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Three Year Old Is a Villainess RAW novel - Chapter (150)
이 3세는 악역입니다 150화.(150/390)
150화.
“아직 밀란에게 죄책감이라도 남았느냐.”
아스트라 공작의 말에 주변에 빼곡하던 사람들이 흠칫했다.
‘밀란?’
‘밀란에게 빚이 있나? 얼마나 큰 빚이기에?’
‘백수정 유통금으로도 갚지 못할 막대한 빚인가?’
‘그보다 그게 조부님께서 직접 에릴로트의 숙소를 찾는 것과 무슨 상관이지?’
아스트라 공작이 쾅! 문을 두드렸다.
“신경 쓸 것이 없다고 했을 텐데!”
점점 사람들의 얼굴에 긴장이 어리기 시작했다.
공작이 문을 두드리자마자 펄쩍 뛰었던 디오네라는 이제 사색이 되었다.
안절부절못하던 디오네라가 리앙틴을 쳐다봤다.
“어, 어쩌지?”
그러자 사람들 틈에서 구경하던 조프리가 히죽 웃었다.
“어쩌긴. 이제 큰일이 난 거지.”
“크, 큰일?”
“조부님께서 얼마나 분노하셨으면 하인을 통해 전달하지 않고 직접 오셨겠어?”
몇몇 다른 사촌들도 팔짱을 끼고 키득키득 웃었다.
“내가 보기엔 에릴로트, 그 멍청한 게 밀란과 얽힌 것 같아.”
“의식을 잃기 전에도 밀란과 관련해서 일이 있었잖아?”
“아아, 되도 않는 단식 시위 말이지?”
“그래.”
실뱅의 딸이자, 아스트라에서 탈주한 아일라의 언니인 미첼이 “푸훗!” 하고 웃음을 터뜨렸다.
“이제 와서 하는 말이지만, 난 그때 그 애가 돌아버린 줄 알았어.”
다른 아이들도 낄낄 웃으며 동의했다.
“용이 있다고 조부님께서 오냐오냐해주시니, 세상 무서운 줄 모르고 까불었잖아.”
“조부님은 신경도 안 쓰셨다고.”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진 디오네라가 소리쳤다.
“아, 아냐! 그때 조부님께서도 식사를 하라고 명하셨잖아. 너희도 다 봤으면서……!”
“그땐 황궁인들이 이 성에 있었을 때니까. 행여나 가호가 조절이 안 되어서 황궁인들이 다칠까 봐 그런 거겠지.”
미첼은 키득키득 웃으며 눈썹을 까딱 들어 올렸다.
“그렇게나 잘난 체하더라니.”
사촌들의 말을 들은 리앙틴은 불안한 표정으로 공작을 쳐다봤다.
‘에릴로트, 대체 무슨 짓을 한 거야.’
초조한 듯 손톱을 물어뜯던 리앙틴이 말했다.
“디오네라.”
“으응?”
“얼른 가서 데이몬드 백부님을 모셔 와. 네 어머니도.”
“넌?”
“난 에릴로트와 통신할게. 바깥 상황을 모르니까 방에서 안 나오는 걸지도 몰라.”
저러다가 진짜 일 나겠다.
리앙틴은 입술을 깨물었다.
‘제발 방에서 나와서 사과라도 해, 바보야!’
그러자 미첼이 말했다.
“그래봐야 조부님의 심기는 이미 다 상하신 것 같지만. 뭐, 노력은 해보렴~.”
그 말에 리앙틴이 인상을 찌푸렸다.
“정말 너무하네. 미첼 언니도 인조 실의 습격 때 에릴로트에게 도움을 받았으면서!”
“도움은 무슨.”
“뭐라고?”
“애초에 에릴로트가 없었으면 그 일은 안 일어났을 거야. 안 그러니, 얘들아?”
그러자 조프리를 비롯한 몇몇 사촌들이 동의했다.
“그래, 에릴로트가 에레카 길라르를 자극만 안 했어도 없었을 일이지.”
“그것 때문에 우리가 얼마나 고생을 했냐고.”
리앙틴과 디오네라는 사납게 인상을 찌푸렸다.
디오네라가 말했다.
“정말 너무해! 피해자는 에릴로트인데, 왜 피해자를 조롱하는 거야? 너희는 나보다 멍청해!”
“둬, 디오네라.”
“하지만……!”
“쟤들이 짐승보다 못하다는 건 이미 알고 있었잖아.”
그러자 미첼과 조프리가 울컥 인상을 찌푸렸다.
미첼이 물었다.
“방금 뭐라고 했지, 리앙틴?”
