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Three Year Old Is a Villainess RAW novel - Chapter (146)
이 3세는 악역입니다 146.(146/390)
146.
세일론이 나를 빤히 쳐다보다가 진중한 투로 말했다.
“말했잖느냐. 수호성은 신이 정한 인과율에 의해 통제된다. 인간에게 직접적으로 관여할 수 없지.”
“…….”
나는 미간을 좁혔다.
‘그러고 보면 꼭 신탁 같은 건 애매모호하지.’
직접적인 관여는 안 되기에 ‘서쪽에 빛이 있으라’ 같은 말을 내려주는 모양이었다.
힌트는 주지만, 확실하게 알려주는 건 직접적인 관여라서.
하지만…….
‘그럴 거였으면 고대인과 현재 인간 얘기는 왜 해줬어?’
투덜거리고 있으니, 세일론이 빙그레 웃었다.
“그래, 왜 할 수 있었을까?”
묘한 어투.
그러며 빙글빙글 웃고 있어서, 나는 세일론을 빤히 쳐다봤다.
“내게 알려줘도 타인에게 영향을 미치지 않아서……?”
“그렇다는 것은?”
“이미 몇몇은 알고 있는 거군요! 인간이 고대인으로부터 만들어졌다는 정보를 통제하고 있는 사람들이 있는 거예요!”
“영민하구나.”
세일론은 내게 끊임없이 힌트를 주고 있는 것이다.
그렇다면 ‘그 분’이 내가 태어나자마자 저주를 건 이유도 분명 힌트를 줬으리라.
세일론.
제사장.
수호성들에게 힘의 차이가 있다는 것.
나는 멍하니 중얼거렸다.
“……‘그 분’이라는 자가 세일론 님을 두려워했군요.”
나는 핫, 숨을 들이켜며 말했다.
“내 수호성을 알아볼 수 있기에, 세일론 님을 두려워해서 저주를 건 거예요!”
세일론은 내 정수리 위에 가볍게 손을 올렸다.
‘정답이구나.’
“아이야. 신이 정한 인과율을 저버린다면 수호성은 큰 벌을 받는단다.”
“네.”
“그래서 나 또한 꽤 오랜 시간 회복에 전념해야 했지.”
“……저를 회귀시켜준 게 세일론인가요?”
“정말이지 똑똑한 아이야.”
‘그래서 내가 회귀하고도 세일론을 만나기 어려웠던 거구나.’
회복해야 했기 때문에.
“여자의 모습을 하고 있었던 것도 그것 때문이었어요?”
“그건 아니야.”
‘설마 취미야?’
나는 묘한 표정으로 세일론을 쳐다보다가 이내 고개를 끄덕였다.
‘뭐, 취향은 각자 다른 법이지. 이해해.’
그러자 세일론의 얼굴이 험악해졌다.
“취미…… 넌 진짜…….”
“다 이해해요.”
“이게 정말……. 어쩌자고 신께선 내게 너라는 녀석을 붙여주셨단 말인가.”
쯧, 혀를 찬 그가 내 볼을 꼬집었다.
“악!”
소리치자, 그는 음산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이 공간에선 상대를 본인이 제일 안심할 수 있는 인물로 보지. 그러니까 날 여자로 본 건 네 의지란 말이다!”
“아하. 그럼 꿈에서 할머니가 나타나서 뭘 조심하라고 알려주는 것이 다…….”
“그래, 이 공간에서 수호성을 만난 것이지. 아마도 꽤 강력한 수호성을 가졌던 것일 터.”
나는 고개를 끄덕였다.
‘그나저나 내가 제일 안심할 수 있는 인물이라고?’
아빠도, 오라버니들도 아니고 처음 보는 여자인데?
‘왜 내가 제일 안심할 수 있는 인물이라는 거지? 설마……!’
“우리 엄마의 모습이었던 거예요?”
세일론이 내 앞에 무릎을 굽히고, 나와 시선을 맞추었다.
“아이야. 앞으로 난 또 한 번의 회복을 거쳐야 한다.”
“네?”
“앞으로 벌일 일로 인해 난 아마도 꽤 오랜 시간 회복해야겠지.”
