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Three Year Old Is a Villainess RAW novel - Chapter (114)
이 3세는 악역입니다 114화.(114/390)
114화.
“그럼 부탁드릴게요.”
내 말에 아비노는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으응…… 그래.”
그가 마지못해서 고개를 끄덕였다.
방으로 돌아오니 한지혁이 짐을 꾸리고 있었다.
난 그에게 손을 휘저었다.
“공작성에 연락해. 며칠 더 머물겠다고.”
“뭐? 왜?”
나는 한숨을 푹 내쉬고 리앙틴의 일을 말해줬다.
얘기를 모두 들은 한지혁은 인상을 찌푸렸다.
“살바토레 황자가 리앙틴에게 왜?”
“글쎄. 뭘 노리는지는 모르지. 하지만 하나 분명한 건 있어.”
“그게 뭔데.”
“리앙틴이 사고를 치면 데려온 내 탓이 된다는 거.”
살바토레 황자가 리앙틴을 홀려놓은 건 뭔가에 이용하려는 것일 터다.
‘살바토레는 뱀 같은 놈이라 그저 마음에 들어서 손을 내밀었을 리는 없거든.’
십중팔구 사고가 일어날 것이다.
그러니 나는 사고를 미연에 방지해야 한다.
한지혁은 칫, 혀를 찼다.
“귀찮아지겠네. 그래서 어떻게 할 거야?”
“먼저 건든 건 살바토레 쪽이니까 엿을 좀 먹여줄까 해.”
물론 그 과정에서 리앙틴에게 손을 뻗을 수 없도록 정신없이 만들어야 하고.
“엿?”
“응. 그러니까 너도 협조해.”
“그야 협조는 하겠지만…… 불안한데.”
“뭐가.”
“넌 가끔 미칠 때가 있잖아. 딱 그때의 눈빛이다.”
한지혁이 인상을 쓰며 고개를 주억거렸다.
그때,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국경성의 고용인입니다. 살바토레 황자님의 명으로 모시러 왔습니다.”
아비노가 내 말을 잘 전해준 모양이었다.
나는 방을 나섰다.
하인을 따라간 곳은 통유리로 된 방이었다.
중앙에 거대한 나무가 있고, 바닥은 실내답지 않게 평평한 돌을 깔아뒀다.
벽에 책장이 줄지어 있지 않았다면 그냥 온실로 보였을 것이다.
“국경성의 자랑인 지혜의 방입니다.”
나를 데려온 하녀가 친절하게 설명해줬다.
나는 하녀를 쳐다보며 물었다.
“지혜의 방?”
“예. 대대로 성주 부부만이 들어갈 수 있는 방이온데, 귀하신 분들을 위해 개방하였지요.”
“그렇구나.”
“초청객 중에선 태양회의 전하들께 허가받은 분만 들어갈 수 있답니다.”
선택받은 게 얼마나 대단한 일이냐는 표정이었다.
‘하여간에 이 세계는 서열을 참 좋아한다니까.’
상위 1프로만 초청되는 태양회.
그 태양회의 초청객 중에서도 더 귀한 사람을 구분한다.
‘뭐, 나야 기준이 확실해서 좋지만.’
그렇게 생각했을 무렵, 지혜의 방을 지키던 경비병이 나의 도착을 알렸다.
허가를 받고 들어가니 살바토레가 날 기다리고 있었다.
“좋은 아침입니다, 전하.”
“그래.”
대답한 그가 찻잔을 들며 빙그레 미소 지었다.
“나와 독대하길 청했다고?”
살바토레가 맞은 편의 자리를 가리켰다.
난 자리에 앉으며 대답했다.
“네.”
“무슨 일로?”
“전하와 같은 이유로요.”
“나와 같은 이유라. 이해할 수 없는 말이로군.”
“전하께서 리앙틴 언니에게 손 내미신 이유와 같다는 말씀입니다.”
살바토레의 눈이 일순 가늘어졌다.
그러나 아주 찰나였을 뿐, 살바토레는 다시 평소처럼 사람 좋게 미소 지었다.
“무례하구나, 에릴로트 아스트라.”
“하면 벌하시겠습니까?”
“글쎄. 당돌한 사람을 좋아하는 편이라 고민이 되네.”
“하면 전하의 마음에 들 수 있도록 본격적으로 무례해볼까 싶은데요. 아량 넓게 이해하소서.”
살바토레의 눈썹이 꿈틀했다.
그는 의자에 깊게 기대서 팔짱을 꼈다.
