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Three Year Old Is a Villainess RAW novel - Chapter (118)
이 3세는 악역입니다 118화.(118/390)
118화.
아딘 왕자가 살바토레를 노려보며 말했다.
“그 손, 놔.”
“신경 쓰지 말고 가던 길 가지 그래.”
“놓으라고 했다.”
아딘이 살바토레와 날카롭게 대적했다.
나는 그 틈을 놓치지 않으려고, 기름칠까지 슥삭슥삭 해 주기로 했다.
“전하…….”
일명 부르면서 울먹이기.
마치 ‘네가 내 히어로야’ 하는 듯한 표정 말이다.
‘원래 대부분의 사람은 기대받으면 부응하고 싶어지거든.’
거기다 아딘에게 난 ‘호감이 있는 상대’.
심지어 아딘은 사춘기.
‘사고 치기 딱이지.’
아니나 다를까, 아딘이 살바토레의 손목을 거칠게 휘어잡았다.
“그 손 놓으란 말, 안 들려?!”
“자국의 일이다. 신경 쓰지 말라고 분명히 경고했어, 아딘.”
“네 나라에선 여자애를 위협하는 게 공무인가 보지?”
“제국을 모욕하지 마라.”
“아아, 그놈의 제국 말이지.”
제대로 불을 붙여 주네.
나는 속으로 히죽히죽 웃었다.
“아딘.”
아니나 다를까 살바토레의 표정이 변했다.
아딘의 주변으로 마력이 일렁였다.
피부에 가시 같은 뾰족한 돌이 돋아나기 시작하자, 살바토레의 주변에도 마력이 흘러나오기 시작했다.
‘가호로는 아딘보다 살바토레 쪽이 더 강력하지 않나?’
살바토레의 가호는 <훼손>.
그와 접촉한 부분이 훼손(마비 또는 노쇠)하게 되는 특수한 공격계 가호였다.
‘붙으면 아딘이 지지 않을까.’
그렇게 생각하던 때였다.
쨍─!
장식장에 놓여 있던 화병이 살바토레를 비껴서 벽에 처박혔다.
날카로운 파열음과 함께 유리가 후드득 떨어졌다.
살바토레가 아비노를 돌아보았다.
“아비노.”
“에릴로트가 아파하잖아.”
‘오.’
아비노의 가호인 <염력>이었다.
아비노는 그다지 공격성이 강한 아이가 아니라 나서려나 싶었는데.
‘역시 인연은 좋은 쪽으로 쌓아 둬야 한다니까.’
아딘과 아비노가 매섭게 노려보자, 살바토레의 눈빛이 점점 가라앉았다.
‘아비노까지 지원하면 살바토레와 붙어 볼 만하겠어.’
나는 키득키득 웃고 싶은 것을 참으며, 잔뜩 겁먹은 표정을 지어 줬다.
‘그래. 싸워라, 싸워.’
기왕이면 살바토레가 제대로 다쳐 주면 좋겠어!
그렇게 생각하던 찰나였다.
“무슨 소리가……! 세상에, 아스트라 백작 영애!”
“어머!”
화병이 깨지는 소리에 놀라서 온 귀족들이 우리를 쳐다봤다.
그 사이로 메르세데스 황자를 비롯한 다른 태양회의 소년들이 성큼성큼 걸어왔다.
크리스토퍼 왕세손이 인상을 찌푸렸다.
“무슨 일이야.”
“…….”
“…….”
“…….”
살바토레와 아딘, 아비노가 대답을 하지 않자, 크리스토퍼 왕세손이 한숨을 푹 내쉬었다.
이윽고, 아딘이 붕 떠올랐다.
“내게 가호를 쓰지 말라고 했을 텐데, 크리스토퍼!”
아딘을 떠오르게 한 저 힘이 크리스토퍼 왕세손의 가호인 모양이었다.
“너희, 혈기 좀 죽이는 게 좋겠다.”
크리스토퍼가 허탈하게 말했다.
‘이런. 그냥 여자를 좋아하고, 능글맞은 한량이라고 생각했는데.’
태양회에서 제일 나이가 많은 큰형인 만큼 중재자의 역할을 하는 모양이다.
살바토레가 내 손목을 놓았다.
그러자 아딘 왕자와 아비노 왕손의 기세도 사그라들었다.
“괜찮아, 에릴로트?”
살바토레와 맹렬히 맞서던 아비노 왕손은 언제 그랬냐는 듯,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말했다.
