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Three Year Old Is a Villainess RAW novel - Chapter (122)
이 3세는 악역입니다 122화.(122/390)
122화.
내가 대답하지 않자, 그의 눈이 약간 커졌다.
“영애?”
“아, 반가워요.”
“예. 영애의 위용은 익히 들었습니다. 존경할 또래가 있다는 게 무척 기쁩니다.”
나는 움찔했다.
“영애를 줄곧 뵙고 싶었습니다.”
“……저를요?”
“예. 늘 성실하게 가문의 일에 임하시는 것이 존경스러웠기에.”
이전 삶을 떠오르게 하는 말이었다.
빈센트가 빙그레 웃으며 다가왔다.
“다음에 언제 한 번─”
캉.
알렉시스가 검집의 끝으로 빈센트의 발치를 짚었다.
“거기서 더 다가오지 말 것.”
“……그쪽은?”
“알 것 없고.”
빈센트가 눈살을 찌푸렸다.
“그리 예의 있는 분은 아니라 기억하겠습니다.”
“숙녀의 허락 없이 주변으로 들어오는 것도 그리 예의 있는 행동은 아닐 텐데.”
알렉시스와 빈센트의 시선이 허공에서 맹렬히 부딪쳤다.
빈센트는 가볍게 한숨을 내쉬고, 내게 고개를 숙였다.
“실례했습니다.”
“……네.”
대답하자, 그는 빙그레 웃고서 입을 열었다.
“황도에 독서 모임이 있습니다. 동군, 남군의 원화도 참석하는 모임인데, 괜찮으시다면 영애도─”
“저는 바빠서 이만.”
“예?”
“일 보세요.”
“아……. 예.”
빈센트는 얼른 대화를 마무리하려는 날 보고, 의아한 표정이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빨리 자리를 떠났다.
본성을 떠나서 호숫가에 이르고 나서야 난 숨을 크게 내쉬었다.
‘저 재수 없는 놈이 여길 왜…….’
첫 번째 삶에서도 빈센트가 이 시기에 왔던가?
‘으음, 모르겠네.’
그때는 공작성에 들어온 지 얼마 안 되어서, 어떻게든 할아버지의 눈에 들기 위해 공부만 했다.
그러니 성에 누가 들어왔는지 알 수 있을 리가.
나는 인상을 찌푸리고, 알렉시스를 쳐다봤다.
“황궁 사람들이 여길 왜 왔지?”
“네가 국경성에서 라곤을 자랑한 일 때문이겠지. 네 할아버지께서 태양회를 압박하기 위해서 별 수를 다 쓰고 계시니까, 그 여파일 수도 있고.”
“……언제 간대?”
“글쎄. 콘라드에게 물어보든가.”
나는 한숨을 푹 내쉬고 통신을 연결했다.
[예, 아가씨.]“오늘 황궁에서 사람들이 왔던데.”
[그렇습니다.]“언제 돌아가?”
[거래가 마무리되면 돌아갈 예정입니다만, 공작님께서 황제가 내건 조건에 합의할 마음이 없으신지라 정확한 날짜는 말씀드리기 어렵습니다.]“무슨 거래기에?”
[여러 가지 이야기가 있지만, 가장 중요한 내용은 아가씨께서 용을 움직일 적에 황궁과 상의해야 한다는 것을 서약서로 남겨두고 싶은 모양입니다.]할아버지가 거기에 동의할 리 없다.
그렇다면 빈센트가 언제 돌아갈지 모른다는 뜻이잖아!
나는 왈칵 인상을 찌푸렸다.
“일단 알겠어.”
[예. 추후에 내용이 변동되면 연락드리겠습니다.]“으응…….”
통신을 종료한 나는 호숫가에 쪼그려 앉았다.
‘망했다.’
하필이면 빈센트가 올 줄이야.
알렉시스는 혼이 나간 듯이 쪼그린 날 가만히 쳐다봤다.
“방금 그 녀석과 무슨 일이 있었어?”
있었지.
그것도 아주 많이…….
나는 저쪽을 좋아했지만, 저쪽은 달리아를 좋아했다.
굉장한 순애보 청년이던 빈센트는 나를 이용해서라도 달리아를 도우려 했고…….
‘난 멍청하게 휘둘렸지.’
하지만 그것보다 더 중요한 게 있었다.
“알렉시스, 가서 힐다와 그레타에게 빈센트의 일거수일투족을 전부 감시하라고 해.”
