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Three Year Old Is a Villainess RAW novel - Chapter (12)
이 3세는 악역입니다 12화.(12/390)
12화.
그렇게 말한 뒤에 곧장 덧붙였다.
“─조아. 그치만 하부지 더 조아.”
난 속으로 질문을 비웃었다.
아이, 참. 날 뭐로 보고.
이래 봬도 내가 예전 세계에선 사회생활 잘하기로 소문났던 사람이라 이거야.
원래 이럴 땐 앞에 있는 사람을 말하는 거다.
“할부지, 제─ 일 조아요!”
드뷔시 자작이 쿡쿡 웃으며 할아버지를 쳐다봤다.
“그러시답니다.”
“쓸데없는 소리 하지 말고 손이나 놀려.”
“예예, 신전 동향 보고서입니다. 최근 황도에─”
“한데 말이다.”
할아버지가 서류를 들추며 말을 이었다.
“하딕스 산에 고대어로 쓰인 비석들이 있지 않나? 에릴로트를 데려가면 수색에 도움이 되긴 하겠군.”
그러며 커흠! 기침했다.
* * *
그날 밤.
할아버지의 허락을 구한 난 신이 났다.
‘내가 제일 좋다고 한 게 썩 나쁘지 않았나 봐.’
그래, 자기 좋다는데 특이한 경우가 아닌 이상 싫을 사람이 있겠어?
그리고 나는 꽤 할아버지에게 도움이 되었잖아.
흥얼흥얼하며 걷던 중에 콘라드와 마주쳤다.
“아가씨.”
“안넝.”
“예, 기분이 좋으시군요.”
“나 아밤미랑 산에 가니까.”
“들었습니다. 잘 되셨네요.”
콘라드가 즐거운 산행이 되길 바란다고 말해 줘서, 난 고개를 끄덕였다.
“구론데 콘라드 어디 가?”
평소처럼 부관의 정복을 입고 있지 않았다.
“백작령에서 급히 치유사 파견을 요청해서 치유사를 데리고 가게 되었습니다.”
치유사 파견을 요청할 정도라면, 매우 심각한 상황인가 보다.
내가 눈을 동그랗게 뜨니, 콘라드가 자세한 이야기를 해 주었다.
“드라프디외 백작가의 늦둥이 외아드님 때문에요.”
“아가 아파?”
“너무 걱정하실 필요는 없습니다.”
“왜?”
“만약의 사태에 대비하기 위해 치유사가 필요할 뿐이지, 가호를 발현할 때 나는 열병인 것 같거든요.”
아하.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콘라드는 내게 인사하곤 걸음을 옮겼다.
‘가호라.’
내게도 있으면 좋을 텐데.
<고대어 읽기> 같은 가짜가 아니라 진짜 가호 말이다.
‘달리아는 셋씩이나 있는데, 어떻게 내겐 하나도 안 주냐.’
허공에 대고 투덜거리다가 한숨을 내쉬었다.
없는 사람은 없는 만큼 더 열심히 해야지 뭐.
그러니까 내일 하딕스 산행이 중요하다.
‘꼭 정화석을 찾아와야지.’
아버지에게 내가 쓸모 있는 사람이라는 걸 증명해야 하니까!
나는 히죽히죽 웃었다.
* * *
다음 날.
나는 아버지의 산행에 쫓아갔다.
아버지는 할아버지로부터 날 데려가란 얘기를 듣고,
“빌어먹을 늙은이.”
─하고 중얼거렸지만, 큰 저항 없이 날 데려왔다.
하딕스 산 입구에는 수색 지휘실이 꾸려졌다.
아버지와 병사들은 지휘실에서 수색 방식에 관해 얘기했고, 난 그 옆에 얌전히 앉아 있었다.
지난번에 봤던 3m의 사내가 팔을 번쩍 들었다.
“산에서 돌이란 돌은 죄 주워 오면 되는 거유?”
‘뭐?!’
그 많은 산의 돌을 다 어떻게 주워 오려고?
그건 정말로 모래사장에서 바늘 찾기다.
찾으면 다행이게?
눈알 빠지게 봐 봤자 정화석은 찾을 수 없을 것이다.
‘정화석은 나무 속에 있으니까.’
천 년이 넘게 묵은 나무가 만들어 낸 결정체. 그게 정화석의 정체였다.
그러니 백날 돌멩이만 모아 봐야 절대로 못 찾는다.
‘이러다 헛고생만 하고 수색이 중지되겠네.’
그렇게 둘 순 없어서 나는 엔조를 쳐다봤다.