“이전엔 에릴로트가 조부님께 귀여움받아서 영향력이 높아지니 엎드려 있었고, 지금은 미움받은 것 같으니까 깔고 뭉개려는 것 아냐?”
“그럼 안 돼?”
“개도 은혜는 알아, 미첼 언니.”
“흥, 너야말로 불안한 것 아냐? 에릴로트의 줄을 잡았는데 그 애가 미움받으니까 불안한 거잖아.”
“언니나 조프리 같은 쓰레기와 비교하지 말아줘. 기분 나쁘니까.”
“뭐, 좋아. 네가 뭐라고 지껄이든 에릴로트는 이제 망하는 것밖에 안 남은 것 같으니까?”
미첼이 까르르 웃었다.
조프리와 다른 사촌들도 히죽히죽 웃고 있었다.
그런데 그때였다.
쾅! 쾅! 쾅!
아스트라 공작이 양손으로 문을 두드렸다.
그리고 소리치는 것이다.
“에릴로트! 할애비가 나빴다!”
‘……뭐?’
‘어?’
“제발 식사는 해다오!!”
제발.
제발.
제발~!
울부짖는 목소리가 복도를 따라 메아리쳤다.
미첼이 입을 떡 벌린 채로 생각했다.
‘이, 이게 뭐야─!!’
제대로 듣고 있는 게 맞는 건가?
저게 그 대단한 아스트라 공작의 입에서 나오는 소리가 맞느냔 말이다.
다른 사촌들도 얼이 빠져서 중얼거렸다.
“바, 방금 뭐라고 하셨지?”
“그러니까 조부님이…….”
“응, 조부님께서…….”
“할애비가 잘못했다고…… 그리고…….”
에릴로트, 제발 식사는 해다오!
─라고 했다.
리앙틴과 디오네라까지 당황한 표정으로 서로를 쳐다봤다.
“이게…….”
“……어?”
이제 보니 쾅쾅! 두드리는 것도 아니었다.
콩콩! 콩! 콩콩!
“밀란 일은 이유가 있어서…… 아니, 뭐든 할애비가 잘못했다. 그래그래.”
“…….”
“…….”
“하지만 식사를 안 하는 건 너무 비겁한 처사……! 아니, 잘못했다! 그래!”
“…….”
“…….”
3세들은 넋이 나간 표정으로 땀을 삐질삐질 흘리는 거대한 노인을 쳐다봤다.
‘이, 이게 진짜야?’
‘진짜냐고…….’
직계 2세, 직계 3세, 가신, 행정관, 고용인 할 것 없이 모두가 딱딱하게 굳어졌다.
모두가 한 마디도 못하고 멍하니 공작의 뒷모습을 쳐다보던 그때.
“할아버지, 여기서 뭐 하세요……?”
복도를 통해 걸어온 에릴로트가 아스트라 공작을 보고 고개를 갸웃 기울였다.
* * *
잠깐 나갔다 왔더니 내 방 앞에 사람이 빼곡했다.
모두가 내 방문 앞에 있던 할아버지를 쳐다보고 있었는데, 당사자인 할아버지는…….
‘응?’
무슨 일인지 잔뜩 굳어 있었다.
“할아버지?”
물으니, 할아버지가 방문을 사납게 노려보며 말했다.
“방 안에 있다고 들었는데.”
“아, 10분 전에는 있었는데요. 잠깐 나갔다가 왔어요.”
“…….”
“무슨 일 있으세요?”
그러자 할아버지가 울컥 소리쳤다.
“너는 회복한 지 얼마 안 된 놈이 어딜 그렇게 쏘다니는……!”
내가 할아버지의 소매를 살짝 잡자, 고함을 지르던 할아버지가 입을 꾹 다물었다.
“혹시 제가 할아버지를 언짢게 했나요?”
“……아니, 뭐, 그런 건 아니고.”
“하면……?”
할아버지는 어흠, 커흠! 헛기침하더니 말했다.
“너 말이야.”
“네.”
“아직도 밀란에게 미안한 게냐?”
“그렇긴 하지요. 저 때문에 고생을 했으니.”
“너 때문이 아니라고 했잖아. 그건 다 헤르난 때문에 일어난 일이다.”
“알긴 하지만요. 그래도 제가 설득해서 헤르난의 부정을 말해준 거잖아요? 그런데 깊은 지하 감옥에서 고생했으니 마음이 쓰이지요.”
“……지금은 나왔잖아.”
“네? 아, 네. 지금은 지하 옥사에서 나왔지요.”
“한데 왜 식사를 안 하겠다는 게야!”
내가?
‘너무 잘 먹고 다녀서 탈인데?’
