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Three Year Old Is a Villainess RAW novel - Chapter (124)
이 3세는 악역입니다 124화.(124/390)
124화.
에레카는 오만한 표정으로 날 쳐다봤다.
“말씀하세요.”
“상식이 다소 부족할 순 있지만, 부족하다는 걸 선전하고 다니는 건 그다지 좋지 않은 방법이야.”
“……뭐라고요?”
“콘라드가 할아버지의 부관으로 일하는 이상, 네 사람이 되라느니 하는 말은 멍청하다고 선전하는 꼴이란다.”
에레카의 얼굴이 왈칵 구겨졌다.
나는 콘라드를 이미 내 사람으로 만들었다.
올해 그가 할아버지의 부관을 그만두게 된다는 것도 알고 있다.
그런 내가 왜 콘라드를 데이몬드 관할령으로 부르려고 하지 않았겠는가?
‘할아버지의 부관일 땐, 그 누구도 함부로 다음 취업처를 추천할 수 없거든.’
그 누구라도 곧 그만두게 될 일보다는 다음 취업처에 끈을 대려고 할 거다.
1급 정보에 접촉하는 콘라드가 ‘남의 사람’이 되면 할아버지가 그를 편히 부리시겠는가?
“방금 네 말은 할아버지에게도, 콘라드에게도 곤란한 일이란 거야.”
“영애가 신경 쓸 일은 아닌 것 같은데요.”
에레카가 짓씹듯 말해서 나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왜 나와 상관이 없지?”
“그야 영애는 공작님도, 콘라드 마르시알 님도 아니잖아요.”
“하지만 나는 할아버지의 손녀지. 할아버지에게 피해가 간다면 가만히 있을 순 없지 않겠니?”
“저는……!”
“에레카, 생각이란 걸 좀 하면서 사는 게 좋겠어.”
에레카의 얼굴이 터질 듯 붉어졌다.
나는 콘라드와 시선을 맞추고, 가볍게 턱을 움직였다.
“가 봐, 마르시알 경.”
“예.”
콘라드는 얼른 내게 인사한 후 떠났다.
나도 부들부들 떠는 에레카를 흘낏 쳐다본 뒤에 걸음을 옮겼다.
한지혁이 후다닥 나를 따라와서 떠들었다.
“저 애, 한마디도 못 하던데?”
“할 말이 없으니까 그렇겠지.”
“그보다 웬일이야. 네가 남 일에 신경을 쓰고?”
평소엔 웬 멍청이가 난리를 쳐도 잘 나서지 않는 편이다.
그런데 오늘은 나서서 입을 다물게 만들어버리니 이상한 모양이었다.
“혼자서 까부는 건 상관없지만, 그 일로 콘라드가 피해를 받는 건 곤란하잖아?”
“오, 콘라드를 그렇게 아꼈나.”
“당연하지. 콘라드는 내 소중한 검색창이라고!”
한국에 네이X나 다X, 구X이 있다면 이 세계의 내겐 콘라드가 있지.
심지어 네이X는 안 하는 상사(할아버지) 동향 파악까지 해준다.
‘너무 소중해, 콘라드.’
내가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이자, 한지혁이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콘라드, 방금 감격한 것 같은데.”
“……?”
“아니다…….”
물론 콘라드 자체도 소중하긴 하다.
아무런 보장 없이 어린 내게 손을 내밀어준 사람이니까.
‘뭐, 내가 콘라드를 크게 도운 적이 있긴 하다만.’
그렇다고 꼭 은혜를 내 사람이 되는 걸로 갚을 필요는 없었다.
내 손을 잡고 오랫동안 충성한 콘라드는 내게 소중한 사람이었다.
하지만…….
“소중한 사람이 도움까지 된다면 더할 나위 없지 않나?”
“그렇긴 해.”
“그래. 그런 거지, 뭐.”
도란도란 얘기를 나누고 있으니, 금세 본성을 나왔다.
내가 교육실과 이어진 복도로 접어들자 한지혁이 물었다.
“네 방으로 안 가고 여긴 왜?”
“세작을 알아봐야지. 시험도 중요해.”
“엥?”
한지혁은 인상을 찌푸렸다.
“세작이 교육실에 있겠어? 네 사촌들이 다들 세작이 누군지 캐고 다닐 텐데.”
“그러니까 교육실에 있을 거야.”
“왜?”
“다들 모여서 서로를 캐고 있는 와중에 혼자 있으면 수상하잖아?”
두려우면 두려울수록 들키지 않으려고 남들처럼 행동하려고 할 거다.
“너는 에레카 길라르를 계속 감시해. 오늘 자극해놨으니, 무슨 일을 벌일지 모르잖아.”