어디 한 번 제대로 놀아보라는 듯이.
나는 생긋 미소 지었다.
“아스트라가 두려우십니까?”
“황자인 내가 일개 신하의 가문을 두려워한다라……. 겁 없이 지껄이는구나.”
내 몫의 찻잔은 미리 준비되어 있었다.
나는 티팟으로 차를 따르며 말을 이었다.
“원하시는 바가 있다면 아스트라에 명하셔도 충분했을 텐데, 아이를 이용해서 아스트라를 주무르려는 것은 두려워서가 아닙니까?”
“주무르려는 것으로 보였나.”
“예.”
날 빤히 보던 살바토레가 이윽고 실소를 흘렸다.
“아, 그렇군. 영애는 내게 지금 화를 내고 있구나.”
나를 보는 눈에 웃음기가 서려 있다.
“내가 아스트라 공작의 관심을 한 몸에 받는 귀한 네가 아니라, 그저 그런 사촌에게 손을 내밀어서.”
“네? 세상에.”
나는 얼른 티팟을 내려놨다.
그리고 깜짝 놀란 표정으로 입가를 가렸다.
“모두가 황자 전하의 손길을 바란다고 생각하고 계시는군요! 과연 제국의 황자다운 자의식입니다.”
빈정거리자, 그제야 황자의 표정이 변했다.
‘속 뒤집는 건 내 특기란다.’
나는 아무것도 모르는 순진한 표정을 가장했다. 그리고 손뼉을 짝! 치며 말했다.
“황자님의 시선 한 줌에 세상 모든 이성이 울고 웃는군요. 그렇죠. 제국의 황자이시니까요.”
“…….”
“자매 사이에도 황자님을 놓고 다툴 거예요. 네, 제국의 황자이시니까요.”
“…….”
“황자님의 관심이 공평하게 돌아간다는 것을 다들 모를 거예요. 한심해라. 당연한 건데 말이죠. 아무렴요, 제국의 황자이시니까요.”
“……재밌네.”
“정말요? 아이, 기뻐라.”
어디서 속 뒤집히는 소리가 난다.
나는 입꼬리를 비죽 끌어당겼다.
“그런데 전하, 아스트라의 가훈을 아세요?”
나는 찻잔을 들며 황자를 힐끗 쳐다봤다.
“받은 대로 돌려준다.”
다시 말해서 ‘이에는 이, 눈에는 눈’이란 거다.
이 말은 내 좌우명이기도 했다.
황자는 픽 실소를 흘렸다.
내가 황자에게 받은 만큼 돌려주겠다고 선언했다는 걸 알아차린 모양이었다.
“아스트라다운 가훈이네.”
“그렇지요.”
“그럼 두고 볼까. 작은 아스트라도 받은 대로 돌려주는지.”
“기회를 주셨으니, 성의껏 가훈을 펼쳐보겠습니다.”
그때였다.
쾅!
문이 열리는 소리가 났다.
‘왔다.’
문가로 시선을 돌리니, 아비노를 비롯한 왕자들이 지혜의 방으로 들어오는 게 보였다.
밝은 갈색의 곱슬곱슬한 머리카락을 가진 체자레 왕자가 생긋 웃었다.
“미안. 독대 중에 우리가 방해한 건가~.”
나는 속으로 조금 웃었다.
미안하긴. 방해하러 왔으면서.
‘방해하러 오라고 일부러 아비노에게 말을 전하라고 한 거지만.’
난 댓글을 읽어서 알고 있다.
아딘 왕자와 체자레 왕자가 내게 관심이 있다는 것을.
아딘은 날 보고 당황해서 시비를 걸 정도였으니, 꽤 지극한 관심일 것이다.
체자레는 원래 특별한 것을 수집하길 좋아하고.
그리고.
‘성격 나쁜 놈들이라 눈독을 들인 걸 절대로 빼앗기지 않으려고 할 테지.’
아딘이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둘이서 무슨 흉계라도 꾸미는 건가? 왜? 칼소이에 제국이 합심해서 타국의 후계들을 암살이라도 하려고?”
빈정거리는 말씨가 오늘만은 듣기 좋았다.
내가 살바토레 황자와 함께 있는 것이 기분 나쁘다는 뜻이었으니까.
나는 일부러 살바토레 황자에게 다정하게 말했다.
“정말 즐거운 대화였어요.”
“……즐거웠다고?”
“네. 괜찮으시다면 다음에도 함께 차를 마셔주시겠어요?”
그러자 살바토레를 제외한 소년들의 표정이 달라졌다.
