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Three Year Old Is a Villainess RAW novel - Chapter (159)
이 3세는 악역입니다 159화.(159/390)
159화.
* * *
나는 단상 위에서 아래를 내려다봤다.
서군의 병사들이 긴장한 얼굴로 뒷짐을 지고 있었다.
참모의 완장을 찬 사내는 땀을 삐질삐질 흘리는 중이다.
‘그야 상관이 머리를 박고 있으니까.’
병사들의 맨 앞에선 상장군과 풍기 문란이 머리를 박고 있다.
나는 병사들을 쭉 둘러보며 말했다.
“아랫놈은 병영에서 쪽쪽 거리질 않나.”
풍기 문란 기사의 등이 흠칫했다.
“윗놈들은 등청조차 안 하지 않나.”
상장군을 비롯한 관리직들이 움찔했다.
“대자로 퍼질러 자는 놈이 있는가 하면, 상관이 오거나 말거나 저질 농담을 하고.”
이번엔 대다수의 기사가 망했다는 표정이었다.
“상장군의 생각은 어때?”
“시정하겠습니다.”
“그래.”
내 말에 병사들이 얼빠진 표정을 지었다.
생각보다 쉽게 용서받았다고 생각하는 모양이었다.
몇몇은 ‘그럼 그렇지, 역시 어린애네.’ 하며 안심하는 듯도 했다.
그래서 난 생긋 웃어줬다.
“가~볍게 팔, 다리마다 3kg의 모래주머니를 달고 20km 정도 달려볼까.”
“……예?”
참모는 얼마나 당황했는지, 눈을 동그랗게 뜨고 되물었다.
‘뭘 놀라고 그래.’
아빠의 군은 동, 하계에 45kg 군장을 싸서 2박 3일을 달린다.
“뭐해? 5분 줄게.”
“……?”
“뛰어!”
“뛰, 뛰어!”
병사들은 혼이 쏙 빠져서 달리기 시작했다.
* * *
에릴로트 아스트라가 파란을 몰고 왔다.
병사들은 다들 죽을 것 같은 표정으로 다리만 겨우 움직이고 있었다.
“허억, 헉……!”
“헉, 헉, 허으윽…….”
대체 얼마나 달린 것일까.
다들 숨이 넘어갈 듯 헐떡였다.
그래도 가호가 없는 일반 병사들은 그나마 나은 편이었다.
기댈 가호가 없으니, 체력이 강했다.
즉, 가호가 있는 관리직 기사들은 완전히 죽을 맛이라는 거다.
물론 상장군과 참모, 각 부대의 장들도 죽어가는 건 비슷했다.
서군의 상장군은 이를 악물고 단상을 노려봤다.
‘저 미친 계집애……!’
원화는 본래 명예직이었다.
그러니까 군의 서포터나 마스코트 같은 존재라는 거다.
‘어린애가 일군을 통솔하는 게 말이 되냐고.’
아무리 원화군이 소년병의 훈련소 같은 곳이라고 해도 말이다.
정말로 원화군을 통솔하는 건 상장군들이었다.
‘그런데 날 이따위로 대우해?’
내 도움 없이 제까짓 게 뭘 할 수 있다고.
상장군의 표정이 험악해졌다.
그를 살피던 참모가 단상을 힐끗거리며 말했다.
“속내를 들키겠습니다, 경.”
“들키라지.”
“아스트라 공작이 가장 아끼는 손주라지 않습니까.”
“그러니 명에 따라주는 게 아니냐.”
처음엔 끈을 한 번 대보려고도 했다.
부러 헐레벌떡 달려가서 원화를 대우하는 척을 해주지 않았던가.
그런데 한 번 대우해주자, 머리 꼭대기 위에 올라가려 한다.
“제깟 게 나 없이 뭘 할 수 있다고.”
“하지만…….”
“봐라, 곧 내게 고개를 숙일 테니.”
“예?”
“종년 축제 과제가 구울 토벌이야. 군사들을 제대로 통솔하지 못하면 어림없는 과제지. 필시 내 도움이 필요할 것이다.”
“아아, 그렇겠군요.”
“어디 두고 봐라. 내일만 되어도 내게 알랑거릴 터이니.”
다른 관리직 기사들도 불쾌한 표정이었다.
