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Three Year Old Is a Villainess RAW novel - Chapter (11)
이 3세는 악역입니다 11화.(11/390)
11화.
그러자 엔조가 곤란한 듯 웃었다.
“음, 아가씨. 연회라는 건 1, 2골드로 열 수 있는 것이 아니라─”
나는 옆으로 메고 온 가방에서 뽀시락뽀시락 무언가를 꺼냈다.
그리고 손 안 가득 담아서 앞으로 쭉 내밀었다.
“웬 보석이 그렇게나……!”
엔조는 엄청나게 놀란 표정으로 내 손에 가득 담긴 보석들을 쳐다봤다.
하나같이 독특한 것들로, 척 보기에도 엄청나게 비싸 보였다.
이건 어젯밤에 콘라드가 가져다준 거다.
‘할아버지에게 준 육체 회귀제의 보답이지!’
엔조의 눈은 휘둥그레졌다.
세 살인 내가 이만한 보석을 들고 다닌다는 것에 턱이 빠질 지경이었다.
그가 “이거면 연회는 충분히…….” 라고 중얼거리며, 떨리는 손을 내게 내밀었을 때였다.
탁!
아빠가 닿을락 말락 했던 엔조의 손을 쳐냈다.
“어린애의 코 묻은 돈을 갈취할 셈이냐.”
“코 묻은……. 저게 코 묻은 돈은 아닐 텐데…….”
엔조의 말이 맞다.
이건 웬만한 귀족 가문의 내탕금 정도는 될 것이다.
나도 콘라드에게 받았을 적엔 귓가에서 트럼펫 소리가 들렸다.
그래서 사실은 엄청나게 아까웠지만…….
‘투자하는 셈 치고 주려던 건데?’
게다가 보석이라, 세 살인 내가 처분해서 현금화할 방법이 없었다.
아버지는 미련이 뚝뚝 떨어지는 엔조를 보며 인상을 찌푸렸다.
그러곤 뭔가를 툭, 던졌는데 가만 보니 열쇠였다.
“내 사재 창고에서 필요한 만큼 가져다 써라.”
“알겠습니다.”
“뭐 해.”
“예?”
“미적거려서 이번 주 내에 관할령으로 복귀할 수 있겠느냐.”
“즉시 준비하겠습니다.”
엔조는 나와 아버지에게 인사하고, 서둘러 사라졌다.
‘이번 주 내에 관할령으로 간다고?’
이번 주는 엿새 남았다.
할아버지와 사이가 좋지 않은 아버지라면 본성에선 거의 못 볼 거다.
그 말인즉슨, 아버지와 친해질 시간은 딱 엿새뿐이란 소리였다.
그 후로 필사의 ‘아버지와 친해지기 프로젝트’가 시작되었다.
* * *
나는 온종일 병영에 있는 아버지의 집무실에 드나들었다.
아침 먹고 가고, 점심 먹고 가고, 저녁 먹고 또 갔다.
아버지가 성에 온 지 사흘째.
나는 점심을 먹은 후에 다시 아버지의 집무실에 갔다.
커다란 문에 까치발을 들고 콩콩, 노크하니 엔조가 문을 열어줬다.
“식사하시고 오셨습니까?”
이틀 만에 내게 익숙해진 엔조는 빙그레 미소 지었다.
아버지의 다른 부관들도 웃으며 날 반겨 줬다.
나는 엔조에게 인사하고서, 아버지의 업무 테이블이 있는 양탄자에 풀썩 주저앉았다.
다행히 아버지는 별다른 말이 없었다.
5년 만의 귀환으로 일이 엄청나게 많아서 날 신경 쓸 시간이 없기 때문이었다.
가끔 놀고 있는 날 ‘뭐 저런 게 있지’ 하는 얼굴로 쳐다보긴 했지만.
‘그 정도면 매우 양호하지.’
할아버지 땐 방 안까지는 절대로 못 들어갔는데, 아버지 때는 집무실 안에 있을 수 있었다.
‘곁에 있다 보면 잘 보일 찬스가 있을 거야.’
난 스케치북에 슥, 슥, 글씨를 쓰며 놀았다.
그걸 본 엔조가 물었다.
“벌써 글씨를 쓰십니까?”
난 우쭐한 표정으로 턱을 착, 치켜들었다.
‘얼마나 열심히 했는데.’
한글이나 영어와는 전혀 달라서 3년이 꼬박 걸렸다.
‘아직 문장은 잘 못 쓰지만, 그래도 또래 애들보다는 훨씬 잘하지.’
“이야, 역시 아스트라의 영애님이시군요. 평범한 사람과는─”
그렇게 말하던 엔조는 움찔했다.
