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Three Year Old Is a Villainess RAW novel - Chapter (102)
이 3세는 악역입니다 102화.(102/390)
102화.
‘눈빛이…….’
창가를 빤히 쳐다보는 날 보고 한지혁이 물었다.
“왜?”
“……아냐.”
일단 준공식에 가는 일이 급했다.
* * *
준공식장.
옷을 갈아입고 도착했을 땐, 백작의 축사가 끝나 있었다.
이제 준공된 고아원으로 원아들의 입장만 남은 시점이었다.
‘그래도 끝나기 전엔 왔네.’
다행이다.
“에릴로트 양!”
숨을 고르고 있는데, 루멜리사가 나를 향해 소리쳤다.
그녀를 비롯한 영애들이 내게 다가왔다.
“어떻게 된 거예요? 이클립토 백작님의 축사 때까지도 안 오시기에 무슨 일이 생긴 줄 알았어요.”
“잠깐 나갔다가 사고가 생겨서요.”
“세상에나! 괜찮으─”
“사고?!”
루멜리사의 말을 끊고 발자크가 다가왔다.
“별일 아냐. 다치지도 않았고.”
“사고라면서!”
발자크가 눈을 부릅뜨며 물었다.
모르는 사람이 들으면 엄청난 사고가 있었는지 알겠다.
난 얼른 손을 내저었다.
“마차에 문제가 생겨서 그래.”
“마차?”
“바퀴가 빠진 정도니까 걱정하지 말…… 어? 다른 오라버니들은?”
리시먼드와 요슈아가 안 보인다.
발자크가 “아.” 하며 말했다.
“서군 예비 원화전에 선발되어서.”
‘예비 원화전?’
깜짝 놀란 나는 발자크를 인적 없는 곳으로 끌고 왔다.
“무슨 소리야?”
“말 그대로야. 예비 원화전에 군사로 선발되었으니 와서 훈련받으라고 하던데?”
칼소이에 제국엔 원화라는 특별한 직위가 존재한다.
황군은 총 5군으로 나눠져 있다.
제국의 동부를 대표하는 ‘동군’
제국의 서부를 대표하는 ‘서군’
제국의 남부을 대표하는 ‘남군’
제국의 북부을 대표하는 ‘북군’
그리고 사방의 군 중에 최고의 군인 ‘중앙군’.
‘원화는 각 5군의 여성 지도자를 말하지.’
이 원화는 각부의 가문들이 <예비 원화전>을 치러서 선발하게 된다.
서부로 예를 들면, <서군 예비 원화전>을 치러서 서군의 원화를 선발하는 것이다.
그리고 황궁에서 승인받아서 정식 원화가 된다.
‘서부는 아스트라가 있는 지역이니까…….’
서군 예비 원화전에 오라버니들이 선발되었다는 건, 할아버지가 손녀 중 하나를 원화로 만들고 싶어 한다는 것이다.
“예비 원화로 뽑힌 사람은 누군데?”
“글쎄. 하지만 셀레네가 아니겠어?”
그 말이 맞다.
예비 원화전에 투입될 만한 능력이 있는 손녀는 셀레네뿐이니까.
‘나는 너무 어리고.’
난 미간을 좁혔다.
첫 번째 삶에서도 이 시기에 <서군 예비 원화전>이 있다.
하지만 아스트라는 참가하지 않는다.
‘갑자기 왜…….’
발자크는 어깨를 으쓱했다.
“모르지. 하지만 7서열권의 손자를 전부 투입하겠다고 결정되었대.”
“무조건 원화 자리를 가져오라는 소리네……. 대체 무슨 이유로?”
“그러니까 말야. 친척들이 다들 의아해해.”
바스티나 고모가 사고를 친 것 때문에, 셀레네는 리시먼드와 견주는 엄청난 능력임에도 불구하고 제대로 기회를 받은 적이 없었다.
‘결국, 우리 가문에서 원화가 된 사람은 달리아였어.’
고민하던 중에 발자크가 통신석을 꺼냈다.
붉은빛이 마구 뿜어져 나오는 걸 보면, 긴급 신호였다.
통신을 연결하자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도련님, 어디십니까!]아버지가 없던 동안 발자크의 보호자였던 크로네츠 자작이었다.
지금은 발자크의 보좌역이다.
“출발할 거야.”
“알겠다니까.”
