.’
어차피 이렇게 된 거 아버지를 만나기 전에 착실히 준비하기로 했다.
왜 어머니를 만날 준비는 하지 않느냐면, 보통 이런 설정에선 엄마가 없다.
그리고 진짜 나를 찾아오지 않는 걸로 봐서 엄마가 없는 게 확실했다.
어쨌든 어른이 찾아올 때까지 난 열심히 했다.
‘무서운 걸 봐도 울지 않는 연습을 하자.’
<날 보고 울지 않는 아이라니 신기하군> 전개를 위해 웃는 연습도 하고─
‘아바? 빠빠? 파파? ……공잔미?’
<친근한 호칭에 당황하는 아버지> 전개를 위해 호칭도 열심히 생각했다.
그렇게 두근두근한 마음으로 아버지를 기다렸는데…….
“이 녀석이냐.”
“예, 공작님.”
……나타난 건 할아버지였다.
‘육아물의 아빠는 젊어야 하는 거 아닌가……?’
기출 변형이야?
그래도 공작님답게 아주 무시무시한 기세를 가지고 있었다.
공작님은 함께 온 부관에게 물었다.
“해서, 능력은 발현하지 않았다고?”
“예.”
“빌어먹을.”
“아가씨의 이름은 어찌하시겠습니까?”
공작님은 나를 힐끗 쳐다보더니, 성의 없는 투로 말했다.
“에릴로트. 에릴로트 아스트라라고 하겠다.”
이상하게 익숙한 이름이었다.
‘에릴로트, 에릴로트, 에릴…… 로트?’
이름을 곱씹던 중에 번쩍, 기억이 떠올랐다.
분명 내가 읽었던 소설 중에 그런 이름을 가진 캐릭터가 있었던 것 같다.
무료 사이트에서 연재되던 로판 소설.
<빙의했는데 흑막의 손녀였다>
.
줄여서 <빙.흑.손>이라고 불리는 소설의 내용은 이렇다.
대한민국의 평범한 대학생이었던 나.
평소 즐겨 읽던 소설 엑스트라에 빙의했다.
하필이면 고아라 온갖 고생을 다 했건만, 알고 보니 내가 최종 흑막인 아스트라 공작의 손녀?!
황제까지 압박하는 악당 중의 악당 아스트라 공작가라니.
무서워서 도망치려고 했는데, 가족과 정이 들어 버리고 말았다.
‘이렇게 된 거 어쩔 수 없다.’
가문 사람들을 잘 꼬셔서 회개시켜야지.
내가 자신의 모든 것을 빼앗았다고 생각하는 원작 여주를 물리치고, 미래를 바꿀 수 있을까?
그래서 에릴로트가 저 ‘엑스트라에 빙의한 주인공’이냐고?
아니, ‘원작 여주’이자, 주인공 달리아의 사촌 언니이다.
즉, 내 역할은 원작 여주인 척하는 악역이라는 것이었다.
심지어 진짜 주인공을 괴롭힌 죄로 비참하게 죽을 예정의 악역…….
‘방금 이름을 붙여준 사람이 아버지가 아니라 할아버지였구나.’
애써 침착하게 생각하려 했지만, 억장이 무너진다.
빙의물에 빙의를 하다니.
이런 개떡 같은 경우가 어디 있어.
‘게다가 이 소설…… 연중 됐잖아.’
그렇다. 이건 망해서 연재 중지된 소설이었다.
시작은 나쁘지 않았다. 아는 맛이 꿀맛이라고, 클리셰에 혹해서 온 독자들이 꽤 있었다.
하지만 구린 전개에 다 떨어져 나가고 말았다.
그나마 남은 독자들이 다음 화를 클릭했던 이유는, 악역인 에릴로트가 고통받는 게 볼만 했기 때문이다.
작가도 그걸 아는지 에릴로트를 엄청나게 괴롭혔다.
‘정리하자면 앞으로 나는…….’
1. 할아버지가 원하는 힘을 타고나지 못해서 투명 인간 취급당하기.
2. 아버지는 내가 태어나기도 전에 전장에 나가서, 4살 즈음에 죽음.
3. 제대로 된 보호자가 없어서 가문에서 온갖 괴롭힘을 당할 예정.
4. 흑화하여 질투심에 여주인공을 괴롭히다가 목 뎅겅.
내 인생의 장르는 나도 모르는 새에 결정되어 있었다.
피폐물이었다.
* * *
3년 후, 현재.
난 우울한 표정으로 의자 위에 엉금엉금 올라갔다.
‘이번에도 원래 세계로 돌아가지 못했어.’
어제는 월식이 있던 날이었다.
