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Three Year Old Is a Villainess RAW novel - Chapter (125)
이 3세는 악역입니다 125화.(125/390)
125화.
에레카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주변에서 수군거리기 시작하니, 입술까지 꽉 깨문다.
“그건…… 말도 안 되는 일이죠. 정말 공작님을 생각하신다면 어떻게 그런 말씀을 하실 수 있나요?”
“뭐가?”
“그렇지 않아도 황궁에서 사람이 와서 눈코 뜰 새 없이 바쁘실 거예요. 휴식 시간마저 방해하는 건, 저로선 상상도 못 할 무례랍니다.”
그러며 나를 깔보는 시선으로 쳐다본다.
말하지 않아도 ‘누구 때문에 바쁜지 알지?’라는 속내가 훤히 보였다.
내가 감정을 다스리지 못하는 바람에 태양회에서 용을 불러낸 일.
그것을 힐난하는 것이었다.
‘이렇게 빠져나가시려고? 안 되지.’
“황궁에서 사람이 왔으니 더더욱 좋지 않니?”
“……네?”
“황궁 사람들 앞에서 아스트라의 능력을 보여 줄 기회잖아.”
“그건…….”
“더군다나 새로운 <마물 조련> 능력자의 출현. 아스트라에 큰 이득을 줄 거야.”
“제겐 그런 알량한 이득보다는 공작님의 휴식이 더 중요—”
“이상하네.”
나는 에레카가 또 변명을 하기 전에 말을 뚝 끊어 버렸다.
그리고 틈을 주지 않으려 확실히 몰아붙이기로 했다.
“이렇게 못 한다는 걸 보면, 역시 소문은 사실이 아니었나 봐?”
“……!”
에레카가 얼어붙었고, 방계들이 술렁이기 시작했다.
‘그렇겠지.’
저 애가 이렇게 활개를 칠 수 있는 건 모두 그 소문 때문이다.
방계들이 겁 없이 까부는 것 또한.
에레카는 하, 헛웃음을 터뜨렸다.
“그 대단한 직계님들께서도 소문을 믿으시는군요.”
‘모르는 척하긴.’
에레카는 지금까지 은근히 그 소문을 믿게 하기 위해 노력했다.
콘라드에게 접근한 것도 그런 이유 때문일 것이다.
콘라드는 사람들의 시선이 집중되어 있는 인기인이니까.
“본가와 관련된 소문이니 귀 기울여야지.”
“세간에 있는 다른 소문에도 그만큼 신경을 쓰시면 좋을 텐데…….”
태양회에서 리앙틴이 망신당한 일을 꼬집는 것이었다.
나는 미소 지었다.
“말 돌리지 말고. 그래서 할아버지를 모셔 올 수 있겠어? ‘사랑받는’ 네가.”
“……직계 여러분은 시합에 뭘 거시겠어요? 제게도 메리트가 있어야죠.”
나는 슥, 사촌들을 쳐다봤다.
저들은 방계들의 행동으로 매우 날카로워진 상태다.
‘여기서 빼지는 않겠지.’
예상대로 사촌들은 긍정적인 표정이었다.
그런데.
“네가 이기면 방계들이 원하는 것을 뭐든 하나 들어주지.”
밀란의 말에 나는 화들짝 놀랐다.
‘……뭐든, 이라고?’
생각보다 더 방계들에게 열 받은 모양이었다.
밀란의 말에 사촌들은 아무도 반박하지 않았다.
오히려 로레이나가 동조했다.
“너희가 뭘 요구하든, 그게 어떤 것이든 들어주겠어.”
“……혈족 교육에서 모두 빠지라고 해도 말이죠?”
“뭐? 무슨 헛소리……!”
“역시 ‘뭐든’이라고 하는 말은 허풍이었나……. 직계들의 마음대로 바뀌는 내기라면 제겐 별로 메리트가 아닌데요.”
조프리까지 “이익!” 하며 이를 악물었다.
발데릭 숙부를 닮아서 엄청난 다혈질인 그가 소리쳤다.
“좋아! 에릴로트가 진다면 빠지지!”
“……!”
“……!”
“……!”
방계들이 숨을 집어삼켰다.
혈족 교육은 ‘부릴 만한 능력 있는 자를 찾아내는 시스템’이었다.
능력이 뛰어난 자들을 가려내서 훗날 가문의 높은 자리를 준다.
말하자면 기회의 장인 셈이다.
