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Three Year Old Is a Villainess RAW novel - Chapter (126)
이 3세는 악역입니다 126화.(126/390)
126화.
“에릴로트.”
공작의 말을 들은 에릴로트가 고개를 가볍게 수그렸다.
공작은 “음.” 하며 끄덕이곤, 단상 위에 자리를 잡았다.
직·방계 아이들이 눈을 홉뜬 채로 공작과 에릴로트를 번갈아 쳐다보았다.
“뭐야. 모르는 사람이 보면 에릴로트 님 때문에 오신 줄 알겠어…….”
방계 아이가 중얼거렸다.
에레카는 아무렇지 않은 표정의 에릴로트를 쏘아봤다.
‘영악하긴.’
공작님이 오신 게 본인 때문인 척하려고?
코웃음이 나올 만큼 어처구니없는 행동이었다.
‘그런다고 이 공을 가로챌 수 있을 것 같아?’
사람들 모두가 알고 있었다.
길라르 자작이 아스트라 공작에게 ‘직접’ 말씀을 드렸다는 걸.
게다가 에릴로트는 다른 직계들과도 숱하게 승부했을 터.
그때는 얼굴조차 비추지 않던 공작이 이번엔 몸소 승부를 관전하러 왔다.
‘나 때문이란 거지.’
에레카가 입가를 가린 채 쿡, 하고 웃었다.
그러곤 안쓰럽다는 듯 눈썹을 늘어뜨리며 에릴로트를 쳐다봤다.
“민망해라…….”
“……?”
“오늘 공작님께서 시간을 내서 ‘제 승부’에 와주신 것 말이에요.”
자신의 승부임을 강조해서 말했다.
행여나 착각은 말라고.
공작님께서 와주신 건 자신 때문이지 에릴로트 아스트라 때문이 아님을 확실하게 하려는 것이었다.
그런데.
‘……뭐야?’
왜 저렇게 평온한 표정이지?
에릴로트는 표정 변화 없이 에레카를 쳐다봤다.
“그래, 그래. 알겠으니까 시작하자.”
귀찮다는 표정이었다.
에레카는 입술을 꽉 짓씹었다.
‘부러운 주제에 어떻게든 숨기려고 하긴.’
하여간에 속이 검다.
“너무 그렇게 부러워하지 않으셔도─”
“알겠다니까.”
“…….”
“시합을 시작하자.”
에릴로트의 말에 심판역의 교수가 시합장 안으로 들어왔다.
직계와 방계의 대결인 만큼 심판을 제 3자인 타인에게 부탁한 것이다.
에릴로트와 에레카의 사이에 선 심판이 입을 열었다.
“그럼 룰을 설명하겠습니다.”
* * *
심판의 설명을 들은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룰은 간단하다.
에레카와 나는 각각 띠를 몸에 세 개씩 두를 수 있다.
그리고 그 띠 세 개를 전부 끊어내는 쪽이 승리.
나는 청색 띠를, 에레카는 백색 띠를 받았다.
‘띠는 어디에 매도 상관이 없으니까, 음…… 역시 방어하기 쉬운 상체 쪽이 좋겠어.’
공격이 들어와도 빠르게 움직일 수 있는 양쪽 팔과 머리에 하나씩 묶었다.
에레카는 양쪽 팔과 오른쪽 손목에 묶었다.
막 시합을 시작할 무렵.
어른들이 하나둘 시합장으로 들어오기 시작했다.
‘황궁 사람들이잖아?’
황궁인들의 대표 격인 보빌통 백작이 하하, 웃으며 할아버지의 곁에 자리를 잡았다.
“그 유명한 에릴로트 아스트라 양의 승부라니, 기대가 큽니다.”
“상대 아이도 <마물 조련>의 가호를 가졌다지요? 그런 엄청난 가호를 가진 아이가 하나도 아니고 둘씩이나 되다니. 역시 아스트라라고나 할까요.”
겉으로는 사람 좋은 척 칭찬하고 있지만, 눈빛이 매서웠다.
‘내 실력을 제대로 확인해두려는 거구나.’
