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Three Year Old Is a Villainess RAW novel - Chapter (167)
이 3세는 악역입니다 167화.(167/390)
167화.
휙, 뒤를 돌아보았다.
별다른 인기척은 느껴지지 않는다.
‘마력도 느껴지지 않고.’
나는 고개를 갸웃하며 다시 걸었다.
창밖에서 흘러든 달빛이 질 좋은 대리석 바닥에 스며들었다.
홀 곳곳에 띄워둔 마도구 덕분에 겨울임에도 그리 춥지 않았다.
그런데 이상했다.
어둠이 짙은 곳으로 향하면 향할수록 묘한 바람이 느껴진다.
나는 복도에 우뚝 멈춰 섰다.
슥, 시선을 돌리자 거대한 창문이 활짝 열려 있었다.
창의 양쪽에 달린 커튼이 움직이지 않는다.
커튼이 움직이지…… 않는다.
탓─!
나는 재빨리 점프하여 있던 곳에서 물러났다.
그러기 무섭게.
쉭, 쉭, 쉭!
바람이 매섭게 불어닥쳤다.
바람이 스친 뺨엔 베인 듯 날카로운 생채기가 생겼다. 생채기로 피가 배어 나왔을 때였다.
“모, 몬스터 없이는 아무것도 못하는 반편이라고 들었는데. 의, 의뢰비를 더 노, 높여야겠는걸.”
소름 끼치도록 탁한 목소리가 어둠 속에 울려 퍼졌다.
그리고 바람이 형체가 되듯 고이더니, 그곳에서 웬 사내가 나타났다.
남자는 잿빛 후드 로브를 입고 있었는데, 척추가 산처럼 굽어있었다.
그가 꼬챙이처럼 기다랗고 빼빼 마른 손가락으로 슥, 후드를 벗었다.
소름 끼치는 몰골이었다.
눈 한쪽은 완전히 일그러져 있고, 다른 쪽 눈은 흰자위가 온통 새빨갰다.
그것보다 더 중요한 건…….
‘기세가 보통이 아니야.’
신성계 가호가 아닌 내게도 사악한 기운이 맹렬하게 느껴진다.
‘무서운 실력자인 거야.’
바람계의 가호는 흔한 편이다.
유명한 궁병들은 대부분 바람을 읽는 가호를 가지고 있으니까.
바람을 직접 이용하는 가호를 가진 사람도 있었다.
나의 이그리츠 군의 켄달도 <바람>의 가호를 가지고 있다.
‘하지만 바람에 육체를 스며들게 할 정도의 가호라면 적어도 2단계, 아니, 3단계 정도는 되어야 해.’
아빠 정도의 실력자라는 뜻이었다.
나는 잔뜩 긴장한 얼굴로 팔찌를 그러잡았다.
남자가 “아, 아아.” 하며 양손을 들었다.
“소, 소용없어. ‘우리’에겐 마, 마도구의 파장을 망가뜨릴 수 있는 자, 자가 있으니까.”
그런 실력자까지 있단 말이야?
“……너희는 누구지?”
“우, 우리는 <장막>. 이, 이 세계의 구원─ 크읏!”
별안간 남자가 머리를 쥐고 고통스러워하기 시작했다.
“말이 많구나, 기르타브.”
나는 흠칫, 고개를 들었다.
분명 위에서 목소리가 들렸는데, 그 어디에도 사람은 없었다.
‘굽은 등의 남자보다 더 엄청난 기운이야.’
살갗이 따끔따끔할 정도로 맹렬한 기운.
내가 굳어있던 찰나, 굽은 등의 남자는 새파란 얼굴로 용서를 빌었다.
“소, 송구합니다, 송구합니다, 송구합니다, 소, 송구……!”
“속히 임무를 수행해라.”
“예, 옛!”
남자가 거듭 고개를 숙인 후에야 목소리가 완전히 사라졌다.
그러자 남자의 눈이 매섭게 빛났다.
“네, 네 년 때문에 쿠말 님께서 화, 화가 나셨다.”
“너 바보야? 그게 왜 내 탓이야? 네가 쓸데없는 말을 해서 너희 보스가 화난 거지.”
남자가 이를 악물었다.
“바, 바보가 아냐. 쿠, 쿠말 님께서 내게 이름을 주셨다. 바, 바보가 아냐. 내 이름은……
내 이름은 기르타브다─!!
”
쨍─!!!
그가 소리치자마자, 복도의 창문을 깨고 바람이 거세게 밀려들었다.