아버지가 무미건조한 표정으로 이쪽을 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엔조 바보.’
아버지는 아스트라를 매우 싫어한다.
특히 ‘역시 아스트라’라는 말엔 실소를 감추지 못했다.
엔조가 당황해하는 사이에 난 얼른 화제를 전환했다.
“나 글씨 마니 아라! (나 글씨 많이 알아!)”
“그, 그런가요. 그럼 아버님의 이름도 쓰실 수 있습니까?”
“응!”
난 엎드려서 열심히 글자를 썼다.
[데이몬……]─까지 쓰다가, 힐끔 아버지를 쳐다봤다.
‘너무 잘하면 또 좀 그래.’
지나치게 똑똑할 경우엔 호감이 아니라, 경계 당할지도 모른다.
‘역시 제작된 인간이라고 생각하면 어떡해.’
난 써 놓은 것을 크레파스로 마구 지우고, 새로 글씨를 썼다.
“요기.”
말하니 엔조를 포함한 부관들이 흥미로운 표정으로 들여다보았다.
[몬득이]“크흑!”
어딘가에서 숨이 끊어지는 것 같은 소리가 들렸다.
머리가 긴 부관이 죽을 것 같은 얼굴로 입을 틀어막고 있었다.
엔조도 비슷했다. 그는 맹렬하게 허벅지를 꼬집었다.
다른 부관들의 사정도 다르진 않았다.
워낙에 글씨를 크게 적은 터라 아버지의 책상에서도 내가 쓴 글씨가 보였을 것이다.
“…….”
그의 미간이 구겨지자, 엔조가 얼른 말했다.
“그, 그래도 두 글자는 맞았는데요.”
“예. 세 살밖에 안 된 아가씨께서 아주 훌륭하십니다.”
그러곤 슬쩍 내 스케치북을 다음 장으로 넘겨 주었다.
난 아버지를 힐끔힐끔 훔쳐봤다.
‘애인 척하려고 너무 오버했나.’
뭐라고 한마디 할 것 같아서 바짝 긴장했다.
그런데 그는 별말 없이 다시 하던 일에 집중했다.
‘…….’
나는 옷에 달린 레이스를 꼼질꼼질 매만졌다.
‘아버지는 생각보다 좋은 사람인 것 같아.’
인상은 차가워 보여도, 어린애에게 지나치게 구는 일은 없었다.
오히려 내 쪽에서 귀찮게 구는 데도 딱 잘라내지 않는다.
‘어쩌면 나를 조금은 예뻐해 주지 않을까……?’
생각하다가 고개를 붕붕 저었다.
나는 대가 없는 애정이란 건 결코 없다고 생각한다.
다른 사람들에겐 있을지도 모르지만, 적어도 박복한 내겐 없을 터다.
‘원래 세계에서도 그랬는걸.’
유혜민일 적에, 어렸던 난 엄마와 단둘이 살았다. 아빠가 일찍 돌아가셨기 때문이었다.
내가 걸음마를 시작하고 나서야 엄마는 재혼하게 되었다.
외할머니는 아주 기뻐하셨다.
“평생 애 딸린 과부로 살 줄 알았더니, 이렇게 좋은 회사 다니는 사위가 웬 말이야.”
외할머니가 매우 기뻐한 만큼 새아버지는 좋은 사람이었다.
아내가 데려온 딸에게 잘 대해 주었으니까.
‘……동생이 태어나기 전까진.’
엄마와 새아버지가 결혼한 지 7개월 만에 동생 세은이가 태어났다.
동생은 애교도 많고, 사랑스러운 아이였다. 온 집안사람들이 그 애에게 푹 빠질 만큼.
외할머니는 세은이를 안고서 항상 이렇게 말씀하셨다.
“제 엄마 팔자 고쳐주고 태어났으니 넌 평생 할 효도 다 했다. 아이구, 요 예쁜 거.”
그런 말을 들을 때마다, 옆집 아주머니는
“할머니가 옛날 사람이라 그래.”
하고 말해줬다.
하지만 할머니의 말이 영 틀린 건 아니라고 생각했다.
엄마도 동생이 예뻐서 어쩔 줄 몰라 했으니까.
동생이 태어나고서 난 엄마의 관심 밖이 되었지만, 괜찮았다.
엄마가 행복해했으니까.
그러던 어느 날, 내가 초등학교에 들어갔을 무렵이었다.
인형 하나를 두고 나와 동생은 옥신각신했다.
“줘! 달란 말이야!”
“안 돼. 이건 엄마가 생일 선물로 사준 거야!”
이러다 인형 목이 찢어질 것 같아서 나도 모르게 동생을 밀쳤는데,
“너, 뭐 하는 짓이야!”