“그래.”
난 한지혁을 돌려보낸 후, 교육실 안으로 들어갔다.
생각대로 중·상급 교육실의 학생들 대부분이 대교육실에 모여 있었다.
‘심지어는 방계들까지.’
“아일라 님, 3일엔 왜 장원을 나가신 거예요?”
실뱅 숙부의 딸인 아일라 언니가 인상을 찌푸렸다.
“방계 따위가 감히 직계의 일정을 물어?”
“세작을 찾아야 하니까요. 말씀을 안 해주시면 아일라 님을 의심할 수밖에 없어요.”
아일라는 얼굴이 새빨개져서 입술을 깨물었다.
하지만 더 화를 내지 못하고, 이를 악문 채로 대답했다.
“외가에서 호출이 있었어!”
자존심이 상해도 대답할 수밖에 없을 것이다.
혹시 세작으로 찍히게 되면, 본가에서 무슨 꼴을 당하게 될지 모르니까.
자신뿐만 아니라 부모까지도 위험한 일이었다.
“외가에서 무슨 일로요? 혹시 아스트라의 일을 묻던가요?”
“너…….”
아일라가 분노에 찬 얼굴로 노려봤으나, 방계들은 빙글거리며 웃을 뿐이었다.
그러자 턱을 괴고 있던 밀란이 헛웃음을 흘렸다.
밀란은 <육체 지배>의 가호를 가진 직계 3세로, 지난 서부 예비 원화전에서 내게 도움을 줬던 사촌 오라버니였다.
“방계들이 저렇게까지 앞뒤를 모르고 날뛸 줄은 몰랐는데…….”
그러자, 어느새 들어온 리앙틴이 짜증 섞인 어조로 대꾸했다.
“직계를 깔아뭉갤 기회다 이거지.”
“그래도 후일이 무서울 텐데?”
그렇다.
이 세작 잡기가 끝나면, 직계들이 어떻게 나올지 모른다.
분명 앙심을 품은 직계 3세가 있을 텐데.
‘후일이 걱정될 텐데도, 저러는 건 믿을 구석이 있다는 거지.’
리앙틴은 흥,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
“분위기를 주도하는 게 누구겠어? 에레카 길라르가 ‘사랑받는 친손주’이니 방패막이가 되어줄 거라고 여기는 거겠지.”
“뭐, 그렇네. 하루 만에 ‘그 소문’이 멀리도 퍼졌더군. 내 외가에서도 연락이 오던걸.”
“걔가 그렇게 난리인데, 모를 수가 있어? 소문을 퍼뜨리려고 일부러 활개 치는 걸 수도.”
“흐음, ……재미는 없네.”
그렇게 말하던 밀란이 제게 다가온 방계 소년을 보고 눈썹을 까딱 들어 올렸다.
방계 소년이 히죽 웃으며 물었다.
“지난주에 왜 장원 밖으로 나가셨습, 컥……!”
밀란의 손에서 튀어나온 빛의 사슬이 방계 소년을 휘감았다.
“미안. 못생긴 놈은 안 봐주거든.”
“끄극, 끄흑……!”
“다른 사람이 묻지 그래? 누구 이 녀석 외에 내게 묻고 싶은 사람 있어?”
밀란이 차게 말하자, 방계들이 흠칫했다.
리앙틴을 비롯한 사촌들이 비죽 입꼬리를 올렸다.
로레이나가 팔짱을 끼며 방계들을 둘러봤다.
“행여나 이 일로 방계들이 우리와 같은 교육을 받는다고 해도, 서열권 안에 들 수 있을 거란 착각은 하지 마.”
“…….”
“…….”
“…….”
방계들이 조용해지자, 직계들의 표정이 오만해졌다.
‘그렇긴 하지.’
직계 3세들은 타 가문에서도 혀를 내두르는 아이들이다.
아주 어릴 때부터 실전 훈련을 받아온 몸이니까.
고도의 지식이 집약된 특별한 교육을 받아왔다.
거기에 ‘아스트라 공작의 손주다운’ 엄청난 가호의 소유자들.
시작점부터가 다른데, 어떻게 이길 수 있겠는가?
그때였다.
“그렇다면 한 수 배우고 싶은데요!”
에레카 길라르가 문 안으로 들어왔다.
그제야 방계들의 표정이 밝아졌다.
“에, 에레카 양…….”
“어머나, 가엽게도 다들 겁을 먹은 모양이에요.”
그러더니 직계들을 둘러보곤 눈썹을 늘어뜨린다.
“윗사람다운 아량을 보이시면 좋겠어요. ‘대 아스트라 가문’에 소속되었다는 자부심이 생기도록.”