황궁에선 내 실력을 직접 확인할 수 있고, 아스트라는 위상을 자랑할 수 있다.
둘 모두에게 승부 관람은 좋은 일일 터다.
“아아, 어머니……!”
“아빠!”
사촌들이 저마다 반가운 표정을 지었다.
‘2세들도 왔네.’
하기야, 까딱 잘못했다간 방계들에게 밀릴 판이니, 오금이 저릴 거다.
어제 3세들에게 ‘세작 찾기’가 명해진 이후로 숙부들과 고모들은 숨도 못 쉬고 있는 중이다.
‘그러니 저들이 방계가 제 자식에게 까불어도 가만히 있는 걸 테고.’
평소였다면 불같이 화를 내며 방계들을 뒤집어 놨을 텐데.
특히 다혈질로 유명한 발데릭 숙부, 실뱅 숙부, 바스티나 고모가 꼼짝도 못했다.
‘타 가문과 연을 맺지 말라는 할아버지 말씀을 어기고 황도에 얼마나 많은 끈을 만들어 놨어?’
행여나 잘못 걸려서 세작으로 찍힐까 봐 무서워 죽겠지.
거기다 직계들이 찍혀있는 와중에, 길라르 자작이 할아버지의 사생아라는 얘기까지 돌고 있었다.
자리를 빼앗길까 봐 불안해서 미칠 거다.
나는 2세들을 보고 고개를 흔들었다.
“한 편을 많이도 데려오셨네요. ……그렇게 저와의 시합이 무서우셨던 걸까.”
에레카가 풋, 웃음을 터뜨렸다.
“뭐, 열심히 해보세─”
시합 시작을 알리는 북소리가 울려 퍼졌다.
에레카의 말이 다 끝나지도 않은 순간.
콰과과과과곽─!!!
폭발용의 마도구를 던져주었다.
커다란 굉음이 들려오기 무섭게 “꺄아아악─!” 하는 에레카의 비명이 들려왔다.
폭발에 놀라 벌렁 넘어진 에레카가 찢어지는 듯한 고함을 내질렀다.
“이게 무슨 짓이에요! 마도구라뇨! 능력으로 싸우지 못할망정……! 반칙이에요!”
난 꽥꽥 소리치는 에레카를 여유롭게 내려다보았다.
한 손으로 남은 같은 종류의 마도구를 던졌다 받길 반복하면서.
“너, 네가 바보라는 티는 그만 내는 게 좋겠어.”
“네?!”
“실전 훈련이잖아? 실전에서 마도구가 안 쓰이는 것 봤어?”
“그건……!”
“머리가 딸리면 사전에 룰을 확인하는 정성이라도 있든가.”
“이─!!”
“한 번 더 간다. 웬만하면 피해. 벌써 지면 재미없잖아.”
그리고 퍽!
마도구를 던지자 또 한 번 엄청난 굉음이 터져 나왔다.
에레카는 이미 자세가 무너져 있었으므로 움직여서 피할 순 없었으리라.
하지만 그렇다고 마냥 당하기만 한 건 아니었다.
폭발의 연기 사이로 무언가에 가로막힌 에레카의 실루엣이 얼핏 보였다.
‘<식물 변형>으로 방어했구나.’
에레카가 소리쳤다.
“그깟 마도구에 당할 줄 알고─!”
“마도구는 미끼인 게 당연하잖아.”
에레카가 흠칫 고개를 돌렸다.
놀랄 만도 했다.
정면에 서 있던 내가 뒤로 이동했으니까.
리시먼드의 가호가 담긴 <이동의 가호석>의 힘이었다.
“……!”
에레카가 놀라서 흠칫, 몸을 뺐지만 이미 자세가 무너져 있어서 완벽한 방어는 불가능했다.
<식물 변형>으로 방어한 건 정면.
뒤는 고스란히 열려있다.
팟!
나는 순식간에 에레카의 팔에 걸린 띠를 베어냈다.
“이걸로 하나.”
“이……!”
내가 잘라낸 띠를 주워 들자 에레카의 눈에서 불똥이 튀었다.
