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Three Year Old Is a Villainess RAW novel - Chapter (101)
이 3세는 악역입니다 101화.(101/390)
101화.
나는 일단 물속에서 일어났다.
드레스가 물을 가득 머금고 있어서 일어나는 것만 해도 매우 힘들었다.
끙끙거리며 서다가 비틀거리자, 소년이 재빠르게 내 팔을 잡았다.
“……!”
“……?!”
마리, 마사 자매의 표정이 달라졌다.
마리가 씩씩거리며 물속으로 걸어들어와선 소년의 손을 떼어내고, 확! 나를 잡았다.
“너, 뭐야. 뭔데 우리 산에 들어와?”
그건 준비한 변명이 있었다.
“마차에 문제가 생겨서. 도움을 구하려고 하다가—”
소년이 곰의 등에서 죽창을 뽑으며 말을 끊었다.
“—곰에게 쫓겨서 여기까지 왔다?”
도움을 구하려고 산 중턱까지 왔다고 하는 것보다 저쪽이 더 신빙성이 있는 말이었다.
나는 대충 고개를 끄덕였다.
“네, 뭐…….”
“이상한데. 겨울인 산 초입까지는 안 내려가는데.”
“겨울?”
“이 곰한테 붙여준 이름. 겨울에 잡아먹으려고 묵혀놔서 겨울이다.”
“…….”
소년은 제가 먼저 변명거리를 제공했으면서, 미심쩍은 표정이었다.
이러다가 의심을 살까 싶어서 덧붙일 변명거리를 생각했다.
머리를 맹렬하게 돌리고 있던 때였다.
“곰이든 뭐든 됐으니까, 우리 산에서 나가.”
마리가 날 쏘아보며 말했다.
그러곤 팔을 거칠게 놓는 바람에 나는 하마터면 또 물속에 엎어질 뻔했다.
겨우 균형을 잡고서 물었다.
“이 산이 사유지였나요?”
“뭐?”
“사유지는 아닌 것 같아서요. 밑에 팻말도 없었고요.”
“사유지는 아니지만, 우린 여기서 아주 오래 살았어!”
“말 안 되는 소리인 거 알지?”
“반말했어?”
“그쪽도 반말하니까.”
“곰한테 잡아먹힐 뻔한 걸 구해줬더니, 은혜도 모르고……!”
나는 눈살을 찌푸리고, 소년을 쳐다봤다.
“혹시 이 소녀의 친 오라버니인가요?”
“나?”
“네.”
“아니.”
“그럼 남편?”
“아니!”
“무슨 사이?”
“……같은 산의 주민?”
난 다시 마리를 쳐다봤다.
“날 구해준 건 그쪽과 아무 사이가 아닌 이분이신데?”
“이익……!”
마리의 얼굴이 새빨개졌다.
치맛자락을 잡고 부들부들 떨던 그 애가 날 노려보며 소리쳤다.
“어쨌든 꺼지란 말야!”
“어, 언니!”
마리가 흥분하자 마사까지 물속으로 들어와서 제 언니를 뜯어말렸다.
그때였다.
“에릴로트!”
한지혁의 목소리가 들렸다.
그는 나와 함께 있는 마리, 마사 자매와 소년을 보고서 눈을 홉뜨고 있다가 얼른 덧붙였다.
“—아가씨!”
그가 얼른 나를 살폈다.
“다친 데는. ……요.”
“없어. 옷만 엄청 무거워.”
“별일이 다 생기네. ……요.”
한지혁이 나를 번쩍 안아 들었다.
그리고 물 밖으로 나오자, 자매와 소년도 나의 뒤를 따라왔다.
마리의 얼굴은 새빨갰다. 나를 찢어 죽일 듯이 노려보는데, 안절부절못하던 동생 마사가 말했다.
“근처에 저희 집이 있는데, 옷을 말리고 가시겠어요?”
“마사!”
“가을이라 추우니까……. 오라버니도 몸 좀 녹이고 가. 응?”
소년은 한지혁을 위아래로 훑어봤다.
얘는 사실 약골이지만, 겉으로만 보면 멀쩡한 성인 남자였다.
소년은 자매의 집에 모르는 성인 남자가 들어가는 것이 께름칙한지 표정이 별로 좋지 않았다.
“그래.”
소년이 집으로 간다고 하자 마리는 입을 꾹 다물었다.