방금 방계로부터 사생활이 캐내졌던 아일라 언니의 눈에 불똥이 튀었다.
“감히……!”
“괜찮으시다면 가르쳐주시겠어요?”
아일라의 눈이 살기로 일렁였다.
그러길 몇 초.
땅이 마치 종잇장처럼 일렁이더니 에레카가 순식간에 아일라에게 끌려왔다.
저게 바로 아일라 언니의 가호인 <축지>였다.
땅을 접어서 상대를 자신의 영역 안으로 끌어오는 능력이다.
아일라는 재빨리 허리에 차고 있던 단도를 꺼냈다.
‘무기 다루는 법은 아일라 언니가 우리 중에서 최고지.’
아일라의 손끝에서 빙글, 돈 검이 막 에레카의 어깨에 닿으려던 그때.
캉─!
날카로운 파열음과 함께 검이 부서졌다.
“……!”
“……!”
“뭐, 뭐야!”
직계들이 놀라자, 방계들은 히죽히죽 웃었다.
가만 보니, 에레카의 어깨 쪽에서 작은 빛이 움직이고 있었다.
“늪요정이다.”
밀란의 말에 직계들이 흠칫했다.
“정말 늪요정을 테이밍했어?”
“<마물 조련>이 가호라던 게 사실…….”
그렇게 중얼거리던 찰나 빛이 번쩍 커지더니, 그 속에서 진흙 덩어리 같은 인간형의 몬스터가 모습을 드러냈다.
캬아악─!
입을 쩍 벌리자 무수히 많은 이빨이 엿보였다.
늪요정이 아일라에게 달려들었다.
* * *
“아일라!”
아일라의 오빠인 엘먼이 소리쳤다.
늪요정은 작은 외형과 달리 사나운 몬스터였다.
이빨엔 맹독이 흘러나온다.
아일라는 황급히 반대쪽에 차고 있던 검으로 늪요정의 공격을 막아냈다.
그러나 그것도 한순간.
검이 부서지고 말아서, 두 번째 공격은 버틸 수 없을 터였다.
“에레카 길라르, 그만해!”
리앙틴이 외쳤지만, 에레카는 곤란한 표정을 지을 뿐이었다.
“저 아이는 제게 공격하는 사람을 보면 이성을 잃어서……. 막고 싶으시다면 병사를 데려오시는 게 좋겠어요.”
“너─!”
늪요정이 다시 한번 아일라를 향해 달려들려던 때였다.
슈룩!
기묘한 소리와 함께 무언가가 아일라와 늪요정의 사이를 가로막았다.
“삼켜, 옴브레!”
누군가 말하자, 늪요정이 순식간에 연기 같은 것에 삼켜졌다.
크즈즈즈즈즛.
늪요정은 생물의 소리라곤 생각할 수 없는 비명을 지르며 버둥거렸다.
“……!”
“……!”
“……!”
사람들이 모두 놀라서 에릴로트를 쳐다봤다.
리앙틴이 소리쳤다.
“옴브레다. 에릴로트의 그림자 마물이야!”
늪요정만큼 희귀한 몬스터인 그림자 마물.
그림자 마물은 정말로 늪요정을 삼키듯 감싸고 있었다.
에레카는 왈칵 인상을 찌푸렸다.
‘저 계집애가……!’
사사건건 거슬리게 굴더니, 이번에도 방해를 하고 있다.
‘직계들의 코를 납작하게 해줄 수 있었는데.’
저쪽이 먼저 공격했으니, 타이밍도 좋았다.
‘재수 없어.’
짜증 나는 직계들 중에서도 최고로 거슬린다.
눈썹을 까딱 들어 올린 에레카가 에릴로트에게 다가갔다.
“역시 7서열권 가운데 가장 뛰어나신 분이로군요. 영애에게 배울 수 있다면 큰 영광일 거예요. 어떠세요? 제게 가르침을 주시는 건.”
“…….”
“곤란하신가요?”
“…….”
“이해해요. 본격적으로 겨루면 미묘한 결과가 나올 수도 있겠죠.”
쿡, 웃음을 터뜨린 에레카가 에릴로트를 위아래로 훑어보았다.
누가 봐도 저건 ‘네가 질 테니까’ 하는 조롱의 눈빛이었다.
방계들도 에레카를 따라서 웃음을 터뜨렸다.
‘에레카의 말이 맞아. 사실 직계들은 별것도 아냐.’
‘어차피 직계들은 2세 중 하나가 공작위를 물려받고 나면 끈 떨어지는 신세잖아?’
‘가주가 될 사람에게만 잘 보이면 된단 말야.’
에레카는 말했다.
“직계에게 왜 잘 보이려고 해?”