“정하석이 모야? (정화석이 뭐야?)”
모르는 척 물으니, 지도를 보고 있던 엔조가 말했다.
“쉽게 말하면 저주를 없애 주는 돌입니다.”
“돌이 어떠케 저주를 엄쎄? (돌이 어떻게 저주를 없애?)”
“자연에서 특별한 힘을 주었기 때문이죠.”
“자연 나빠. 전부 정하석 하게 해 주지. 차별해.”
내가 일부러 어린애처럼 말하자, 병사들이 껄껄 웃었다.
“차별이란 말도 아십니까?”
“그러고 보니 벌써 글자도 쓰신다더군.”
“귀엽네, 귀여워.”
그러는 말이 오가는 동안에 아버지의 시선은 지도에 고정되어 있었다.
“백경나무…….”
“예?”
엔조가 묻자 아버지가 말했다.
“이 산에서만 정화석이 발생한 건 다른 곳과 ‘차별’된 조건이 있기 때문일 거다.”
“조건이랍시면?”
“이 산만이 가진 특별한 조건이라면 백경나무뿐이겠지.”
‘그래, 맞아.’
아버지는 명했다.
“백경나무 인근을 수색해라.”
“예!”
“예!”
좋았어!
나는 속으로 짝짝 손뼉을 쳤고. 병사들은 산 중턱에 있는 백경나무 쪽으로 이동했다.
‘이제 적당히 수색하다가 나무 속에 있을지도 모른다고 운을 떼야지.’
그렇게 생각한 나는 아버지와 병사들을 쫓아갔다.
“산행은 힘드실 텐데, 막사에 계시는 게 어떻겠습니까?”
엔조가 그렇게 말했을 때였다.
산의 돌멩이를 다 주워 오면 되느냐고 했던 3m의 사내가 말했다.
“그럼 내가 무등을 태워 드리면 어떻수?”
좋아!
가지 못하느니 무등을 타는 게 낫다.
‘저 아저씨는 조금 모자라지만 착한 사람인가 봐.’
내가 “응!”하고 말하니, 거구의 사내가 나를 목에 태웠다.
난 까르륵 웃었다.
높은 곳에 올라앉아 있는 건 재미있었다.
거구 사내의 어깨가 아주 넓어서, 앉는 것에도 안정감이 있었다.
“자자, 갑시다. 해지기 전에 찾아서 내려와야지!”
우리는 그렇게 백경나무를 향해 출발했다.
나는 사내의 어깨에 타고 있기만 하면 돼서, 산행이 아주 쉬웠다.
백경나무에 도착한 병사들은 수색을 시작했다.
‘지금이 정오니까…… 음, 1시간쯤 뒤에 말해주면 이상하지 않아 보이겠어.’
그렇게 결정한 나는 정말로 딱 1시간 뒤에 움직였다.
나무를 돌로 꽝꽝 두드리기 시작한 것이다.
“아가씨?”
내 이상한 행동을 본 병사들이 다가왔다.
“뭐 하십니까?”
“애뿐 거 차자서 아밤미 주꺼야. (예쁜 거 찾아서 아버님 줄 거예요.)”
“호오…….”
“나무 안에요. 물 나와요. 딱딱해지면은요. 애뿐 거 대요. 책에서 그래써요. (나무 안에요. 물이 나오는데요. 딱딱해지면 예쁜 게 돼요. 책에서 그랬어요.)”
“아, 보석 호박을 찾으시는군요?”
다른 사람들이 물었다.
“호박?”
“모르냐? 왜 소나무 수액이 굳어서 생기는 돌이 호박이잖……. 어?”
대답하던 남자가 크게 눈을 홉떴다.
그리고 아버지에게 달려갔다.
“장군!”
남자가 자초지종을 설명하자, 아버지의 눈이 가늘어졌다.
“그래. 백경나무 수액이 굳어서 정화석이 되었을 수도 있겠지. 도끼를 가져와라.”
병사들이 황급히 도끼를 가져왔다.
백경나무는 엄청나게 거대했다. 과연 천 년이 훌쩍 넘도록 산 나무였다.
장정들이 모여서 도끼질을 하는데도, 여간해선 넘어가지 않았다.
가장 힘이 강해 보이는 거구의 사내도 도끼질에 동참했다.
시간이 꽤 오래 걸려서 난 나뭇가지로 땅을 파며 놀았다.
얼마쯤 지났을까.
누군가 내가 있는 쪽으로 왔다.
아버지였다.
나는 벌떡 몸을 일으켰다.