‘으으으윽……!’
너무나도 강력한 파동에 숨이 쉬어지지 않는다.
‘사람들이 안 와.’
이 소란을 아무도 못 들었을 리 없다.
그런데도 아무도 오지 않는 건 외부와 완전히 단절되었다는 뜻이었다.
“으윽…… 오, 옴브레…….”
쥐어짜듯 말하자, 내 그림자 속에서 옴브레가 쉭! 소리를 내며 튀어나왔다.
옴브레가 나를 감싼 뒤에야 숨을 쉴 수 있었다.
온몸이 칼에 베인 듯 엉망으로 생채기가 생겼다.
“옴브레, 이대로 빠져나갈 수 있겠어?”
옴브레가 재빨리 움직였으나, 곧 텅! 소리와 함께 멈추어 섰다.
남자가 만든 바람의 벽에 가로막힌 모양이었다.
나를 감싸고 있는 옴브레가 진물처럼 뚝뚝, 무너지기 시작했다.
‘잔뜩 겁먹어서 실체화했어.’
그림자 마물의 특성이었다.
옴브레가 실체화한 건 딱 한 번.
놀다가 흥분해서 나를 상처입히자 아빠가 내 상처를 보고 분노했던 적이 있다.
그때 말고는 실체화한 적이 없었다.
‘저 남자가 아빠의 분노에 비견될 정도로 강력한 상대라는 거야.’
이렇게 되면 옴브레를 믿을 수도 없었다.
나는 이를 악물었다.
‘어쩌지. 어떻게 해야 하지.’
마도구는 사용 불가.
외부에 도움을 청할 수도 없다면…….
“미안!”
버럭 소리쳤다.
그러자 남자가 움찔했다.
“바보 아냐. 내가 실수했어. 사과할게.”
“사, 사과…… 사과를 받았어.”
“응, 미안해. 기르타브, 이름이 예쁘네?”
“쿠, 쿠말 님께서 내게 맡겨주신 이름이니까.”
“좋은 이름을 주신 걸 보면 널 신뢰하시는 모양이야. 그렇지?”
“신뢰…….”
남자의 얼굴이 몽롱해지기 시작했다.
그가 헤, 헤헤, 헤, 웃으며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쿠, 쿠말 님께서 나를 시, 신뢰…….”
“네가 너희 조직에서 큰일을 한 모양이지?”
“마, 맞아. 난 늘 여, 열심히…….”
“더 큰 일을 할 수 있어.”
나는 은근한 목소리로 그에게 말했다.
“더, 더 큰 일…….”
“나와 거래해. 나를 살려주면 의뢰비의 두 배를 줄게.”
바람이 완전히 멎어서, 나는 조심스럽게 발을 내디뎠다.
남자는 움찔했지만, 나를 피하지 않았다.
‘사과를 처음 받아본 모양이야.’
몬스터와 인간의 혼혈인가.
아니지, 어딘가의 실험체라는 게 더 그럴듯하다.
가호를 쓸 수 있는 건 귀족이라는 뜻이니까.
‘귀족의 실험체일 수도 있겠어.’
바보라는 말에 민감한 걸 보면, 그렇게 놀림당할 정도로 비천한 신세였다는 거니까.
‘그러니까 정중하게 하자.’
정중하게…….
나는 치맛자락을 넓게 펼치며 가볍게 무릎을 굽혔다.
“귀공과 거래를 하고 싶습니다.”
“…….”
역시!
생각이 맞았다.
정중하게 굴자 남자의 노기가 놀랍도록 사그라들었다.
“아스트라의 23대손, 위대한 크로노스 아스트라의 손녀, 데이몬드 아스트라의 적녀, 에릴로트 아스트라의 이름을 이 거래에 걸고…….”
“아스…… 트라.”
응?
남자가 멍하니 나를 쳐다봤다.
“아, 아스트라.”
“……?”
“아스트라, 아스트라, 아스트라, 아스트라, 아스트라, 아스트라, 아스트라, 아스트라. ……우라노스 아스트라─!!”
으악!
다시 파동이 거칠어졌다.
‘우라노스 아스트라라면 선대 공작이잖아.’
그러니까 내 증조부로, 할아버지에게 밀려난 선대 공작 말이다.
‘맙소사. 설마 저 남자, 아스트라의 실험체였…….’
그때였다.
쾅! 소리와 함께 무언가 등 뒤로 날아갔다.
“옴브레!”
남자의 파동에 밀려난 옴브레가 벽에 처박힌 것이다.