“설마 또 한 번 인과율을 어길 셈이에요?”
사람들은 흔하게 수호성을 만나지 못한다.
그거로 봐선 수호성과의 만남조차 인과율을 어기는 것일 터다.
‘그런데 뭘 더 어기겠다는 거야?’
세일론은 빙그레 웃었다.
그러자마자 공간이 크게 어그러지기 시작했다.
세일론이 주변을 힐끗 돌아보곤 다시 내게로 고개를 돌렸다.
그의 눈이 새빨갛게 빛났다.
위세가 보통이 아닌 표정.
온몸의 털이 삐죽 설 만큼 두려운 표정에 난 흠칫, 몸을 굳혔다.
“당분간 너를 지켜줄 수 없으니, 너는 스스로를 잘 지키고 있어야 해.”
“세일론 님?”
그의 모습이 점점 투명해지더니, 이윽고 꽃잎이 되어 휘날렸다.
그가 사라진 뒤, 꽃나무가 만발한 공간에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너는 내게 처음이자 마지막 아이. 네 존재가 그 무엇보다 소중하다.]세일론의 목소리였다.
그의 말이 끝난 순간이었다.
파직!
내 안에서 무언가 부서지는 소리가 났다.
그러자 얼마 지나지 않아 내 몸을 두르고 있던 끔찍한 사슬이 모습을 드러냈다.
사슬의 곳곳이 끊겨 있었는데, 그걸 보자마자 느낄 수 있었다.
‘저주구나!’
내가 태어나자마자 받았던 저주가 형태로 나타난 것이다.
‘3살 때 저주가 완전히 사라졌던 게 아니었어.’
그래서 날 저주했던 ‘그 분’이라는 자와 엄마의 얼굴이 보이지 않았던 것이다!
‘세일론이 내 저주를 없애준 거야.’
이것으로 인과율을 어길 거란 걸 미리 알려준 것이고.
사슬은 얼마 지나지 않아 먼지가 되어 흩날리기 시작했다.
그러자마자 눈앞이 흐려지고, 몸이 부유하는 기분이 들었다.
그리고 다시 암전.
……나는 또 한 번 첫 번째 삶의 기억을 엿보게 되었다.
* * *
주변을 둘러보자 보인 건 아스트라의 태피스트리였다.
그리고 자양화 무늬의 커튼.
‘자양화 무늬 커튼은 내가 3살 때 바뀌었는데.’
그럼 역시 이건 첫 번째 삶의 기억인 모양이었다.
나는 조심스럽게 발을 내디뎠다.
역시나 사람들은 내가 보이지 않는 모양인지, 나를 통과해서 걸어 다녔다.
“서둘러라. 페르코 마을의 의사는 도착했느냐?”
“예, 명하신 대로 은밀히 모셔 왔습니다.”
하인을 따라 걷고 있는 건 아주 낡은 후드를 뒤집어쓴 남자였다.
남자는 방 안으로 들어와 천천히 후드를 벗었다.
그 순간, 문이 벌컥 열리고 할아버지와 드뷔시 자작이 들어왔다.
“왔구나, 필립보.”
“전쟁통도 아닌데 어쩐 일로 이 늙은이의 힘이 필요하셨습니까.”
할아버지는 낡은 후드의 노인을 필립보라고 불렀다.
필립보는 장난스러운 얼굴로 웃었다.
그러자 할아버지를 따라 들어왔던 드뷔시 자작이 한숨을 내쉬었다.
“아무 말 없이 도와주게. 전우 좋다는 게 뭔가.”
“수십 년도 더 된 인연이 ‘전우’라 이름 붙여지니 그럴듯해 보입니다?”
“하여간 겁 없는 건 여전하군. 안으로 들어가게. 환자가 있으니.”
“대관절 무슨 연유로 저까지 부르셨는지…….”
“공작님의 손녀가 태어났네. 그런데 어미의 가호가 이상을 일으켜서 주변의 독기가 엄청나. 도무지 다가갈 수 없는 상태일세.”
“…….”
“이대로 두면 어미도, 공작님의 손녀도 죽을 테지.”
“아아, 해서 황궁의 수석 치유사였던 제가 필요하신 게로군요.”
