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Three Year Old Is a Villainess RAW novel - Chapter (119)
이 3세는 악역입니다 119화.(119/390)
119화.
크리스토퍼 왕세손은 눈썹을 까딱 들어 올렸다.
“뭘 노리는지는 알겠어. 태양회를 분열시키고 싶은 모양인데, 난 도움을 줄 수 없겠다.”
“어째서요?”
“여긴 말야. 우리에게 있어선 진주 양식장이나 마찬가지거든. 도움이 되는데 버릴 필요가 없지.”
“…….”
“그럼 대화는 이 정도로 마무리할까.”
빙그레 웃은 그가 몸을 일으켰다.
막 의자를 지나치려던 때에 에릴로트가 말했다.
“양식이 아니라 자연산 진주를 캐고 싶진 않으세요?”
“별로.”
“칼소이에 제국 황제의 진짜 장남—”
크리스토퍼가 멈칫, 아이를 돌아봤다.
에릴로트는 빙그레 미소 지었다.
“—정도면 자연산 진주일 텐데요.”
크리스토퍼의 눈이 가늘게 흔들렸다.
‘진짜 장남이라고?’
그럼 살바토레가 가짜이기라도 하단 거야?
크리스토퍼는 기가 차다는 듯 실소를 터트렸다.
“네가 지금 무슨 말을 하는지 알고 있어?”
“세상이 뒤집힐 비밀을 말씀드리고 있는 거지요.”
“너…….”
“예, 전하. 제 손에 있답니다. 자연이 빚은 진주가 말이에요. 그것도 아주 훌륭한 흑진주죠.”
에릴로트가 고개를 돌렸다.
그러자 수풀 사이에서 인기척 소리가 들리더니, 이윽고 소년이 걸어 나왔다.
짙은 밤처럼 보이는 칠흑의 머리칼.
새벽성과 같은 청안.
알렉시스를 본 크리스토퍼의 얼굴이 굳어졌다.
“……!”
예비 원화전의 송신을 가로챘을 때 분명히 보았다.
저 소년의 가호를.
다른 소년들은 <육체 지배>인 줄로 알았으나, 만약 그게 타인의 가호를 카피하는 힘이라면…….
“칼소이에 건국 황제의 가호.”
“맞아요, 전하.”
“이건 말이 안 되는 일이야.”
“그래서 믿지 않으실 건가요?”
“…….”
에릴로트는 아스트라 공작의 손주였다.
뛰어나다는 아스트라의 3세 중에서도 정점에 있는 아이.
그런 아이가 이런 엄청난 거짓말을 할까?
‘제 말의 파장을 알 텐데.’
에릴로트가 생긋 웃으며 말했다.
“어떠세요? 알렉시스선의 최초 입장자가 되어 보시는 건?”
건국 황제의 가호를 지니고 태어난 황제의 ‘진짜 장남’.
거기다 용을 소유한 소녀.
훗날 저들이 합심하면 그의 모국은 위험해질 것이다.
크리스토퍼가 허탈한 표정으로 중얼거렸다.
“……이쯤 되면 거래가 아니잖아. 협박이지.”
“기회예요. 저희와 친구가 될 기회.”
에릴로트는 해맑게 웃었다.
다른 사람이 보면 순진해 보이겠지만, 크리스토퍼의 눈엔 보였다.
‘저 찬란한 금발 위로 솟은 악마의 뿔이.’
크리스토퍼는 다시 의자에 털썩 주저앉았다.
“그래, 내가 뭘 어째야 하는지 들어나 보겠어.”
“아무것도 안 하셔도 돼요.”
“이건 또 무슨 소리…….”
“중재하지 않고 그저 얌전히 계시면 된다는 거예요.”
“태양회가 파탄 날 때까지 말이지.”
“영민하십니다.”
크리스토퍼가 한숨을 내쉬었다.
‘할아버님, 올해엔 제국과 기술 교류를 하기는 어렵겠습니다.’
* * *
나는 흥얼흥얼 콧노래를 부르며 복도를 걸었다.
기분 좋은 나를 보던 알렉시스가 미간을 좁혔다.
“저 녀석, 믿을 만해?”
“크리스토퍼? 아아, 걱정하지 마.”
나는 씩 웃고, 알렉시스를 쳐다봤다.
“네 정체는 조커야. 크리스토퍼는 조커를 함부로 뒤집지 않는 똑똑한 사람이고.”
“…….”
“그리고 무엇보다…….”
이번 기회에 타국에 연줄을 만들어 놓으면 좋다.
알렉시스가 황궁에 입성할 때 도움을 줄 수 있을 테니까.
