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Three Year Old Is a Villainess RAW novel - Chapter (133)
이 3세는 악역입니다 133화.(133/390)
133화.
길라르 자작이 불안한 표정으로 문에 바짝 귀를 댔다.
“소란스러워졌는데……. 공작이 돌아온 것 아냐?”
“…….”
에레카는 손톱을 딱, 딱, 물어뜯었다.
‘시간을 너무 지체했나.’
공작이 도착했다면 위험하다.
긴급령을 내려서 마탑의 마법사들이 전부 소집될 것이다.
실의들이 아무리 마력을 먹는 재주가 있다고 해도, 아스트라가 소유한 엄청난 마력석들을 쏟아부으면…….
‘그 마력조차 다 먹어치우진 못할 거야.’
거기에 직속군까지 움직이면 실의들이 전멸할지도 모른다.
그녀의 실의들은 고대 몬스터를 복원했다고 해도 인간의 손으로 만들어진 것이다.
진짜 실의만큼, 궤를 뛰어넘는 힘은 없다.
‘에릴로트 아스트라는 어떻게 됐지?’
그 계집애가 죽어야 뒤집어씌우기도 편할 텐데.
“에레카……!”
“…….”
“지금이라도 도망쳐야 하는 게 아니냐?!”
딱, 딱, 딱.
손톱을 물어뜯는 소리가 점점 빨라졌다.
비릿한 피 맛이 느껴진 후에야 에레카는 길라르 자작을 쳐다봤다.
“못 가요.”
“하지만!”
“한 발만 더 가면 혈족 교육을 받을 수 있는데…… 내가 에릴로트보다 능력이 있다는 걸 증명할 수 있는데…….”
“에레카?”
“다들 날 비웃을 거야. 절대 안 돼. 절대로 싫다고…….”
태어났을 때부터 주변에서 그녀를 떠받들었다.
“가호가 둘씩이나 된다고? 그거 굉장하군요!”
“이토록 찬란한 금발이라. 길라르 부녀는 아스트라 본가에서 태어났어야 하는 게 아닌가! 으하하!”
“에레카 길라르? 알지. 무섭도록 영리하다고 하지 않았소.”
“재능, 지혜, 외모. 무엇 하나 아이답지 않구나!”
모두가 그녀를 특별하다고 추켜세웠고, 스스로도 자신이 세상에서 가장 뛰어난 존재라 여겼다.
……12번째 탑에 들어가기 전까진.
“저는 네 살에 12번째 탑에 들어왔어요. 제 아버지의 주변 사람들이 그러는데 역대 최연소라고 하시더라고요.”
“응? 그치만 에릴로트 님은 말도 못 하던 아기 때부터 12번째 탑에 있었대! 그치?”
“그건 버림받아서 오갈 데가 없어서잖아요!”
“하지만 특별한 애라고 했어. 대천문이 닫히고 가호를 발현했고─”
“특별한 게 아니라 돌연변이인 거예요!”
“아냐. 되게 멋지다고 했어. 세 살에 공작님께 인정받았다던 걸?”
돌연변이 따위가 뭐라고.
‘돌연변이 주제에 왜 내가 들어야 할 최연소 12번째 탑 입학자의 이름을 뺏어가냐고.’
더러운 피라서 갈 데가 없었던 것인데.
다들 멍청했다.
“들었어?! 에릴로트 님이 <마물 조련>의 가호를 개화하셨대!”
“마, 마물을 조련하는 가호라고? 우와아─!”
마물 조련이 뭔데.
고작 마물을 조련할 수 있는 가호가 뭐길래 그 계집애를 그렇게 떠받들어?
부모 한쪽은 평민인 더러운 피 따위를.
‘원래 떠받들어져야 했던 사람은 나야.’
특수계 가호, 공방이 전부 가능한 가호를 가진 자신.
심지어 지혜롭고 아름답기까지 한 자신……!
“올해 본가 초상화는 언제쯤 복제 작이 돌까? 아아, 그 아름다운 본가 분들이 얼마나 성장하셨는지 궁금해. 특히 에릴로트 님 말야. ‘아스트라의 장미’라고 불린다고 해.”
“글쎄요. 저는 그렇게 아름다운지 잘 모르겠는 걸요.”
“으응?”
“데이몬드 님의 딸이잖아요. 아스트라에서 가장 아름다운 남자의 딸이 고작 그 정도라니. 전 실망스럽던걸요.”
아름다운 아버지를 둔 것뿐이잖아.
공작인 할아버지를 둔 것뿐이야.
