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his Three Year Old Is a Villainess RAW novel - Chapter (168)
이 3세는 악역입니다 168화.(168/390)
168화.
실린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잔느 마시프?’
잔느의 얼굴을 확인한 실린이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잔느 마시프가 누구던가.
한때 모든 소녀가 동경했던 기사였다.
주변에 있던 소녀들이 그때를 떠올렸는지 “하아아…….” 탄성을 흘렸다.
“마시프 경께서 유모라니……. 상상해본 적이 없는데, 꽤 잘 어울리시는걸.”
“그렇죠?! 생각해보면, 마시프 경이 유모라는 직함에 딱 어울리는 사람이긴 해요.”
“노약자에게 상냥하고, 적에게 단호하고, 정의로운 성품……. 정말 유모에 어울리는 성품이네요.”
“머리는 좀 좋아? 그 원화 중앙군의 참모 출신이셨잖니.”
“거기다 뛰어난 무예 실력까지. 호위를 붙일 필요도 없겠어요.”
소녀들이 꺅꺅거리며 호들갑을 떨었다.
“어떻게 마시프 경을 유모로 삼을 생각을 했을까……. 에릴로트 아스트라 양은 정말로 영리하긴 해요.”
한 소녀가 말하자, 주변에서 동의하는 말이 튀어나왔다.
“그러고 보면 늘 인선이 훌륭했죠?”
“용병으로 떠돌던 그 칼리 무소를 휘하에 두기도 했잖아요.”
주변에서 에릴로트를 칭송하는 말이 나오자, 실린은 치맛자락을 꽉 움켜쥐었다.
실린이 주변을 둘러봤다.
눈치를 줘서 저 대신 말하게 할 사람이 없었다.
‘이럴 땐 남군 원화가 써먹기 좋았는데.’
수족처럼 부리던 남군 원화와 틀어진 것도 다 에릴로트의 탓이었다.
실린은 억지로 미소 지으며 말했다.
“하지만 전 좀 걱정이 되네요.”
“걱정이요?”
“마시프 경이 아스트라의 격에 맞는 분이신지는 잘…….”
“아아, 그렇죠.”
상관을 폭행해서 범죄자로 전락했다.
주변에서 미묘한 신음이 터져 나왔다.
“그건…… 그렇긴 해요.”
동조하는 사람까지 생겼다.
실린은 만족스러운 속내를 감추며 말했다.
“범죄를 저지를 만큼 선이 없는 사람이라는 게 걱정이에요.”
그러곤 부러 걱정하는 체 한숨을 내쉬고 말을 이었다.
“행여나 서군 원화에게 난폭하게 구는 건 아닐까 싶어서요…….”
“아스트라 가문과 불편한 일이 있었는데도 진심으로 에릴로트 아스트라 양을 걱정하시는군요. 샤토브리앙 양은 다정하기도 하시지.”
“부끄럽네요.”
“아뇨, 훌륭하신 거예요.”
“아버님께서도 제 그런 면이 늘 걱정이라고 말씀하시긴 하세요.”
“이 각박한 세상에서 홀로 그리 점잖으시니, 걱정이 되시겠죠.”
소녀들이 정말로 훌륭하다며 실린을 추켜세웠다.
그 모습을 지켜보던 북군 원화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
그리고 곁에 있던 동군 원화, 세바스티아에게 속삭였다.
“다들 어쩌면 저렇게 진심으로 감탄하죠?”
세바스티아가 주스 잔을 사환에게 건네며 대꾸했다.
“중앙 원화의 본모습을 모르니까요.”
저들은 실린이 원화 사이에서 어떻게 군림해왔는지 상상도 못 할 것이다.
원화들이야 황군 내의 모의 전투, 파벌 싸움을 하며 깨달았지만…….
‘평소의 실린 샤토브리앙은 완벽하게 가면을 쓰고 있으니까.’
오죽했으면 제 조부인 비페리 공작도 실린을 점잖다고 생각할까.
“실린 샤토브리앙이 그런 짓을?”
“네, 실린 샤토브리앙은 독사 중의 독사더군요.”
“듣던 바와는 다르구나. 혹 경쟁심 때문에 보는 눈이 흐려진 것은 아니냐?”
“…….”
과거의 일을 떠올린 세바스티아가 입매를 비틀었다.
‘오해는 무슨.’
실린은 정말로 독사였다.
원화들에게만 본모습을 보인 것을 보더라도 그렇다.
‘원화들의 입에서 험담이 나오면 다들 경쟁심 때문에 뒷말을 한다고 생각하겠지.’
제 조부가 그러했듯이.
그것만 봐도 얼마나 영악한 아이인지 알 수 있었다.
세간에서 말하는 실린은 완벽한 아이였다.
점잖고, 상냥하고, 생각이 깊고…….
‘주변을 조종해서 원하는 것을 손에 넣는 사람이라곤 생각도 못 하겠지.’
뿐인가.
조금이라도 세간의 관심을 빼앗기면 어쩔 줄 모르는 애 같은 구석도 있었다.
세바스티아가 그런 실린을 빤히 바라보았다.
“부끄럽네요. 너무 그렇게 추켜세우지 마셔요.”
“겸손도 지나치면 독이랍니다. 샤토브리앙 양은 본인의 대단함을 깨달으셔야 해요.”
“포사 양도 참……. 마음을 수양하기 위해 애쓰고 있을 뿐─”
실린이 우후후 웃으며 말하던 때였다.
사람들이 시선이 순식간에 실린의 등 뒤로 집중되었다.
‘뭐야?’
실린이 사람들을 따라 시선을 돌렸다.
“안녕하세요, 중앙 원화.”
에릴로트 아스트라였다.
실린은 굳어지려던 얼굴을 억지로 펴며 말했다.