살바토레는 팔짱을 낀 채로 헛웃음을 흘렸다.
“나라도 좋다면.”
어디 더 까불어보라는 표정이었지만, 난 아무렇지 않게 미소 지었다.
“기뻐요.”
“아, 정말이지 재밌는 사람이야. 영애는.”
“저도 황자님과의 대화가 즐거웠어요. 정말로.”
다른 소년들의 표정이 점점 더 험악해지고 있었다.
* * *
아딘은 이를 악물었다.
왜인지 모르게 자꾸만 기분이 나쁘다.
아마도 아비노로부터 살바토레와 에릴로트가 단둘이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부터인 듯했다.
“아스트라 백작 영애와 살바토레 형님이 함께 있다고?”
체자레가 눈살을 찌푸리며 묻자, 아비노는 미간을 좁혔다.
“응.”
“……왜?”
“몰라. 에릴로트가 독대하고 싶다고 했어. 칫, 살바토레가 할 수 있는 건 나도 다 할 줄 아는데.”
“그러게. 다른 사람도 많은데 왜 살바토레 형님일까……. 남의 것이라면 더 탐이 나는데 말야.”
체자레의 동공에선 탐욕이 일렁였다.
“가볼까.”
“뭐? 어딜?”
“두 사람이 있는 곳. 무슨 대화가 오가는지 궁금하잖아~.”
체자레는 원래 특별하고, 아름다운 것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녀석이었다.
저 녀석의 창고엔 특이한 수인족 노예와 아름다운 동물의 박제가 모여 있다.
그러니 에릴로트 아스트라에게 관심을 보이는 것도 이해가 가는 일이다.
용을 가진 특별함.
사람을 압도하는 화려한 외모.
모든 게 체자레의 취향에 꼭 맞았으니까.
아비노 왕손은 납치범에게서 구해진 일로 에릴로트의 이름을 입에 달고 살았다.
그러니 두 사람이 합심해서 쫓아가는 건 당연했다.
‘하지만 난 여기 왜 온 거냐고.’
저 애를 보고 난 후로 자신답지 않은 행동만 반복하고 있었다.
마음에 들지 않는다.
‘그래. 짜증이 나. 그래서인 거야.’
지혜의 방을 나서는 에릴로트를 쫓아간 것은 분명 그러한 이유일 것이다.
아딘은 복도를 걷는 에릴로트의 팔을 홱, 끌어당겼다.
깜짝 놀란 에릴로트의 눈이 동그래져 있었다.
아딘이 저도 모르게 아이의 눈동자를 정신없이 바라봤다.
“아딘 전하?”
아이에게 불린 후에야 퍼뜩 정신을 차렸다.
“……내 이름을 알아?”
“지난번에 소개해 주셨으니까요.”
“알면.”
“네?”
“알면 굳이 살바토레에게 갈 필요가 있나. 필요한 게 있으면 내게 청해도 되었을…….”
아딘은 흠칫했다.
‘진짜 미친 거냐.’
말투가 마치 투정을 부리는 것 같았다.
왜 내가 아닌 살바토레에게 갔느냐고.
“아니, 내 말은, 그러니까……!”
눈을 깜빡이던 에릴로트는 곤란한 듯 미소 지었다.
“부탁은 더 강한 사람에게 해야 하는 것 아닌가요?”
“……뭐?”
“살바토레 전하께선 황제 폐하의 유일한 후계자. 하지만 아딘 전하께선…….”
“나도 팔라사 왕국의 장자야! 곧 왕세자가 될 거라고!”
“황태자와 왕세자 사이엔 차이가 있으니까요.”
아딘의 얼굴이 확 굳어졌다.
그는 짓씹듯 물었다.
“살바토레가 그러던가? 황태자가 될 그 녀석보다 내가 못하다고?”
“꼭 그런 건 아니지만…….”
“개자식.”
으득, 이를 간 아딘은 에릴로트에게 소리쳤다.
“이 대륙에선 황가와 왕가의 차이가 크지 않아! 그저 칼소이에가 내 모국보다 땅덩이가 넓을 뿐이다!”
“…….”
“제국은 내 모국의 자원이 없다면 돌아가지 않는다고!”
“그런가요?”
“그래! 게다가 내 아버지께선 나를 후계로 낙점하시겠다고 언질 주셨지만, 제국의 황제는 후계를 확정한 적이 없단 말이다!”
“멋지네요.”
에릴로트의 말에 아딘은 흠칫했다.
