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Three Year Old Is a Villainess RAW novel - Chapter (141)
이 3세는 악역입니다 141화.(141/390)
141화.
모두의 시선이 집중되었다.
할아버지는 날 보고 흠칫하더니 소리쳤다.
“그러니까, 그…… 어, 그래! 가호에 영향이라도 가면 어찌하려고!”
그러곤 어흠, 커흠! 헛기침하더니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밀란의 일은 네가 어찌할 수 없는 일이다. 사죄할 필요가 없으니, 식사는 제때 하도록 해.”
“할아버지…….”
“그래, 알았으면 지금 식당으로─”
“저는 이 성에서 늘 책임에 관해 배워왔어요.”
“……뭐?”
“할아버지도 항상 말씀하셨잖아요? 말 한마디라도 할아버지의 손주인 저희의 입에서 나오는 말이라면 무게가 다르다고요.”
“그, 그건……!”
“저는 지금 제가 한 말에 책임을 지고 있어요.”
할아버지가 입을 떡 벌리려다가 흠칫, 다물었다.
평소에 본인이 한 말이 있으니, 지금 말문이 막힌 모양이었다.
언변이 좋은 드뷔시 자작조차 당황한 표정이었다.
‘계속 있다간 설득할 말을 떠올릴 수도 있으니까 자리를 피해야겠어.’
나는 침울한 표정을 지어내며 고개를 수그렸다.
“할아버지, 그럼 저는 이만 가볼게요.”
“…….”
“좋은 저녁 되세요.”
그러고 홀랑 자리를 떠났다.
* * *
그날 밤.
공작성 방에 있으니, 사람들이 끊임없이 찾아왔다.
“에, 에릴로트, 네가 좋아하는 무화과 파이야!”
디오네라가 안절부절못하며 무화과 파이를 가져왔고─
“너 좋아하는 연어 샌드위치. 나는 빵과 생선을 섞는 건 끔찍하다고 생각하지만…… 뭐, 네 취향이라니까.”
리앙틴이 연어 샌드위치를 들고 와서 큼, 헛기침했으며─
“아가씨~. 좋아하시는 머랭 쿠키예요~.”
“얼그레이 아이스크림이에요~.”
공작성의 상급 고용인이 된 힐다와 그레타가 날 살살 꼬셨다.
나는 디오네라와 리앙틴에게 그러했듯, 마지막으로 내 방 앞에 온 힐다와 그레타의 음식도 거절했다.
“안 먹을래.”
“아가씨!”
“그러다 정말로 쫄쫄이가 되실 거예요……!”
힐다와 그레타는 하급 고용인 시절에 만나서 내 너서리 메이드(귀족 아이를 돌보는 하녀) 역할도 했다.
그래서 유난히 날 귀여워하는 두 사람은 큰 충격을 받은 얼굴이었다.
하지만 단호히 고개를 저었다.
그리고 기운 없는 표정을 지었다.
“안 먹을래. 돌아가.”
“아가씨…….”
“아가씨~!”
힐다와 그레타는 시무룩해졌다.
두 사람에게 인사한 나는 방문을 닫고 소파에 앉았다.
방 밖에서 힐다와 그레타의 꽥꽥거리는 목소리가 들려왔다.
“냄새를 더 좋게 했어야지! 아가씨가 음식에 흥미를 갖도록!”
“주방에 버터를 잔뜩 넣으라고 전하지 않았어?!”
두 사람이 죄 없는 하인들을 구박하는 소리였다.
괜히 구박받는 하인에겐 미안하지만, 단식시위를 멈출 순 없다.
‘단식시위가 할아버지에게 먹히고 있는걸.’
이대로 가면 정말로 밀란과 카나리아 숙모님을 구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거기다 단식시위가 먹힌다는 게 널리 퍼지면 내 입지도 더 좋아질 테고.
‘할아버지에게 협박이 되는 존재가 되면 황도에서 생활하기도 편해질 테지.’
그러면 당연히 아빠의 행보에 도움이 될 거다.
‘하인들 미안.’
화끈한 보너스로 보상해야겠다.
그렇게 생각하며 소파에 쓰러지듯이 픽, 누웠다.
‘배고파……!’
음식 냄새를 잔뜩 맡았더니, 가뜩이나 쫄쫄 굶은 배가 요동을 친다.