그걸 방계들에게 고스란히 내준다면, 직계들의 힘은 현저히 줄어들 것이다.
조프리가 씩씩거리며 말을 이었다.
“대신 너희도 저 계집애가 진다면 뭐든 내놔야 해. 알겠어?!”
혈족 교육까지 걸었는데, 물러설 방계는 없었다.
뛰어난 직계들을 몰아내면 제게 더 큰 기회가 찾아온다.
대규모 관할령을 소유하는 것도 꿈이 아닌 것이다.
‘거기다 에레카는 뛰어난 애지.’
용만 아니면, 에레카가 더 승리할 가능성이 높다고 생각할 거다.
시합하면서 용까지 테이밍하게 된다면 더할 나위 없고.
방계들이 우렁차게 소리쳤다.
“조, 좋습니다!”
“그래요!”
결국, 에레카는 승부를 빼지 못하게 되었다.
그 애가 나를 찢어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
* * *
밤.
에레카는 이번 ‘세작 찾기’를 위해 본성에서 내준 귀빈실로 돌아왔다.
문이 닫히자마자 따라 들어온 방계들이 물었다.
“어쩌죠……. 에릴로트 님과의 승부라니. 조금 전엔 다들 너무 흥분한 게 아닐까요?”
소파에 앉은 에레카가 여유롭게 웃었다.
“승리는 정해져 있어요.”
“네?”
“에릴로트 아스트라는 용을 쓰지 못해요.”
그러자 방계 아이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그럴 리가. 에릴로트 아스트라의 제일 큰 힘이 용이잖아. 그런 걸 승부에 쓰지 않을 리 없지.”
“생각해 봐요. 지금 황궁에서 사람들이 온 이유가 뭐예요?”
“그야 태양회에서 용을 불러들인 일 때문에…….”
“맞아요. 가뜩이나 에릴로트 아스트라의 용에 세상이 겁먹은 상황이에요. 그런데 개인적인 승부에 또다시 용을 쓴다?”
“어?”
“황궁과 척지려는 게 아닌 이상, 용을 쓸 리 없죠.”
황제가 용을 쉽게 이용하지 못하게 하려고 눈을 부릅뜬 상황이다.
그런데 아무렇지 않게 용을 쓴다면?
황제는 제게 대항하려 한다고 생각하고 아스트라를 압박하려 할 터였다.
‘생각이 있으면 용은 못 쓰지.’
에레카가 검지로 턱을 가볍게 매만지며 키득키득 웃었다.
“용을 쓰지 못한다면, 제 승리는 확정이랍니다. 비슷한 수준의 마물을 테이밍했다면, 결국 다른 능력으로 차이가 벌어질 거예요.”
“그렇네요! 에레카 양의 다른 가호는 <탐색>, <식물 변형>이라는 엄청난 능력이잖아요?”
“그래. 하지만 에레카와 다르게 에릴로트의 능력은 고작 <고대어 읽기>잖아?”
용만 쓸 수 없으면 에레카의 말마따나 승리는 정해져 있다는 것이다!
방계들의 표정이 확 밝아졌다.
에레카가 머리카락을 매만지며 그들을 힐끗 쳐다봤다.
“또, 에릴로트 아스트라가 정말로 멍청해서 용을 불러온다고 해도 괜찮아요.”
“응? 어째서?”
“내가 용을 다시 테이밍하면 되니까.”
“저, 정말로 할 수 있겠어?”
“에릴로트 아스트라가 한 일을 제가 못 할 리가 없잖아요.”
에레카가 우후후 웃자, 방계들이 얼른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지! 사실 <마물 조련> 가호를 가진 게 이때껏 에릴로트 아스트라 하나뿐이라 몰랐던 거지, 에레카도 용을 테이밍할 수 있을지도!”
“에레카는 더 대단한 용을 테이밍할 수 있는 거 아냐? 용 중에 가장 큰 성룡(聖龍)이라든가……!”
“뭐, 시간이 나면 성룡의 레어를 찾아볼 생각이에요.”
“크으으……! 역시 에레카야.”
“너무 든든하고, 멋져요. 혈족 교육을 받게 되면 서열 1위는 맡아 두셨겠어요.”
방계 아이들은 정신없이 에레카를 떠받들었다.
달콤한 칭찬의 홍수 사이에서, 에레카는 생글생글 웃었다.
‘문제는 그 계집애가 제시한 조건인데…….’
