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Three Year Old Is a Villainess RAW novel - Chapter (144)
이 3세는 악역입니다 144화.(144/390)
144화.
늦은 밤이었지만, 신관 대교육실엔 사촌들이 모여 있었다.
세작 찾기 테스트가 중지되고, 다음 필기시험이 더 중요해져서 밤늦게까지 공부하고 있는 것이다.
만년필 튜브 끝을 까득까득 씹으며 문제를 풀던 리앙틴이 날 쳐다봤다.
그 옆엔 죽상을 하고 있는 디오네라가 있었다.
디오네라가 반가운 얼굴로 얼른 몸을 일으켰다.
“에릴로트! 방에 있는 거 아니었어?”
“에릴로트 핑계로 도망칠 생각하지 말고 딱 앉아, 디오네라.”
“으……. 난 정말 공부가 싫은데 실기에서 더 열심히 하면 안 될까?”
“실기 점수도 그저 그런 게 무슨. 에릴로트, 너도 한 마디 해줘.”
난 서로를 쳐다보며 종알거리는 리앙틴과 디오네라의 말을 딱 끊었다.
“미안. 바빠서.”
그렇게 말한 난 대교육실 곳곳을 살폈다.
고개를 숙이고 있는 사촌에겐 직접 가서 확인했다.
“저기─”
고개를 숙인 채 노트에 집중하던 로레이나가 인상을 확 찌푸렸다.
‘아니야.’
“뭐야?”
“다른 사촌들은 어디 있어요?”
“내가 그런 것까지 어떻게 알아?”
짜증 섞인 어조로 말하던 로레이나가 내 표정을 빤히 쳐다봤다.
숨지지 못한 초조함을 느꼈는지, 로레이나는 팔짱을 끼고서 말했다.
“조프리네는 신관에 있는 조프리의 방에. 아일라, 리오나, 카라는 온실에 있는 것 같았고, 셀레네는 도서관. 밀란이야 너도 알 테지.”
그 말에 디오네라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어떻게 다 알아?”
그러자 로레이나가 한숨을 푹 내쉬었다.
“멍청이…….”
중얼거리는 말에 리앙틴이 핀잔을 줬다.
“가호 때문에 평소에도 코가 예민하잖아. 지나가다 냄새를 맡았나 보지.”
“아아.”
어쨌든 로레이나 덕에 살았다.
난 로레이나에게 고개를 숙였다.
“고마워요.”
“……실의가 습격했을 때의 빚은 이거로 갚는 거야. 이제 우리 사이엔 아무것도 없다고. 알겠어?”
“네.”
로레이나는 쯧, 혀를 차더니 다시 펜을 들었다.
리앙틴과 디오네라가 물었다.
“그런데 다른 사촌들은 왜?”
“무슨 일 있어, 에릴로트?”
“다음에 얘기할게.”
그렇게 말한 난 얼른 대교육실을 나섰다.
등 뒤에서 리앙틴과 디오네라가 “에릴로트!” 하고 부르는 소리가 들렸지만, 난 뛰다시피 복도를 지났다.
그리고 로레이나가 말해준 ‘배신자가 있는 곳’으로 향했다.
도착하자, 문을 통해 사촌 둘이 나오고 있었다.
“안녕, 에릴로트.”
“안녕하세요.”
“여긴 무슨 일이야?”
“일이 좀 있어서……. 안에 남은 사람이 있나요?”
“응. 우리는 이제 방에 돌아가서 쉴 건데, 너도 같이 갈래?”
난 고개를 저었다.
“아녜요. 쉬세요.”
“응? 으응…….”
두 사람은 문을 확 열고 들어가는 날 묘한 눈으로 쳐다봤다.
그러나 난 황급히 문 안으로 들어갔다.
안엔 배신자로 예상되는 사촌이 자리에 앉아 있었다.
난 그 사람을 향해 천천히 다가갔다.
티테이블엔 책이 펼쳐져 있었다.
책에 집중한 듯 고개를 숙이고 있는 사촌에게 나는 말했다.
“집중이 안 되나요?”
“에릴로트?”
날 쳐다본 사촌은 곧 눈살을 찌푸렸다.
“집중하고 있었어. 네가 방해하기 전까진.”
“집중을 못하는 것 같은데요.”