“아밤미.”
“……지치지도 않고 쫓아다니는구나.”
“아밤미, 기차나……? (아버님, 귀찮아요……?)”
아버지는 말없이 날 쳐다봤다.
나는 그의 눈치를 보며 옷자락을 꼼질꼼질 문질렀다.
“그러면은요. 하루에 한 범만 가께요…….”
“…….”
“아밤미 안 기찮게 몰래 보께요.”
“…….”
“쪼꼼 보고 빤니 가께요.”
아예 오지 말라는 말만 말아 주라.
나는 아버지가 아니면 답이 없었다.
고작 세 살이고, 가호도 없고, 불행은 예정되어 있다.
지금은 할아버지가 도와준다고 해도, 그게 언제까지 갈지 모른다.
가끔 어린애의 마음이 ‘혹시 몰라’ 하고 말할 때도 있었다.
‘혹시 몰라. 할아버지가 날 꽤 귀여워하는 것 같잖아.’
다른 사람들도 날 예뻐하잖아.
내가 도움이 됐잖아.
그럴 때마다 나는 눈을 꾹 감고 고개를 저었다.
새아버지도 그랬어. 처음엔 나를 딸로 여겨 주고 잘 해줬지만, 동생이 태어나니 언제 그랬냐는 듯이 돌변했어.
달리아가 오면 달라질 거야.
난 소설에서 봤어. 할아버지가 얼마나 그 애를 예뻐하는지.
할아버지의 관심 밖이 되면 주변에서 날 괴롭힐 거야. 아프게 할 거야.
‘이대로 죽기 싫어.’
나는 병으로 죽은 사람이었다.
병석에서 살고 싶다고, 제발 살려 달라고 매일매일 빌었다.
환생한 게 싫다고 했지만, 사실은 삶이 엄청나게 소중했다.
난 정말로 살고 싶었다.
그래서 내겐 날 도와줄 아버지가 절실했다.
아버지가 미간을 좁혔다. 굳은 얼굴로 날 바라보던 그가 입을 열었다.
“나는, 너를…….”
“찾았습니다! 나무 안에 돌이 있습니다!”
병사들이 소리쳤다.
그들이 찾은 돌을 들고서 황급히 아버지에게 달려왔다.
붉은 머리의 병사가 정화석을 손바닥에 올려서 아버지에게 내보였다.
호박처럼 노랗고 예쁠 줄 알았더니 길가에 흔한 돌멩이처럼 생겼다.
‘이러니 나무에서 생기는 줄 모르지.’
좌우지간 찾아서 다행이다.
이게 있으면 이제 아버지가 저주를 받아서 어떻게 될까 봐 걱정하지 않아도 되겠다.
그렇게 생각하던 때였다.
쉬이이이익─!
바람이 날카롭게 불었다.
병사들이 바람이 부는 방향을 쳐다봤다. 그리고 수초 후.
“몬스터다─!!”
상공에 몬스터가 나타났다.
‘대체 어떻게 된거지? 원래 이 산은 몬스터가 안 나타나기로 유명하잖아!’
잠깐만.
난 고개를 홱 돌려서 쓰러진 백경나무를 쳐다봤다.
이 산엔 몬스터가 나타나지 않은 게 혹시 백경나무 때문인 거 아냐?
정화석을 만들어 내는 신성한 힘을 가진 나무.
몬스터의 결계가 되기엔 딱인 조건이다.
‘한두 마리가 아니야.’
날카로운 이빨과 박쥐 같은 날개를 가진 몬스터는 무려 다섯 마리였다.
키에엑─!!
울부짖은 몬스터 떼가 우리에게 날아왔다.
“전투 준비!”
엔조가 다급히 소리쳤다.
챙!
병사들이 검이며, 창, 도끼 등의 무기를 꺼내 들었다.
그나마 다행이었던 것은 이들이 아스트라 제일이라는 서군의 정예병이라는 것이었다.
3m의 사내가 돌진해 온 몬스터의 목을 잡고 휙, 올라탔다.
그리고 도끼로 날갯죽지를 내려치자, 캬악─!! 찢어지는 비명이 산속에 메아리쳤다.
엔조가 추락하는 몬스터를 향해 거대한 창을 내질렀다.
쿠웅─!
몬스터가 땅에 나뒹굴었다.
“아가씨.”
엔조는 내 쪽으로 서둘러 다가왔다.
그가 막 나를 안으려던 순간, 남은 몬스터가 이쪽을 향해 달려들었다.
‘으악!’
