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Three Year Old Is a Villainess RAW novel - Chapter (164)
이 3세는 악역입니다 164화.(164/390)
164화.
* * *
그날 밤.
집에 돌아온 나는 내 방 테라스로 나섰다.
테라스에 있는 테이블에 자리를 잡고, 어깨엔 담요를 걸치고 구울 토벌을 준비했다.
‘새로운 황가 묘지로 낙점된 땅에 구울이 대략 30여 마리니까 선두를 차지하려면 적어도 7마리는…….’
묵묵히 서류를 보고 있는데, 한지혁이 살짝 다가왔다.
“왜 안에서 안 하고.”
“따뜻하면 졸리니까.”
“너무 안 자는 것 아냐? 그러다 키 안 자란다.”
“구울 토벌까지 닷새도 안 남았잖아. 끝나면 쉴 거야.”
나는 아무렇지 않게 대답하고, 다시 펜을 들었다.
한지혁이 내 눈치를 살폈다.
“차를 좀 가져다줄까?”
나는 찻물이 든 찻잔을 들어서 그에게 보여줬다.
“있는데.”
“간식거리는?”
“뭐야. 왜 그래?”
“기분이 안 좋아 보이니까. 저녁도 대충 먹었잖아.”
한지혁이 머리를 긁적이며 조심스럽게 말했다.
“이세즈인가 하는 그놈이 한 말 때문에 그런 것 아냐?”
“응?”
풍기문란, 아니, 이세즈 때문에 기분이 상해 보였나?
나는 고개를 갸웃하다가 말했다.
“이세즈로서는 그렇게 생각할 만도 하지. 기사서임을 받을 줄 알고 그 노력을 해서 황궁에 왔는데, 황궁에서도 돈 있는 놈들만 기사서임을 받는대.”
“속이 뒤집어지겠네.”
“응. 하지만 계속 참고 기다렸지. 근데 서임은커녕, 군 운영도 개판이라 늘 ‘쓰레기 같은 서군’이라는 소리만 들었을 테니까.”
“뭐…….”
“기대를 계속해 온 사람은 지치지. 나는 그 마음을 알아.”
“첫 번째 삶에서 네가 그랬으니까?”
“응.”
매번 죽을힘을 다해 노력했다.
언젠가 나도 인정받을 수 있겠지.
더 열심히 하면.
더 잘하면.
내가 달리아처럼 된다면…….
그렇게 하고, 또 하다 보면 깨닫는 것이다.
‘내 노력은 모두 의미가 없었구나’ 하고.
내가 기분이 안 좋았다면, 첫 번째 삶이 떠올라서 그랬을 것이다.
그때의 내가 떠올라서.
‘결국 지금의 노력도 의미가 없을까 봐.’
나는 한숨을 내쉬며 이마를 문질렀다.
‘잡념이 들어.’
그렇게 생각하고 있을 때, 한지혁이 말했다.
“걱정하고 있어.”
그러며 가볍게 턱짓해서 문을 가리켰다.
그제야 방문 밖에서 계속 인기척이 들리고 있었다는 게 느껴졌다.
나는 방 안으로 들어가 살짝 문을 열었다.
“……아빠?”
아빠가 문 앞에서 서성이고 있었다.
손엔 답지 않게 귀여운 쟁반을 들고 있었다.
쟁반 안에도 토끼 모양으로 자른 빵으로 만든 샌드위치, 딸기가 듬뿍 든 음료, 아기자기한 쿠키 등…… 귀여운 음식이 가득했다.
“식사를 잘 못하기에.”
“…….”
“귀찮게 하려는 것은 아니고…….”
“귀찮게 해도 괜찮은데.”
우물쭈물하던 아빠가 대답했다.
“다른 딸은 아비의 참견을 싫어한다기에.”
“저는 좋아해요. 들어오실래요?”
내가 문을 열어주자, 아빠가 들어왔다.
한지혁은 씩 웃었다.
“실례하겠습니다.”
그렇게 말하곤 재빨리 방을 나섰다.
나는 아빠의 옷깃을 잡고, 테라스로 데려갔다.
아빠는 내 맞은편에 앉아서, 음식을 먹는 날 가만히 지켜보았다.
나는 샌드위치를 오물오물 씹다가 아빠를 쳐다봤다.
“있잖아요, 아빠.”
“그래.”
“아빠는 어떻게 ‘아빠의 사람’을 만드셨어요?”
“사람이라…….”
