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Three Year Old Is a Villainess RAW novel - Chapter (131)
이 3세는 악역입니다 131화.(131/390)
131화.
길라르 자작은 마른침을 삼켰다.
‘그래, 도망칠 순 없어.’
여기서 도망치면 실험과 관련된 모든 것을 자신이 떠안게 될 것이다.
‘권력의 중심까지 겨우 한 발 남았어.’
에레카가 에릴로트 아스트라를 처리하면 수습은 그 분이 해주실 것이다.
에릴로트와 데이몬드 관할령은 그 분께 걸림돌이니, 처리해준다면 잘된 일이 아닌가?
자작은 딸의 어깨를 쥐고, 긴장 어린 표정으로 말했다.
“절대로 실패해선 안 돼.”
“물론이죠.”
에레카의 손에서 파즈즛, 소리와 함께 전류가 흘렀다.
그리고.
쿠구구구…….
기묘한 땅울림이 느껴졌다.
“승부에서는 요행으로 절 압박한 거라고요. 가호로 붙으면 상대도 안 된단 말이에요. 무엇보다…….”
에레카는 오만한 표정으로 머리카락 끝을 매만지며 말을 이었다.
“제가 바보도 아니고, 대놓고 죽이겠어요?”
“하면?”
“처리도 하고, 그 재수 없는 계집애의 말도 안 되는 위명을 벗겨버릴 방법이 있어요.”
에레카가 히죽 웃었다.
* * *
나는 이불을 목 끝까지 올린 채 눈을 감았다.
‘할아버지는 새벽에 오실 테니까 그 전에 몇 시간이라도 눈을 붙여둬야지.’
에레카 길라르와 연관된 일을 고발하고 나면, 눈코 뜰 새 없이 바쁠 거다.
옆에서 달칵, 하는 소리가 들렸다.
살짝 눈을 뜨니 한지혁이 협탁에 자리끼를 올려놓고 있었다.
손엔 오일 램프가 들려 있었다.
나는 눈을 깜빡이며 한지혁을 쳐다봤다.
“웬 램프야?”
마력석으로 돌아가는 전등이 아니라?
이 세계엔 마도구가 워낙에 잘 발달되어 있어서, 이런 빈티지 오일 램프는 내겐 익숙하지 않았다.
“신관(직계 3세들의 교육장이 있는 공작성의 제2성)의 마도구가 전부 먹통이야.”
“먹통?”
“응. 붉은 달이 뜨는 날이라서 그런 것 같다는데. 통신도 먹통이라 하인이 마탑에 소식을 알리러 갔어.”
붉은 달이 뜨는 날이라면 그럴 수도 있을 거다.
붉은 달은 가호를 약하게 만든다.
그건 엄밀히 말해서 가호의 에너지인 ‘마력’이 약해진다는 것이다.
이 세계의 마도구는 대부분 마력석으로 움직인다.
그러니까 붉은 달이 뜨는 날에 마도구가 먹통이 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상했다.
‘내 기억에 그런 날은 없어.’
첫 번째 삶에서 난 늘 밤을 새워 공부했다.
피곤해서 쓰러져도 책상에서 쓰러졌다.
일 년 내내 공부하기 위해 전등을 켜고 있었기 때문에 안다.
‘전등이 켜지지 않았던 날은 없었어.’
고장이 나서 전등을 교체했을지언정, 이렇듯 모든 마도구가 먹통이었던 적은 없다.
나는 핫! 하고 이불을 걷었다.
병사 호출 벨을 울리려다가 흠칫했다.
‘호출 벨도 마도구잖아!’
통신석도 안 되는 판에 호출 벨이 될 리가 없다.
한지혁은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날 쳐다봤다.
“뭐야, 왜? 네 할아버지가 오기 전까진 눈을 붙인다면서─”
“신관 총괄장에게 알려. 당장 사람들을 피신시키라고 해. 오라버니들이 신관 도서관에 있을 거야. 그쪽에도 빨리 알려야 해.”
“대체 무슨 일인데.”
“습격이야! 누가 공작성의 마력의 흐름을 차단했어!”
경악한 한지혁이 쏜살처럼 튀어 나갔다.
나도 카디건을 입고 잠옷 차림으로 정신없이 달렸다.
쾅쾅쾅!
방마다 두드리자, 사촌들이 짜증 섞인 얼굴로 나왔다.
“뭐야?! 지금 시간이 몇 시인지 알아?”
“흐암, 무슨 일이야……?”