‘아하.’
마리는 소년을 좋아하는구나.
너무 싫은 나를 집에 들여서라도, 소년을 오래 보고 싶을 만큼.
‘마사 쪽도…….’
소년을 보는 눈에 호감이 가득했다.
눈이 마주치자, 어쩔 줄 몰라 하며 고개를 푹 숙인다.
하긴 소년은 아주 잘생긴 얼굴이었다.
금 잿빛의 머리칼.
회색의 눈동자.
훌쩍 큰 키.
잘 그을린 피부.
외모만 보면 연예인 같았다.
한지혁이 날 쳐다봤다. 어떻게 할 거냐는 표정이었다.
‘우리야 좋지 뭐.’
자매를 가까이서 볼 기회니까.
* * *
자매의 집.
마사는 집 안으로 들어오자마자 우리에게 수건을 가져다줬다.
내가 머리의 물기를 닦으려는데, 한지혁이 먼저 수건으로 내 머리를 벅벅 문질렀다.
목욕탕에서 나온 남자애처럼 팡팡팡, 머리를 털어주는 바람에 나는 종이 인형처럼 흔들렸다.
“으윽. 좀…….”
그러자 식탁에 앉아서 턱을 괴고 있던 소년이 푸핫, 하며 웃음을 터뜨렸다.
쳐다보니, 그가 픽 실소를 흘렸다.
“옷은 세상에서 제일 화려하게 입어서 깍쟁인 줄 알았더니, 강아지 같아서.”
“……강아지?”
“어. 목욕하고 얌전히 털 말리는 강아지.”
“…….”
소년이 가볍게 양손을 올렸다.
“놀리려고 하는 말은 아니야.”
그러더니 마사가 비틀비틀 쟁반을 옮겨오는 걸 보고서 빠르게 도와줬다.
“수프?”
“응. 찬 몸을 녹여줄 거야. 오늘 잔뜩 끓여두길 잘했다.”
“웬일이래. 당근 하나도 아껴 쓰는 구두쇠가.”
마사가 헤헤 민망한 듯 웃으니, 마리의 표정이 썩어들어갔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한지혁이 속삭였다.
“마리가 정말로 달리아야?”
“얼굴은 똑같고, 목소리도 비슷한데 성격은 잘 모르겠어.”
“역시 마사가 달리아인 게 아닐까. 자라면서 제 언니와 더 비슷해질 수도 있지.”
지금으로선 마리가 달리아일 확률이 훨씬 높다.
하지만 성격은 오히려 마사 쪽이 달리아와 비슷했다.
곤란한 사람을 그냥 두고 보지 못하는 것도 그렇고.
마리는 제 동생을 노려보다가 소리쳤다.
“오라버니! 나 휠체어에 앉고 싶어. 부축해줘.”
“옮기고 있는 거 안 보여? 혼자 앉아.”
“또 다리가 저리단 말야.”
“물속에 들어갈 땐 하나도 안 아파 보이더라.”
“꼭 말을 못되게 해……. 얼른 부축해줘. 응? 빨리!”
소년은 질린다는 표정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그리고 수프 그릇을 식탁의 자리마다 놓아두더니 부엌에 난 작은 문을 열고 휠체어를 들여왔다.
“앉는 건 네가 해라.”
“옛날엔 부탁도 잘 들어주더니…….”
“그건 네가 마사를 괴롭히지 않을 때의 일이지.”
“내가 뭐!”
“어젯밤에 추웠다. 동생을 내쫓을 날씨는 절대 아니었어.”
“……너, 오라버니에게 갔어?”
마사가 얼른 손을 내저었다.
“일부러 간 게 아니라……!”
“벽난로에 넣을 나뭇가지를 주우러 왔더라. 내쫓은 언니가 뭐 이쁘다고, 너 추울까 봐 그 밤에.”
“오라버니가 항상 그 시간에 나무를 하는 걸 알고 간 거겠지. 마사가 그러는 게 한두 번이야?”
“마사가 내게 올 이유가 있어?”
“있지. 꼴에 오라버니를 좋아하니까.”
마사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그러곤 곧 울 것 같은 표정으로 홱, 고개를 돌렸다.
한지혁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우와……. 진짜 못됐네.”
그러게.
무안을 주려고 상대가 소중하게 간직한 마음을 마음대로 까발리다니.
소년이 한숨을 내쉬었다.