나 혼자서 아무리 잘해도 한계가 있다.
결국, 곁에 사람이 있어야 한다.
그것도 평범한 사람이 아닌 인재가 필요했다.
‘내게도 있긴 해.’
콘라드, 미켈란, 한지혁, 이그리츠 군 등등이.
하지만 이들은 모두 ‘과거의 정보’로 얻어온 사람들이다.
‘내가 아는 정보는 19세까지가 전부야.’
거기다 마지막엔 거의 장원에 갇혀 있다시피 했다.
즉, 정확히 따지면 앞으로 남은 정보는 6, 7년 정도까지 밖에 쓰지 못한다는 것이다.
‘서군을 만나고 확실해졌어.’
장원 외부엔 완벽한 내 사람이 없다.
그리고 난 정보가 아닌, 나 자신의 힘으론 사람을 만들어본 적이 없었다.
‘하지만 아빠는 다르지.’
대륙에서 손꼽히는 명장인 엔조가 있다.
그리고 아빠가 모은 강력한 정예병들이 있었다.
아빠는 잠깐 고민하다가 말했다.
“그들에게 원하는 것을 주었지.”
“그런 것 말고요. 저는 정말 신뢰할 수 있는 관계를 만들고 싶어요. 믿고 내 등을 맡길 수 있는 사람 말이에요.”
내가 뚱한 표정으로 말하자, 아빠는 빙그레 미소 지었다.
“너는 상대를 믿고 등을 지켜줄 사람이니?”
“……아.”
“내가 보기엔 아닌 듯한데.”
아빠는 팔짱을 낀 채로 나를 빤히 쳐다보았다.
“상대가 배신하면 넌 뒤도 돌아보지 않고 그를 버리겠지.”
“…….”
“상대가 능력이 없어도 너는 상대를 버릴 것이다.”
“…….”
“에릴로트, 사람은 네 생각보다 훨씬 영리하단다. 이 사람이 정말로 날 신뢰하고 있는지 본능적으로 느낄 수 있어.”
“그건…….”
“너는 버릴 준비를 하면서, 상대에겐 널 전적으로 신뢰하고, 등을 지켜달라고 하는 건 치사하지.”
나는 떨리는 눈으로 아빠를 빤히 쳐다봤다.
“내가 보기에 너는 상대가 믿음과 의리를 증명하지 않으면 마음을 내주지 않는 아이인데.”
“……맞아요.”
“네가 얻고자 하는 사람이 있다면, 네가 믿음과 의리를 증명해야지.”
난 멍하니 아빠를 바라봤다.
‘나 아직까지 첫 번째 삶에 사로잡혀 있었구나.’
첫 번째 삶에서처럼 배신당할까 봐 겁을 냈다.
사람을 신뢰하지 못하고, 재고 또 쟀다.
저 사람은 날 배신하지 않을 사람인가.
등 뒤를 맡길 만큼 충분히 능력이 있는가.
‘난 바보야.’
콘라드나 미켈란, 한지혁은 첫 번째 삶에서의 나를 안다.
그래서 내 안의 불신까지 짐작하고 있는 것이다.
‘그러니까 내가 그들을 완벽하게 신뢰하지 않아도, 기다려준 거야.’
더 큰 신뢰를 주는 것으로 부족한 주인을 불안하게 하지 않으면서.
아빠는 나는 다정하게 바라보며 말했다.
“상대를 얻고 싶다면, 상대가 원하는 것을 주어라.”
“…….”
“상대가 원하는 것이 신뢰라면 신뢰를, 인정이라면 인정을, 안심하고 살 수 있는 땅이라면 그런 땅을.”
“…….”
“어떤 관계든 상호 작용이 필요하거든.”
시야 안의 아빠가 일렁거렸다.
‘왜 고민을 아빠에게 말하지 않았을까.’
왜 혼자서 끌어안고 동동거렸을까.
아빠는 내 이야기를 들어주고, 내 불안에 답을 내려줄 사람이었는데.
‘마냥 지켜야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했어.’
아빠를 믿지 못한 것이다.
나는 입술을 꽉 깨물고 말했다.
“아빠, 저요.”
“그래.”
“사실은 무서웠어요. 지금의 노력이 아무런 의미도 없을까 봐.”
“그래…….”
“노력해도 병사들이 따라주지 않을까 봐서, 노력해도 아빠가 가주가 되지 못할까 봐서. ……그래서 죽을까 봐요.”
아빠가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훌쩍훌쩍 울면서 말했다.