* * *
관중석에 앉아있는 직계 3세들의 눈이 휘둥그레졌다.
시합이 시작하자마자 마도구를 던져서 자세를 무너뜨리더니, 두 번째 폭발을 일으켰다.
“뭐, 뭐야! 어떻게 된 거야?! 연기 때문에 안 보이잖아!”
“에레카 길라르가 두 번째 폭발이 있기 전에 <식물 변형>으로 방어했어!”
이윽고 연기가 바람에 날아가고, 승부에 나선 아이들의 실루엣이 보이기 시작했다.
“어?”
방계 아이 하나가 벌떡 일어났다.
다른 사람들도 놀란 건 마찬가지였다.
“……!”
“……!”
“……!”
에릴로트가 에레카의 뒤로 이동해 있었다.
게다가.
“이걸로 하나.”
에레카의 띠를 베어냈는지, 떨어진 띠를 가볍게 주워들었다.
에레카의 얼굴은 새빨갛게 불타오르고 있었고, 에릴로트는 아주 여유로웠다.
“맙소사……. 아직 마물을 꺼내지도 않았잖아.”
방계 소녀가 중얼거리자, 다른 사람들 또한 마른침을 삼켰다.
머릿속에 12번째 탑에서 줄곧 들어오던 에릴로트 아스트라의 별명이 떠올랐다.
‘맞아. 용을 가진 소녀라고 불리기 이전의 별명은…….’
최연소 상급 교육실 진급자.
역대 최연소의 서열 1위.
고작 3살의 나이에 이미 서열권에 들었던, 아스트라의 천재.
……최강의 3세!!
‘왜 잊고 있었지?’
“에릴로트 님은 <마물 조련>의 가호를 발현하기 전부터 ‘최강의 3세’라고 불렸잖아……!”
그래서 동경했던 것이다.
가호라는 천부적인 재능 없이 서열권에 든 저 소녀를.
리앙틴이 씩, 웃었다.
“에릴로트는 <마물 조련>을 하기 전부터 실전 훈련에서 매번 1등 하던 애라고.”
마물을 조련한 뒤로는 무기를 잘 쓰지 않는다.
그래서 지금은 아일라가 최고로 무기를 잘 다룬다고 불리지만, 이전엔 에릴로트를 따라잡을 수 없었다.
“마도구와 무기를 다루는 데엔 3세 중에 1인자라고!”
리앙틴의 말에 방계들의 표정이 어두워졌다.
공작의 뒤에서 시합을 지켜보던 드뷔시 자작이 쿡쿡 웃었다.
“에릴로트 아가씨의 정말 무서운 점은 저 시야죠.”
시야가 무서울 정도로 넓다.
몇 수 앞을 생각하며 움직이니, 저보다 월등하게 강한 가호를 가진 직계 3세들도 꼼짝을 못했던 것이다.
“처음부터 강한 가호를 가지고 태어나지 못했기에 다른 쪽이 트인 것이겠죠.”
“저절로 트였다고 생각하나?”
공작이 입을 열자, 사람들의 시선이 일시에 그에게 향했다.
“아니, 스스로 개발시킨 것이야.”
에릴로트는 제게 힘이 부족하다는 것을 일찌감치 깨달았다.
남들은 노는 데, 자는 데에만 관심이 있던 서너 살의 나이에.
그래서 필사적으로 개발시킨 것이다.
일곱 살때까지 저 애는 언제나 마도구 창고에 틀어박혀 있었다.
“너, 여기서 무엇을 하는 게냐.”
“나쁜 고 하려는 고 아냐!”
“알아. 물었을 뿐이야.”
“……있지요. 에리로트요. 책 바서요. 어떠케 움직이는지 궁금해요.”
“…….”
“에리로트 약하니까요. 곰부해요…….”
성에 있는 동안, 단 하루도 쉽게 잠든 적이 없었다.
마치 무언가에 쫓기고 있는 사람처럼 매일을 필사적으로 살았다.
노력하고, 또 노력하고…….
혹시 지더라도 결코 포기하는 일 없이.
그러니 시선이 갔던 것이다.