마지막 방법이라고 생각할 만큼 기대를 많이 했지만, 이번에도 실패했다.
‘돌아가기는커녕, 밤만 꼴딱 샜지.’
덕분에 졸음이 몰려와서 죽을 지경이다.
‘안 돼, 안 돼.’
나는 고개를 붕붕 털어 내고 크레파스를 잡았다.
지금은 아스트라 가문의 방계 아이들이 지내는 ‘열두 번째 탑’에서 수업을 받는 중이었다.
나는 직계인데도 할아버지 눈 밖에 나서 태어나자마자 이 탑에서 살고 있었다.
게으르기까지 하다고 하면 완전히 찍힐 거다.
난 크레파스를 잡은 채로 교사를 쳐다봤다.
7세 미만이 모인 우리 테이블은 현재 글자를 배우는 중이었다.
“자, 이번엔 조금 어려운 단어를 써 볼까요. ‘까마득’.”
시키는 대로 종이에 글씨를 썼다.
[까마득]소근육이 발달하지 않아서 엄청나게 삐뚤빼뚤한 글씨였다.
‘음, 좋아.’
이제 제국어는 얼추 쓸 수 있구나.
그렇게 생각하다가 문득 주변을 돌아봤다. 내 주변에 앉은 아이들이 쓴 글자가 보였다.
[개만더] [꺠앳득] [너잊ㅈㅇ]“…….”
난 슬그머니 종이를 가리고, 슥슥 글자를 추가했다.
[깜많듟]이건 지난 3년간 쌓아 온 스킬이었다.
너무 못나서도 안 되지만, 너무 잘나서도 안 된다.
‘눈에 띄면 안 되니까.’
그래야만 자유롭게 움직일 수 있었다.
원래 세계로 돌아가기 위해 여러 가지 방법을 쓸 수 있었던 것도, 내가 자유롭기 때문이었다.
교사는 아이들이 쓴 글씨를 둘러보고 고개를 끄덕였다.
“어려운 단어지요. ‘까마득’은 지난 시간에 배웠던 철자 중에 ‘위’와 ‘롯드’를 써서…….”
한창 수업이 진행되던 중.
문이 열리더니 하인이 종종걸음으로 들어왔다.
“본성으로부터 연락이 왔습니다. 내일 정오에 귀애들을 본성으로 모시라는 명입니다.”
“준비하겠네.”
어쩐지 며칠 전부터 소란스럽더라니, 내일이 본성으로 가는 날인가보다.
‘벌써 그날이구나.’
본가의 직계들과 방계 아이들이 모여 시험을 보는 날.
시험은 무척 중요했다.
‘이걸로 서열이 정해지니까.’
무시무시한 흑막 가문인 아스트라에선 모든 걸 서열로 정한다.
용돈부터 지내는 방, 심지어는 미래의 관직까지 전부.
그러니 다들 시험에 혈안일 수밖에 없었다.
‘뭐, 나 같은 어린애들은 상관없지만.’
받아쓰기도 못하는 애들이 시험을 어떻게 치겠는가?
대충 머릿수만 맞추다가 돌아오는 것이다.
하지만 어린애들은 흥분했다.
“직계님들을 뵐 수 있을까? 블리젠 님, 요슈아 님……!”
“난 발자크 님이 최고로 좋아. 멋지잖아! 최연소 오러 사용자!”
애들에게 직계들은 연예인이나 마찬가지였다.
‘걔들이 얼마나 무서운 줄 모르고.’
<빙.흑.손>에서 에릴로트는 직계들 때문에 몇 번이나 죽을 뻔했다.
원래 소심하고 만만한 성격이었던 에릴로트가 흑화하는 계기가 될 정도다.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무언가 내가 앉은 의자를 확 밀쳤다.
“야, 개털.”
돌아보니 홀쭉한 남자애가 실실 웃고 있었다.
저 홀쭉이는 최근에 날 괴롭히기 시작한 애였다.
내가 본가에서 무시당한다는 소문이 있으니, 건드려 보고 싶은 거다.
딱 봐도 전형적인 엑스트라였다.
할 말은 대강 예상이 간다.
‘네 엄마 평민이라며?’
“네 엄마는 평민이라지?”
‘천박하네.’
“천박하게.”
조금도 예상과 다르지 않으니, 난 식은 눈이 되었다.
홀쭉이는 히죽히죽 웃으며 손을 올렸다. 이제 손끝으로 머리를 꾹꾹 누를 차례였다.
나는 “잠깐.” 하며 홀쭉이의 검지를 잡았다. 그리고 다른 팔을 번쩍 들었다.