“그야 공작님의 친자식, 친손주고…….”
“얘들아, 생각을 해 봐. 아스트라에서 새로운 공작이 생기면 가장 먼저 뭘 하니?”
“그건…….”
“형제와 조카들을 쳐낸단 말야. 구석에 처박혀 있는 사람만 살아남는다고.”
“…….”
“봐, 지금 가신들 중에서 옛날 직계가 하나라도 있나?”
“그러고 보니까…… 하나도 없네?”
“봐. 결국, 훗날엔 능력 있는 방계가 직계들보다 더 잘된단 말야.”
에레카의 말이 맞는 거다.
‘어차피 훗날엔 저들 중 몇 명밖에 못 살아남을걸?’
살아남아도 새로운 공작의 눈 밖에 나지 않으려고 구석에 숨어 산다.
‘게다가…… 새로운 공작이 되는 건 어쩌면 에레카의 부친일 지도 몰라.’
정말로 사랑하는 사이에서 낳은 자식이 더 귀할 테니까.
공작이 에레카 부녀를 지금까지 몰래 숨겨 두고 지원한 것만 봐도 그렇다.
‘누가 더 사랑받는지는 자명하지.’
에릴로트?
사랑하지 않는 이들 중 최고였던 거다.
에릴로트 부녀는 지금껏 가장 위험한 곳에서, 필사적으로 공이나 세우게 했다.
하지만 에레카 부녀는 안전한 곳에서 호사만 누리게 했다고.
비웃는 표정의 방계들을 보고, 직계들이 분노했다.
“저것들이…….”
로레이나가 소리쳤다.
“보여줘, 에릴로트!”
“……네?”
“네 용이 얼마나 대단한지 알려주란 말야!”
리앙틴이 꽥, 소리쳤다.
“어디 용만 그런 줄 알아? 에릴로트는 천재야! 세 살 때 나이 차이 나는 사촌을 박살 냈다고! 안 그래, 조프리?!”
다른 사촌들도 동조했다.
에릴로트는 눈을 가볍게 굴렸다.
‘적의 적은 동지라더니…….’
다른 때엔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더니, 이제는 천재라고 난리다.
밀란이 몸을 일으켰다.
미소 지은 그가 방계들에게 말했다.
“내기할까?”
“무슨…….”
“우린 에릴로트에게 걸지. 너희는 저 재수 없는 계집애에게 걸겠어?”
“그, 그건…… 그건…….”
방계 아이가 우물쭈물했다.
‘에릴로트 아스트라는 진짜 엄청나잖아.’
신성계 가호 중 따를 사람이 없다는 셀레나 아스트라도 상대가 안 됐다.
‘하, 하지만 용이 있을 때고…….’
능력으로만 따지면 에레카도 엄청난 애였다.
12번째 탑에서는 늘 최고였다.
이제는 <마물 조련>이라는 가호까지 갖게 되었다.
게다가…….
“에릴로트 님, 정말로 대단하지? 특히 그 용이……!”
“그래? 나도 테이밍 할 수 있을 것 같은데.”
“너도?!”
“저 정도 능력으로 테이밍했다면, 나도 가능하지 않을까. <마물 조련>이란 능력이 없이 겨룬다고 생각해 봐.”
“그건…….”
“고대어를 읽는 것 따위의 가호를 지녔잖아. 마력에서도 내가 더 월등할걸.”
방계 아이가 주먹을 꽉 말아쥐고 소리쳤다.
“좋아요! 저는 에레카에게 걸죠. 그 용이 나오면 에레카가 테이밍할 수도 있다고요.”
“뭐? 하……!”
리앙틴이 이를 으득, 갈았다.
* * *
다들 난리가 났다.
졸지에 시합을 하게 된 나는 목을 문질렀다.
‘뭐, 어쩔 수 없지.’
사람들 앞에서 대결을 청했을 때부터 여론을 움직여서 내가 시합할 수밖에 없게 한 거니까.
에레카가 말했다.
“그럼 나가실까요?”
“시합은 좋아. 하지만 조건이 있어.”
“뭐……. 그러세요. 뭐든 들어드릴게요. 자신이 없다면야─”
“할아버지의 앞에서 하는 거야.”
“……네?”
“방계 따위와 하는 시합은 내게 메리트가 없거든. 하지만 할아버지의 앞이라면 다르지.”
“고, 공작님이 그런 시합을 지켜보실 리가……!”
“네가 부탁드려 볼래?”
“무, 무슨─!”
“왜? 너, 할아버지에게 사랑받는 친손주일지도 모른다는 소문이 있던데.”
“……!!”
“그렇게나 사랑받는다면 가능하잖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