남들보다 작게 태어난 녀석이, 남들보다 수십 배로 노력했기에.
제 눈에 갸륵해 보일 만큼 애써 노력해서.
에레카가 땅을 짚었다. 순식간에 땅이 울렁거리며 그 속에서 거대한 식물의 줄기가 뻗어져 나왔다.
“요행으로 띠를 차지한 주제에─!”
에릴로트는 재빨리 뒤로 물러났다.
그러나 물러나는 곳마다 식물의 줄기들이 뻗어져 나왔다.
결국, 나무에 가로막혀버렸다.
나무가 변형되며 에릴로트를 꽉 끌어안자, 에레카의 입매가 비틀렸다.
“나와.”
에레카의 명을 받은 늪요정이 소매 속에서 튀어나왔다.
그러자 좌중들이 소리쳤다.
“하나가 아냐. 둘이나 되잖아!”
“이런─! 위험하겠어!”
그때, 조프리가 눈을 가늘게 좁혔다.
승부 필드와 가장 가까이에 있던 조프리는 코를 킁킁거리며 중얼거렸다.
“그런데 이거 무슨 냄새야?”
“무슨 냄새긴, 아까 폭발하며 난 화약 냄새겠지.”
“화약? 아냐, 이건…….”
조프리의 가호는 하관을 짐승 형으로 변형시키는 가호인 <수구>였다.
태생적으로 평범한 인간과는 다른 감각을 자랑한다.
후각까지도.
조프리의 코와 입이 개의 형태로 변했다.
킁킁, 몇 차례 냄새를 맡던 조프리가 소리쳤다.
“기름……! 기름이다!”
그러자 나무에 묶여서 고개를 숙이고 있던 에릴로트가 씩, 미소 지었다.
늪요정이 코앞까지 다가온 순간.
에릴로트의 손에서 무언가 툭, 떨어졌다.
순식간에 화르륵! 불이 붙었다.
“뭐, 뭐야…….”
황궁에서 온 이번 거래의 총책임자 보빌통 백작이 기함했다.
‘도망치는 척하면서 기름을 뿌렸구나.’
그러고 보니 아직 연기가 바닥에 깔려 있어서 몰랐는데, 에릴로트의 바짓단이 축축하게 젖어있었다.
‘폭발을 일으킨 건 이것까지 노렸기 때문인 것이야.’
화약 냄새로 기름을 뿌리고 있다는 걸 모르게 하려고.
“자, 잠깐, 그럼 에릴로트도 위험한 거 아냐? 불이 붙는다고!”
사색이 된 리앙틴이 치맛자락을 꽉 잡았다.
그런데 어느 순간부터 에릴로트의 모습이 보이지 않았다.
에릴로트가 묶여 있던 나무엔 웬 먹구름 같은 연기 덩어리가 있었다.
그곳을 지그시 보던 셀레네가 픽, 실소를 흘렸다.
“옴브레야.”
“오, 옴브레?”
“그래. 에릴로트의 그림자 마물 말이야. 불이 강할수록 주변엔 어둠이 짙어지지.”
그리고 그림자 마물은 어둠이 짙으면 짙을수록 강해진다.
불로 옴브레를 강화시켜서 그 안에 몸을 숨겨 방어한 것이다.
반면에 늪요정은 불과 상극이다.
에레카의 늪요정들이 어쩔 줄 모르고 하늘로 높이 떠올랐다.
“이것들이! 돌아오지 못해?!”
에레카가 꽥 소리쳤으나, 아무리 조련의 힘이라도 죽음의 공포보다 우선은 아니었다.
늪요정들은 불바다로 돌아갈 생각을 하지 못하고 상공만을 팔랑팔랑 날아다녔다.
에레카는 완전히 불길에 휩싸여 있었다.
에릴로트를 잡기 위해 뻗어대던 식물들이 도화선이 되어버렸기 때문이다.
“에, 에레카─!!”
그녀의 아버지인 길라르 자작이 안절부절못했다.
“공작님, 승부를 중단시켜야 합니다! 이러다 제 딸이 죽겠어요!”