완전히 실체화한 탓에 녹색 피가 줄줄 흐르고 있었다.
나는 옴브레를 끌어안고 남자를 쳐다봤다.
처음보다도 훨씬 흥분했다.
완전히 이지를 잃은 몬스터처럼.
“옴브레, 정신 차려!”
이 애를 이대로 두고 갈 순 없었다.
아니, 옴브레 없이는 저 남자에게서 도망칠 방법이 없기도 했다.
‘빌어먹을 선대. 망할 늙은이!’
당최 도움이 되는 게 없다.
하필이면 저 남자를 실험체로 만들어서…….
‘어떡하지. 라곤을 부를까.’
고대 몬스터인 라곤이라면 아무리 단절되었더라도 내 ‘소리’를 알아차릴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여긴 외궁.
즉, 황궁에 속한 공간이란 뜻이다.
곧 황비도 올 텐데 외궁이 박살 나면…….
‘난 황궁에 갇혀서 평생 밖으로 나갈 수 없을 거야.’
황제가 날 소유할 명분을 만들어주는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그런 건 사는 게 아니야. 하지만 이대로 죽을 수도 없는…….’
그 순간.
쩌저적─!!
무언가 부서지는 소리와 함께 누군가 도약하여 남자를 가로막았다.
바람에 휘날리는 남색의 장발.
달빛에 빛나는 윤곽.
안심이 되는 부드러운 향기.
“물러서라, 괴한.”
“…….”
“괜찮으십니까, 아기님.”
듣기 좋은 목소리가 귓전에 울려 퍼졌다.
“잔느!”
내가 유모로 점찍어놨던 그녀.
잔느 마시프였다.
“어, 어떻게 왔어?”
“아기님의 유모인걸요. 파티엔 유모가 함께해야 하지 않겠어요?”
그녀가 생긋, 다정히 웃었다.
‘살았다……!’
잔느는 한미한 가문, 심지어 여성의 몸으로 황제 직속 기사단 돌격대장이 된 실력자였다.
또, 가호를 3단계로 끌어올린 천재 기사였다.
‘그러니까 그 엄청난 가문의 상관을 두드려 패고도 감옥에 가는 거로 끝난 거지.’
게다가 잔느의 가호는 <가호 파괴>.
가호를 없애는 특별한 능력을 가졌다.
‘가호가 없으면 저 남자를 상대하기 어렵지 않아.’
그런데 무기는 안 가져왔네…….
아무리 잔느라도 무기 없이 상대할 수 있을까?
걱정하고 있는데, 잔느가 진지한 얼굴로 남자를 쳐다봤다.
“나의 아기님께 상처를 입힌 자가 저 자입니까.”
“……어? 응! 맞아! 저놈이야!”
잔느는 바닥에 널브러졌던 촛대를 들었다.
“제게서 떨어지지 마십시오.”
“응!”
나는 냉큼 잔느의 뒤로 척 달라붙었다.
“아, 아스트라의 개들 따, 따위가…….”
남자의 말에 잔느는 답했다.
“주둥이 조심하는 게 좋을 거야. 찢어지는 것으로 끝나지 않을 테니.”
과연 상관을 두들겨 팬 성질머리다!
‘멋져, 잔느.’
난 이제껏 내가 지켜줘야 하는 연약한 남자들만 곁에 두었다.
그런데 나를 지켜주는 이런 멋진 유모라니.
머릿속에서 콘라드와 한지혁, 미켈란이 쭈굴쭈굴해져서 잔느에게 고개를 숙이는 모습이 떠올랐다.
‘잘했다, 나!’
미리 유모를 구해두길 정말 잘했어.
“와라, 쓰레기.”
잔느의 말에 남자가 흥분했다.
“나, 난 쓰레기가 아냐─!!”
다시 한번 바람이 매섭게 불었다.
그러나 잔느가 촛대를 휘두르자 봄바람처럼 살랑거리며 사라졌다.
남자가 엄청나게 당황했다.
“벼, 별께서 주신 힘이…… 내 힘이.”
가호 파괴는 처음 당해보나 보지?
하기야 특수계 가호를 가진 사람은 흔하지 않은 데다가, 가호 파괴는 더더욱 특별하다.
땅을 강하게 박찬 잔느가 몸을 낮춘 채로 남자에게 파고들었다.
그리고 순식간에 촛대 끝으로 쇄골께를 베어냈다.
‘잘한다, 잘한다!’
내가 신난 건 물론.