“그걸 네가 어떻게 알아? 난 충분히 열심히 하고 있으니까 신경 쓰지 말고─”
“그게 아니라면 시험 범위도 아닌 부분을 보고 있을 리 없잖아요.”
사촌이 흠칫, 책을 쳐다봤다.
이번 시험에서 동국의 문화 부분은 보지 않는다.
그런데 이 사촌이 펼치고 있는 책은 동제국이라 불리는 라온트라의 역사서.
사촌은 잠깐 당황한 표정을 짓곤, 책을 덮었다.
이 사촌이 책을 펼치기만 하고, 전혀 집중하지 않았다는 증거였다.
‘다른 생각을 하느라.’
“무슨 생각을 하고 있었어요?”
“생각은 무슨. 헷갈린 거지.”
나는 사촌의 맞은편에 앉았다.
그리고 찻물이 가득한 찻잔을 매만졌다. 다 식어서 미지근하다.
“좋아하는 차는 입에도 대지 않았군요.”
“말했잖아. 집중하느라─”
“네. 집중해서 생각하고 계셨겠죠. ……밀란 오라버니를 어떻게 해칠지.”
“……!”
사촌이 흠칫, 나를 쳐다봤다.
날 빤히 쳐다보던 그 애의 입매가 서서히 비틀렸다.
“무슨 말을 하는 건지 난 모르겠는데.”
“처음부터 기묘한 위화감을 느끼고 있었어요.”
“……뭐?”
“에레카 길라르가 천지 분간을 못하고 날뛰는데, 다른 사촌들이 그 애를 처리하려고 나서지 않는 점이 아무래도 이상하더라고요.”
아스트라의 3세들은 난폭하기로 유명하다.
그만큼 자극했다면 누구 하나 정돈 에레카를 들이받았을 것이다.
“사촌들이 왜 그렇게 얌전했을까요?”
“3세 중에 세작을 찾던 중이었어. 괜히 움직였다간 수상하게 여겨질 테니 얌전하게 있던 것이겠지.”
“저도 처음엔 그렇게 생각했는데요. 알리바이…… 그러니까 내내 공작성에 있어서 세작이 아니란 것이 확정이 난 사촌들도 얌전했어요.”
“글쎄. 세작이 아닌 게 확정이 난 사촌들도 움직이지 않았다고 수상하다는 건 비약 아닐까? 다른 이유가 있었을 수도…….”
“맞아요. 다른 이유가 있었죠.”
난 찻잔을 내려놓으며 사촌을 빤히 쳐다봤다.
“에레카와 직계 3세가 싸워서 그 애의 힘을 증명했잖아요. 함부로 그 애와 싸웠다간 질 수도 있다고.”
“…….”
“방계들이 날뛰는 와중에 에레카와의 싸움에서 진다면 그 망신을 감당하기 힘들겠죠.”
“…….”
“그래서 일부러 에레카와 싸운 게 아닌가요? ……아일라 언니.”
내 앞에 앉아 있던 아일라가 굳은 얼굴로 날 쳐다봤다.
“처음부터 너무 쉽게 에레카에게 진 게 아닌가 싶었어요.”
“네가 끼어들지 않았다면 이겼을 수도 있잖아?”
“일부러 져주려고 했던 건 아니고요? 그 애가 다른 사촌들과 싸워서 행여나 실의를 불러올까 봐.”
“……!”
아일라가 마른침을 삼켰다.
그러곤 하……! 실소를 터뜨리곤 자리에서 일어났다.
“계속 헛소리만 하니 상대를 못하겠─!”
난 아일라의 손목을 확, 잡았다.
“너. 밀란을 죽이려고 하지?”
가호로 읽었던 본문에서 얻은 힌트는 셋이다.
1. 배신자를 ‘그녀’라고 서술했던 것.
2. 밀란과의 3인칭 시점 대화에서,
“□□□, 네가…… 왜…….” “나를 원망하지 마, 오라버니. 모든 건 바보 같은 에레카 길라르의 탓이니까.” “…….” “망신을 무릅쓰고 도와줬는데도 결국 멍청하게 실의를 꺼내놓다니. 한심해.” “…….” “그 탓에 내 손에 피를 묻혀야 하잖아. 정말이지 귀찮게.”
─밀란을 오라버니라고 불렀던 것.
3. 망신을 무릅쓰고 도왔다는 점.