에레카가 남몰래 입술을 깨물었다.
‘영악하긴.’
승부를 피하기 위해서 그런 조건을 걸다니.
공작님에게 승부를 관전하게 해?
아스트라 공작이 시간을 내서 애들 승부를 보러 올 리 없다. 즉, 터무니없는 조건이었다.
‘결국, 실력에 자신이 없는 거야.’
방계 아이 하나가 물었다.
“그런데 정말 공작님이 오실까요?”
“네?”
“아니, 뭐, 승리야 결정이 난 거지만…… 공작님이 오셔야 승부를 할 수 있는 거잖아요?”
몇몇 방계 소녀들이 슬쩍 에레카의 눈치를 보았다.
“저기, 에레카 양. 기회가 좋잖아요?”
“맞아요. 직계들을 몰아내고 혈족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기회라고요.”
“공작님을 곤란하게 하고 싶지 않은 마음은 알지만, ……승부를 보러 오시라고 한 번 말씀드려 보는 게 어떨까요?”
“공작님이 에레카 양을 얼마나 아끼시나요? 사실 말씀만 드리면 오실 것 같은데…….”
다들 기대에 찬 눈빛으로 쳐다봤다.
에레카는 한동안 입술을 달싹거리다가 대답했다.
“뭐, 아버지를 통해서 살짝 말씀을 드릴 생각이긴 해요.”
“와, 그럼 승부는!”
“공작님이 일정이 바쁘시다시면 밀어붙일 생각은 없어요. 아시죠? 얼마나 바쁜 분이신지.”
“아…….”
에레카가 “흐응.” 신음하며 어깨를 모았다.
“사실 승부는 제게 큰 메리트가 없어요.”
“아! 그렇겠네요. 에레카 양은 어차피 곧 혈족 교육을 받으실 테니까…….”
에레카는 사실 공작의 친손녀일지도 모른다는 소문을 방계들은 철석같이 믿고 있었다.
“뭐…….”
에레카는 의뭉스럽게 말끝을 흐렸다.
소문이 사실이라고 말해 준 건 아니지만, 표정과 말투에서 진짜라고 어필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하지만 여러분은 다르시죠.”
“그럼요! 직계들을 밀어내고 혈족 교육을 받을 수만 있다면……! 아아, 꿈만 같아요.”
“여러분을 위해서 해 보긴 할 테지만, 그렇다고 소중한 공작님을 곤란하게 할 순 없잖아요……?”
“그렇겠네요……. 하, 하지만 그 정도로 나서 주시는 것만 해도!”
“응! 고마워, 에레카!”
방계들의 눈이 반짝였다.
에레카는 생긋, 웃었다.
시간이 지나서 깊은 밤.
에레카는 제 아버지를 찾아갔다.
그녀의 아버지 길라르 자작은 황궁 사람들을 접대하기 위해 본성에 머물고 있었다.
가신들과 함께 걷던 부친이 에레카를 발견했다.
“오, 에레카! 무슨 일이냐?”
“아빠, 드릴 말씀이 있어요. 잠깐 시간을 내주실 수 있나요?”
“그리 오래는 안 되지만……. 곧 공작님을 뵈러 가거든.”
“잘됐네요. 공작님과 관련된 용건이에요.”
“공작님과 관련된 용건이라고……?”
길라르 자작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그는 이내 가신들을 먼저 보낸 후, 에레카와 함께 으슥한 곳으로 이동했다.
“무슨 일이냐?”
“내일 에릴로트 아스트라와 승부를 하게 되었는데, 공작님께서 참관해 주셨으면 좋겠어요.”
“뭐, 뭐?!”
길라르 자작이 흠칫 놀라서 딸을 쳐다봤다.
“그런 말을 드릴 수 있을 리 없잖아!”
“아버지, 생각해 보세요. 내일 승부에서 제가 이기면 공작님의 눈에 단번에 들 수 있을 거라고요.”
“그야 그렇긴 하다만…….”
“제 <마물 조련> 능력이 얼마나 뛰어난지 보여 드린다면 공작님께서 우리 부녀를 얼마나 아껴 주시겠어요?”
“으음…….”
길라르 자작이 신음하자, 에레카가 양손을 모으고 말했다.
“부탁드려요, 아버지.”
“말씀이야 드려 볼 수 있지만, 기대는 하지 마라. 공작님께선 최근에 정말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쁘시니까.”
에레카도 딱히 기대는 하지 않았다.