나는 주린 배를 끌어안고 끙끙거렸다.
‘평소엔 두 끼 정도는 쉽게 굶는데…….’
바빠서 밥때를 못 챙기기도 하고, 밤을 새워 입맛이 없을 때도 있었다.
그런데 본격적으로 굶자고 생각하니, 빈 배가 훨씬 잘 느껴진다.
그때, 똑똑 노크 소리와 함께 문이 열렸다.
방에 들어온 사람은 알렉시스였다.
나는 픽 누운 상태로 음울하게 알렉시스를 쳐다봤다.
“배고파.”
“……그럴 줄 알았다.”
한숨을 내쉰 그는 갑주 안에서 무언가를 꺼냈다.
웬 손수건 뭉치였는데, 펼치자 손가락 두 마디만 한 쿠키들이 잔뜩 들어있었다.
“……!”
나는 얼른 일어나서 알렉시스를 쳐다봤다.
“먹으라고?”
“나 먹으려고 펼쳐놓진 않았겠지. 온종일 굶은 네 앞에서.”
나는 눈을 번쩍이며 얼른 쿠키를 집어 먹었다.
평소에 먹는 버터 듬뿍, 초콜릿 가득한 고급 쿠키는 아니었다.
그런데 쫄쫄 굶어서 그런가…… 너무 맛있어!
평소에 먹는 쿠키보다도 훨씬 맛있었다.
‘입에서 살살 녹네.’
나는 양손으로 쿠키를 들고 와구와구 정신없이 먹었다.
그러는 동안 알렉시스는 자리끼 용으로 협탁에 둔 물잔을 들고 왔다.
그러곤 허리에 찬 훈련용 물주머니를 푸르더니, 잔에 무언가를 따랐다.
난 눈을 동그랗게 뜨고 말했다.
“그거 우유…… 켁!”
“안 뺏어 먹으니까 천천히 좀 먹어.”
알렉시스는 인상을 찌푸리며 내 등을 두드렸다.
난 그가 건넨 우유 잔을 들고 꼴깍꼴깍 우유를 마셨다.
얼마나 급하게 마셨는지, 우유 잔을 입에서 떼었을 땐 “푸하!” 하는 귀족답지 않은 소리까지 난다.
“아, 살 것 같아…….”
나는 부른 배를 땅땅 두드리며 만족스러운 한숨을 내쉬었다.
정신 차리고 보니 그 많은 쿠키가 부스러기만 남아 있었다.
“쿠키는 어디서 났어?”
그러고 보니까 오늘은 훈련이 있는 날이었다.
알렉시스는 나의 군에 소속되어 있지만, 내 전담 호위로 공작성에 머무는 만큼 아스트라 공작군과 훈련을 함께한다.
‘나갔다 오지 못했을 텐데.’
“누가 줬어.”
“누가?”
“……누가.”
난 손수건을 빤히 쳐다봤다.
그리고 “아항.” 하며 음흉하게 웃었다.
공작성의 문양이 새겨져 있다.
하인들에게 지급되는 물건이란 소리다.
“하녀가 줬구나.”
하기야, 이렇게 잘생겼으니 접근하는 소녀들이 꽤 있을 것이다.
나는 손수건에 붙은 부스러기를 쓰레기통에 잘 털어 모서리에 새겨진 이름을 보았다.
[다이앤]이름 옆엔 귀여운 토끼가 바느질되어 있었다.
솜씨라든지, 토끼를 바느질해둔 것으로 보아 내 또래의 여자아이인 듯싶었다.
“으음, 미안하네. 너한테 준 선물인데.”
“안 먹고 버리는 것보단 낫잖아.”
“더 싫지!”
내가 미간을 좁히자, 알렉시스가 날 힐끗 쳐다봤다.
“열심히 준비한 걸 다른 여자한테 준 거잖아. 다음부턴 그러지 마.”
그러고 일어나서 협탁을 뒤졌다.
‘괜찮은 게 있었는데…… 옳지.’
나는 예쁜 무늬의 작은 상자를 꺼내서 소파로 돌아왔다.
그리고 상자를 열어서 안의 내용물을 보여줬다.
큐빅이 제비꽃 무늬로 배열된 핀이었다.
“상단에서 보내준 거야. 한 번도 사용한 적 없어. 선물용으로 어때?”