이게 무슨 소리인가 고민하던 난 곧 “아아.” 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필립보의 방에서 할아버지에게 식사하자는 소리를 들었던 것 같다.
식사 제의를 거절했는데, 그걸 아직 단식 시위 중인 거로 생각했나 보다.
‘그래도 여기까지 직접 오시는 건 좀…… 좋은데?’
슬쩍 주위를 둘러본 난 대번에 생각을 바꿨다.
다들 할아버지가 여기까지 온 것에 당황했다.
심지어 내 단식 시위를 말리려고 직접 온 것이지.
그래서 나와 사이가 좋지 않은 사촌들은 거의 악몽을 꾸는 표정이었다.
‘이게 그리미에의 귀에 들어간다면……?’
할아버지의 관심을 한 몸에 받고 있는 나를 쉽게 건드리지 못할 것이다.
난 속으로 키득키득 웃었다.
그러나 겉으론 눈썹을 착 늘어뜨리며 할아버지의 팔을 양손으로 잡았다.
“혹시 제가 할아버지를 속상하게 한 걸까요?”
할아버지는 커흠! 헛기침하고 말했다.
“뭐, 꼭 그렇다는 것은 아니고……!”
“저는 그냥 할아버지를 귀찮게 하고 싶지 않아서 그랬어요.”
“네가 막 그렇게 날 귀찮게 하는 건 아니야……!”
“정말요? 그럼 매일매일 식사하자고 졸라도 돼요?”
“……매일?”
내가 팔을 끌어안고 헤헤 웃자, 할아버지가 “참나!” 하며 고개를 슬쩍 돌렸다.
그러나 슬쩍 떨리는 입꼬리를 완전히 숨기지 못했다.
“뭐, 그러든가.”
“정말요? 와아─!”
“참나, 어리광은.”
나는 매의 눈으로 흐뭇한 눈빛을 감지하고, 속으로 악랄하게 웃었다.
‘드디어 내 손에 들어온 거야.’
이 아스트라 장원의 주인.
서부를 손에 넣은, 서부 귀족들의 왕.
제국에서 가장 부유한 땅과 많은 사병을 가진, 아스트라의 절대자.
아스트라 공작이……!
아, 혼자 있었더라면 허공을 움켜쥐고 ‘나이스, 나이스’ 하고 춤을 췄을지도 모르겠다.
이날을 위하여 얼마나 노력했던가.
‘10년이야.’
이 삶만 10년.
아스트라 공작의 시선을 손에 넣어야 살아남을 수 있었기에, 난 단 하루도 쉽게 산 적이 없다.
노력하고, 또 노력했다.
자랑스러운 손녀가 되어야 해.
아스트라의 명예를 드높여야 해.
도움이 되어야 해.
열심히 해야 해.
더 열심히.
더, 더.
‘그리고 드디어 손에 넣었다.’
그런 생각을 하고 있던 때였다.
반대편에서 그리미에를 비롯한 몇몇 직계 2세들이 걸어오고 있었다.
허공에서 그리미에와 나의 시선이 부딪쳤다.
나는 할아버지의 팔을 끌어안은 채로 생긋 미소 지었다.
‘그리미에, 너는 크로노트의 힘을 손에 넣었겠지만…… 나는 아스트라의 절대자를 손에 넣었어.’
이제 나도 출발선에 섰다.
그러면 이제…….
‘넌 내 손에 죽었어.’
달리아가 오기까지 앞으로 9년.
그리미에의 음모가 본격적으로 시작하는 것도 딱 9년 남았다.
‘네가 뭘 하려는 건지 몰라도, 난 절대 쉽게 안 당해.’
그리미에와 내 시선이 날카롭게 맞붙었다.
* * *
할아버지의 서재.
식사를 마치고 나와 할아버지, 드뷔시 자작과 아빠가 서재에 모였다.
나는 할아버지의 옆에 바짝 붙어 앉았다.
할아버지는 나를 힐끔 쳐다보고 헛기침했다.
“녀석, 아프고 나더니 어리광만 늘어서…….”
얼핏 핀잔을 주는 듯하지만, 이젠 다 보인다.
‘자랑하시는 거구나.’
주변에 있던 드뷔시 자작이 어처구니없는 눈으로 쳐다보는 걸 보면 말이다.
그리고 아빠는…….
“에릴로트, 이리 와서 앉아라.”
“애를 귀찮게 하지 못해서 안달이구나, 데이몬드. 둬라.”
할아버지와 아빠가 서로를 매섭게 쳐다봤다.
나는 냉큼 대답했다.
“여기에 앉아 있을래요.”
“에릴로트……!”
“그래.”
아빠와 할아버지의 반응은 정반대였다.