‘아버지가 공작님께 그런 부탁을 드렸다는 게 중요하지.’
그게 알려지면 사람들은 이렇게 생각할 거다.
‘길라르 자작이 겁 모르고 공작님께 그런 부탁을 한 걸 보면, 두 사람 사이엔 확실히 뭐가 있다.’
공작님이 오지 않으셔도 바쁘다는 핑계를 대면 되고.
에레카가 “와!” 하며 부친의 품에 뛰어들었다.
“녀석, 어리광은. 으하하하!”
“에릴로트 아스트라의 콧대를 꺾어 버리겠어요. 아스트라 장원에서 가장 뛰어난 레이디는 저라고요.”
“암! 암, 그렇지. 내 딸이 그깟 더러운 피보다 못할 리가 없지.”
“그럼 부탁드려요?”
“그래.”
에레카가 돌아간 후, 길라르 자작은 공작의 집무실로 향했다.
노크하자, 곧 문이 열렸다.
얼마 지나지 않아 드뷔시 자작이 문을 열었다.
“자네가 무슨 일인가?”
“회의장까지 공작님을 모시겠습니다!”
“……내가 모실 테니, 자네는 명한 일을 잘 살피는 게 좋겠네.”
“하, 하지만!”
“이번에도 실수를 한다면 나도 더 눈감아 줄 수 없어. 황궁인들 앞에서 또 확인되지 않는 숫자를 말할 셈인가?”
“예…….”
길라르 자작이 시무룩해지자, 드뷔시 자작은 한숨을 내쉬었다.
‘공작님과의 연이 없으면 저 자리를 보전이나 할는지.’
우물쭈물하던 길라르 자작이 말했다.
“저, 내일 말입니다. 공작님의 일정이 어떻게 되는지 알 수 있겠습니까?”
“공작님의 일정은 직계 혈족에게도 누설할 수 없는 정보라는 걸 알지 않은가.”
기습을 대비한 일이었다.
길라르 자작은 땀을 뻘뻘 흘렸다.
“알긴 하지만요…….”
“대체 무슨 일로 그러는 게야.”
“내일 우리 에레카가 에릴로트 님과 승부를 합니다.”
“두 사람이 승부……?”
“예. 참관해 주시면 아이들이 얼마나 기뻐하겠습니까.”
“공작님은 바쁘─”
그때였다.
“드뷔시.”
공작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드뷔시 자작이 황급히 대답했다.
“예, 공작님. ……자네는 회의장으로 가보게.”
“예…….”
길라르 자작을 돌려보낸 드뷔시 자작이 문을 닫았다.
그가 테이블로 다가가자 공작이 손을 내밀었다.
“올해 황궁에 지원한 백수정의 수량은 얼마나 되지?”
“그 자료는 여기 있습니다.”
드뷔시 자작이 서류를 넘기자, 안경을 쓴 채로 자료를 훑던 공작이 물었다.
“무슨 일로 저 녀석이 온 것이야.”
“예? 아, 길라르 자작 말씀이십니까. 별일은 아니었습니다.”
“무슨 일이기에.”
“딸이 에릴로트 아가씨와 내일 승부를 하는데 공작님께서 참관해주십사 청하려던 모양입니다.”
공작의 손이 멈칫했다.
“에릴로트와 그 딸이?”
“예. 두 사람 모두 <마물 조련>의 가호를 가지고 있으니 볼 만은 할 겁니다만, 공작님께서 워낙 바쁘셔야죠.”
“…….”
“이런 일도 청하러 오는 걸 보면, 공작님의 성격이 많이 누그러진 모양입니다.”
“…….”
“하하, 에릴로트 아가씨 덕일까요.”
“내가 손녀 하나 때문에 변할 인사인가.”
공작이 눈살을 찌푸리자, 드뷔시 자작이 픽 웃었다.
“하여간에 냉정하시긴. 제게 그런 귀여운 손녀가 있었으면 눈 녹듯 녹았을 겁니다.”
“…….”
“그러고 보니 본성에 함께 있는데도 아가씨를 못 보신 지 꽤 되셨지요.”
에릴로트가 세작 찾기 건으로 바쁘긴 하다.
‘그래도 다른 때라면 할애비가 보고 싶다고 짬을 내서라도 찾아왔을 것인데.’
제 할애비도 바쁘니, 괜히 찾아와서 휴식을 방해하지 않으려는 걸 수도 있겠다.