“나더러 그걸 차라고?”
“아니, 쿠키를 선물한 사람에게 주면 어때? 다른 여자가 준 걸 선물로 주는 건 좀 그러니까…… 좋아, 5카퍼에 팔게.”
“…….”
나는 연말에 자선기금으로 내기 위해 모으는 잔돈 저금통을 들며 말했다.
그러자 알렉시스의 얼굴이 굳어졌다.
평소와는 전혀 다른 표정이라 난 눈을 깜빡였다.
“왜?”
“이런 걸 다른 여자에게 선물하라고?”
나는 눈을 크게 뜨고 알렉시스를 쳐다봤다.
알렉시스도 굳은 얼굴로 나를 빤히 쳐다봤다.
방 안엔 똑딱똑딱 시계 초침이 움직이는 소리만이 들려왔다.
“…….”
“…….”
한참 말없이 서로를 쳐다봤다.
묘한 분위기였다.
방 안으로 들어온 한지혁이 우리를 보고 흠칫, 뒷걸음질 칠 만큼.
내가 아무런 말이 없자, 알렉시스는 머리핀이 든 상자를 들었다. 그러곤 5카퍼를 내려놓고 성큼성큼 방을 나섰다.
쿵!
문 닫히는 소리가 유난히 무겁게 들렸다.
난 저금통을 내려놓으며 한지혁을 힐끔 쳐다봤다.
“나, 뭐 잘못했어?”
그러자 한지혁이 문을 힐끔 돌아보며 중얼거렸다.
“일단 설명해봐.”
나는 미간을 좁히며 말했다.
“다른 여자애가 알렉시스에게 준 쿠키를 내가 먹었어.”
“오.”
“그 여자애에게 미안해져서 내가 가진 것 중에 하나를 팔았어. 선물용으로 쓰려면 팔겠다고.”
“오오.”
“그런데 화를 내잖아!”
“음, 네가 잘못했어.”
“……왜?”
“넌 사춘기 소년의 마음을 몰라.”
“왜 몰라. 알렉시스가 날 좋아하는 건 나도 알아!”
그러자 한지혁이 눈을 동그랗게 떴다.
“알아? 어떻게?”
“내가 한 번도 아니고 세 번째 사는 건데 남자가 날 좋아하는 걸 모를까 봐?”
“오…….”
“가끔 넌 내가 바본 줄 알더라.”
저런 눈으로 보는데 어떻게 몰라?
나를 위해서 목숨도 아까워하지 않는데 어떻게 모르겠어?
난 알고 있다.
내가 절벽 아래의 꽃을 원한다면, 알렉시스는 미련 없이 절벽 아래로 뛰어들 것을.
‘지극하고, 성실한 애정.’
“……내가 제일 껄끄러워하는 종류의 애정이야.”
“넌 사람과 거래만 하고 싶어 하니까.”
“…….”
“네가 주지 못하는 마음을 받으면 빚지는 것 같아서 그런 거 아냐?”
한지혁이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
‘가끔은 날 엄청나게 잘 안단 말이야.’
부모보다도 날 잘 안다.
나는 한숨을 내쉬며 소파에 깊게 등을 기댔다.
“알렉시스가 날 좋아하는 건 병아리의 각인 현상과 같은 거야.”
아무것도 없을 때, 가장 불행할 때 손을 내밀어준 사람에 대한 호감.
손을 내밀어준 나는 하필 여자애였고, 하필 비슷한 또래였다.
좋아하지 않을 수 없는 조건이다.
“그럼 안 돼? 어떤 종류의 애정이든, 애정인 건 사실인데.”
“난 알렉시스가 진짜 사랑을 하면 어떻게 되는지 알아. 첫 번째 삶에서 봤거든.”
달리아를 볼 때의 표정, 눈빛.
모든 것을 안다.
“둘은 운명처럼 서로에게 빠져들었고, 세기의 사랑처럼 불타올랐어.”
“그래서? 이번엔 아닐 수도 있을 텐데. 넌 수많은 것들을 바꿔왔어. 알렉시스가 이번에도 <빙.흑.손>때처럼 달리아에게 빠지지 않을 수도 있잖아.”
“빠질 가능성이 한 자락이라도 있다면, 발도 디디지 않을 거야.”
사랑에 상처받는 게 얼마나 지독한 아픔인지 난 아니까.