그래서 나는 배신자를 아일라로 확정할 수 있었다.
아일라는 제 손목을 잡은 내 손을 빤히 쳐다봤다.
“에릴로트.”
“…….”
“눈치가 빠르다는 건 말야. 힘이 되기도 하지만, 독이 되는 경우도 있단다.”
아일라의 표정이 대번에 변했다.
“밀란 오라버니가 죽어야 하는 이유도, 네가 죽는 이유도 그것이니까.”
흠칫한 난 얼른 아일라의 손목을 놓았다.
그리고 황급히 그녀에게서 멀어졌을 때, 파지직! 소리와 함께 전뢰가 티테이블을 태웠다.
‘뭐야, 이 가호는!’
아일라의 가호는 <축지(땅을 접는 능력)> 하나다.
이번 생에서 7년이 넘도록 봐왔고, 첫 번째 삶에서도 지겹게 본 능력이기에 잘 알고 있었다.
아일라의 귀에서 굵은 귀걸이가 카랑, 소리를 내며 흔들렸다.
‘마도구?’
하지만 마도구의 힘이라기엔 마력의 파동이 너무나 강력하다.
……마치 이동의 가호석처럼.
“너, 가호를 추출했구나!”
“노아리젠 같은 바보가 혼자 힘으로 추출법을 알아낸 줄 알았어?”
쾅!
전뢰가 날아와 온실의 꽃이 파르륵 타오르기 시작했다.
난 황급히 문을 쳐다봤다.
누군가 소란을 듣고 문으로 달려오는 소리가 들린다.
“무슨 일 있으십니까?”
그때, 문의 걸쇠가 저절로 움직여 잠기며 가구들이 문 앞으로 날아가기 시작했다.
가호 <염력>이다.
나는 황급히 소리쳤다. 아니, 소리치려 했다.
그런데 마치 소리가 지워진 듯 내 입에선 그 어떤 말도 나오지 않았다.
가호 <무음>이다.
비죽, 입꼬리를 올린 아일라가 말했다.
“별일 없으니 돌아가렴.”
“괜찮으시겠습니까?”
“그래. 에릴로트도 괜찮대.”
문에서 사람이 멀어지는 소리가 들린다.
아일라가 나를 향해 성큼성큼 걸어오기 시작했다.
“도망칠 수 있을 것 같니?”
“끄으…… 흣…….”
아무리 말하려고 애써도, 잠투정 같은 미약한 소리만이 나올 뿐이었다.
“네 <마물 조련>말야. 살펴보니 목소리를 통해서 명을 전달하더라고.”
“으, 으흑……!”
“이제 잘난 몬스터들도 조종할 수 없게 되었으니 안되었구나.”
‘핀, 피피! ……옴브레!’
부르지 않으면 나오지 않도록 교육해놨다.
몬스터들이 내가 위험하다고 잘못 판단해서 사람을 다치게 하면 큰일이니까.
‘이런……!’
아일라가 나긋한 손길로 내 목을 매만지기 시작했다.
“있지, 에릴로트.”
“…….”
“왜 사람의 능력엔 차별이 있을까.”
“…….”
“더 간절한 사람이 더 좋은 능력을 타고 태어났다면 좋았을 텐데. 멍청한 언니와 오라버니가 아니라, 내가 더 좋은 능력을 타고났다면…… 그랬다면 아버지가 날 봐주셨을까?”
“으극, 끄윽……!”
“하녀나 건드리고 다니는 엘먼 오라버니에게 더 좋은 능력이 있고, 그래서 수많은 잘못을 하더라도 용서받는 건 너무해.”
아일라가 내 뺨을 쓰다듬으며 노래하듯 읊조렸다.
“미첼 언니는 장녀라서, 엘먼 오라버니는 남자라서 더 소중한 자식이 되었어. 그럼 난 뭐야?”
“…….”
“난 뭐냐고─!!”
아일라가 내 목을 쥐고 고함을 내질렀다.
새빨갛게 충혈된 아일라의 눈에 희게 질린 내가 비쳤다.
“그래서 ‘신’이 필요한 거야.”
“…….”
“그 분이 나의 신이 되어 불합리한 세계를 파괴해주실 거야.”
“…….”
“넌 그 분이 만들 세상에 끔찍한 방해물이고.”