“부탁함세.”
드뷔시 자작이 가리킨 문밖엔 엄청난 신성계 결계가 쳐져 있었다.
유지가 힘든지 결계를 친 마법사들의 얼굴이 새파랗다.
필립보는 마법사들을 물리고 안으로 들어갔다.
‘앗, 나도 빨리 쫓아가야겠다!’
난 얼른 필립보를 쫓아 안으로 들어갔다.
“아이쿠, 생각보다 더 엄청난 독기로군.”
방 안에 검은 안개가 가득했다.
필립보는 쯧쯧, 혀를 차고 침대로 가까이 갔다.
그런데.
“오지 마!”
날카로운 목소리가 방을 크게 울렸다.
모포로 감싸인 아기를 끌어안고 있던 여자가 고함을 내지른 것이다.
필립보는
“자, 자.”
하며 가볍게 손을 들었다.
“진정하게. 아이를 해치려는 게 아니니.”
여자는 크르륵, 목을 울렸다.
‘수인화 한 건가?’
그러고 보니 모포를 안고 있는 팔에 털이 돋아나 있었다.
‘아니야. 수인화라기엔 뭔가…… 마력 파동이 기묘한데.’
마치 아일라 같았다.
‘본인의 의지와 상관없이 몬스터가 된 것 같아.’
거기다 독기는 또 얼마나 엄청난지, 아이의 모습과 여자의 얼굴은 전혀 보이지 않는다.
“꺼져. 내 아이는 줄 수 없어!”
“하면 그대로 죽일 셈인가?”
“……!”
“자네가 만든 독기이니, 자네는 버틸 수 있을지 모르지. 하지만 아이는 아닐세.”
“…….”
“그대로 두면 아이는 확실히 죽어.”
여자가 아무런 말 없이 모포를 꽉 끌어안았다.
“갓난아이는 예민하지. 타인의 감정에 쉽게 동화된다네.”
“…….”
“하지만 그 아이는 결코 울지 않는군. 어미를 위로하는 것이 아니겠나?”
“…….”
“그런 착한 아이를 허망하게 보낼 셈인가?”
여자는 모포를 내려다보며 떨리는 손으로 아기를 매만졌다.
그리곤 천천히 아이를 필립보에게 내밀었다.
“아이를…… 살려주십시오.”
“그래.”
필립보는 아이를 받아들고 가볍게 흔들었다.
“옳지, 옳지. 이 독기를 훌륭하게 견뎌냈구나. 그래, 머리칼과 눈이 젊었을 때의 공작님을 똑 닮았어.”
“…….”
“자…….”
필립보가 아이의 이마를 손끝으로 톡, 건드렸다.
이마에서 빛이 뿜어져 나오며 신비한 문양이 떠올랐다.
그러자마자 아이의 숨소리가 편안해졌다.
이전까지만 해도 씩, 씨익, 곧 끊어질 것처럼 숨을 내쉬었는데.
‘과연 황궁의 수석 치유사 출신이네.’
“그럼 이제 자네도─”
필립보가 여자를 바라보자, 여자는 고개를 저었다.
“나는 됐습니다.”
“하지만─”
“아이를 살펴주십시오.”
“…….”
필립보는 한숨을 내쉬고 등을 돌렸다.
그러자 방구석에 있던 남자가 다가와 나를 안아 들었다.
필립보는 남자에게 다정한 목소리로 물었다.
“모녀를 지키고 계셨습니까. 고생하셨겠군요.”
“조카를 위해서 이쯤이 어렵겠습니까.”
필립보가 빙그레 웃으며 말했다.
“일단 아이를 어미와 떨어뜨려 두는 게 우선입니다.”
“예.”
“저는 어미를 살필 테니, 공작님께 손녀를 안겨주시지요.”
“그리하겠습니다.”
아이를 안은 남자가 문고리를 잡았을 때였다.
“아이의 이름은─!”
여자가 급히 소리친 것이다.
여자는 숨을 헐떡이며 한 자, 한 자 힘을 주어 간절하게 말했다.
“어미가 줄 수 있는 것이 이름뿐이니, 부디 아이의 이름을 내가 선물하게 해주시오.”