“샘새미, 재가 개로펴요!(선생님, 저 애가 괴롭혀요!)”
그러자마자 어른들의 시선이 일시에 모였다.
홀쭉이는 엄청나게 당황했다.
이럴 땐 대개 치맛자락을 잡고 바들바들 떨며 우는 게 정석인데, 홀랑 일러바치니 당황할 만도 했다.
교사들이 바로 다가왔다.
그들은 정황을 살피더니 곧 눈을 가느다랗게 떴다.
“같이 수업을 듣는 아이를 괴롭히다니요. 정말 실망입니다, 티모시 군.”
“이번 일은 기록해 두겠습니다. 반성하세요.”
홀쭉이는 된통 혼났고, 반성문을 열 장이나 쓰게 되었다.
나는 훌쩍훌쩍 울면서 반성문을 쓰는 홀쭉이를 구경하며 흥얼거렸다.
내가 유혜민일 때 다 겪어 봐서 아는데, 이럴 땐 이르는 게 최고다.
‘게다가 내가 3년간 아무것도 안 해 놨을까 봐?’
물론 원래 세계로 돌아가는 게 1순위 목표긴 했지만, 혹시 몰라 예방책을 마련해 뒀다.
“어떻게, 마음은 괜찮으신가요?”
교사들이 엄청나게 인자한 표정으로 물었다.
“녜.”
“다행이군요.”
“있지요. 하부지가요. 페나 상해에 투자하면은요. 돈 마니 벌어요. (있죠. 할아버지가요. 페나 상회에 투자하면 돈 많이 번대요.)”
그러자 교사들이 눈을 번쩍번쩍 빛내며 수첩을 들었다.
“페나 상회.”
“페나 상회……!”
어린애가 살아가기 위해선 어른의 도움은 필수였다.
그래서 나는 대박 주식 정보를 풀어 주는 것으로 교사들을 사로잡았다.
소설 내용을 기억하고 있어서 다행이지.
“어쩌면 이렇게 영특하실까.”
“사탕. 사탕을 드릴까요?”
“녜! (네!)”
아, 참.
내가 한가지 소개하지 않은 게 있다.
나는 유혜민일 적에 직업이 국회의원 보좌관이었다.
하필 쓰레기 같은 상사를 모셨는데, 그곳에서 배운 게 딱 세 가지다.
1. 같은 파벌이 흔들리면 뒤도 돌아보지 않고 다른 파벌로 향하는 철새 같은 줄타기.
2. 상대방의 말꼬투리를 잡아 후레자식으로 만드는 화법.
3. 약한 자에게 착한 척하고, 강한 자에겐 더 착한 척하며 나를 세상에서 제일 가련한 사람으로 만드는 너구리 같은 습성.
쓰레기 상사에게 배운 기술을 유감없이 발휘하며 생각했다.
‘이게 K-정치야, 어린이들.’
원래 세계로 돌아가는 데에 완전히 실패한 지 하루.
나는 결심했다.
‘이왕 이렇게 된 거 어떻게든 살아남아 주겠어.’
* * *
이튿날, 정오.
나는 방계의 아이들과 함께 본성에 도착했다.
아이들은 본성에 들어가자마자 탄성을 터뜨렸다.
거대한 벽을 통째로 차지하고 있는 11신 조각.
커다랗고 아름다운 석주(石柱).
금사로 장식된 호화로운 휘장.
압도되는 장관이었다.
‘으스스한 장관이긴 하지만.’
나는 관문 앞에서 쇠사슬을 차고 있는 기묘한 몬스터들을 힐끔 쳐다봤다.
눈이 부리부리해서 엄청 무섭다.
‘이런 게 참 불편해.’
불쑥불쑥 어린애의 감정이 찾아온다.
심지어는 종종 완전히 어린애가 되곤 했다.
‘아무래도 주인공이 아니라서 내겐 페널티가 있는 게 아닐까.’
나와 또래인 애도 몬스터가 무서운 건 마찬가지였나 보다. 얼른 몬스터를 지나치려고 발걸음을 빨리했다.
나는 허둥지둥 애들을 따라 뛰었다.
세 살의 몸은 근육이 발달하지 않아서 아무리 열심히 뛰어도 언니, 오빠들을 따라가기 힘들었다.
‘아이고, 죽겠다.’
겨우 애들을 따라 시험장 안에 들어갔다.
먼저 도착한 방계 아이 하나가 김빠진 얼굴로 중얼거렸다.
“뭐야, 우리밖에 없네…….”
방 안엔 애들이 그렇게나 기대했던 직계들이 하나도 없었다.
‘그야 그렇겠지.’
직계들은 ‘부리는 자들’.