공작성의 상급 고용인인 힐다와 입김이 센 그레타라면 황궁 사람들을 잘 감시할 수 있을 것이다.
알렉시스는 물었다.
“그 정도의 가치가 있는 사람이야?”
“가치보다는…… 위험성이 높은 인물이랄까.”
“뭐?”
빈센트 에드로페의 가호 때문이다.
그의 가호는 신성계인데, 아주 특별한 힘이 있다.
가호 <심안>.
그는 상대방의 과거를 읽을 수 있는 가호를 지닌 남자였다.
‘<빙.흑.손>에서도 그 가호를 이용해서 달리아가 차원 이동자라는 걸 알아내지.’
그렇다는 건 내가 회귀했다는 것까지 알 수 있다는 얘기였다.
‘내가 회귀했고, 바보처럼 그에게 빠져서 시키는 일은 뭐든 했다는 것도…….’
얽히지 않는 게 최선이다.
* * *
나와 삼형제는 당분간 아스트라 장원에서 지내게 되었다.
아스트라에서는 ‘에릴로트의 상태가 아직 불안정하다’라는 명분을 내세웠다.
하지만, 실상은 용의 힘을 노리고 내게 접근하려는 황궁과 타국 세력을 견제하기 위해서였다.
할아버지의 보호 아래 있는 장원보다 안전한 곳은 없으니까.
그래서 나는 오랜만에 장원의 3세 수업에 들어가게 되었다.
‘오늘은 중·상급 교육실의 합동 수업이지?’
대교육실에 들어가자, 다른 3세들이 날 쳐다봤다.
“에릴로트가 수업은 왜? 황도의 파티 핑계를 대고 수업은 항상 다 빠지더니.”
“모르지. 슬슬 조부님께 알랑거릴 때가 왔다고 생각할지도.”
“하여간에 짜증 나는 애라니까.”
다른 사촌들이 나를 힐끔거리며 속닥거렸다.
나는 아무렇지 않은 체 자리에 앉았다.
상대를 하지 않으니, 사촌들의 표정은 점점 더 구겨졌다.
“그 잘난 액세서리들은 왜 안 끼고 왔대?”
“액세서리?”
“제 오라버니들 말야. 늘 자랑스럽게 끼고 다니잖아.”
발데릭 숙부의 큰딸인 로레이나가 입매를 비틀었다.
나는 책을 펼치며 말했다.
“오라버니들은 임무에 나갔어요.”
“아, 조부님께서 네게는 임무를 맡기지 않으시나 봐? 하긴, 어디로 튈지 알 수 없으니 맡길 수 있을 리가…….”
로레이나는 턱을 괴며 이어 말했다.
“또 불안정해져서 용이라도 끌고 오면 큰일이지.”
“맞아요~.”
나는 생글생글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행여나 우리 라곤이 그나마 있는 발데릭 관할령을 박살 낼까 봐 그러시는 걸까요?”
“……뭐?”
“반이 쪼개진 관할령이지만, 그것마저 없으면 정말 고리대금업자로 전락할까 봐 염려하시는 걸지도?”
내가 산뜻하게 웃으면서 말하자 로레이나가 파르르 떨었다.
수군거리고 있던 사촌들도 로레이나를 보면서 킥킥 웃었다.
“널 걱정하는 건데, 그렇게 예민하게 받아들일 필요 있어?!”
“고마워요. 하지만 나보다 언니 스스로를 걱정하는 게 먼저이지 않을까요? 지난 시험에서도 별다른 성과를 못 내서 7서열권 자리가 위태롭다고 들었는데.”
“너……!”
“힘내요.”
나는 양 주먹을 살짝 쥐고, 에헤헤 웃어줬다.
그러자 로레이나는 얼굴이 새빨개졌다.
‘까─불고 있어.’
그녀가 뭐라고 하려는 듯 입을 벌렸을 때였다.
옆에서 픽, 실소가 들려왔다.
돌아보자 나와 함께 서부 예비 원화전에 참가했던 셀레네가 보였다.
“안녕, 에릴로트.”
“안녕하세요, 언니.”
“옆에 앉아도 될까?”
“아……. 네.”
셀레네가 옆에 앉자, 사촌들이 술렁였다.
“뭐야, 셀레네와 에릴로트가 친했던가?”
“잘난 놈들끼리 어울리는 세상, 더러워…….”