크리스토퍼는 태양회의 중심인 소년.
‘그를 얻으면 다른 인맥은 그냥 따라오는 거나 마찬가지지.’
가볍게 복수할 셈이었는데, 일이 이렇게 풀리네.
내가 히죽히죽 웃고 있자, 알렉시스가 인상을 찌푸렸다.
“그거 말고.”
“응?’
“이번 일에 도움을 줬다는 핑계로 널 귀찮게 하지는 않겠어?”
“아…….”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알렉시스를 쳐다봤다.
최근에 태양회의 재수 없는 놈들만 봤더니, 알렉시스가 신기하게 느껴졌다.
“너는 왜 네 손익을 따지지 않고, 나를 우선해?”
“그러면 안 돼?”
“안 되는 건 아니지만…….”
“아니면 됐잖아.”
알렉시스는 아무렇지 않은 표정으로 앞서 걸었다.
그러더니 날 힐끗 돌아보고서 말했다.
“의심은 어릴 때 한 거로도 지겨워. 난 그냥 너라면 의심하지 않기로 했어.”
“……언제부터?”
“몰라.”
“모른다고?”
“난 너에 관해선 계산이 안 돼. 빌어먹을.”
그렇게 말한 알렉시스가 다시 걸어가기 시작했다.
나는 멍하니 눈을 끔뻑였다.
그러자 알렉시스가 한숨을 내쉬듯 말했다.
“안 갈 거야?”
“어? 어어.”
얼른 그를 향해 뛰어갔다.
곁에 서서 보폭을 맞춘 후, 가늘게 뜬 눈으로 그를 쳐다봤다.
“너, 나 모르게 어디 가서 멘트 교육이라도 받아?”
“헛소리한다.”
“아니면 그런 말은 하지 마.”
“왜.”
“그러다가 막 사랑에 빠지고 그러는 거야. 나니까 ‘우정이구나’ 하는 거지.”
알렉시스가 실소를 흘렸다.
그러곤 한 손으로 내 뺨을 꾹 누른다.
“어디 빠져보든가.”
“미혔냐, 내가. (미쳤냐, 내가.)”
“사랑에 빠지면 미친다잖아.”
나는 알렉시스의 손을 떼어내고, 인상을 썼다.
“누가 그래?”
“칼리 단장이.”
“또 그 ‘첫사랑’ 얘기를 했어?”
“부탁이니까, 제발 그 얘기 좀 하지 말라고 해주라.”
칼리 단장은 치질뿐만이 아니라, 치명적인 병이 또 하나 있었다.
비련의 남주인공병.
“사랑은 미친 짓이지……. 하, 그녀를 만난 건 내 나이 열여섯 때였다. 아무것도 없는 종기사가 사랑하기에 그녀는 너무나 고귀했어.”
나도 그놈의 첫사랑 추억을 한 열두 번쯤 들은 것 같다.
난 떨떠름한 표정을 지었다.
“미친 짓이긴 하지.”
“……네가 그걸 어떻게 아는데.”
“나도 해봤으니까.”
‘첫 번째 삶에서.’
멍청한 짓은 다 했다.
바보처럼 빠져들어서 헌신했다.
그때 마음이 걸레짝이 되어서, 이제 누굴 좋아할 생각이 들지 않았다.
‘한 번도 돌아봐 주지 않았지만.’
그는 달리아를 사랑했으니까.
사랑하는 달리아를 위해서 못할 것이 없던 남자였다.
내가 그를 위해 필사적으로 구해온 것들은 모두 달리아에게 넘어갔다.
죽어라 노력해서 세운 공, 목숨 걸고 찾아온 성물…….
‘그뿐만이 아니었지.’
그와 만나기로 한 것에 설레서 밤을 새우고 약속 장소에 나간 적이 있었다.
한겨울이었는데, 뼈가 시리도록 추웠다.
약속 장소인 시계탑에서 네 시간이나 기다렸는데도, 그는 오지 않았다.
‘달리아가 아프다니까 홀랑 그 애한테 가버려서.’
그 탓에 폐렴까지 번져서 얼마나 고생했던가.
사경을 헤매면서도 이따금 눈을 뜰 때면, 이루 말할 수 없는 감정이 들었다.
허탈함, 비참함, 자기혐오가 뒤섞였다.
생각하니까 열이 받는다.
나는 힘없이 중얼거렸다.
“그래도 네 시간이나 기다리게 하는 건 너무 했잖아.”
통신 한 번 하면 손가락이 부러지나?
달리아의 감기가 덧난대?
그러자 알렉시스가 인상을 찌푸렸다.