방계들은 ‘부려지는 자들’.
계급이 확실한데, 직계와 방계가 함께 시험을 보게 해 봤자 좋을 게 없다.
방계 애들이 겁먹어서 제대로 실력 발휘를 못 할 테니까.
‘직계들이 아무리 좋은 성적을 받아도, 사람들이 믿지 않을 테고.’
그러니까 이래 봬도 직계인 내가 방계들과 함께 시험을 보는 건, 그만큼 내 처지가 최악이라는 뜻이었다.
여기서 내년에 아버지까지 돌아가시면…….
생각하자 오싹했다.
‘무조건 시험에서 좋은 성적을 받아야 해.’
할아버지가 원하는 <능력>은 없어도, 가문에 도움이 되는 애라는 걸 보여 줘야 했다.
큰 애들은 다행이라고 생각하는지 표정이 밝았다. 반면에 어린애들은 시무룩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행정관들이 문 안으로 들어왔다.
“가주께서 오십니다.”
자리에 있던 아이들이 일제히 일어났다.
곧 주변이 순식간에 고요해졌다.
문밖에서 낮은 구두 굽 소리가 들려왔다.
이윽고…….
‘우와.’
문 안으로 들어온 남자를 본 나는 숨을 크게 들이켰다.
언제봐도 무시무시한 위압감이었다.
짐승의 털로 만든 새카만 재킷.
온갖 호화로운 것들로 장식된 예복.
그런 것들보다도 가장 먼저 눈에 띄는 것은 바로 눈빛이었다.
세상에 있는 온갖 부정한 것들을 모아 놓은 것 같은 소름 끼치는 눈빛.
저 남자가 바로 이 세계의 악한.
내 할아버지인 아스트라 공작이었다.
‘굉장하네.’
어린애들이고, 나이 좀 있는 애들이고 하나같이 새파래져 있었다.
행정관들은 이런 반응이 익숙한지, 감흥 있는 표정이 아니다.
자식, 손주들도 벌벌 떠는 인물이었으니 당연한 일이었다.
한 행정관이 말했다.
“시험을 시작하겠습니다.”
그러자 다른 사람들이 어떤 트롤리 하나를 끌고 왔다. 트롤리에 담긴 것은 어떤 액자였다.
행정관은 그것을 들며 말했다.
“이것은 고대어로 기록된 역사서의 발췌본입니다.”
“…….”
“학자들이 밝힌 해석본과 가장 유사한 정답을 내시는 분들께 점수를 드리겠습니다.”
‘극악 난이도네.’
고대어는 극히 해석이 어려운 문자였다.
지금까지도 밝혀진 철자와 단어가 몇 개 없는 상황.
‘그런 걸 해석하라니.’
모국어도 겨우 배우기 시작한 작은 아이들은 풀 수 있을 리가 없다. 큰 애들도 멘붕이 온 표정이다.
그래도 시험은 시작되었고, 뭐라도 해야 했다.
아이들은 나눠 준 종이에 발췌본을 옮겨 적으며 끙끙거렸다.
“그러니까…… 이게…….”
“어, 이 글자가 이 발음이니까…….”
아무리 애써도 이 시험에서 통과하는 방계는 없다.
‘난 당연히 무리겠지.’
지난달에서야 제국어를 뗐다. 고대어는 구경도 못 해본 글자였다.
그래도 멀뚱멀뚱 있는 것보다는, 애쓰는 기색이라도 보이는 게 나을 것 같았다.
난 까치발을 들고서 발췌본을 쳐다봤다.
그러는 동안, 행정관들이 속삭이는 소리가 들렸다.
“역시 문제가 너무 어려웠습니다.”
“그래도 직계님들께선 몇 문장이지만 얼추…….”
“그야 직계님들이니까요. 고대어가 수업 과목에 있지 않습니까.”
아무도 기대하는 사람이 없는 것 같았다.
할아버지는 싸늘한 눈으로 애들을 쳐다보다가 일어났다. 수확이 없으니 이만 가려는 모양이었다.
그 순간.
“용이, 잠두는, 따……. (용이, 잠드는, 땅…….)”
떠듬떠듬 발췌본을 읽는 내게로 사람들의 시선이 확 쏠렸다.
할아버지마저 걸음을 멈추고, 날 쳐다봤다.
행정관들의 눈이 튀어나올 듯 커졌다.
그들이 황급히 책을 열더니, 책장을 파바밧 넘기기 시작했다.
“용이 잠드는 땅……. 해석이 맞습니다.”
“말도 안 돼. 이렇게 어린아이가 어떻게…….”
그러게.
말도 안 되는 일이었다.
‘고대어가 왜 한글이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