나는 양팔로 머리를 가렸다.
와들와들 떨고 있는데, 격통이 조금도 느껴지지 않았다.
슬쩍 고개를 들자, 몬스터의 살점이 마구 튀어 있었다.
‘아…….’
아버지의 가호인 <분해>다.
닿는 것을 모두 분해하는 공격계 최강의 가호.
육체가 조각난 몬스터가 바닥으로 떨어지며, 그 뒤에 있던 아버지의 모습이 드러났다.
황금을 녹여서 만든 것 같은 찬란한 금발이 바람에 휘날렸다.
피를 응고한 것 같은 붉은 눈동자가 차게 빛났다.
아버지가 몬스터에 시선을 고정한 채 말했다.
“에릴로트를.”
“예.”
엔조가 내 뒤로 바짝 붙었다.
안아 주진 못했다.
몬스터를 상대해야 했기 때문에 두 손이 자유로워야 했던 것이다.
나는 엔조의 호위를 받으며 허둥지둥 달렸다.
그렇게 내려가려던 찰나, 다시 몬스터들의 공격이 시작되었다.
몬스터를 막아내기 위해 붉은 머리의 병사가 검을 휘둘렀다.
그 순간.
툭.
병사의 손에 들려 있던 정화석이 바닥에 떨어지더니, 데구루루 굴러가기 시작했다.
‘아버지 정화석!’
저게 없으면 아버지는 저주에 걸려서 결국 죽어 버릴지도 몰라.
나는 허둥지둥 정화석을 향해서 뛰었다.
“아가─ 큭!”
엔조가 얼른 나를 잡으려고 했지만, 달려든 몬스터에 의해 밀려났다.
난 열심히 뛰었지만, 아이의 짧은 다리로는 재빠르게 정화석을 잡을 수 없었다.
천만다행으로 절벽 부근에서 잡초에 걸린 정화석이 멈추었다.
‘떨어졌으면 큰일 날 뻔했다.’
그렇게 생각하며 정화석을 주우려는데,
푸드덕─!
거센 날갯짓 소리와 함께 머리 위에 그림자가 졌다.
위를 올려다보자, 몬스터 한 마리가 무리에서 이탈하여 내 위에 있었다.
‘안 돼!’
난 정화석 위로 엎드려서 몸을 둥글게 말았다.
퍼덕─!
푸드덕!
‘아, 아파!’
발에 밟혀 아팠지만, 나는 절대로 물러나지 않았다.
“에릴로트 아가씨!”
“아가씨!”
병사들이 이쪽으로 달려왔다.
달려온 병사들이 하나 남은 몬스터를 향해 공세를 취했다.
휙! 소리와 함께 도끼가 휘리릭 돌며 몬스터의 날개를 스치고 지나갔다.
날개 한쪽이 손상되어 휘청이는 몬스터를 향해 사슬이 던져졌다.
일사불란하게 움직이는 병사들에 의해 몬스터가 사슬에 끌려 내려오길 얼마쯤.
퍼버버버벅─!
폭음이 들리며, 조금 전처럼 몬스터가 잘게 분해되었다.
나는 그제야 밭은 숨을 터뜨렸다.
‘사, 살았다.’
바로 뒤는 절벽이지, 위에선 거구의 몬스터가 있지. 이러다가 죽을까 봐 얼마나 겁이 났는지 모른다.
엔조가 얼른 나를 일으켜 주었다.
“괜찮으십니까?”
그러기 무섭게 아버지가 성큼성큼 걸어왔다.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 있었다.
“너, 이게 무슨─!”
나는 덜덜덜 떨리는 손으로 안고 있던 정화석을 내밀었다.
“내, 내가 잡았어요.”
“…….”
“아, 아밤미 피료한 거 내가 잡았어.”
“…….”
“이제 나 안 기찮지……?”
나는 사색이 된 얼굴로 헤헤 웃었다.
“…….”
“…….”
“…….”
사람들은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몸과 얼굴이 전부 엉망인 나를 쳐다봤다.
아버지의 눈이 천천히 일그러졌다.
이를 악물고, 무릎을 굽힌 그가 손을 뻗었다.
나는 그가 정화석을 가져가기 쉽도록 손을 내밀었다.
그런데, 정작 그가 끌어안은 것은,
“이 바보가.”
─나였다.
나는 당황해서 눈만 끔뻑거렸다.
한 번도 누가 이렇게 안아 준 적이 없어서, 유혜민의 삶에서도 아득한 기억이라서.
그래서.
“후에…….”
눈물이 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