길라르 자작이 새파란 얼굴로 소리치자, 셀레네의 모친인 바스티나가 코웃음을 쳤다.
“누구 한 사람 패배를 인정하지 않는 한, 승부는 중단할 수 없어. 그게 아스트라의 규율이다.”
“그렇지만……!”
“그것도 모르고 감히 직계에게 승부를 걸었나?”
“하, 하지만 목숨이 경각에 달리면 공작님의 권한으로 승부를 취소할 수 있지 않습니까!”
“네 딸이 살려달라고 울고불고하면 그때 얘기하지 그래?”
‘적의 적은 아군이다’라는 말은 사실이었다.
언제나 에릴로트를 보면 가만두지 못해 안달이던 바스티나였다.
그녀가 승부를 옹호하고 나서자, 방계 가신들의 표정이 묘해졌다.
‘뭐야……. 이쯤 되면 직계들이 연합한 게 아닌가.’
자식이 상승할 기회라고 기뻐하던 방계들의 얼굴에 위기감이 어렸다.
‘저들 성격에 연합이라니. 말도 안 돼!’
이렇게 되면 위험해지는 건 방계들이 아닌가!
어른들의 반응을 살피던 셀레네가 쿡쿡 웃었다.
다리를 꼰 채로 시합을 지켜보던 로레이나가 그런 셀레네를 흘끗 쳐다봤다.
“방계들이 날뛰고 있는 기막힌 상황에서 뭐가 재밌다고 웃어?”
“에릴로트 말야. 왜 순순히 승부를 받아들였나 했거든. 사실 귀찮기만 한 일이잖아. 만약 에레카 길라르가 정말로 조부님의 친손녀면 귀찮아지고.”
로레이나는 흥, 하며 고개를 돌렸다.
“직계들이 연합할 물꼬를 트려고 한 거겠지.”
“알고 있었어?”
“서열권의 사촌들은.”
에릴로트는 본래 남 일엔 관심이 없는 아이다.
과거에 하녀와 살림을 차리겠다고 도주하려 한 사촌이 제 부친에게 얻어맞는 일이 있었다.
‘다들 눈이 휘둥그레져서 구경하던 와중에 혼자서 책만 열심히 봤지.’
그런 애가 왜인지 에레카를 자극하더라니.
“하여간에 머리 하나는 짜증 나게 좋아.”
쯧, 로레이나가 혀를 찼다.
* * *
시합은 생각보다 쉽게 끝났다.
에레카는 뭘 해보지도 못하고, 불길에 휩싸여서 소리쳤다.
“그만해요! 이러다 죽는다고요!”
그러며 울어버리자, 사색이 된 길라르 자작이 할아버지에게 울며 매달린 것이다.
물의 가호를 가진 이들이 시합장의 불길을 잠재웠다.
그 후, 나와 에레카는 심판을 사이에 두고 섰다.
심판이 말했다.
“하면 에레카 길라르 양께선 패배를 인정하십시오.”
에레카는 눈을 부릅뜨며 날 노려봤다.
“이건 반칙이에요. 가호로 승부를 해야지, 온갖 마도구를 써서 저를 몰아붙인 거잖아요?”
“…….”
“저는 어쩔 수 없이 시합을 중단하게 해야 했어요. 계속 이런 식이라면 공작님께서 이 끔찍한 연기를 마셨을 테니까요!”
‘치졸하네.’
이러다 죽겠다고 오금을 떨던 애가 이제 와서.
“할아버지 핑계는 그만 대고 인정이나 해.”
내 말에 에레카가 눈을 부릅떴다.
“공작님의 건강을 위한 눈물 겨운 결정을 핑계라고 생각하시다니요!”
“왜 그렇게 할아버지 핑계를 못 대서 안달인 거야? 그런다고 상황이 달라져?”
“핑계가 아니에요. 충정이고, 애정이라고요!”
“애정……. 그래, 궁금했어.”
나는 고개를 모로 꼰 채로 에레카를 쳐다봤다.
그리고 할아버지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할아버지, 이 아이가 친손주라는 소문이 사실인가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