“마리, 안 먹을 거면 넌 가.”
“오라버니는 왜 대답이 없어?”
“너 좀—”
“마사가 오라버니 좋아해. 그래서 맨날 내가 괴롭혔다는 핑계를 대고 오라버니한테 가는 거야.”
“그만하라고 했어.”
“알려줬잖아. 대답해줘야지. 그 마음 받아줄 수 없다고.”
마리가 오만하게 웃으며 등을 굽힌 채로 훌쩍훌쩍 울고 있는 마사를 쳐다봤다.
‘왜 이렇게 미친 애들이 많지.’
나는 속으로 한숨을 삼켰다.
그리고 식탁에 자리를 잡고서 말했다.
“저기요. 이거 먹어도 돼요? 기껏 주셨는데 식을 것 같아서.”
말을 끊어주니, 마사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날 쳐다봤다.
“아, 네……!”
“스푼 좀 주시겠어요?”
말하니 그 애가 후다닥 스푼을 가져왔다.
나는 수프를 퍼먹기 시작했다.
‘어?’
수프를 맛본 내가 굳어지자 한지혁이 목소리를 낮추고 물었다.
“왜?”
“……달리아의 수프 맛이야.”
임무에 나갔을 때, 보급선이 끊겨서 달리아가 주변에서 나는 재료를 가지고 수프를 끓여준 적이 있었다.
“언니, 드세요.”
“……요리를 할 줄 알아?”
“그럼요! 수프는 제 특기인걸요.”
도무지 모르겠다.
‘얼굴은 마리 쪽이 비슷한데, 성격은 마사가 비슷하고, 음식 맛도 똑같아.’
들어본 적도 없는 쌍둥이 자매가 있지 않나.
대체 뭐야.
내가 굳어있으니, 마사가 염려되는 표정으로 물었다.
“맛이 없나요……?”
“아니요. 너무 맛있어서.”
뒤에서 소년의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귀족 영애님이 수프가 맛있다고 굳어질 건 뭐야.”
그러더니 내 맞은편에 앉았다.
마리는 행여나 마사가 소년의 옆에 앉을까 봐 얼른 자리를 차지했다.
“왜 말 안 해?”
“넌 제발 뭘 먹는 게 좋겠다. 쓸데없는 말을 할 거면.”
“마리의 순정에 대답해줘야지. 응? 아니면 좋아하는 사람이라도 있어?”
그러면서 은근한 눈빛을 보내는 게 꼭 자신이라고 생각하는 것 같았다.
소년도 눈치를 챘는지, 인상을 찌푸린다.
“난 예쁜 애 좋아해.”
“뭐?”
“저 영애님처럼.”
나?
나는 스푼을 든 채로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마리의 표정이 왈칵 구겨졌다. 마사도 흠칫해서 날 쳐다봤다.
자매의 눈길을 피하기 위해 핑계를 댄 거겠지만, 소년을 대신해서 집중의 대상이 된 난 당황스러웠다.
그러던 찰나였다.
목에 걸고 있던 작은 주머니에서 새빨간 빛이 뿜어져 나왔다.
통신석에 긴급신호가 온 것이다.
난데없는 빛에 자매와 소년이 모두 놀랐다.
난 얼른 통신을 연결했다.
[에릴, 어디야?!] [어디에 있어?] [에릴로트.]오라버니들이었다.
“성 근처야. 잠깐 일이 생겨서.”
[뭐야! 계속 통신해도 연결이 안 돼서 얼마나 걱정했는지 알아?!]“미안. 정신이 없어서 확인을 못 했어.”
[곧 준공식이야. 데리러 갈까?]“아냐. 이제 출발할 거야. 이클립토 성에서 옷만 갈아입고서 얼른 갈게.”
[걱정되니까 빨리 와.]“응.”
그러고 통신을 종료했다.
자매는 둘 다 눈이 동그래져서 날 쳐다보고 있었다.
“보, 보석에서 사람 목소리가…….”
“뭐야, 그게……?”
소년이 나를 대신해서 대답했다.
“통신석이란 거야. 귀족들은 저런 마도구를 통해서 대화를 나눌 수 있어.”
“와…….”
“…….”
평민들에겐 익숙하지 않을 수도 있겠다.
통신석은 아주 고가라 웬만한 귀족들이 아닌 이상 구매하기 어려우니까.