“왜 이렇게 시끄러워!”
그때였다.
쾅─!!!
어딘가에서 엄청난 굉음이 들려왔다.
‘이런. 벌써…….’
사촌들이 소스라치게 놀라서 창밖을 바라봤다.
“무슨 소리지?”
“미친 거야? 누가 감히 아스트라 공작성에서 이런 소란을…….”
세작 찾기 때문에 신관에서 지내는 방계들까지 뛰어나왔다.
“이게 무슨─”
“말은 나중에 하고 달려! 본성으로 가야 해!”
애들은 어리둥절한 표정이었다.
그러나 그것도 잠시.
챙─!
날카로운 소리와 함께 창이 깨지며, 무언가가 복도로 뛰어들었다.
“모, 몬스터!”
피부가 양서류처럼 미끈했다.
얼굴은 도베르만처럼 주둥이가 긴 개처럼 보였는데, 입 안에 무시무시한 이빨이 엄청나게 많았다.
꼬리는 꼭 올챙이 같았다.
그리고 눈이 소름 끼치게 새빨갰다.
몬스터가 아이들을 향해 달려들었다.
“어딜 감히.”
몬스터와 가장 가까이에 있던 조프리가 크아악! 포효했다.
가호인 <수구(하관을 짐승의 형태로 바꾸는 가호)>를 발동시키려고 한 모양이었다.
하지만.
“뭐, 뭐야?”
‘붉은 달이 떴는데, 가호가 제대로 발동될 리가.’
당황한 조프리가 머리를 감싸 쥐고 비명을 내질렀다.
“엄마─!”
“어머니를 부른다고 해결이 돼?!”
마지막 말을 한 건 조프리의 친누이인 로레이나였다.
로레이나는 장식장에 놓인 촛대를 몬스터에게 내던졌다. 그리고 조프리의 목덜미를 잡아서 홱, 끌어당겼다.
그 틈에 밀란과 애덤, 엘먼 등의 큰 소년들이 촛대며 장식용 검을 휘둘렀다.
하지만 전혀 상대가 되지 않는다.
“누, 누나.”
조프리가 울먹이며 불렀으나, 로레이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그녀가 희게 질린 얼굴로 중얼거렸다.
“한 마리가 아니잖아…….”
계단을 통해서 같은 외형의 몬스터들이 뛰어 올라오고 있었다.
꽃무늬 잠옷 차림의 리앙틴이 소리쳤다.
“실의……. 고대 몬스터인 <실의>다!”
<실의>는 상대의 마력을 흡수하는 몬스터였다. 마력을 흡수하면 흡수할수록 강해진다.
‘여긴 다 마력이 강한 아이들 천지잖아!’
아무리 붉은 달 때문에 마력이 약해졌다지만, 아스트라의 직계들인 만큼 질 좋은 마력들을 가지고 있다.
즉, <실의>에게 있어선 가장 좋은 상대라는 말이다.
‘하나, 둘, 셋…… 적어도 열 마리 이상이야.’
고대 몬스터는 엄청난 힘을 가졌다.
가호를 발동할 수 없는 아이들이 이길 수 있는 상대가 아니었다.
긴 실크 로브를 걸친 밀란이 짓씹듯이 말했다.
“미친, <공허>에 이어서 <실의>까지……. 아스트라가 고대야, 뭐야. 왜 희소하다는 고대 몬스터가 천지인 건데.”
나는 주춤주춤, 뒷걸음질 치며 중얼거렸다.
“그렇게 말할 시간 있어?”
“설마.”
“그럼 뛰어─!”
으아아아악!!
아이들이 비명을 내지르며 허둥지둥 뛰었다.
앞에 있던 갈림길에서 발자크와 요슈아, 리시먼드가 달려왔다.
“에릴!”
“에릴로트.”
“어떻게 된 거야?”
나는 허겁지겁 뛰면서 소리쳤다.
“고대 몬스터 <실의> 무리야!”
설명하는 동안, 뒤에서 찢어지는 비명이 들렸다.
“꺄악─!”
아르망의 유모였다.
아르망은 사촌들 중에 가장 어리다.
어린아이를 안고 달리느라 가장 뒤처졌던 유모가 넘어진 모양이었다.
그러면서 아르망을 떨어뜨린 모양인지, 아이가 유모와 제법 떨어져 있다.
맨 앞에 있던 실의가 단숨에 거리를 좁혔다.
그리고…….
‘아르망의 유모를 지나쳤어?’