“구울 토벌에서 돌아오면 아빠에게 하고 싶은 말이 있어요.”
“…….”
“못 믿으실 수도 있는데요. 말도 안 되고, 악몽 같은 그런 이야기인데요…….”
“믿어.”
나는 흠칫, 아빠를 쳐다봤다.
“네가 무슨 말을 하든 너를 믿어.”
“…….”
“이제까지 너는 내게 믿을 수 있는 아이였으니까.”
“…….”
“네가 해온 모든 일이 내게 신뢰를 주었다, 에릴로트.”
자리에서 일어난 아빠가 나를 안아주었다.
나는 펑펑 울면서 아빠의 품에 안겼다.
‘나는 틀리지 않았어.’
이제껏 해온 모든 일이 의미가 없던 게 아냐.
결국, 나는 첫 번째 삶에서 그토록 바랐던 ‘나를 전적으로 신뢰하는 사람’을 손에 넣었다.
앞으로도 그럴 것이다.
내 노력이, 내가 한 일들이 나의 검이 되어 내 앞을 막은 덤불을 베어낼 것이다.
“기다려주세요.”
“기다리마.”
그날 밤.
나는 첫 번째 삶에서부터 이어진 감정의 사슬을 완전히 끊어냈다.
* * *
이튿날.
나는 위풍당당하게 서군의 연무장에 도착했다.
훈련 시작 전이라 서군은 아직 늘어져 있었다.
난 아름드리나무 그늘에 누워있는 이세즈에게 다가갔다.
“안녕, 이세즈.”
“……또 뭡니까.”
“증명하러 왔어. 내 진심을!”
“예?”
난 이세즈의 손목을 덥석 잡았다.
“무슨…….”
이세즈는 당황한 얼굴로 내게 끌려왔다.
내가 걷는 동안 그는 “잠깐, 아니, 잠깐 기다리라니까!” 하며 쫓아왔다.
소란을 들은 부대장들도 우리 쪽으로 달려왔다.
“무슨 일이십니까, 원화!”
“너희도 따라와.”
“예?”
나는 병사들을 이끌고 횃불의 궁 안으로 들어갔다.
목적지는 황군을 총책임지는 대장군의 집무실이었다.
문을 두드리려 했을 때였다.
대장군과 그 휘하의 황제 직속 기사들이 나오고 있었다.
“서군 원화?”
대장군 탄틸론이 나를 쳐다봤다.
어리둥절하게 날 보던 그는 이내 하하, 웃었다.
“잘 되었군. 그렇지 않아도 중앙 원화가 서군에 항의를 했소. 내용을 확인해야겠으니─”
“대장군!”
복도 끝에서 실린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벌써 중앙군이 서군에 자금을 돌려준 걸 들켰나.’
뭐, 상관없다.
자금 담당은 중앙 상장군 조윅.
그가 도장을 찍어줬으니 책임도 그의 몫이다.
‘서군은 문제없는 돈을 받은 것 뿐인걸.’
실린의 뒤엔 다른 원화들과 상장군들도 있었다.
혼자선 말이 안 먹힐 것 같으니 다른 사람들을 끌고 온 모양이다.
그러거나 말거나, 나는 대장군에게 말했다.
“서군의 부정을 고발합니다.”
“……뭐요?”
“……!!”
“……!”
시끄럽던 주변이 단숨에 조용해졌다.
몇몇 원화와 상장군들은 입을 떡 벌렸다.
무슨 생각을 하는지 훤하다.
‘구울 토벌을 앞두고 부정을 고발하는 게 멍청한 짓이란 거겠지.’
고발된 수만큼 군사가 빠질 텐데, 가뜩이나 실력이 부족한 서군은 더욱 위기일 것이다.
이세즈가 굳은 얼굴로 날 쳐다봤다.
“대체 무슨 짓을…….”
제정신이냔 얼굴이었다.
서군의 부대장들도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날 쳐다봤다.
대장군마저 엄청나게 당황한 얼굴이었다.
“그건 과제가 끝난 후 논의해도 될 일일 텐데.”
“아뇨, 고발하겠습니다.”
“폐하께서 이번 과제에 큰 관심을 두고 계시오. 서군 원화 자신을 위해서라도 잘 생각해야 할 거요.”
“서군은 돈을 받고 서임하였습니다. 그 결과, 진짜 실력 있는 기사들은 몇 년이 지나도 서임을 받지 못했습니다.”