이제야 겨우 정신을 차린 옴브레도 몸을 들썩이며 기뻐했다.
잔느의 공격은 남자의 바람보다도 매서웠다.
여분의 움직임 없이, 정확하고 빠르게 치고 빠진다.
남자는 정신을 못 차리고 있었다.
거기다 우리의 주변을 감싼 무형의 결계도 조금씩 부서지고 있는 것이 눈에 보인다.
그리고 마침내.
쩌저저적─!
완전히 결계가 깨졌다.
그 순간, 남자가 쿵! 주저앉았다.
“방금 무슨 소리냐!”
“예?”
“당장 확인해!”
멀리서 경비병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주저앉았던 남자가 씩씩거렸다.
“지, 지지 않는다, 나는 지지 않는…….”
남자의 동공까지 점차 붉게 변하고 있었다.
후드의 등 부분이 상어처럼 솟아오르며 찢어지던 찰나.
“결계가 사라졌는데 금제를 깨면 어쩌자는 거야?”
“멍청하긴.”
두 명이 어딘가에서 나타났다.
얼굴은 보이지 않았지만, 실루엣으로 보아 14세 무렵의 청소년으로 보였다.
소년들은 남자와 같은 후드 로브를 입고 있었다.
오른쪽에 있던 소년이 남자의 뒷덜미를 잡아서 일으켰다.
“마, 마시타브바(쌍둥이자리)…….”
소년이 고개를 숙이느라 후드 밖으로 머리카락이 흘러내렸다.
녹아내릴 듯 찬란한 은발이었다.
고개를 들며 눈도 살짝 엿보였는데, 무섭도록 아름답고…… 온몸이 시릴 듯 투명한 하늘색이다.
그때, 군화 소리가 가까워졌다.
“거기, 누구냐!”
경비병의 목소리였다.
소년은 나를 힐끗 쳐다보았다.
그리고 살짝 윙크했다.
“또 보게 될 거야.”
“……절대로 싫은데?”
소년들이 하하, 낮게 웃었다.
“재밌네.”
“응, 재밌어. 그리고 난 재밌고 귀여운 미인을 좋아하고.”
병사가 후다닥 뛰어왔다.
“아니, 서군 원화!”
그러자마자 소년들과 남자가 쉭, 소리와 함께 사라졌다.
잔느가 내게 물었다.
“괜찮으십니까?”
“으응…… 그런데…….”
“예, 만만치 않은 자들이로군요.”
소년들은 말했다.
“금제를 깨면 어쩌자는 거야?”
─라고.
그러니까 남자는 금제한 상태로 그런 엄청난 힘을 낸 것이다.
‘저들의 수가 더 많다면…….’
끔찍하다.
한 사람만으로도 군대에 비견될 정도로 강했다.
‘그때 잔느는 상대도 되지 않을 거야.’
만약 다른 이들도 아스트라의 실험체라면…….
“그리미에.”
그 자의 군사라는 거니까.
‘더 강한 군사들이 필요하다.’
이그리츠 군을 저들 수준으로 끌어올려야 해.
“아기님?”
“어?”
“가실까요.”
“으응.”
나는 남자와 소년들이 사라진 곳을 바라보다가 잔느를 따라 걸었다.
* * *
파티장에 돌아온 에릴로트를 본 사람들이 크게 술렁였다.
‘상처? 상처가 났어?’
홀로 되돌아가기 전에 치유사에게 상처를 치료 받았지만 가호에 당한 상처인 만큼 완전히 낫게 할 순 없었다.
귀족들이 수군거리던 틈에 다른 시선이 있었다.
실린이 이를 악물었다.
‘뭐야, 혼자 있을 때 처리한다고 했잖아.’
그 멍청이들!
그 때, 실린의 근처에 있던 북군 원화가 눈을 동그랗게 떴다.
“자, 잔느 마시프?”
그러자 귀족들이 더 크게 들썩였다.
“마시프? 마시프 경이라고? 잠깐, 저건 유모의 증표잖아.”
“설마 에릴로트 아스트라의 유모가 된 거야?”
“옥사에 있다지 않았어? 황궁 기사 출신이 어떻게 유모가…….”
“멍청한. 잔느 마시프는 황궁 군사적에서 완전히 이름이 지워졌잖아. 제명된 것이니 다른 가문에서 일할 수도 있지.”
맙소사.
사람들이 입을 떡 벌린 채로 에릴로트를 바라봤다.
‘잔느 마시프를 유모로 뒀다고?’
대체 저 아이의 능력은 어디까지란 말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