나는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마사를 쳐다봤다.
“맛있는 음식을 내주셨는데, 다 먹지 못하고 가서 죄송해요.”
“아…. 아니에요! 일이 바쁘신 것 같은데 얼른 가보셔요.”
나는 한지혁을 쳐다봤다. 멀뚱멀뚱 서있던 그가 “아.” 하더니 품에서 금화를 꺼냈다.
“구해주신 답례입니다.”
“그, 그, 금화!”
마사가 엄청나게 놀라서 소년을 쳐다봤다.
소년의 눈도 약간 커져 있었다.
금화는 평민들은 구경하기 힘든 화폐였다.
평범한 고용인의 한달 급료가 70실버인 걸 생각하면, 수 년치 급료는 된다.
한지혁이 금화를 몇 개 더 꺼내서 내려놨다.
“이건 대접해주신 답례고요.”
“이, 이렇게 큰 돈을요?! 아, 아니에요! 수프는 있는 걸 드린 건데요!”
마사가 소리쳤으나, 마리는 얼른 금화를 잡았다.
“언니!”
“답례라잖아. 돈이 많아서 미칠 것 같은 모양인데 그냥 받자고.”
말 한 번 예쁘게 한다.
마사는 안절부절 못했다.
“그, 그치만 어머니가 그러셨잖아. 남의 돈은 함부로 받는 게 아니라고…….”
“이 봐, 돈 많지? 이 돈 돌려달라고 하거나 이자를 물릴 거야?”
마리의 말에 나는 미간을 좁혔다.
“아니.”
“아니라고 하네. 그럼 가.”
마리는 얼른 몸을 일으켰다. 그리고 부엌을 나서곤 침대에 앉으며 마사에게 소리쳤다.
“수건을 데워 와. 다리가 저려서 죽겠어.”
“하지만 배웅을……!”
“아프다니까!”
마사가 허둥지둥하자, 소년이 말했다.
“배웅은 내가 할게.”
“으응. 고마워.”
마사가 내게 고개를 꾸벅 숙였다.
“죄송해요.”
“아니에요.”
자매를 두고서 나와 한지혁은 밖으로 나왔다.
난 한지혁에게 말했다.
“가호석으로 이동할게. 옷을 갈아입어야 하니까. 넌 마차로 이동해.”
“어디로?”
“성으로 가서 쉬고 있어. 너도 물에 젖었잖아.”
“응.”
얘기하던 중에 소년이 나왔다.
“돈, 고맙다. 곧 겨울이라 저 애들이 힘들었을 거거든.”
“보답이니까 고마워할 필요 없어.”
“마사에겐 존대를 해주더니, 나한텐 반말이네.”
“그쪽도 반말이니까.”
소년은 쿡쿡 웃었다.
그러곤 어깨를 으쓱했다.
“필요한 일이 있거든 불러줘. 나도 금화에 ‘보답’하러 갈 테니까. 힘은 꽤 세거든.”
“…….”
“뭐, 영애님이 나까짓 게 필요한 일이 있겠느냐만은.”
“…….”
“아퀼라야.”
“……뭐?”
“아퀼라. 내 이름이라고.”
나는 입을 떡 벌린 채로 소년을 쳐다봤다.
내가 이렇게까지 놀라는 경우는 거의 없기 때문에, 한지혁이 미간을 좁혔다.
“에릴로트. ……아가씨?”
“아, 아, 아퀼라?”
소년은 소스라치게 놀란 내가 의아한지 눈을 깜빡였다.
“그래. 아퀼라. 왜?”
“아, 아, 아니에요. 아니, 아냐! 그럼.”
나는 얼른 인사하고서 한지혁을 끌고 자매의 집을 나왔다.
한지혁이 물었다.
“왜 그러는데?”
“아퀼라야……. 아퀼라 에버그린!”
“그게 누군데.”
원화로 수많은 기사들을 거느렸던 달리아.
그런 달리아가 가진 최강의 검.
아퀼라 에버그린.
“앞으로 중앙 기사단장으로 원화인 달리아의 그림자가 되는 남자란 말야!”
“뭐야, 그렇다는 건 저 자매들 중에 하나가 정말로 달리아라는 거잖아.”
나는 숨을 크게 들이쉬었다.
창 안으로 마리에게 수건을 가져다주는 마사가 보인다.
그런데 이상했다.
‘뭐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