아일라가 허공을 움켜쥐자 손목을 타고 파지짓, 전류가 흘렀다.
금세라도 나를 태울 듯이.
‘몬스터에 너무 의존했어.’
3세 정도라면 몬스터들로 처리할 수 있으리라 여겼다.
‘군사들을 데려왔어야 했는데……!’
증거도 없이 군사로 위협하면, 행여나 역풍을 맞을까 봐 홀로 온 것이 패착이었다.
나는 입술을 꽉 깨물었다.
‘아빠, 오라버니들…….’
아일라의 손이 점점 다가올수록 가족들의 얼굴이 선명하게 떠올랐다.
그리고.
얼굴도 보지 못한 어머니까지.
‘……엄마!!’
아일라의 손이 내 목에 닿았던 그 순간이었다.
눈앞이 번쩍하며, 기묘한 문양이 떠올랐다.
과거에 본 적이 있는 문양이다.
3살 때 저주가 풀린 영향으로 보았던 과거의 시간 속에서 마주한 적이 있던 문양.
아빠와 어머니가 만났던 그때, 어머니의 손등에 새겨져 있던 문양.
“꺄아악─!!!”
문양에 얼굴이 닿은 아일라가 비명을 내지르며 물러났다.
얼굴이 불에 탄 듯 일그러진 것이다.
나는 아일라에게서 황급히 떨어졌다.
그리고 목을 잡고, 내 주변을 감싼 문양을 쳐다봤다.
‘어머니의 문양이야…….’
날 낳은 그 날 하염없이 울던 어머니가 떠올랐다.
미안하다고.
내게 미안하다고 전해달라며 소리치던 목소리도.
그 순간, 문양이 어그러지며 한 줄의 빛이 되며 창밖으로 빠져나갔다.
아일라가 얼굴을 붙잡고 소리쳤다.
“너, 무슨 짓을 한 거야……!”
‘그건 나도 묻고 싶은 말이야.’
여전히 목소리는 나오지 않는다.
나는 주춤주춤, 뒷걸음질 쳤다.
아일라는 괴물처럼 일그러진 얼굴로 나에게 달려들었다.
그리고.
쾅─!
엄청난 파동과 함께 빛무리가 온실을 감쌌다.
그리고 나타난 건…….
“너, 괜찮냐?!”
“에릴로트!”
한지혁과 알렉시스였다.
한지혁의 손엔 내가 준 이동의 가호석이 들려 있었다.
가호석을 통해 이동해 온 모양이었다.
그러나 힘을 다했는지 파슥, 소리와 함께 가루가 되어 휘날리기 시작했다.
알렉시스가 달려드는 아일라를 검으로 막아냈다.
“크윽, 윽!”
“뭐야! 뭐라는 거야! 괜찮아? 말을 못하겠어!?”
한지혁이 이리저리 날 살폈다.
난 답답함에 그의 가슴을 쾅쾅 두드렸는데, 알렉시스가 한지혁에게 무언가를 던졌다.
웬 물약 병 같은 것이었다.
“저주 가호의 일종이라면 성수가 효과가 있을 거다. 뿌려!”
알렉시스가 아일라를 막는 동안 한지혁이 내게 성수를 뿌렸다.
그제야 신음만 겨우 나던 입에서 제대로 된 말이 나왔다.
“가호를 추출해서 쓸 수 있어! 아일라의 몸에서 장신구를 떼어내!”
“두고 볼 줄 알고!”
아일라가 나를 잡아 오려 자신의 가호인 <축지>를 사용했다.
땅이 막 접힌 찰나, 또 한 번 바닥이 꿀렁거렸다.
“가호라면 날 이길 수 없어.”
알렉시스의 가호인 <지배자의 위세>다.
아일라를 제 쪽으로 끌어당긴 것이다.
그리고 귀걸이를 잘라냈다.
귀걸이가 바닥에 떨어지자, 아일라의 온 몸에 무언가 돋아나기 시작했다.
마치 정말 괴물처럼.
징그러운 가시들과 반점이 온 몸을 덮자, 아일라는 “꺄아악!” 비명을 내질렀다.
그리고 황급히 온실을 막은 가구를 향해 뛰었는데, 닿자마자 가구들이 부서졌다.
그리고 문까지 분해하며 뛰쳐나갔다.
‘뭐야, 저건.’
“안돼! 잡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