로레이나 또한 헛웃음을 터뜨렸다.
“체면 좀 차리지 그래? 나 같으면 그렇게 지게 만든 상대와는 상종도 안 할걸. 경쟁심이 없는 걸까?”
“경쟁은 1, 2위인 우리가 알아서 할게.”
‘발끝에도 미치지 못한 네가 그런 말을 하다니 우습다’라는 표정이었다.
로레이나가 이를 악물어서 나는 풉, 웃음을 삼켰다.
나는 셀레네에게 속삭였다.
“저는 언니가 굉장히 얌전한 분이신 줄 알았어요.”
“그래? 오해야. 나도 아스트라 혈족인걸.”
아스트라 혈족의 거친 성미는 유명하지, 암.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 그런데 바스티나 고모님께서 저와 어울리는 걸 그냥 두실까요?”
“좋아하진 않으시겠지. 그런데 난 사춘기인걸. 반항하고 싶어.”
“좋은 생각이에요.”
“지난번에 <공허>를 없애준 데에 고맙다는 인사를 못 했던 것 같아.”
“별말씀을요.”
“괜찮다면 나도 네 ‘언니’의 한 자리를 차지할 수 있을까? 세바스티아 비페리와 의자매를 맺었다는 얘기를 듣고 경쟁심이 생기던걸.”
셀레네가 빙그레 웃었다.
나는 깜짝 놀라서 눈을 동그랗게 떴다.
“이런 성격이셨나요?”
“음, 세바스티아를 별로 좋아하지 않기 때문이라고 해둘까.”
하긴.
세바스티아와 셀레네는 황도에선 라이벌처럼 여겨졌다.
동쪽의 세바스티아.
서쪽의 셀레네.
이렇게 부르는 사람도 있고.
“그리고 난 똑똑한 여자아이를 좋아해.”
“저도요.”
나는 키득키득 웃었고, 셀레네가 빙그레 미소 지었다.
그런데 저쪽에서 리앙틴이 우물쭈물하는 게 보였다.
내 옆에 앉고 싶은데, 셀레네가 차지하고 있어서 오지 못하는 모양이다.
“리앙틴 언니.”
부르니, 리앙틴의 얼굴이 환해졌다.
“옆에…… 앉아도 돼?”
“언제 그런 걸 물었다고.”
“그때마다 항상 디오네라가 먼저 앉았었고 오늘은…….”
디오네라는 결국 필기시험 성적 때문에 초급 교육실로 떨어져서, 오늘은 대교육실에 오지 못했다.
리앙틴이 셀레네의 옆에 살짝 앉았다.
“셀레네는 왜 여기 앉았어?”
“싫으면 네가 뒤로 가.”
“싫다고 하진 않았어. 너, 별로 에릴로트와 친하지 않았잖아.”
“네가 온갖 추잡한 실수를 해도 감싸줬다는 말에 감격한 거로 해두자.”
“뭐야?!”
“에릴로트, 지난 시간엔 여기까지 배웠어.”
“내가 노트 필기를 해왔거든?”
“글쎄. 도움이 될까.”
두 사람이 투닥거리기 시작해서 나는 픽 웃었다.
‘첫 번째 삶에선 상상도 못 했는데.’
리앙틴은 아스트라의 명예를 실추시키기만 하는 날 싫어했고, 셀레네는 워낙 높은 사람이라 어울릴 생각도 못 했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을 때였다.
강당의 문이 열리고 교사들이 들어오기 시작했다.
‘응?’
오늘 드뷔시 자작이 들어오는 수업이었던가.
총책임자인 그는 중요한 시험에서나 얼굴을 비추곤 했다.
드뷔시 자작이 3세들을 둘러보았다.
‘뭔가 이상한데.’
기본적으로 웃는 표정인 그의 얼굴이 딱딱했다.
무슨 일이 있는 것처럼.
“오늘 수업은 실전 훈련으로 대체하겠습니다.”
확실히 뭔가 있는 모양이었다.
이런 긴급 공지는 처음이니까.
3세들도 뭔가를 느꼈는지 다들 굳은 얼굴로 서로 시선을 교환했다.
드뷔시 자작은 싸늘한 얼굴을 하고 말했다.
“이 안에 세작이 있습니다.”
“……!”
“……!”
“……!”
대교육실 안의 모든 아이들이 굳어졌다.
물론 나 또한.