속 깊은 녀석이니.
“그, 뭐, ……승부를 몇 시에 한다는데?”
“예?”
“황궁 놈들 앞에서 아스트라 3세의 능력을 보이는 것도 좋겠지.”
“…….”
“왜 그렇게 쳐다봐?”
“누가 보면 수줍은 소녀인 줄 알겠습니다.”
그냥 며칠 못 봐서 눈에 밟힌다고 하면 될 것을.
아끼는 손주를 보러 가는 게 뭐 그리 어렵다고.
“꼭 핑계가 필요하십니까?”
“일이나 해!”
“예, 예.”
“……승부가 몇 시인지 알아 오고.”
드뷔시 자작이 픽, 실소를 흘렸다.
* * *
다음 날.
직·방계 아이들이 모두 대수련장에 모였다.
다들 계단 위에 자리를 잡고 수련장을 내려다봤다.
에레카와 에릴로트는 서로를 마주 보고 있었다.
방계들이 수군거렸다.
“그래서? 승부는 하는 거야? 공작님께서 오신대?”
“소식이 없으시다던데.”
“길라르 자작께서 말씀을 올리시긴 했나 봐.”
“와! 공작님께 말야? 굉장한데. 그렇게 겁 모르고 말씀을 올릴 수 있는 건 뭔가 믿는 구석이 있기 때문이지 않겠어?”
“역시 소문은 사실…….”
방계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던 직계 3세들은 인상을 찌푸렸다.
“조부님께 말씀 한 번 올린 걸 가지고 난리는…….”
조프리가 투덜거리자, 밀란이 어깨를 으쓱했다.
“대단하긴 하지. 발데릭 백부님이라고 해도 3세 승부를 봐달라고 말씀을 올리진 못했을 것 아냐.”
로레이나의 얼굴이 싸늘했다.
방계들을 노려보던 그녀가 에레카에게 소리쳤다.
“그래서?! 결국 조부님을 모셔 오진 못했잖아! 승부는 못한다는 거 아냐?”
에레카는 쯧, 혀를 찼다.
‘오지 않으실 줄은 알았어.’
아스트라 공작 성격에 올 리가.
여론을 모두 사로잡긴 했지만, 마치 제가 능력이 없다는 듯이 말하는 건 화가 난다.
에레카가 입매를 비틀며 에릴로트를 쳐다봤다.
“잘되셨네요.”
“뭐가?”
“승부를 피할 수 있어서요. 애초에 공작님을 모셔 오라는 불가능한 조건을 걸었던 것도 그런 이유에서잖아요?”
“…….”
“아아, 영애 입장에선 다행이네요. 사실 제가 이길 게 확실한 승부라서 좀…… 죄송했거든요.”
방계들이 오만한 표정으로 에릴로트와 직계들을 돌아봤다.
쿡.
비웃음이 터지자, 직계들의 눈에선 불똥이 튀었다.
“어쩔 수 없지요. 이번 승부는 영애가 이긴 거로 해드릴게요~.”
“자비라도 베푸는 것처럼 말하네. 조건을 충족하지 못해서 시합을 무효로 만든 건 너인데.”
“애초에 불가능한 조건─!”
“그래도 승낙한 건 너지. 이룰 수 없던 것도 너고. 그러니까 책임도 네게 있는 거야.”
“이……!”
“그러니까 ‘이긴 거로 해준다’라는 말은 여기선 어울리지 않아.”
에레카가 입술을 꽉 짓씹었다.
‘재수 없어……!’
공작에게 가장 사랑받는다는 착각에 취해서 오만하기가 하늘을 찌른다.
에레카가 치맛자락을 꽉 움켜쥐었을 때였다.
“오르시지요, 공작님.”
드뷔시 자작의 목소리였다.
‘……공작님?’
아이들의 시선이 일시에 한곳으로 향했다.
아스트라 공작이 정말로 시합장으로 오고 있었다……!!
방계들은 입을 떡 벌렸다.
“저, 정말 에레카 때문에 오셨나 봐!”
에레카의 눈빛이 흔들렸다.
‘저, 정말 오셨어?’
내 부탁을 들어주셨다고?
그녀가 양손으로 입을 막고 떨리는 목소리로 중얼거렸다.
“어쩜, 저 때문에 귀한 휴식 시간에…… 공작님…….”
마침 단상을 향해 다가오던 공작이 헛기침하며 입을 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