통신을 끝낸 발자크가 인상을 찌푸렸다.
“귀찮아 죽겠네.”
“발자크도 예비 원화전의 군사로 선발된 거지?”
“응.”
“얼른 가봐. 늦으면 할아버지의 눈 밖에 날 테니까.”
“알겠어……. 무슨 일 있으면 바로 연락해? 형님과 요슈아도 걱정해.”
“응.”
발자크는 피곤하다는 얼굴로 한숨을 푹 내쉬었다.
그리고 이동의 가호석을 발동해 사라졌다.
발자크와 이야기를 끝내고 돌아가니, 슬슬 원아들의 입장이 시작되려는 모양이었다.
“이쪽으로 오세요, 에릴로트 양!”
캐서린이 밝은 얼굴로 내게 손짓했다.
* * *
입장까지 완료된 후, 준공식이 끝났다.
이클립토 백작은 준공식에 참석해준 아이들에게 연회를 베풀어 주겠다고 말했다.
광대까지 오는 아주 큰 연회였다.
물론 아이들은 신이 났다.
캐서린이 생글생글 웃으며 말했다.
“연회 후에 출발하실 거지요? 언제 가세요? 황도로 가실 거라면 제 마차로 같이 이동하시면─”
그러자 루멜리사가 눈살을 찌푸렸다.
“그런다고 리시먼드 님과 함께 갈 수 있는 게 아닐 텐데요.”
“리시먼드 님이 안 계신 건 알고 있어요. 전 그냥 에릴로트 양과 같이 가면 즐거울 것 같아서 여쭌 거예요!”
“언제부터 에릴로트 양에게 관심이 있으셨는지?”
“이번 이클립토 행으로 호감이 생겼어요. 안 되나요?”
“리시먼드 님의 이야기를 하려거든 다른 분들과 하는 게 낫지 않을까요.”
“리시먼드 님과는 관계없어요!”
“어쨌든 에릴로트 양은 저와 함께 갈 거예요.”
두 사람이 투덕거리기 시작해서 나는 어색하게 웃었다.
“저는 아스트라 장원으로 갈 예정이에요.”
“네?! 왜요?”
캐서린이 매우 아쉽다는 듯 눈썹을 늘어뜨렸다.
반면에 그녀보다 소문을 빠르게 접하는 루멜리사는 고개를 끄덕였다.
“서부 예비 원화전 때문이죠?”
“네.”
“바스티나 관할령의 셀레네 아스트라 양이 예비원화가 될 거라던데. 맞나요?”
“글쎄요. 장원에 가봐야 알 것 같아요.”
“혹시 영애도 군사로 참가하나요?! 그럼 다른 영애들과 함께 관전하러 가겠어요!”
“어머나. 에릴로트 양이 군사로 참가한다고요? 저도 다른 영애들과 함께 갈게요.”
다른 영애들과 영식들도 관전하러 온다고 소란스러웠다.
나는 얼른 손을 내저었다.
“지금은 공격용 몬스터가 없어서 참가하지 못할 것 같아요.”
그러니 아스트라에서도 내게 군사로 참가하라고 연락하지 않은 것이겠지.
캐서린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용이 있잖아요?”
루멜리사는 한심하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원화전은 군사 지휘가 얼마나 뛰어난지 보는 판이에요. 용을 투입하면 목적에 어긋나죠. 무엇보다, 용을 움직이려면 황궁의 허가를 받아야 할 거라고요.”
“그런가요?”
“그럼요. 잘못해서 용 때문에 백성들이 다치면 그건 재앙이잖아요. 꼬리 짓 한 번에 주변이 초토화될걸요.”
그 말에 나는 아하하, 어색하게 웃었다.
“어쨌든 연회는 재밌게 즐기세요. 전 돌아갈 준비를 해야 해서 참석은 힘들겠어요.”
“아쉽네요…….”
“네…….”
루멜리사와 캐서린이 서운한 표정을 지었다.
어떻게 빠져나갈까 고민하고 있는데 익숙한 얼굴이 보였다.
‘어?’
고아원 문가에 서서 하품을 쩍, 하고 있는 건 아퀼라였다.
목을 주무르던 그와 눈이 마주쳤다.
아퀼라의 눈이 커다래졌다.
“아?”
나는 아퀼라에게 다가갔다.
“어떻게 여기 있어?”
“일. 고아원의 경비병이 되었거든.”