‘아무것도 없이 태어나고도 이만큼 뛰어난 내가 더 특별한 건데 왜 아무도 그걸 몰라주냔 말야!’
결국, 사람들은 껍데기만 보는 거다.
삶을 바꾸고 싶다고 생각했을 때, 기회가 찾아왔다.
몇 개월 전, 술에 취한 아버지가 마탑의 일을 말해준 것이다.
“마탑에서 마물을 만든다고요?”
“쉿, 쉿. 이건 비밀이야. 공작조차 모르는 엄청난 비밀……!”
거나하게 취해 혀까지 돌아간 아버지는 낄낄 웃었다.
“노아리젠이 죽자, 그 분께서 그자가 진행하던 실험을 내게 맡기셨지. 에일로츠 남작이 부들부들 떨던 꼴을 네가 봤어야 하는데……!”
“에일로츠 남작이요?”
“리시안 아스트라의 마법서를 빼돌린 놈이지. 얼마나 잘난 척을 하는지 너는 모를 것이다.”
“……그런데 마물을 만들어도 되는 거예요? 인조 생명을 만드는 건 금기잖아요. 혹시 탄로 나게 되면─”
“당연히 안 되지. 그래서 실험체를 찾는 게 어렵단 말야.”
마물 제작을 위해선 인간의 피가 필요하다고 했다.
인조 마물은 피를 나눠준 사람을 제 부모로 여긴다고.
“즉, 마물을 컨트롤 할 수 있는 사람을 찾는 거란 말이죠?”
“그래, 하지만 그게 어렵단 말이지.”
“어째서요?”
“델타(δ)형의 혈청이 필요하거든. 거기다 에토록신이 오염되지 않아야 하고…… 아아, 네겐 너무 어려운 이야기겠군. 쉽게 말하면, ‘가호를 가진 17세 미만의 아이’가 필요하다는 거다.”
“…….”
“하지만 이런 실험에 어느 귀족 부모가 제 자식을 내주겠느냔 말야! 칫, 멍청한 것들. 애만 내어주면 엄청난 권력을 쥘 수 있을 텐데.”
“권력이라면…….”
“그 분께선 마물의 모체가 된 아이를 새로운 <마물 조련> 가호를 가졌다고 꾸며낼 생각인 것 같거든.”
“…….”
“마탑 외부에서 실험을 하려면 그쪽이 편할 테니─”
“제가 하면 어때요?”
“뭐, 뭣!? 하, 하지만 까딱 잘못했다간 마물에 먹힐지도 모른다고 했는데…….”
“에릴로트 아스트라같은 더러운 피도 마물을 조련할 수 있는데, 제가 못하겠어요?”
그렇게 실험에 참여했다.
실험 자체는 아주 쉬웠다.
피를 조금 내어주고, 마물이 태어날 적에 얼굴을 보여주면 그만이었으니까.
실험에 성공해서 늪요정이 자신을 따랐을 때는 얼마나 기뻤던가.
‘고작 이걸로 <마물 조련>의 가호를 가질 수 있다니 최고잖아……!’
<마물 조련>의 가호 하나로 더러운 피가 승승장구하는 꼴이 역겨웠다.
그 애가 가진 모든 것은 특별한 자신이 마땅히 누려야 하는 것들이었다.
‘나도 고대의 몬스터인 실의가 있어.’
에릴로트는 고작 용 하나지만, 자신은 실의 무리를 가지고 있었다.
“내가 더 대단해…… 내가 더 특별하단 말야…….”
“에, 에레카.”
“내가 떠나면 다들 날 손가락질 할 거야. 그 계집애는 뻔뻔하게 계속 잘난 체하고 다니겠지. 다 내 건데…… 내가 가졌어야 맞는데…….”
“너, 대체 무슨 소리를─”
그때였다.
쾅!
문이 열렸다.
새파랗게 질린 길라르 자작이 황급히 고개를 돌렸다.
“에, 에릴로트 아스트라!”
길라르 자작이 손을 벌벌 떨었다.
‘멀쩡한 걸 보면 실의들이 전멸한 거야!’
일이 틀어진 데다 실의까지 전멸했다면 자신은…… 자신과 딸은……!
길라르 자작이 어깨를 바짝 움츠렸다.
에릴로트는 방 안으로 성큼성큼 걸어들어왔다.
아이의 뒤로 7서열권의 3세들이 따라붙었다.
에레카의 얼굴이 굳어졌다.
‘또 특별한 척…….’