행정 책임자는 보란 듯이 혀를 차고 있다.
‘공작의 후원에서 귀하게만 자란 계집애라 뭘 모르는 게지.’
거친 남자들의 세계엔 가문만으로 할 수 없는 일이 있다고.
서군의 상장군이 이를 으득, 갈고 있을 때였다.
단상을 힐끗거리던 참모가 말했다.
“경, 무슨 일이 있는가 봅니다.”
“뭐?”
상장군이 단상 쪽으로 고개를 돌렸다.
에릴로트가 서군의 행정 책임자에게 무어라 말하는 중이었다.
행정 책임자인 고르고의 표정이 심상치 않았다.
‘뭐야, 무슨 얘기를 하기에…….’
미간을 좁히던 중에 에릴로트가 소리쳤다.
“내 말이 어려워? 기사들의 신상 자료와 서군의 회계 장부를 가져오란 말이야!”
뭐?
에릴로트의 말을 들은 상장군이 우뚝 멈춰 섰다.
맨 앞에서 달리던 상장군이 멈춰서자, 그의 등 뒤로 병사 하나가 부딪쳤다.
“헉!”
병사는 사색이 되었으나, 상장군은 그런 것에 신경 쓸 때가 아니었다.
‘회, 회, 회계 장부?!’
참모와 몇몇 기사들마저 멈춰서기 시작했다.
서군은 몰랐다.
에릴로트의 파란은 아직 시작하지도 않았다는 것을…….
* * *
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대부분의 병사가 혼이 쏙 빠진 얼굴로 달리고 있었다.
‘얼마나 놀고먹었는지 알겠다.’
달리는 것도 제대로 못 하다니.
‘고작 30분째잖아?’
아빠나 엔조(데이몬드 군의 부사령관)가 이 꼴을 봤으면 거품을 물었을 것이다.
그리고 지금은 내가 거품을 물고 있지.
행정병이 가져온 자료를 보던 난 버럭 소리쳤다.
“신성계 가호를 가진 기사가 한 명?!”
행정병이 당황한 얼굴로 말했다.
“작년엔 일곱이었으나…….”
“다른 원화군에 다 뺏기고 지금은 하나 남았다는 거잖아.”
“……그렇습니다.”
내 가호는 서포터 계열이 아니었다.
가짜 가호인 <마물 조련>.
진짜 가호인 <열람>.
그 무엇도 신성계 가호처럼 군사들을 서포트할 수 없었다.
‘지난번 서군 원화도 서포터 계열이 아니었는데…….’
그런데 꼴랑 하나 남기고 홀랑 데려가?
그뿐만이 아니었다.
쓸만한 군사는 다 빼가고 남은 건 웬 양아치들뿐이다.
“이 상도덕도 없는 사람들…… 아니, 서군 할당금 잔액은 왜 이래?”
행정병이 삐질삐질 식은땀을 흘리며 말했다.
“연말이니 당연히…….”
“아무리 연말이라도 마이너스는 아니지. 그것도 이렇게 엄청난 빚이라니.”
“오, 올해 동계 훈련에 큰 비용이 투입되었습니다.”
지난 원화는 가을에 그만뒀다.
몸이 아파서 급히 직위를 내려놓은 것이다.
‘그러니까 겨울엔 원화가 없었다는 소리잖아.’
“원화가 없는데 무슨 큰 훈련을 해?”
“원화가 없으니 더욱 긴장의 끈을 놓지 않으려…….”
“긴장의 끈을 안 놔서 연병장에서 쪽쪽 거려?”
행정병은 어쩔 줄을 몰랐다.
그러자 그 앞으로 웬 사내가 나섰다.
“서군 행정을 책임지고 있는 고르고입니다. 제가 말씀 올려도 되겠습니까.”
“그래.”
“상장군을 비롯한 각 부대장들이 애썼으나, 원화의 빈자리는 노력만으로 메울 수 있는 자리가 아니기에—”
느물거리는 말투였다.
‘이것 봐라?’
고르고란 남자는 자료를 가져오라고 할 때도 이렇게 느물거렸다.
“원화의 방문을 예견하지 못했던 터라 준비가 미흡합니다.”
“괜찮으니까 있는 대로 가져와.”