새아버지가 쫓아 들어와선 내게 불같이 고성을 내질렀다.
그러곤 울고 있는 동생을 안고서 다정하게 얼렀다.
“저런 거 열 개는 사주마. 응? 뚝 해. 뚝. 우리 세은이 예쁜 눈 퉁퉁 붓겠네.”
동생은 아버지 품에 안겨서 내게 베, 혀를 내밀었다.
외할머니도 그 얘기를 듣더니 득달같이 쫓아왔다.
“언니가 돼서 인형 그거 뭐 별거라고 동생이랑 싸워. 너 이러다 네 아버지가 너 때문에 엄마랑 못 산다고 하면 책임질래? 그래?”
“…….”
“반성해, 반성!”
엄마는 그 모습을 모르는 체했다.
품에 안겨 자는 동생 등만 두드리더니, 안방으로 들어가서 나오질 않았다.
아이는 생각보다 예민하다.
처지를 쉽게 알아차린다.
나는 내가 이 가정에 동생의 곁다리로 들어왔다는 걸 어렴풋이 눈치챘다.
동생도 언니는 함부로 대해도 되는 사람이란 걸 알아차렸다.
세은이가 졸업할 때까지 그 애 숙제는 모두 내 몫이었다.
대학생이 되어선 피아노를 시작한 동생의 레슨비를 벌기 위해 하루도 아르바이트를 쉰 적이 없었다.
아버지의 월급만으로는 감당이 안 될 만큼, 고가의 레슨을 했으니까.
그래도 동생은,
“세은아, 우리 먹은 거 밖에서 누가 치우는데?”
“어, 우리 집 하녀.”
농담이랍시고 이런 말들을 쉽게 했다.
동생은 엄마와 새아버지의 결혼 계기가 되어준 대가로 우리 집의 공주였다.
그리고 난 대가 없이 집에 들어왔기에 하녀로…….
‘그만, 그만.’
나는 얼른 고개를 털어 냈다.
생각해봐야 기분만 나빠지니까 그만하자.
그래도 동생 덕에 좋은 일은 하나 있었다.
<빙.흑.손>을 알게 되었으니까.
그 소설은 동생이 즐겨 보던 것이었다.
‘아무것도 모르고 에릴로트가 되었으면 어쩔 뻔했어.’
나는 그렇게 머릿속을 정리하며 아버지를 힐끗 쳐다봤다.
‘어쨌든 아버지에게 예쁨 받으려면 대가가 필요해.’
뭐 좋은 방법이 없을까.
끙끙 고민하고 있는데, 노크 소리가 들렸다.
“콘라드 마르시알입니다.”
콘라드다!
나는 벌떡 일어났고, 아버지의 허가를 받은 엔조가 문을 열어줬다.
콘라드는 방으로 들어와서 아버지에게 인사했다.
그리고 나와 눈이 마주치자 코를 찡끗했다.
아버지가 물었다.
“용건은.”
“탐색꾼이 하딕스 산에서 정화석의 단서를 발견했습니다.”
“해서.”
“군사로 하여금 하딕스 산에서 정화석을 수색하라는 명이십니다.”
“귀환한 지 사흘도 안 된 내 군사들에게 말이지.”
“정화석을 찾는다면 관할지의 예산을 다시 검토하신다고 하셨습니다.”
그렇게 말한 콘라드는 서류를 전했다. 정화석 관련 서류인 듯했다.
나는 조마조마한 표정으로 아버지를 쳐다봤다.
‘할 거지요? 응?’
명령 불복종은 군법으로 처벌된다.
게다가 예산도 재검토해 준다고 하는걸!
이 정도면 할아버지도 양보한 거다.
엔조와 아버지의 부관들도 간절한 표정으로 그를 쳐다봤다.
아버지는 쯧, 혀를 차고 엔조를 쳐다봤다.
“군사를 준비시켜라. 내일 아침, 하딕스 산으로 출발한다.”
“예……!”
엔조와 부관들은 행여나 아버지의 마음이 변할세라, 얼른 밖으로 향했다.
‘정화석이라면 저주를 정화해 준다는 그……. 어?’
나는 흠칫, 아버지를 쳐다봤다.
소설 속 내용이 머릿속을 스쳐 지나갔다.
“하딕스 산에서 정화석이 발견되었다지요?”
“예, 수색 시도 3회 만에 쾌거입니다.”
“아쉽군요. 데이몬드 님께서 살아계실 때 발견되었다면, 그 아까운 재능이 저물지 않았을 텐데.”
“데이몬드 장군은 전쟁 중에 전사한 게 아닙니까?”
“모르셨습니까? 전쟁 중에 저주가 발현되어 적군의 검을 피하지 못했다는 소문이 있습니다.”