저 자리에 있어야 하는 건 자신이었다.
공작의 피를 이었다고 잘난 체하는 3세들의 무릎을 꿇리고 정점을 차지하는 사람은!
방 안으로 걸어들어온 에릴로트가 입술을 꽉 깨물고 있는 에레카에게 다가갔다.
에레카는 고개를 치켜들며 말했다.
“이 밤에 대체 무슨 일이시죠?”
“네가 더 잘 알 텐데.”
“무슨 뜻인지 모르겠는데요.”
에릴로트는 눈썹을 까딱, 들어 올렸다.
“신관에 기습이 있었어. 마도구는 먹통이고, 신관과 본관이 이어진 복도는 무너져 있었지. 그래서 본관도 소란스러웠던 것 같은데.”
“그래서요?”
“너, 이 소란에도 왜 나와보지 않았니?”
“……!”
에레카는 마른침을 삼켰다.
그러나 곧 억지로 입꼬리를 들어 올렸다.
“<세작 찾기> 때문에 아버지와 이야기 중이었어요. 저희 부녀에겐 그 과제가 무엇보다 중요하니까요.”
“그래?”
“그렇다고요! 그보다 왜 저를 찾아왔죠? 기습이 저와 무슨 상관이라고요?”
“몬스터가 기습했으니까.”
“그게 왜요? <마물 조련>을 저만 할 수 있나요? 용을 조련했다는 당신이 아이들에게 빚을 지우려고 몬스터를 끌어들였다는 게 더 타당하지 않나요?”
“…….”
“아아, 알겠다.”
에레카는 팔짱을 낀 채로 에릴로트에게 한발 다가갔다.
“내게 뒤집어씌우려는 거죠?”
“…….”
“어쩌나. 뜻대론 안 될걸요. 제가 가호를 사용했다는 증거가 어디에 있냐고요.”
“너.”
에릴로트가 에레카의 얼굴을 빤히 쳐다봤다.
“왜 놀라지 않아?”
“……네?”
“몬스터가 아스트라 공작성에 침입했어. 황궁급의 강력한 결계가 펼쳐진 이곳에.”
“그, 그건…….”
“어떻게 된 일이냐고 놀라는 게 정상 아냐?”
“어, 언젠가 당신이 그런 일을 할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어요. 잘난 체하려고 눈이 벌건 사람이니까.”
“…….”
“몬스터라는 얘기를 듣자마자 당신 짓이구나 싶─”
짝─!!
에레카의 고개가 돌아갔다.
딱딱하게 굳은 에레카가 불이 붙은 것 같은 뺨을 감싸 쥐었다.
“때, 때렸어? 나를, 날……. 이게 무슨 짓이야!”
“당신이 아니고 영애님.”
“너!”
짝─!!
에레카의 고개가 또 한 번 돌아갔다.
가볍게 손을 턴 에릴로트는 무감한 표정으로 에레카를 쳐다봤다.
“너가 아니라 아가씨.”
“이, 이……!”
짝─!!
길라르 자작은 새파랗게 질린 채로 입만 떡 벌렸다.
서열권의 아이들도 약간 놀란 표정으로 에릴로트를 쳐다봤다.
밀란은 휙, 휘파람을 불었다.
“재밌는데.”
로레이나가 밀란을 쏘아봤다.
“그런 말을 할 때가 아니잖아.”
“보기 좋다는 뜻이었어. 계속 재수 없었거든, 저 애.”
“그렇기야 하다만…….”
로레이나가 흥, 하고 코웃음을 쳤다.
에레카는 눈이 돌아가서 소리쳤다.
“이게 무슨 짓이에요!”
에릴로트는 고저 없는 목소리로 말했다.
“아스트라 가주의 명을 하달한다. 이 시간부로 데이몬드 아스트라를 가주 대행으로 삼으며, 가주가 귀환하실 때까지 가주의 모든 권한을 위임한다셨다.”
“……!”
“……!”
길라르 부녀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어졌다.
“가주 대행의 명이다! 길라르 부녀를 지하 옥사 고문실로 옮겨라!”
에릴로트의 말이 떨어지자마자, 병사들이 방 안으로 쏟아져 들어왔다.
순식간에 제압당한 길라르 부녀는 시체처럼 파리한 안색으로 에릴로트를 쳐다봤다.
에레카가 비명 같은 고함을 내질렀다.
“난 아니야! 아니라고 했잖아!”
에릴로트는 천천히 에레카를 향해 걸어갔다.
에레카의 귓가에 바짝 다가간 아이가 목소리를 낮추고 중얼거렸다.