“시간을 주시면 원화께서 쉽게 자료를 파악할 수 있도록 준비할 터이니…….”
“내가 직접 행정관으로 가서 자료를 확인해야겠어?”
“이것 참……. 예, 이리 원하시니 어쩔 수 없겠군요.”
그러더니 가져와서도 계속 실실거렸다.
가문에선 이런 일은 사무관들이 처리한다.
주인은 깔끔하게 정리된 서류를 보고 받지.
‘내가 장부를 볼 줄 모를 거라고 생각한 거야.’
열 살짜리가 뭘 알겠냐고 생각해서.
그러니까 저렇게 당당하지.
“응, 노력했겠지.”
“예, 그렇습니다.”
“회계 자료 싹 다 가져와.”
“……예?”
“군사들 속옷 영수증 한 장까지 놓치지 말고, 전부.”
이래 봬도 난 지난 삶에서 산전수전을 다 겪었다.
워낙 무시당해서 행정관들이 하는 일까지 했다 이거다.
‘행정 업무엔 이골이 났단다.’
고르고가 어색하게 웃었다.
“워낙 많은 자료인지라…….”
“상관없으니까 가져와.”
“시간을 주시면—”
“좋아, 내가 직접 가지.”
“우, 원화!”
나는 벌떡 일어났다.
‘죽었어.’
—생각하면서.
성큼성큼 걷기 시작하자, 고르고가 식은땀을 뻘뻘 흘리며 쫓아왔다.
“원화, 갑작스러운지라 준비가 전혀 되어있지 않습니다……!”
“내가 원화로 임명된 지 시간이 꽤 지났어. 아직까지 준비되지 않았다면 임무 소홀이지.”
내가 차갑게 쳐다보자, 이제야 고르고의 얼굴이 새파래졌다.
그는 어쩔 줄을 모르고 단상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상장군의 눈치를 살피는 모양이었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단상을 내려갔다.
그리고 행정관으로 직행했다.
* * *
난 해가 질 때까지 영수증을 하나하나 대조하며, 장부를 확인했다.
결과는 뻔했다.
‘횡령의 폭포네.’
난 장부와 영수증을 각각 들고 중얼거렸다.
“사람이─”
“예, 원화!”
“마, 말씀하십시오.”
내 앞에 쭉 늘어선 관리직 기사들과 행정관리자 고르고, 참모, 상장군이 흠칫해서 대답했다.
“사람이 양심이 없어도 너무 없네.”
“…….”
“…….”
“적어도 횡령을 할 거면 자료 정도는 만들어둬야 할 거 아냐. 응?”
“…….”
“…….”
“금액은 안 맞더라도, 정말 뭘 사기는 했어야지.”
내 말에 상장군이 마른침을 꿀꺽 삼켰다.
“오, 오해십니다, 원화. 워낙 방대한 자료다 보니 행정관에서 전부 보관하고 있지 않아서…….”
“않아서?”
“그게, 그러니까, 자료를 찾아올 터이니 시간을 주시면…….”
“서군은 다른 군과 시간이 다르게 돌아가나 봐.”
“예?”
“다른 군은 이미 정리되어 있는 게 서군은 시간이 더 필요하네.”
“그게…….”
“상장군도, 행정 관리자도 자꾸만 시간이 필요하다잖아.”
상장군이 입을 벙긋거렸다.
대답할 말이 생각나지 않는지, 그러고 한참 말을 못 했다.
그러자 행정 관리자라는 고르고가 나섰다.
“그건 아무래도 원화가 없다 보니…….”
“원화가 없다 보니, 횡령할 욕심이 마구 샘솟았구나!”
나는 손뼉을 짝! 치면서 해맑게 말했다.
상장군이 꽥 소리쳤다.
“그, 그럴 리가요! 어찌 그런 참담한 오해를 하십니까, 원화!”
“그럼 장비는 어디 있어?”
“……예?”
“여기 바꿨다고 쓰여 있잖아~. 300만 골드를 들여서 바꿨다면서.”
“그, 그게 아무래도 훈련 중에 망가지는 무기가 많다 보니까…….”
“거래한 대장장이를 데려와.”
나는 생글생글 웃으면서 말을 이었다.
“그따위 장비를 거래한 건 서군을 무시한 거지. 아주 죽여버리겠어.”