서군의 부대장들이 비명 같은 고함을 내질렀다.
“원화─!!”
이세즈는 떨리는 눈으로 날 쳐다봤다.
“서군의 부정을 바로 잡아, 진짜 기사들이 나라를 위해 실력을 발휘할 기회를 주십시오.”
동군 원화인 세바스티아가 내 팔을 잡았다.
“에릴로트, 너 이게 무슨 뜻인지 알고 있어?”
그녀가 주변을 둘러보며 속삭였다.
“이 일에 관여하지 않은 기사들도 조사를 핑계로 엮일 수 있어. 네 군의 절반밖에 안 되는 수로 과제에 나갈 수도 있다고.”
“상관없어요.”
세바스티아는 내 눈을 빤히 쳐다봤다.
결기 어린 눈을 확인한 그녀는 한숨을 푹 내쉬며 물러났다.
나는 이세즈의 팔목을 끌어당기며 말했다.
“말해.”
“……무슨 말을요.”
“난 억울하다고 말할 기회를 줬어.”
“그건…….”
“네 실력이 이 군에서 제일이라고, 너 같은 남자야말로 황군 기사가 되는 것이 옳다고 말해.”
“들어준다고 믿겠습니까.”
이세즈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주변을 지키던 경비병들이 그를 바라보았다.
저들도 이세즈와 같은 일반병이다.
돈이 없어서 출세하지 못하고, 실력이 있어도 기회가 없는 자들.
모두 떨리는 눈으로 이세즈와 나를 보고 있었다.
나는 이세즈에게 소리쳤다.
“내가 들어!”
“……예?”
“내가 들어주고, 내가 믿을 거야. 넌 이제 믿어주는 사람이 뒤에 있어, 이세즈.”
서군의 부대장들이 시체처럼 파리한 얼굴로 이세즈를 쳐다봤다.
“이, 이세즈. 정말 서군을 위한 일이 뭔지 잘 생각해야 할 것이다.”
“그, 그래……!”
이세즈는 그들을 한 번 쳐다보고, 내게 시선을 돌렸다.
흔들리지 않는 내 눈을 본 이세즈가 천천히 대장군을 바라봤다.
“올해, 작년, 재작년, 그 전, 또 그 전…… 모두 제가 서임받을 차례였으나 지켜지지 않았습니다.”
“이세즈!!”
1부대 부대장이 찢어지는 목소리로 소리쳤다.
이세즈 또한 목소리를 높였다.
“저는 황궁 배 무투회의 우승자 출신으로 이 궁에 들어와 수년간 죽을힘을 다했습니다! 저야말로! ……저야말로.”
“…….”
“기사가 되어야 마땅합니다.”
무릎을 굽힌 이세즈가 간절한 표정으로 대장군을 쳐다봤다.
“실력을 증명할 기회를 주십시오! 제가 저 어린 원화의 믿음에 걸맞은 사내임을 증명케 해주십시오, 장군!”
서군의 1부대 부대장이 고함을 내질렀다.
“방자하다! 장군, 제 말을 들어주십시오. 저는 저 녀석의 저 오만한 성품이 기사에 어울리지 않노라 판단했고, 그래서 서임 명단에 올리지 않은─”
“그만하십시오, 대장.”
“예, 부탁입니다. 이제 그만 좀 하십시오!”
서군의 몇몇 부대장들이었다.
그들이 주먹을 말아쥐고 울컥, 소리쳤다.
중앙군에게 무시당하던 그때, 함께 있던 기사들이었다.
“이세즈의 말이 맞습니다. 서임은 부정하게 진행되었습니다.”
“실력 있는 자들을 남군과 북군에 빼돌린 적이 있습니다.”
“가문이 한미하거나, 돈이 없는 자들은 훈련할 기회조차 주지 않았습니다.”
1부대장의 얼굴이 점점 더 새파래졌다.
그는 완전히 시체 같은 얼굴로 입만 벙긋거리고 있었다.
이세즈, 그리고 그와 함께 고발한 부대장들이 대장군에게 몸을 낮추고 말했다.
“저 어린 원화의 진심에 보답하지 못했습니다.”
“지금이라도 원화의 진심에 보답할 수 있는 군을 만들 수 있도록, 부정한 자들을 일벌백계해주십시오!”
……아빠.
나는 눈을 꽉 감은 채 주먹을 쥐었다.
‘아빠의 말이 맞았어요.’
먼저 진심을 보여주니 보답해주는 사람이 있었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