“네. 두 분이 도와주셔서요. 감사합니다.”
“별말을!”
아비노 왕손이 헤헤 웃었다.
“방으로 데려다줄게.”
“너무 폐를 끼치는 게 아닐는지…….”
그러자 아딘 왕자가 살바토레를 쏘아보며 말했다.
“또 미친개가 물려고 들면 안 되잖아.”
“아…….”
“가자.”
나는 아딘 왕자, 아비노 왕손과 함께 등을 돌렸다.
나의 등 뒤로 살바토레 황자의 싸늘한 시선이 달라붙었다.
* * *
아딘과 아비노는 나를 기어코 방 앞까지 데려다주었다.
“감사해요, 전하들.”
아딘은 크흠, 헛기침하며 나를 흘낏 쳐다봤다.
“아무리 용이 있다고 해도, 혼자 있는 넌─”
“연약하니까 조심해!”
아비노가 홀랑 말을 가로채자 아딘은 인상을 찌푸렸다.
그러나 곧 다시 내게 말했다.
“살바토레는 위험한 놈이야. 너를 노릴 수도 있으니까─”
“혼자 있지 마!”
“…….”
아딘이 다시 아비노를 노려보고, 내게 시선을 돌렸다.
“언제 돌아가지? 뭐, 네가 원한다면 돌아갈 때까지─”
“내가 같이 있어 줄게!”
“나도 말 좀 하자!”
티격태격하는 두 사람을 보며 생각했다.
‘살바토레를 적대하는 분위기가 깨지지 않게 마지막까지 제대로 기름칠을 해 둬야지.’
나는 두 손을 모으고 반짝반짝한 눈으로 두 사람을 쳐다봤다.
“약자라고 생각되면 이익을 따지지 않고 구해 주시는 점, 굉장히 존경스러워요!”
“조, 존경?”
“존경……?”
아딘과 아비노가 눈을 끔뻑였다.
‘이런 말은 처음 들어 봤을 거다.’
아비노는 순진하지만, 일국의 왕손답게 오만한 편이었다.
처음 만났을 때도, 아스트라의 사촌들이 엄청나게 잘 보이려고 애썼는데 콧방귀도 뀌지 않았다.
거기다 아딘은 매우 흉포했다.
그런 저들이 어디서 이런 말을 들어 봤겠는가?
아비노는 활짝 웃었고, 아딘은 아닌 척하지만 귓불이 붉었다.
“그럼 저는 이만 방에 들어갈게요.”
“응! 쉬어, 에릴로트!”
“그, 그래.”
나는 두 사람에게 인사하고 방으로 돌아왔다.
들어가자마자 똑똑,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
“세바스티아야. 괜찮으면 잠깐 얘기를 하고 싶은데.”
문을 열어 주자, 세바스티아가 안으로 들어왔다.
나는 하녀에게 차를 부탁하고 그녀에게 자리를 내주었다.
“앉으세요.”
“밤늦게 미안해.”
“괜찮아요, 언니.”
“언니……. 듣기 좋네.”
세바스티아는 픽 웃으며 소파에 앉았다.
“여동생은 사촌 하나뿐이거든. 최근 몇 년 동안은 방에 틀어박혀서 만나지도 못했고.”
“많이 아끼셨나 봐요.”
“그래. 착한 아이였거든. 나는 착한 아이를 좋아해. 손익을 따지지 않고 호의를 베푸는 건 어렵잖아.”
하녀가 티 세트를 옮기는 동안, 세바스티아가 무감한 얼굴로 창밖을 노려보고 있었다.
창을 넘어 크리스토퍼와 살바토레가 함께 걷는 모습이 보였다.
“하지만 그 애는 착해도 너무 착했지.”
“사촌 동생이 콜로세움 경기 때문에 상처 입은 게 마음 아프셨겠군요.”
“몸의 상처는 별 게 아냐. 언젠가는 나으니까. 하지만…….”
하녀가 뜨거운 물을 내왔다.
내가 찻잎이 들어 있는 티팟에 뜨거운 물을 옮기는 동안, 세바스티아가 중얼거렸다.
“시합이 끝난 후가 더 힘들었던 거겠지. 가문에 피해를 입혔다는 죄책감, 나와 비교하는 태양회 쓰레기들의 압박……. 그런 것들이 힘들었을 거야.”
“이해해요.”
“가만두고 싶지 않아.”
티팟 주둥이에서 쌉싸름한 향기가 풍겨 왔다.