그가 떨리는 눈으로 바라보자, 에릴로트의 눈매가 나붓이 휘었다.
“저는 강한 사람을 좋아하거든요.”
“……뭐라고?”
“팔은 놔주시겠어요? 이제 좀…… 아파서.”
“어? 어, 어어, 그래!”
아딘이 당황해서 황급히 팔을 놔주었다.
“그럼 전 방으로 올라가 볼게요.”
“그, 그래.”
에릴로트가 고개를 숙였다.
황홀하게 물결치는 금발의 머리카락이 스르륵 흘러내렸다.
아딘은 돌아가는 에릴로트의 뒷모습을 멍하니 바라봤다.
귓가에 방금 들었던 말이 어른거렸다.
“강한 사람이 좋아요.”
좋아요.
좋아.
전하, 좋아요.
아딘은 벽에 쿵, 머리를 박았다.
“빌어먹을.”
돌아버리겠다.
저 조그만 여자애 때문에.
* * *
난 사람이 없는 고요한 복도로 접어들었다.
코너 뒤에서 쿵, 머리를 박는 소리가 들렸다.
‘쉽네.’
싸늘한 표정으로 등 뒤를 보고 있던 찰나였다.
“강한 사람이 좋아?”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고개를 돌려 앞을 보자, 로브를 뒤집어쓴 자가 창가에 기대 있었다.
“알렉시스.”
깜짝 놀라서 얼른 그에게 다가갔다.
“언제 왔어?”
“방금.”
“생각보다 빨리 합류했네. 이그리츠 용병단이 데이몬드 관할령에 합류하는 절차가 복잡해서 늦어질 줄 알았더니.”
“알았으면 기다려야 할 거 아냐. 호위 없이 맹수 소굴에 들어오지 말고.”
알렉시스의 목소리가 퉁명스러웠다.
나는 킥킥, 웃고 그의 후드를 끌어내렸다.
커다란 창을 따라 쏟아진 빛이 그의 윤곽을 따라 부서졌다.
알렉시스는 내 손을 잡고 인상을 찌푸렸다.
“뭘 잘했다고 웃어. 네 아버지에게 네가 호위 없이 이곳에 왔다고 알릴까?”
“아니! 일 년은 외출이 금지될 걸.”
“아는데 왜 자꾸 웃으시냔 말입니다, 영애님.”
“역시 네가 제일 잘생겨서.”
태양회의 소년들은 모두 화려한 외모를 자랑했다.
아스트라의 미모에 익숙한 리앙틴도 탄성을 흘릴 정도였다.
하지만 난 아무래도 감흥이 없더라니, 이 얼굴을 보고 자라서 그런가 보다.
‘아빠 때문이기도 하겠지만.’
알렉시스는 한숨을 내쉬었다.
“다신 호위 없이 다니지 않겠다고 약속해.”
“응.”
“말만 하지 말…… 뭐야, 너.”
알렉시스가 미간을 좁히더니, 양손으로 내 얼굴을 잡았다.
그러곤 인상을 찌푸리며 내 얼굴 곳곳을 뜯어봤다.
“나 이에 아기아이구, 영애잉이래찌. 아기한테 하는 거처럼 망지먼 안 댄다구. (나 이제 아기 아니고, 영애님이랬지. 아기한테 하는 것처럼 만지면 안 된다고.)”
워낙 어릴 때부터 알고 지내서 그런지 알렉시스와 나는 서로를 덥석덥석 잡았다.
근엄하게 말하려고 했는데, 볼이 찌부러져서 발음이 마구 샌다.
“난 황자님이야.”
“아익 아이아나. (아직 아니잖아.)”
“지금 어디 아픈데, 너.”
“아잉데. (아닌데.)”
“내가 널 몰라?”
7년을 봐서 그런가, 내 상태를 알아차리는 건 귀신이다.
일교차가 커서 살짝 감기가 온 걸 어떻게 알았담.
나는 알렉시스의 손을 떼어내고 인상을 찌푸렸다.
“아니라니까.”
“몸이 안 좋으면 눈가부터 붉어지십니다, 영애님.”
“…….”
“어떻게 할 거야? 한지혁에게 들었어. 네 사촌 때문에 바로는 돌아가지 못한다고.”
“그건 정확히 말하면 리앙틴이 아니라 살바…….”
말하던 순간이었다.
알렉시스가 나를 등 뒤에 감추고 코너 쪽을 쳐다봤다.
나도 황급히 그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그러고 집중하자 발걸음 소리가 들려왔다.
멀리서 들리던 발소리가 점점 가까워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