아하.
원아들이 인신매매범에게 잡혀가지 않도록 경비를 붙였나 보다.
이클립토 령엔 고아원이 워낙에 많아 영주성 병사들만으론 경비하기 힘들 테니 사설 용병을 쓰는 모양이다.
“그러면 산에는 자매들만 있어?”
“아니. 마사는 준공식 정리를 하고 있어. 일당을 받고.”
“그렇…… 그럼 산엔 마리 혼자 있단 말야?”
“그렇겠지. 마리의 몸이 안 좋아서 일은 마사만 하거든.”
난 표정이 굳어졌다.
‘혼자 있다면…….’
창 넘어 보았던 마리의 표정이 떠오르자 소름이 쫙 끼쳤다.
“위험해.”
“뭐?”
서둘러 뛰기 시작했다.
등 뒤에서 아퀼라의 목소리가 들렸다.
“무슨 소리야? 이봐!”
“산으로 와!”
소리치고서 건물 뒤로 달려갔다. 그리고 <이동>의 가호석을 통해 마리, 마사 자매의 집으로 이동했다.
해가 뉘엿뉘엿 지는 시간.
산은 무섭도록 고요했다.
나는 집 안으로 뛰어들었다.
“마리!”
소리쳤으나, 그 애는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난 얼른 집을 뒤졌다.
욕실, 부엌, 2층의 다락방.
그 어디에도 아이는 없었다.
‘갈만한 곳……. 갈만한 곳이!’
그런 표정을 짓던 아이가 갈만한 곳.
나는 숨을 크게 들이켰다
그리고 곰에게 공격받은 후, 자매의 오두막으로 오면서 보았던 절벽을 떠올렸다.
헐레벌떡 뛰어서 절벽으로 향했다.
그러자…….
“뭐 하는 거야, 이 바보!”
절벽 끝에 선 마리가 새파란 얼굴로 흠칫, 나를 쳐다봤다.
나는 얼른 양팔로 마리의 팔을 끌어안았다.
“이리 와!”
“놔, 놔, 이거!”
“네가 여기서 죽으면 마사가 편하게 살 수 있을 것 같아?!”
“……!”
난 준공식으로 가기 전에 창을 통해서 자매를 보았다.
허겁지겁 언니를 챙기는 마사.
그리고 마사의 등 뒤에서 혼이 나간 표정으로 동생을 보던 마리.
난 마리의 표정을 알고 있다.
힘에 부쳐서, 너무 괴로워서 죽음을 각오했을 때의 첫 번째 삶의 나와 유혜민을 떠올리게 했으니까.
그건 죽음을 각오한 표정이었다.
* * *
마리는 우뚝 굳어졌다.
나는 그 틈에 잽싸게 마리를 절벽에서 끌고 왔다.
몸이 안 좋다던 마리는 다행히 힘이 없어서 무사히 안전한 곳으로 데려올 수 있었다.
“뭐 하는 짓이야!”
그 애가 소리를 빽 질러서 난 한숨을 흘렸다.
“이게 진짜…….”
“꺼져! 귀찮게 굴지 말고……!”
“나더러 자살방조를 하란 말야?”
“그, 그럴 생각 없었거든! 난 그냥 노을을 구경하고 있었던 거야.”
“헛소리하고 있네.”
난 마리의 머리를 꽝! 때렸다.
마리는 엄청나게 충격받은 얼굴로 날 쳐다봤다.
“너, 사실은 마사가 예뻐죽겠지. 언니를 보살피느라 고생하는 동생이 안쓰럽지.”
“아니야! 나는 마사가 미워!”
“아니긴……. 내가 고생할 때 우리 오라버니들이 그런 표정으로 날 봐.”
“…….”
“사실은 패악을 부려서 마사를 질리게 만들려던 거지?”
“…….”
“밤엔 추워서 근육이 긴장하잖아. 그래서 밤이면 마사가 더 필요할 텐데, 밤마다 쫓아낸 것도 이유가 있었지?”
“아, 아냐!”
“아퀼라에게 가라고 한 거잖아! 불쌍한 동생을 보고 아퀼라가 관심을 가져주길 바라서.”
아이들은 아무것도 모르는 순수한 존재라고들 생각하지만, 아니다.
열 살쯤 되면 머리를 쓸 줄 안다.
사라 포그만 해도 그렇다.