실의와 더 가까이에 있던 건 유모다.
그런데 유모를 지나쳐서 아르망에게 달려들었다.
“흐어엉……!”
겁에 질려서 히끅거리던 아르망이 납작 엎드렸다.
“도련님!”
새파랗게 질린 아르망의 유모가 비명 같은 고함을 내질렀다.
“옴브레, 아르망을 끌어안아!!”
내 그림자 속에서 튀어나온 옴브레가 쏜살같이 움직였다.
아무리 짐승형의 고대 몬스터라도, 어둠 속에서는 그림자 몬스터의 속도를 이길 수 없다.
실의가 아르망의 목덜미를 물어뜯기 전에, 옴브레가 먼저 아이를 감쌌다.
‘어쩌지……. 오래 지킬 수 없는데.’
그림자 몬스터는 물리적인 공격력이 약한 대신, 정신적인 데미지를 입힌다.
닿는 것만으로도 끔찍한 상상이나 기억을 떠올리게 하는 것이다.
이렇게 깊은 밤은 옴브레가 가장 강해지는 시간.
어린 아르망의 정신이 견딜 수 있을 리가 없다. 10분도 안 되어서 정신을 놓을지도 모른다.
‘하지만 <실의> 무리에 둘러싸여서 구해올 수가 없잖아.’
생각하던 순간, 발자크가 벽에 걸린 장식용 검을 거칠게 뽑아냈다.
그리고 실의 무리를 향해 달려들었다.
땅을 강하게 박차고 도약한 발자크가 단숨에 실의의 목덜미에 검을 내리꽂았다.
그리고 옴브레가 둘러싸고 있는 아르망을 가까이에 있던 밀란에게 던졌다.
“윽!”
밀란이 덥석 아르망을 받아서 물러났다.
나는 그 틈에 옴브레를 불러들였다.
“옴브레, 어서 떨어져!”
아르망은 새파랗게 질려 있었지만, 다행히 눈에 미약한 이채가 보였다.
정신을 놓지는 않은 것이다.
‘그보다…… 이상해.’
고대 몬스터가 이렇게 약하다고?
붉은 달이 떠서 가호를 제대로 쓸 수 없다.
즉, 발자크의 검엔 오러조차 담겨있지 않았다는 것이다.
그런데 발자크의 검에 찔린 고대 몬스터가 축 늘어져 있었다.
‘물론 일반적으로 생각하면 엄청나게 강하긴 하지만, 고대 몬스터는 궤가 다른 힘을 가졌어.’
저 실의는 고대 몬스터 중에 가장 약하다는 <공허>의 파괴력에 결코 미치지 못한다.
요슈아가 나를 힐끗 쳐다봤다.
“저거, 아무래도…….”
난 고개를 끄덕였다.
“응. 만들어진 거야.”
“돌아가신 아버지의 책 마지막에 ‘고대 몬스터 복원’에 관한 내용이 잘려져 있었어.”
저 <실의>도 리시안 숙부가 남긴 책을 통해 만들어냈구나!
그렇다면 이 습격을 누가 주도했는지는 뻔하다.
‘에레카 길라르……!!’
나는 으득, 이를 갈았다.
발자크는 정신없이 달려드는 실의들을 상대하고 있었다.
한 마리를 겨우 떨쳐내면, 다른 실의가 허리를 물어뜯었다.
나는 사색이 되어서 소리쳤다.
“발자크!”
그러던 찰나였다.
“괜찮으십니까?!”
“뭐, 뭐야, 저것들은……!”
한지혁이 신관의 병사들을 이끌고 달려왔다.
병사들이 실의에게 검이며 화살을 내질렀다.
아이들의 얼굴이 밝아졌다.
엉엉 울며 부모를 찾던 방계들도 드디어 살았다는 표정이었다.
리앙틴이 마른침을 삼키며 물었다.
“이길 수 있을까.”
무리겠지.
물리 공격으론 정평이 난 발자크다. 웬만한 성인도 검으로는 발자크를 이길 수 없었다.
그런 발자크조차 몇 분도 안 되어서 엉망이 되었다.
‘병사들이 상대할 수 있을 리가…….’
아니나 다를까 기백 명의 병사들이 금세 널브러지기 시작했다.
실의는 달려드는 병사들 외엔 상대하지 않았다.
오직 마력이 있는 아이들을 노리는 것이다.
“병사들이 시간을 벌어주는 동안 도망쳐야 해!”
리앙틴이 소리쳤다.