“누가 널 기다리게 했어?”
“있어. 재수 없는 놈.”
“누군데.”
“있다니까.”
투닥거리던 중에 인기척 소리가 들렸다.
한지혁이 우리를 향해 뛰어오고 있었다.
그의 표정이 평소와는 달랐다.
희게 질린 얼굴로 딱딱하게 굳어있던 것이다.
나는 깜짝 놀라서 물었다.
“무슨 일이야.”
“병동에 가보는 게 좋겠다.”
“병동? 병동은 왜.”
“리앙틴이 다쳤어.”
내가 크리스토퍼를 만나기 전만 해도 멀쩡하던 애가 갑자기 왜?
‘설마…….’
나는 정신 없이 병동으로 달려갔다.
서둘러 입실하자 침대에 앉아 있는 리앙틴이 보였다.
그 옆엔 세바스티아가 있었다.
리앙틴은 아무렇지 않은 것처럼 말했다.
“뭐야? 왜 그렇게 놀라서 와?”
“언니가 다쳤다길래.”
“그냥 삐끗해서 넘어졌어. 에버린(아스트라 상점가에서 가장 유명한 고급 구두 브랜드)의 구두는 다 좋은데, 장식이 너무 많아. 걸핏하면 넘어진다니까.”
나는 리앙틴의 쇄골 쪽을 빤히 쳐다봤다.
얼핏 붕대가 보인다.
“넘어졌는데, 어깨에 붕대를 감아?”
리앙틴이 흠칫, 옷깃을 말아쥐었다.
“아, 그, 어깨 쪽으로 넘어져서…….”
“이봐요, 아스트라 영애. 그냥 솔직히 말하는 게 좋겠어요.”
세바스티아가 말하자, 리앙틴이 마른침을 삼켰다.
“아니, 나는, 그러니까…….”
“누구야? 누가 언니를 공격했어?”
“공격이 아니라 사고─”
“살바토레 황자야?”
리앙틴이 움찔했다.
세바스티아는 한숨을 푹 내쉬었다.
“정원에서 소란이 있었다더니, 그 일로 감정이 상했나 봐. 네 사촌 언니를 찾아와서 협박했대.”
“무슨 협박이요?”
“뭐겠어. 네 사촌 언니를 이용해서 널 압박하려던 거지.”
나는 당장에 걸음을 옮겼다.
살바토레 황자에게 찾아갈 생각이었다.
그러자 리앙틴이 헐레벌떡 달려와서 나를 잡았다.
“뭐하게!”
“놔.”
“황자에게 가지 마. 이건 정말 사고야!”
“…….”
“내가 겁을 먹었어. 그래서 무심코 마력을 조절하지 못한 바람에 가호가 발동한 거야.”
“…….”
“살바토레 황자는 내 가호를 모르잖아. 혹시 공격하려는 건가 싶어서 방어한 거고, 그러다가……!”
“찾아와서 협박하지 않았다면 없었을 일이지.”
리앙틴이 입술을 꾹 깨물었다.
“나 때문에 더 곤란해지게 하고 싶지 않아.”
“언니 때문이 아니야. 언니가 나로 인해 다친 거지.”
“처음부터 내가 네 말대로 아스트라 장원에 돌아갔다면 별일이 없었을 거야. 내 탓이 맞아.”
리앙틴은 자존심이 센 아이였다.
아무리 황자라고 해도, 자신을 공격한 쪽을 가만두려 하지 않을 거다.
다른 때라면 당장 숙부에게 연락해서 울고불고했겠지.
저 애가 참고 있는 건 나 때문이었다.
사람들이 내가 살바토레 황자를 자극해서 이런 일이 일어났다고 생각할까 봐서.
“그러니까 흥분하지 마, 에릴로트.”
“흥분하지 않았어.”
“그럼 다행─”
“난 이상하게 화가 나면 침착해지더라고.”
오랜만이다.
이렇게까지 화가 나는 건.
“에릴로트.”
“놔도 돼. 바보처럼 살바토레를 들이받지는 않을 거야.”
“……그럼?”
“계획을 속행해야지.”
리앙틴은 그래도 불안한 표정이었다.
“제발 살살해줘. 에릴로트, 넌 공격모드가 되면 어디까지 갈지 모르잖아.”
세바스티아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에릴로트가 그렇게 무서운가요?”
“라곤의 일로 에릴로트가 머리끝까지 화가 났었는데요. 그때 선황녀, 아니, 아나톨리를 박살 냈어요…….”
두 사람이 속닥이는 와중에, 의사와 하녀가 들어왔다.