여자가 한 손으로 눈을 덮은 채로 중얼거렸다.
“에릴로트.”
“…….”
“이 아이의 이름은 에릴로트라고 해주시오. 어미가 미안하다고, 너무나 미안하다고 전해주시오.”
‘나구나.’
나였어.
이건 내가 태어나던 날의 일이었다.
섧게 우는 여자를 뒤로 하고 남자는 걸었다.
그리고 아이의 어깨에 손을 올리자…….
손이 닿은 부분부터 쇠사슬 같은 문양이 펼쳐진다.
그리고 남자의 입매가 비틀렸다.
나는 남자가 스쳐 지나가서 문을 나갈 때까지 멍하니, 허공을 바라보고 있었다.
등 뒤에서 남자와 할아버지가 대화를 나누는 소리가 들린다.
“어미가 아이에게 이름을 지어주었습니다.”
“…….”
“에릴로트. 아이의 이름입니다.”
그러자 할아버지가 한숨을 깊게 내쉬며 말했다.
“잘했다. ……그리미에.”
─하고.
나는 헛웃음을 흘렸다.
아이가 나가자마자 쓰러진 여자.
그러니까 내 엄마를 보면서.
엄마에게 달려가는 필립보를 보면서.
눈을 감는 순간까지도 갓난쟁이던 내가 지나간 곳을 하염없이 바라보는 엄마를 보면서.
‘그리미에였다.’
내 모든 불행의 시작점.
저 끔찍한 거짓말쟁이가 내 삶을, 아버지를 기만한 것이다.
눈앞이 또 한 번 흐려지기 시작했다.
‘세일론은 내 적을 알려주고 싶었구나.’
또, 엄마가 나를 얼마나 사랑했는지도.
* * *
그리고 시간이 얼마나 지났을까.
의식이 돌아온 뒤로도 나는 눈을 뜨지 않았다.
세일론 때처럼 머리를 정리하고 있는 것은 아니었다.
머리가 차가울 정도로 또렷했으니까.
“……가씨?”
옆에서 목소리가 들려왔다.
천천히 눈을 뜨자, 데이몬드 관할령의 하녀들이 서로를 얼싸안고 소리쳤다.
“깨어나셨다!”
“깨어나셨어……!”
하이디와 베티가 엉엉 울며 나를 붙잡았다.
“괜찮으세요?”
“……나 얼마나 쓰러져 있었어?”
지난 번에 세일론을 만났을 땐 몇 달을 잠들어 있었다.
‘아마 인과율을 어긴 대가가 내게도 미친 것이었겠지.’
그러니까 아프지도 않은데 그렇게 오래 정신을 못 차린 게 분명하다.
하이디는 물수건으로 내 이마를 닦아주며 말했다.
“한 달이에요.”
‘그래도 반 년은 아니네.’
연 단위로 잠들어 있던 게 아님에 감사해야 할까.
수호성이 인과율을 어겼는데, 한 달만에 일어난 건 감사한 일이다.
나는 자리에서 천천히 일어났다.
온 몸이 삐걱삐걱 비명을 지르는 것 같았다.
‘으으윽.’
“바로 일어나시면 안 돼요!”
‘다른 곳은 괜찮긴 한데.’
아파서 쓰러진 게 아니라, 인과율 때문에 눈을 못 뜨고 있었던 것뿐이니까.
그래도 한달이나 안 움직였으니, 근육이 난리가 났을 거다.
‘하지만 확인해야 할 것들이 있어.’
그 자식이 지금까지 사람 좋은 얼굴로 얼마나 남을 속여왔는지.
나는 세일론 때문에 죽이려고 했다지만, 아버지까지 죽인 이유는 무엇인지.
‘아버지가 받은 저주는 나와 비슷한 종류의 파동이었어.’
그건 분명 그리미에의 짓이란 거다.
난 하이디와 베티에게 억지로 손을 뻗었다.
“부축해줄래?”
머리가 다 울리지만, 그렇다고 쓰러져 있을 순 없다.
“네? 주인님께서 돌아오실 때까지 계시지요. 곧 오실 텐데……!”
“성으로 가고 싶어.”
봐야하거든.
그리미에, 그 개자식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