“하기야 그리 대단하셨던 분이 일개 병사의 검에 돌아가셨다는 게 이상하긴 하지요.”
‘그래, 전쟁터에서 죽는 걸 막았다고 다 된 게 아냐.’
누군가 죽음을 사주했다면, 기회를 노려서 또 저주를 걸지도 모른다.
‘아버지에겐 정화석이 필요해.’
하지만 정화석을 찾는 건 아주 어려운 일일 거다.
괜히 수색 시도 3회 만에 발견된 게 아니었다.
‘하지만 난 소설을 읽어서 위치를 알지.’
하지만 거길 말해 줄 순 없었다.
한 번도 하딕스 산에 간 적 없는 내가 정화석의 위치를 아는 건 매우 이상한 일이었다.
‘데려가 달래도 안 데려다주겠지?’
그럼 방법은 하나뿐이었다.
더 높은 사람에게 명령하게 한다면?
‘좋아, 도전해 보자.’
난 그렇게 할아버지를 찾아가기로 결정했다.
* * *
해가 떨어지기 전에 본성으로 돌아온 나는 곧장 할아버지에게로 왔다.
할아버지와 함께 있던 드뷔시 자작이 내게 말했다.
“어쩐지 오랜만에 뵙는 것 같군요.”
사흘밖에 안 됐는데?
하지만 다른 때엔 매일 밤낮으로 할아버지를 쫓아다녔기 때문에, 오랜만으로 느껴질 수도 있겠다.
“안넝.”
“예, 아가씨. 오늘도 즐겁게 노셨습니까?”
“녜.”
“무엇을 하고 노셨을까요.”
“으음……. 아밤미 방에서 그림 그리구요, 아밤미 방에서 글씨 쓰구요, 아밤미 방에서 그림채 보구요, 또…….”
내가 짧은 손가락을 하나하나 접으며 말하자, 자작은 “호오.”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데이몬드 님과 사이가 아주 좋으시군요.”
“아밤미 조아요.”
팔을 번쩍 들고 말하는 내가 귀여운지 자작은 하하 웃었다.
“한데 왜 병영에 계속 안 계시고 여기에 오셨습니까? 데이몬드 님께선 이번 주면 관할령으로 돌아가시니, 좀 더 오붓하게 지내셔도 좋을 텐데요.”
자작도 아버지가 날 관할령으로 데려간다고는 절대 생각하지 않는 모양이다.
‘호문쿨루스라면 관할지에까지 들이긴 거북하겠지.’
나는 테이블 위로 얼굴을 빼꼼 내밀고 말했다.
“하부지 보러요.”
“그놈 곁에서 살지, 왜.”
엥?
나는 눈을 깜빡였다.
‘뭐야, 말을 꼭 섭섭한 것처럼 하네.’
혹시 섭섭했나?
드뷔시 자작은 히죽히죽 웃으면서 할아버지를 쳐다봤다.
“매일 보던 손녀를 못 보니 아쉬우셨나 봅니다?”
“귀찮지 않아서 좋았던 게야!”
할아버지는 단번에 일축했다.
‘그럼 그렇지.’
나 말고도 손주가 수두룩 빽빽인 사람이다.
내가 며칠 안 왔다고 서운해할 리가 없다.
‘확실히 너무 쫓아다니긴 했어.’
애가 그렇게 쫓아다니면 귀찮을 만도 했다.
할아버지가 휙, 나를 쳐다봤다.
“해서, 여긴 무슨 일이냐.”
“아밤미, 산에 가요. 에리로뜨도 가치 가요. (아버님, 산에 가요. 에릴로트도 같이 갈래요.)”
반짝반짝 빛나는 눈으로 말하자, 할아버지의 눈썹이 꿈틀했다.
“가서 무슨 방해를 하려고. 됐으니 넌 성에서 얌전히 기다려라.”
할아버지의 말에 나는 실망스러운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하딕스 산엔 몬스터도 나오지 않고, 단지 정말로 수색만 하러 가는 거라서 허락해주지 않을까 기대했다.
나는 어깨를 축 늘어뜨렸다.
그런 날 보고 싱글싱글 웃던 드뷔시 자작이 말했다.
“아가씨.”
“녜.”
“부탁을 이리 단칼에 거절하시는데도 할아버님이 좋으십니까?”
“으응.”
“그러면 할아버님이 좋으십니까, 아버님이 좋으십니까?”
나는 “으음.” 하며 곁눈질로 허공을 쳐다봤다.
할아버지의 서재 안에 있던 사람들이 날 쳐다봤다. 빈 찻잔에 차를 따르던 집사까지도.
난 대답했다.
“아밤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