세바스티아가 나를 흘낏 쳐다봤다.
“어때? 혼자서는 힘들지만, 둘이라면 할 수 있는 일 같은데.”
“…….”
“도와준다면, 내 앞으로 빚 하나를 달아 두지.”
“…….”
“언젠가 은혜를 갚겠어.”
“언니.”
우러난 차를 찻잔에 따랐다.
붉은 찻물이 찻잔 안에서 가볍게 소용돌이쳤다.
“제게 있는 빚을 제하는 거로 해요.”
“……뭐?”
“처음 뵈었던 식당에서 리앙틴 언니에게 모진 말을 하셨던 건, 미리 언질을 주신 거죠?”
“그건…….”
“깊은 속을 알아보지 못했어요. 죄송해요.”
“…….”
“제게 있는 그 빚, 이번 일로 언니에게 갚겠어요. 그러니까 언니는 제게 빚이 없는 거예요.”
“……너도 참 세상 살기 힘들겠다.”
세바스티아가 찻잔을 들며 싸늘하게 말했다.
“그만한 힘을 가지고, 인의까지 지니고 있는 건 힘든 일이거든.”
“네?”
오해다.
나는 그렇게 좋은 사람이 아닌걸.
좋은 사람이었다면, 쓰레기들 이간질이 이렇게 흐뭇하지 않았을걸?
세바스티아는 빙그레 웃었다.
“하지만 난 너 같은 아이를 좋아하는 편이야.”
나는 고개를 갸웃했다.
‘착각하는 것 같은데…… 그냥 두지 뭐.’
기껏 호감을 가졌는데 굳이 깨 버릴 필요는 없잖아?
세바스티아가 물었다.
“그럼 난 뭘 하면 될까?”
“정보요. 저보다는 태양회에 관해서 잘 아실 테니까요.”
“물어봐.”
“일단 태양회의 관계가 궁금해요. 특히 크리스토퍼 왕세손이요. 겉보기엔…….”
“머리 빈 바람둥이 같은데, 의외로 쓸 만하게 굴 때가 있지? 재수 없게.”
맞는 말이다.
나와 세바스티아는 각자 다른 곳을 보며 쯧, 신랄하게 혀를 찼다.
“너도 알겠지만, 태양회는 이기적인 놈들투성이지. 저 잘난 맛에 사는 놈들이 아직 흩어지지 않은 이유는 하나고.”
“그 이유는요?”
“중심에 크리스토퍼 왕세손이 있거든.”
“…….”
“크리스토퍼는 재수 없긴 해도, 시야가 넓어. 관계가 파탄 나지 않게 조율을 잘하거든.”
“흐음.”
“왜?”
“그렇다면 말이에요……. 크리스토퍼를 우리 쪽으로 끌어들이면, 저들의 권력관계를 파탄 낼 수 있다는 게 아니겠어요?”
세바스티아가 눈을 가늘게 좁혔다.
“어떻게?”
“자리를 만들어 주세요.”
“그야 어렵지 않지.”
나와 세바스티아는 서로를 바라보며 씩, 웃었다.
* * *
이튿날.
크리스토퍼는 웃는 얼굴로 주변을 둘러봤다.
‘아, 피곤하네.’
어제 일 이후로 태양회가 살얼음판이다.
아딘과 아비노는 언짢은 내색을 대놓고 하는 중이었다.
평소엔 저들을 신경도 쓰지 않는 살바토레조차 날카로운 분위기였다.
‘하여간에.’
크리스토퍼가 티팟을 들었다.
“왜 이렇게 분위기가 우중충해? 기껏 모였는데 즐기자고.”
아딘은 눈살을 찌푸렸다.
“그래. 약자를 괴롭히지 말고.”
살바토레의 입매가 비틀렸다.
“눈이 삐었나 보지. 에릴로트 아스트라가 약자로 보이게.”
“살바토레!”
“목소리를 낮추라고 누누이 경고했다, 아딘.”
“뭐?”
“부탁인데, 정말로 화가 나게 하지 마.”
“붙어보겠다면 난 안 피해.”
그때였다.
쾅─!
살바토레가 빠르게 일어나 아딘의 목을 쥐었다.
“컥!”
그가 잡은 부분부터 피부가 새파랗게 변하기 시작했다.
가호를 발동한 것이다.
살바토레의 주변 온도가 차게 가라앉았다.