아이들은 다시 달리기 시작했다.
목적지는 제1성과 이어지는 복도.
할아버지의 집무실이 있는, 이 성에서 가장 강력한 경비 체제가 이뤄진 곳이었다.
달리는 동안 계속 의문이 들었다.
‘여기로 가도 될까?’
이 소란을 들었을 텐데 아무도 오지 않잖아.
복도에 다다른 아이들의 얼굴이 순식간에 새파래졌다.
“이, 이게 뭐야.”
“어, 어떡해……!”
‘역시.’
복도의 벽이 무너져서 도무지 지나갈 공간이 없다.
나는 한지혁에게 물었다.
“신관 1층 문은? 거기론 지나갈 수 있어?”
“여기에만 몬스터가 있는 게 아니야…….”
“뭐?”
“내가 경비병을 왜 이것밖에 못 끌고 왔겠냐. 1층은 저 몬스터 천지라고……!”
이것보다 많은 수가 있단 말야?
크르르륵!
뒤에서 살벌한 목울음 소리가 들려왔다.
벌써 병사들을 처리하고 우리에게 달려온 모양이었다.
리앙틴과 디오네라가 내게 달려와서 말했다.
“이, 이제 어쩌지?”
“어떻게 해야 해?”
“…….”
나는 눈을 꽉 감았다.
가슴이 세차게 뛰고, 경고음 같은 이명이 머릿속을 울린다.
‘진정해.’
공포에 집어삼켜지면 안 돼.
생각해야 해.
생각하고 또 생각해.
‘나는 이보다 더한 수라장도 헤쳐왔어.’
가호가 하나도 없을 때에도 저 두려운 능력을 가진 3세들과 맞서 싸웠다.
그리고 결국 승리해서 서열권에 들었다.
숱하게 많은 일이 있었지만, 넝마가 될지언정 일어났다.
나는 눈을 번쩍 뜨고 카디건 주머니에서 머리끈을 꺼냈다.
머리를 질끈 묶고 말했다.
“모두 방 안으로 들어가!”
“어……?”
“입구가 좁으면 한 마리씩 들어올 수밖에 없어. 하나씩 상대하자.”
그러자 사촌들이 기겁했다.
“우, 우리끼리 실의를 막자고?! 말도 안 돼!”
“우린 지금 가호를 쓸 수 없단 말야!”
나는 결기 어린 눈으로 사촌들을 쳐다봤다.
“그럼 이대로 잡아먹히기만을 기다릴 거야?!”
“그, 그야…….”
“본성에서도 소란을 눈치챘을 거야. 곧 지원이 올 테니까 그때까지 이 악물고 버텨.”
병영에 소식이 가고 군사들이 도착할 때까지 2, 30분쯤.
실의를 물리치고 여기까지 오는 건 넉넉잡아서 30분쯤.
그러니까 총 걸리는 시간은 1시간이 약간 안 된다는 소리다.
“한 시간만 버티면 내일 웃으면서 식당에 들어갈 수 있어.”
“갑자기 무슨 소리를……!”
사촌이 기가 막힌다는 듯 인상을 찌푸렸다.
나는 생긋 웃었다.
“우리는 어처구니가 없다는 듯이 대화를 나눌 거야. ‘아, 어제는 정말 무서웠어.’ 하고.”
“…….”
“조프리는 ‘그게 뭐가 무서워. 난 하나도 겁먹지 않았어!’ 하고 말할지도 모르지.”
벌벌 떨고 있던 조프리가 흠칫, 고개를 들었다.
“밀란 오라버니는 ‘그러시겠지.’ 하고 빈정거릴 거야.”
“…….”
잔뜩 긴장감 어렸던 밀란의 눈이 커졌다.
“조프리가 길길이 날뛰면 로레이나 언니는 ‘저 바보.’ 하면서 한숨을 쉴 거예요.”
식은땀을 흘리던 로레이나가 치맛자락을 꽉, 그러잡았다.
“디오네라 언니는 디저트를 먹고 싶다고 하고, 리앙틴 언니는 아침부터 무슨 디저트냐고 핀잔을 주겠지.”
“…….”
“…….”
사촌들의 표정에서 공포가 약간 가셨다.
나는 눈을 동그랗게 뜬 그들에게 웃어주었다.
“이 한 시간만 지나면 우리는 그렇게 평소 같은 하루를 보내게 될 거야.”
그리고 내일이 되면, 에레카 넌 죽었어.
‘진짜야.’
절대로 가만두지 않겠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