“쉽게 토설하지 않아 줘서 고마워.”
“……뭐?”
“나도 쉽게 끝내고 싶진 않았거든.”
“당신─”
“네 가짜 실의들에게 공격당할 때 생각했어. 이 소란이 끝나면…….”
에릴로트가 가볍게 고개를 돌려 에레카를 바라봤다.
새빨간 눈에 날카로운 안광이 서렸다.
“널 찢어 죽이겠다고.”
“……!”
에릴로트가 자세를 바로 했다.
그리곤 검지를 입술에 대며 순진한 표정으로 읊조렸다.
“게임을 해볼까? 고문만 하면 재미가 없잖아.”
그러곤 부녀를 돌아보며 생긋 미소 지었다.
“이번 일의 진상을 먼저 토설한 쪽은 살려주는 거야.”
“……!”
“……!”
“궁금한걸. 아버지에게 딸이 버려질까. 딸에게 아버지가 버려질까.”
“이, 이……!”
“안 돼, 안 돼. 아가씨! 아가씨, 제발……!”
에릴로트는 정말로 재밌다는 듯이 손뼉을 짝, 치며 맑게 웃었다.
“알겠지만, 아스트라의 고문은 상상을 초월하거든. 육체가 갈려 나가는 동안 머릿속에선 언제 버려질까 초조한 상상이 계속되는 거지. 너무 재밌겠다. 그치?”
“너! 이 나쁜 계집애! 가만두지 않겠어……!”
“왜? 한참 어린 아르망이 죽을 뻔했던 것보다 재밌는 일인데.”
“……!”
“내가 내 오라버니들이 피투성이가 되는 걸 지켜보고 있던 것보다 재밌는 일일 거야.”
“…….”
“데려가라.”
길라르 부녀가 병사들에게 질질 끌려 나갔다.
복도엔 그들 부녀의 처절한 비명이 메아리쳤다.
이전까진 여유롭던 밀란은 질린 얼굴로 힐끗, 에릴로트를 쳐다봤다.
“……너 정말 사촌들을 봐주고 있던 거구나.”
찧고 까불어도 대충 넘겨준 것이다.
‘저렇게 무서워질 수 있는 애가.’
등줄기가 오싹했다.
에릴로트와 마찰이 있었던 로레이나와 셀레네도 희게 질려서 마른침을 삼켰다.
쌍둥이와 리시먼드만이 빙그레 미소 짓고 있을 뿐이었다.
발자크가 히죽히죽 웃으며 말했다.
“완전 멋있어.”
……저 남매는 진짜 무서운 것들이었다.
* * *
본성의 대회의장이 소란스러웠다.
2세들은 씩씩거리며 말했다.
“신관에서 그런 소란이 있을 줄이야……. 대체 결계가 어떻게 뚫린 거야?”
“하필 <실의>가 습격했던 게 문제겠지요. 결계석의 마력을 모두 먹어 치웠기에 그런 것이 아니겠습니까.”
“데이몬드 형님이 일찍 도착하셔서 망정이지…….”
까딱 잘못했다간 자식이 모두 비명에 갈 뻔했다.
2세들이 한숨을 내쉬는 와중에, 발데릭은 못마땅한 표정으로 비어져 있는 상석을 쳐다봤다.
“한데 어째서 데이몬드 형님이 가주 대행이 된 것이야.”
“그건…….”
디오네라의 모친인 바실레가 어깨를 으쓱했다.
“애들을 구한 것이 데이몬드 오라버니이니.”
“아무리 그렇다고 한들 가주 대행이야!”
아르망의 부친인 구스타프가 큼, 헛기침했다.
“길라르 자작의 고신 때문이겠지요.”
“데이몬드 형님의 자식들이 네 아들을 구했다고 홀랑 그 편에 넘어가는 것이냐!”
“그런 것이 아니라…….”
“처음부터 내가 직속군을 움직일 수 있었다면 형님이 오실 때까지 기다릴 필요도 없었어. 아니, 왜 하필 데이몬드 형님이냐고. 그라미에 형님도 곧 오실 터인데.”
장남이 대행이라면 이해할 수 있지만, 데이몬드는 차남이었다.
‘이러다 정말로 가주 자리가 넘어가는 것 아냐?’
다들 불안한 얼굴로 쑥덕이는 와중에 유난히 조용한 2세가 있었다.
‘빌어먹을.’
에레카 길라르……!
멍청한 부녀 때문에 기껏 만들어낸 실의를 잃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