짜증 섞인 표정으로 아딘과 살바토레를 보고 있던 태양회의 소년들이 굳어졌다.
“살바토레!”
크리스토퍼가 서둘러 살바토레를 뜯어말렸다.
급히 아딘을 떼어놓았다.
아딘은 목을 잡은 채로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
“이……!”
카각, 칵, 카가각.
균열음과 함께 아딘의 피부가 돌덩이처럼 굳어지기 시작했다.
“아딘, 너도 그만해!”
다른 소년들까지 나서서 아딘을 말렸다.
상황의 발단인 살바토레는 목을 주무르며 입을 열었다.
“귀엽게 봐줄 때 적당히 짖어야 할 거야.”
“너, 이 새끼……!”
“그만들 좀 해라!”
지켜보던 소년들이 고개를 저었다.
“아, 분위기 개판이네~.”
“오늘은 이만 파하지. 이러다 하나는 죽어 나갈 성싶으니까.”
소년들이 다들 날카로운 표정으로 떠난 후, 크리스토퍼는 홀로 남아 한숨을 내쉬었다.
‘이렇게 되면 기술 교류 얘기는 꺼내지도 못하겠는 걸.’
“아, 할아버님한테 대차게 깨지겠구만.”
“그거 안됐네요.”
등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세바스티아?”
“여기 계셨군요.”
“네가 왜?”
“왜요? 못 올 데라도 왔나요?”
“아니. 넌 좀 나를…….”
쓰레기처럼 봤잖아?
옷깃이라도 스칠까 봐 상대도 하지 않았다.
뒷말은 삼켰으나, 세바스티아는 이해했는지 “아.”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용건이 있어서요.”
“용건이 뭐기에 귀한 걸음을 해주셨을까.”
“에릴로트가 전하를 뵙고 싶어 해요.”
“……나를?”
“네.”
“이거 미안하네. 오늘은 바빠서─”
그때였다.
세바스티아의 뒤에서 쏙 얼굴을 내민 에릴로트가 헤헤 웃었다.
“그럴 줄 알고 잠깐 뵈려고 따라왔어요. 실례한 건 아니겠지요?”
“…….”
앞엔 호랑이 같은 세바스티아, 뒤에는 용 같은 에릴로트에게 가로막혔다.
크리스토퍼는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웃었다.
“물론. 잠깐이라면 시간이 날 것 같은데. 앉아서 얘기할까?”
“네.”
“두 분 숙녀는 여기 앉으시고.”
팔짱을 끼고 있던 세바스티아가 고개를 저었다.
“에릴로트와 이야기를 나누세요. 저는 일이 있어서요.”
“……단둘이 얘기하라고?”
네가 쓰레기처럼 생각하는 나와 네 의동생을 함께 둔단 말야?
‘노리는 게 있군.’
평소의 세바스티아는 자신이 스치기만 해도 전염병에 걸리는 것처럼 굴었다.
“네. 그럼 이만.”
세바스티아는 말릴 틈도 없이 떠났다.
크리스토퍼는 별다른 내색 없이 자리에 앉았다.
“그래, 무슨 일로 날 찾아왔을까?”
“도와주셨으면 해서요!”
“내가 도와줄 일이 있으려나.”
“태양회를 분열시키려면 전하의 도움이 필수죠.”
“…….”
크리스토퍼가 멈칫했다.
하마터면 미소로 무장한 가면이 깨질 뻔했다.
“아, 영애는 듣던 만큼 재밌는 사람이네.”
“정말요? 영광이에요. 크리스토퍼 전하는 항상 지루하실 텐데.”
“나만큼 삶을 즐기는 사람이 없을 텐데?”
“쉬워 보이려고 마음에도 없는 바람둥이 노릇을 하시잖아요. 가면을 쓰고 사는 삶이 즐거울 리가 있나요.”
기어코 가면을 벗게 만드는 녀석이었다.
헛웃음을 터트린 크리스토퍼가 팔짱을 끼며 말했다.
“맞아. 쉬워 보일수록 상대의 입이 가벼워지니까.”
“역시 무역의 중심지인 저먼 왕국의 왕세손답군요.”
“너야말로 굉장하던데. 유난히 멍청한 놈들을 골라서 포섭한 걸 보면.”
“멍청하다니요. 순진하신 거죠.”
“뭐, 그렇게 표현할 수도 있겠지만. ……그런데 난 아냐.”
크리스토퍼가 차가운 표정으로 에릴로트를 쳐다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