“황실에 아스트라의 정보가 유출되었습니다. 직계만이 접촉 가능한 1급 정보입니다. 2세 중에선 이번 달에 장원을 빠져나간 사람이 없으므로, 3세 중에 세작이 있다고 판단한바.”
드뷔시 자작이 짓씹듯 말을 이었다.
“여러분께선 세작의 정체를 밝혀내고, 어디의 누구와 결탁하였는지 알아내십시오.”
“제한 시간은요?”
로레이나가 손을 들며 말했다.
“나흘 뒤, 정오까지.”
“그렇게 빠르게요?!”
“황궁 인사들과 거래를 하기 전, 세작을 밝혀내십시오. 또한.”
자작의 눈이 살벌했다.
3세들과 하나하나 눈을 마주친 그가 낮게 읊조렸다.
“이번 시험엔 12번째 탑의 방계들 또한 투입됩니다.”
대교육실이 순식간에 소란스러워졌다.
* * *
공지가 끝나고 아이들은 삼삼오오 모여 떠들었다.
“세작을 어떻게 그렇게나 빨리 찾아내란 말야?”
“밝혀내지 못하면 어떻게 되는 거야?”
“내가 방금 아버지께 들었는데…….”
한 아이가 마른침을 삼켰다.
모두가 그 아이의 입에 집중했다.
“본성 혈족 교육실을 폐쇄하고, 직·방계 교육을 통합한대.”
“말도 안 돼! 본성 혈족 교육은 직계들에게 힘을 몰아주기 위한 일이야. 방계들이 투입되면 우린……!”
팔짱을 끼고 있던 셀레네가 내게 말했다.
“몇 대 전에 직·방계 교육이 통합된 적이 있었어.”
“알고 있어요.”
“그리고 다음 대에 방계에서 공작이 나왔지.”
할아버지가 직계에 대한 신뢰를 모두 잃고, 방계까지 가주 후보에 넣는다면…….
‘지금까지 쌓아온 모든 게 헛물이 된다.’
후계 싸움이 치열해지면 할아버지에게 권력이 한순간에 모이게 될 테지만, 내 입장에선 위험한 일이었다.
‘가뜩이나 후계 경쟁자가 많은데, 여기서 더 늘릴 순 없어.’
다들 혼란스러운 찰나였다.
대교육실 안으로 낯선 인물들이 들어왔다.
“어머나, 여기가 대교육실이군요.”
“와……. 역시 본성의 교육실. 12번째 탑과는 차원이 다른데.”
“서열권에 들면 방도 내준대요!”
방계들이었다.
리앙틴의 표정이 딱딱해졌다.
“감히 직계들의 교육실에 들어와?!”
그녀가 소리치자, 금발의 생머리를 가진 여자아이가 생긋 웃었다.
“모르셨나 보군요. 오늘부로 본성은 방계들에게 개방되었답니다.”
“……뭐?”
“시험은 공정해야 하잖아요?”
로레이나가 헛웃음을 터뜨렸다.
“아무리 그래도 이렇게 갑자기……!”
“공작님의 명이에요.”
“그래도!”
“요즘 직계들은 위아래를 몰라본다더니, 정말인가 봐.”
“뭐라고?!”
“공작님의 명은 그 무엇보다 우선이에요.”
이윽고 다른 방계들도 쏟아져 들어오기 시작했다.
다들 오만한 표정이었다.
‘할아버지가 기회를 주셨으니까.’
감히 꿈도 꿀 수 없던 직계들과 같은 선상에 설 수 있는 기회.
다들 이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을 거다.
무엇보다, 이제껏 공작의 친손주라는 이유로 군림하던 직계들에게 열등감도 있을 테고.
금발의 생머리를 가진 방계 소녀가 팔짱을 낀 채로 내게 다가왔다.
“안녕하세요, 영애.”
“…….”
“줄곧 뵙고 싶었어요. 궁금하기도 했고요.”
“…….”
“저도 마물 조련의 가호를 가졌답니다.”
“…….”
“제 능력과 영애의 능력, 어느 쪽이 더 대단한지 궁금한데요?”
우훗, 웃은 아이가 머리칼을 넘겼다.
그러곤 짝, 손뼉을 친다.
“그 데이몬드 관할령의 세 공자님은 어디에 계세요? 친해지고 싶은데. 앞으로를 위해서요. 공작님께선 제게 기대가 크시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