“워, 원화!”
“좋은 말 할 때 데려와.”
내가 순식간에 목소리를 바꾸자, 상장군이 움찔 물러났다.
하지만 입은 계속 나불거리고 있었다.
“군을 운영하다 보면 융통성 있게 처리해야 할 일들도 있고……!”
눈앞에 증거가 있는데도 저렇게 잡아떼는 이유는 알만했다.
‘안 그래도 개판인 군인데, 상장군 없이 네가 뭘 하겠어? 결국 혼 좀 내다가 말겠지.’ 하는 마음인 거다.
나는 눈썹을 까딱 들어 올렸다.
그리고 아주 상냥한 투로 말해줬다.
“정식으로 문제 삼기 전에 너희 다 퇴직해라.”
“예?!”
다들 엄청나게 당황한 얼굴이었다.
“워, 원화!”
“무슨 그런 말씀을……!”
느물거리던 고르고까지 어쩔 줄 모르고 말했다.
“어린 아가씨라서 뭘 모르시겠지요. 압니다. 하지만……!”
하지만 나는 빙글빙글 웃기만 했다.
그러자 상장군의 얼굴이 점차 굳어지기 시작했다.
“저는 서군에 7년이나 몸담고 있었습니다.”
“해서?”
“이곳에 있는 건 다 거친 남자들입니다. 저희 없이 어리디어린 원화께서 병사들을 어찌 관리하시렵니까.”
그러자 내 곁에 있던 한지혁의 표정도 일그러졌다.
‘저건 거의 협박이나 다름없으니까.’
그러니까 저 말은,
[화가 나는 건 이해 한다.관리 소홀이지.
하지만 네가 우리 없이 어쩌려고?
서군은 개판이 될걸?]
—딱 이 뜻인 것이다.
“관리가 소홀했던 부분은 인정합니다. 하지만 원화께서도 저희에게 준비할 시간이 없었다는 점을 헤아려주십시오.”
말만 그럴듯하지, 표정은 오만해졌다.
상장군뿐 아니라, 행정 관리자 고르고와 몇몇 부대장들까지 말이다.
‘내 잘못도 있으니까 그냥 넘어가면 사과는 해주겠다?’
저들은 다 나보다 나이가 훨씬 많은 남자들이었다.
상장군이나 몇몇 부대장들은 성인이었고.
‘내가 쫄 거라고 생각한 모양인데…….’
나는 입가를 부드럽게 휘었다.
“조용히 완장 내려놓고 꺼질래, 아니면 군사 재판 1차, 2차, 3차까지 두루 겪고 팔 한 짝씩 잘린 다음에 불명예 퇴직당해볼래.”
난 서군을 싹 뒤엎을 예정이다.
새로운 기사들을 데리고 오려면, 자리를 줘야 했다.
‘쓰레기들이 포진하고 있으면 자리가 없지.’
내 태도를 보고 그제야 관리직들이 사태가 심각하다는 걸 인지한 모양이었다.
“여, 영애!”
“영애? 경의 눈엔 내가 영애로 보이나 보지?”
“워…… 원화!”
상장군을 비롯한 기사들이 잔뜩 겁을 먹었다.
이까지 딱딱 부딪쳐가면서.
‘이제야 좀 말이 통하게 생긴 몰골들이네.’
나는 사뿐사뿐 방을 걸어서 의자에 앉았다.
“자, 너희한테 있는 방법은 이제 하나뿐이야. 잘 들어?”
“예, 옛!”
“예!”
길이 바짝 든 모습이었다.
나는 손가락을 하나 쭉 펴며 말했다.
“첫째, 삼킨 돈은 얌전히 토해낸다.”
“……예.”
기사들이 침울한 표정을 지었다.
나는 손가락을 하나 더 들며 말을 이었다.
“둘째, 너희의 개인적 친분, 가문, 정보를 모두 이용해서 쓸만한 기사들을 서군으로 데려온다.”
“예?! 그, 그건……!”
“데려온다.”
“……예.”
이번엔 울먹이기까지 했다.
난 마지막으로 세 번째 손가락을 폈다.
“셋째, 한 놈은 이번 횡령 사건을 책임진다. 너, 상장군. 네가 제일 높은 놈이니까 책임지고 꺼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