‘그러면 이제 일을 시작해야지.’
그렇게 결정한 난…….
“으허엉!”
─울음을 터뜨렸다.
“에, 에릴로트?”
“에릴로트.”
내가 얼마나 무서운지에 관해서 얘기하던 두 언니가 당황했다.
“뭐, 뭐야, 왜 갑자기?”
“허엉……! 언니가 다치다니 너무 슬퍼!”
리앙틴이 황당한 얼굴로 물었을 때, 나는 “아앗!” 하며 비틀거렸다.
그리고 말했다.
“허어엉, 가호가 조절이…… 안 되네?”
마력이란 건 흥분하면 조절이 잘 안된다.
그리고 난 겉으로 보기엔 감정 조절을 잘하지 못하는 열 살이다.
심지어 사촌 언니가 다치는 바람에 아주 놀란 어린애.
‘난 내 나이를 이용할 줄 아는 악역이란다.’
의사와 하녀가 화들짝 놀라서 내게 달려왔다.
“가, 가호라면 <마물 조련> 말씀이십니까?”
“지금 아스트라 백작 영애가 조련한 마물이라면…….”
그래, 뭐겠어?
나의 마룡, 라곤을 떠올린 사람들이 사색이 되었다.
“아앗, 라곤이 오고 있어!”
즉, 살바토레 너는 죽었다는 소리다.
* * *
칼소이에 황궁.
황제가 중앙탑의 귀족들과 논의 중이던 대전에 시종장이 다급히 달려왔다.
“폐하! 큰일입니다!”
“무슨 일이냐.”
황제가 인상을 찌푸리며 시종장을 쳐다보았다.
귀족들 또한 일시에 시종장을 쳐다봤다.
희게 질린 표정을 보아하니 무슨 일이 단단히 난 모양이다.
“아스트라 백작 영애의 용이 태양회가 개최된 국경성으로 날아가고 있습니다.”
“뭐라!”
황제가 쾅! 테이블을 내리치며 일어났다.
아스트라 공작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에릴로트의 용이?’
황제가 다급히 캐물었다.
“무슨 일로 용을 소환한단 말이냐!”
“소, 소환이 아니옵고 사고라고 해야 할지…….”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게야!”
“리앙틴 아스트라가 살바토레 황자님의 가호에 당했고, 그 모습에 놀란 에릴로트 아스트라가 마력을 조절하지 못했다고 합니다.”
“뭐야?!”
귀족들이 기함했다.
“요, 용이 태양회가 있는 국경성에?”
모두가 소란스러운 가운데, 아스트라 공작의 눈은 가늘어졌다.
‘에릴로트가 마력을 조절하지 못해?’
리앙틴이 그리 크게 다쳤을 리 없다.
그렇다면 자신에게 소식이 안 왔을 리 없으니까.
심지어 에릴로트는 손주들 가운데 가장 이성적인 아이였다.
더 어릴 때에도 마력을 조절하지 못하는 경우는 없었다.
‘계략이구나.’
아무래도 영특한 손녀가 선물을 준비하는 모양이었다.
태양회라는 눈에 거슬리는 모임을 짓밟는 것으로.
황제가 소리쳤다.
“중앙군, 남군, 북군을 원화와 함께 국경성으로 보내라! 서둘러야 한다!”
그곳엔 각국의 후계자들이 모여있다.
용이 그중 하나라도 물어 죽인다면 일은 걷잡을 수 없다.
친황궁파의 카멜리안 백작이 말했다.
“고대 마물 <공허>를 일격에 날려버린 용입니다. 3군이 간다고 해서 처리할 수 있겠습니까!”
“하면!”
“국경성 일대 가문의 군사들을 모두 소집해야 합니다.”
“그래. 긴급령을 내려 소집하고, 국경성의 아이들을 서둘러 피신시켜라!”
황궁이 뒤집어졌다.
귀족들은 정신없이 달려 나갔고, 황제는 다급히 군사 회의를 소집했다.
중앙탑 회의를 지켜보던 소년 하나가 몸을 일으켰다.
소년을 부르는 별칭은 많았다.
그중 가장 유명한 이름이 바로 ‘15세의 나이로 서기관에 임명된 천재 소년, 빈센트’.
후작가의 외아들인 그가 제 아비에게 물었다.
“에릴로트 아스트라의 용이 그리 위험합니까?”
“말도 못하지. 서부 예비 원화전을 본 자들이라면 고개도 들 수 없을 것이다.”
“……궁금하군요.”
이 소년이 바로 달리아를 사랑하고, 에릴로트에게 사랑받았던 그 남자.
빈센트 에드로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