불쌍한 척, 영애들에게 따돌림을 받는 척 영식들에게서 관심을 얻어냈다.
좋아하는 아퀼라의 앞에서 패악을 부리는 건 이상한 일이다.
좋아하면 호감을 사고 싶지, 미움을 사고 싶지 않다.
그런데도 마리는 아퀼라의 앞에서 온갖 떼를 쓰고, 소리치며 학을 떼게 만들었다.
“마사가 이렇게 좋은 애라는 걸 보여주고 싶었잖아.”
“……아니야.”
“오늘 죽으려고 한 것도 내가 돈을 줬기 때문이지?”
“…….”
“마사는 착해서 그 돈을 널 치료하는 데 쓰고 싶어 할 테니까. 그 전에 사라져주려고.”
마리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아무리 어른스러운 척해도 얘는 고작 열 살의 어린애였다.
죽는 게 무섭고, 미움 사는 게 두려운 그런 어린애.
마리가 빽 소리쳤다.
“신경 쓰지 말고 꺼져!”
어떻게 신경을 안 써.
네가 달리아일지도 모르는데.
그리고 난 어린애가 죽으려고 할 때 아무것도 안 할 만큼 이상한 사람은 아니다.
마리가 퍽! 나를 밀쳤다.
덕분에 엉덩방아를 찧은 난 끙끙, 허리를 매만졌다.
‘아픈 애 맞아?’
아까는 잘만 끌려오더니, 밀치는 힘은 왜 이렇게 세단 말인가.
나는 마리를 노려보고 벌떡 일어났다.
그리고 그 애를 오두막 쪽으로 억세게 끌고 왔다.
“놓으라니까! 내 말 안 들려?!”
“네가 죽으면! 내가! 양심에 찔리잖아!”
“뭐……?”
“아이는 행복해야 해.”
“…….”
“특히 착한 아이는 더더욱.”
“나, 하나도 안 착하거든? 밖에 나가면 사람들이 다 알아. 불쌍한 마사를 괴롭히는 못된 언니야, 나는!”
“정말로 못된 언니는 그런 말 안 해.”
“…….”
“그리고 그것도 ‘마사는 이렇게 착한 애니까 네가 사라져도 지켜주세요.’ 하는 마음에서였잖아.”
“…….”
마리의 몸에서 약간 힘이 빠졌다.
“아니라니까……. 난, 나는 마사의 눈도 찌를─”
난 우뚝 걸음을 멈추고 마리를 쳐다봤다.
“너, 정말로 마사와 쌍둥이야?”
“……!”
마사가 숨을 크게 들이켰다.
난 허리에 손을 올리고서 마리를 빤히 쳐다봤다.
“생각하고 또 생각해봤어.”
“무, 무슨…….”
“동생을 위해서 죽음까지 결심한 언니가 왜 눈가를 찔렀을까.”
“뭐, 뭐라는 거야.”
“꼭 자신과 같은 상처가 난 곳에 같은 상처를 만든 거잖아. 마치…… 마사가 너라고 알려지도록.”
“……!”
마리의 얼굴이 새파래졌다.
“그런 생각이 들더라고.”
“무, 무슨 생각! 허튼 생각 말고……!”
“혹시 누군가 널 찾아올 지도 모르는 게 아닐까.”
“…….”
“넌 착한 언니이니, 마사에게 해가 될 짓을 하지 않겠지. 그러니까 마사가 네가 되면 좋은 기회를 얻는 거 아냐?”
“아, 아니야. 아니라고!”
“너, 귀족의 자식이지?”
“……!”
내가 눈을 가늘게 뜨자 마리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네 어머니가 돌아가실 때 말씀해주신 거 아냐?”
“그, 그걸 어떻게…….”
“마사와 넌 같은 어머니에게서 태어난 자매지. 그래서 그렇게 닮은 거고. 하지만 아버지는 다를 수도 있어.”
“…….”
아버지를 찾으려다가 결국 못 찾은 거다.
그러니까 동생에게 짐이 되기 싫어서 죽을 결심을 했겠지.
그러나 혹시 모를 기회까지는 날리고 싶지 않았기에, 마사에게 상처를 만든 것일 터다.
‘혹시나 아버지가 자신을 찾아온다면, 마사를 자신으로 알아달라고.’
그러니까 체크메이트란 소리다.
‘두 사람 중에 달리아가 있다면, 그건 마리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