내가 한지혁을 똑바로 바라보며 말하자, 그는 어깨를 으쓱했다.
그러곤 내 맞은편 소파 테이블에 걸터앉아서 말했다.
“그래서 다른 사람을 만나라고 물꼬를 터준 거구만.”
“알렉시스는 아직 본인이 날 좋아하는지 몰라. 어렴풋이 내가 특별하다고 생각하니까 불쾌한 것뿐이야.”
“넌 눈치가 빠르지.”
“그래.”
“가끔은 그 눈치가 독이 될 때가 있다는 건 모르는 것 같지만.”
“……뭐?”
한지혁이 씩 웃으며 내 머리를 쓰다듬었다.
“남보다 두 번 더 살았다고 해서, 한 번 산 사람보다 많은 걸 알진 않아.”
“…….”
“특히 감정은 네가 제일 약한 분야고.”
“…….”
그가 짓궂게 웃으며 내 머리를 마구 헝클어뜨렸다.
“뭐야!”
내가 인상을 찌푸리자, 한지혁이 평소답지 않은 얼굴로 말했다.
“앞으로 알게 될 거야. 너무 아프지 않기를 기원한다.”
“…….”
“왜?”
“난 네가 멋진 척할 때마다 좀 재수 없어.”
“……망할.”
한지혁이 손끝으로 이마를 퉁겨서 나는 “윽!” 소리치며 그를 쏘아보았다.
* * *
다음날, 오후.
난 방에서 한지혁이 챙겨준 샌드위치를 먹고 나왔다.
양치를 하고, 향이 진한 바디오일을 발라서 냄새를 지우는 것도 잊지 않았다.
‘오늘쯤 할아버지에게서 반응이 올 것 같으니까…….’
반응이 올 때까지 자주 다니는 호숫가에서 기다려야지.
내가 호숫가를 좋아한다는 걸 아니까, 그쪽으로 연락책이 올 거다.
난 호숫가에 앉아서 책을 펼쳤다.
‘그러니까 시험 범위가…….’
펜을 돌리며 책을 읽고 있던 난 흠칫했다.
신성 마도 계산식이 범위 안에 있다.
신성계 마법은 내가 제일 약한 분야였다.
‘3을 줬는데 33이 돌아온다는 건 이상하단 말야!’
준 만큼 돌아오는 거지, 더 많이 돌아오는 게 자연의 섭리에 맞느냐고.
난 속으로 투덜대며 예시로 나온 계산식을 풀었다.
“그러니까…… 으음…….”
‘여기서 파우로스의 식(式)을 넣어볼까.’
책에 공식을 쓰고 있던 찰나였다.
“거긴 토도메의 식을 써야 합니다.”
빈센트의 목소리였다.
난 흠칫, 고개를 돌렸다.
“……여긴 또 무슨 일이세요?”
“자주 계시는 곳이라기에, 혹시 오면 만날 수 있나 싶어서요.”
난 한숨을 내쉬며 책을 덮었다.
“굳이 저와 만나려고 하시는 이유가 뭔지 모르겠어요.”
무례하게 구는 사람을 제일 싫어하잖아?
난 충분히 무례하게 굴었는데, 왜 자꾸 접근하는지 알 수가 없다.
‘목적이 있나?’
그렇다고 하기엔 시선이 너무 투명하다.
“어제 하셨던 말씀을 생각해봤습니다. ……짜증 난다는 말이요.”
나는 주변을 힐끗 쳐다봤다.
대교육실처럼 사람이 많은 건 아니지만, 꽤 사람이 있는 곳이다.
하녀들은 물론, 사촌 몇도 있었다.
“여기서 얘기를 나눌 수 있는 주제인가요?”
“여기서 나누면 안 될 이야기는 아닙니다.”
“빠르게 끝내세요.”
그렇게 빈센트를 쳐다보고 있는데, 하녀들이 삼삼오오 무리를 지어 지나가는 것이 보였다.
갈색의 단발 머리를 가진 어린 하녀의 머리에…….
‘어?’
내가 어제 알렉시스에게 주었던 머리핀과 비슷한 디자인인 것 같은데.
‘역시 줬나.’
흐뭇한 얼굴로 쳐다보던 때였다.
“제가 먼저 이야기를 나눠야겠습니다.”
멀리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