아빠는 마치 버림받은 강아지마냥 슬픈 눈이 되었고, 할아버지는 오만한 표정을 지었다.
‘이때다.’
나는 아무렇지 않은 척 주스 잔을 집으며 말했다.
“황도에 올라가면 아빠랑 매일매일 같이 있을 거니까, 지금은 할아버지랑 있을래요.”
“황도……?”
할아버지가 움찔, 나를 쳐다봤다.
“네!”
“뭐, 너는 아직 혈족 교육도 있고 그렇게 급하게 황도에 올라가지 않아도 되지 않느냐.”
“하지만 저는 이제 상급 교육실에 있어서 혈족 교육에 딱히 신경 쓸 필요가 없잖아요?”
“그렇긴 하지만……!”
할아버지가 다급하게 말하자, 옆에서 “풉!” 하고 숨넘어가는 소리가 들려왔다.
드뷔시 자작이 금방이라도 터질 것 같은 얼굴로 어깨를 부들부들 떨고 있었다.
할아버지는 그런 드뷔시 자작을 노려보고서 내게 말했다.
“혈족 교육은 중요해. 한 달의 반은 장원으로 내려와서 지내도록 해라.”
“하지만 아빠가 너무 외로우실 것 같은걸요?”
“……뭐?”
“그리미에 백부님은 중앙탑에 계시고, 또 아는 사람도 많아서 외롭지 않으신 거예요.”
“그야…….”
“아빠는 중앙에서 딱히 일이 있는 것도 아니고, 아는 사람도 많이 없어요. 그러니까 제가 곁에 있어 줘야 해요.”
그 말에 아빠가 감격한 것 같은 얼굴로 날 쳐다봤다.
할아버지는 못마땅한 표정이 되었지만.
할아버지가 무어라 말하려 입을 열려고 했던 그때, 내가 얼른 말했다.
“또, 저는 황도에 지고 싶지 않아요.”
“무슨 소리냐?”
“황도의 대귀족 아이들이 저를 은근히 무시하거든요. 아빠가 중앙탑의 일원이 아니라서 그런가 봐요.”
“뭐야?!”
“뭐?!”
할아버지와 아빠가 동시에 벌떡 일어났다.
나는 여상한 얼굴로 쿠키를 오독오독 씹었다.
“하지만 이런 일은 있을 줄 알았어요. 저는 기죽지 않고, 황도에서 열심히 할 거예요. 전 아스트라 영애님이니까!”
할아버지와 아빠의 눈이 이글이글했다.
드뷔시 자작은 재밌게 되었다는 표정으로 쿡쿡 웃었다.
할아버지가 말했다.
“에릴로트.”
“네.”
“잠시 나가 있어라. 네 아비와 나눌 이야기가 있으니.”
“아……. 네!”
나는 쾌활하게 대답하고 문을 나섰다.
그리고 문이 닫히자마자 키득키득 웃었다.
‘손 안 대고 코 풀었네.’
중앙에 자리를 마련하려면 시간이 꽤 걸릴 줄 알았는데.
‘할아버지가 나서주면 하루만에도 가능하지.’
헤르난과 아일라의 배신 때문에 할아버지는 2세 단속 격으로 그리미에를 임명했다.
‘아빠는 성격이 너무 거칠어서 까딱 잘못하면 완전히 풍비박산이 날 테니까.’
즉, 그리미에가 황도를 비운다는 뜻이다.
‘이 시기를 잘 이용해서 황도를 내 손에 넣을 거야.’
장원엔 할아버지가 있으니, 그리미에도 함부로 나서지 못할 터.
그럼 그리미에의 힘을 모두 빼앗을 수 있다.
나는 어둠 속에서 차갑게 웃었다.
* * *
그 시각. 마사, 마리의 집.
“꺄악!”
마사가 벌떡 몸을 일으켰다.
침대에서 자던 마리는 눈을 동그랗게 떴다.
“뭐야?”
“…….”
마사가 떨리는 손으로 이마를 쥐었다.
“왜 그래?”
“언니……?”
“악몽이라도 꿨어?”
“어? 어…….”
마리가 책을 내려놓으며 픽, 웃었다.
“대체 무슨 꿈이길래 그렇게 난리야?”
“이상한 세계였는데, 어떤 성인 여자가 울고 있었어.”
너무나 무서운 얼굴로 울고 있었다.
공포스러울 정도로 절망에 빠져 있던 것이다.
마리가 물었다.
“뭐라고 하면서 울었는데?”
“그게 그러니까…… ‘용서 못 해, 유혜민’이라고 하면서…….”
“유혜민? 특이한 이름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