“네. 서군 원화께서도 안녕하시겠지요?”
“아뇨.”
“……네?”
“저는 안녕하지 못하답니다.”
뭐야, 이 계집애는.
왜 의례적인 인사말을 물고 늘어지지?
이렇게 되면 안녕하지 않은 까닭을 물을 수밖에 없었다.
가뜩이나 지금은 사람들이 자신을 지켜보고 있다.
‘사려 깊은 실린 샤토브리앙’이라면 이유를 물어봐야 했다.
실린은 깜짝 놀란 척 물었다.
“무슨 일이 있으셨나요?”
“네. 휴게실에 가던 도중에 습격을 받았거든요.”
그러자 주변이 크게 술렁였다.
“습격?”
“습격이라고? 외궁에서?”
파티장 안의 사람들이 매우 놀라서 에릴로트를 쳐다봤다.
“네, 외궁에서 습격이 있었어요. 공교롭게도 ‘구울 토벌’ 과제 전에 말이에요.”
호사가로 유명한 영식이 호들갑을 떨며 물었다.
“무, 무슨 일인지 자세히 말 좀 해보십쇼!”
그러자 주변의 시선이 싸늘해졌다.
습격을 받았다는 사람에게 신이 나서 질문한 영식을 한심하게 보는 것이다.
영식이 다른 이들의 눈치를 보며 말을 덧붙였다.
“아, 그러니까 외궁에서 일어난 일이잖습니까. 황궁 경비가 무너졌다는 건데, 그건 황가와 관련된 일이니…….”
“맞아요. 해서 황제 직속 기사단에 조사를 요청했어요.”
실린이 흠칫, 치맛자락을 그러잡았다.
‘뭐야, <장막>이 저 계집애와 접촉했던 거야?’
그런데 이렇게 멀쩡하다고?
<장막>의 의뢰달성률이 100퍼센트라던 말은 다 거짓이었나?
“중앙 원화? 얼굴이 새파란데, 뭐 불편하시기라도……?”
에릴로트가 묻자, 실린이 어색하게 웃었다.
“습…… 격이란 말에 놀라서요.”
“그러셨겠지요. 감히 괴한이 황궁에 속한 공간을 범했어요. ……역모지요.”
“…….”
“의뢰인이 누군지 몰라도 정말 멍청하고 간 큰 사람이에요.”
“…….”
“아닌가요?”
“……그렇……네요.”
실린이 이를 악물었다.
‘내가 멍청해? 이 실린 샤토브리앙이?’
들키지 않을 자신이 있으니, 외궁을 선택한 것이다.
에릴로트 아스트라는 외부에선 늘 호위와 함께 있으니, 이곳이 아니면 기회가 없었고.
‘혹시나 해서 장막의 연락책을 <제약>했다고.’
가호 <제약>.
약속을 어기게 되면 몸 내부에서 마력의 폭발이 일어난다.
절대로 살아남을 수 없도록.
그러니 장막에게서 제 이름이 나올 일은 없다.
‘황제 폐하께서 전역을 뒤져도 절대 내 머리카락 한 올 잡을 수 없어.’
주먹을 꽉 말아쥔 실린이 말했다.
“정말로 공교로운 일이긴 하군요. 하필 구울 토벌 전에 습격이라니요…….”
“그렇지요.”
“호사가들은 ‘과제에서 패배하면 습격당했다는 핑계를 대려 한다’라고 생각할지 몰라요.”
실린은 안쓰러운 표정을 지으며 에릴로트의 손을 덥석 잡았다.
그리고 소리쳤다.
“여러분, 서군 원화의 열정은 제가 보증합니다. 행여나 이 일로 불온한 오해가 없길 바라요!”
“…….”
“서군 원화, 전 당신을 믿어요. 우린 좋은 승부를 겨룰 거예요.”
“장막.”
“……!”
실린의 얼굴이 눈에 띄게 굳어졌다.
에릴로트가 미소를 머금었다.
“제 유모 말이 최근에 초고위 귀족들 사이에서 <장막>이라는 불온 세력을 이용하는 일이 잦다고 해요.”
“……그런데요?”
“절 습격한 자의 인상착의를 봐도 그 장막의 일원과 아주 비슷하고요.”
“왜 그런 말씀을 하시는 건가요? 대화의 맥락이 맞지 않는군요.”
“저는 이렇게 생각해요.”
에릴로트도 주변을 쭉 돌아봤다.
“호사가들은 ‘과제에서 패배하고 습격당한 에릴로트를 배려하느라 그랬다는 핑계를 대려 한다’라고 말할지도 모른다고요.”
“그럴…… 리가요.”
“승부에 애써주세요. 중앙 원화께서 그런 말을 듣는다면 마음이 아플 것 같으니.”
그렇게 말한 에릴로트가 실린의 손을 떼어냈다.
“그럼, 전 이만 황제 직속 기사단에 가봐야 해서.”
실린은 에릴로트는 찢어 죽일 듯 노려보았다.
뒤돌아서 사뿐사뿐 걸어가던 에릴로트가 “아.” 하며 고개를 돌렸다.
“그런데, 아시죠?”
“네?”
“제 유모인 잔느 마시프가 왜 상관을 폭행했는지 말이에요.”
“그건…….”
“상관이 부하를 추행하는 장면을 목격했기 때문이에요. 설마 모르세요? 군의 일을? 원화이신데?”
“……알아요.”
“네. 명예로운 일이었죠.”
아는 주제에 잔느를 범죄자라고 까내려?
사람들이 잔뜩 굳어있는 실린을 힐끔거리며 속삭였다.
“세상에, 역시 마시프 경이로군요. 무슨 일로 상관을 폭행했나 싶었는데…….”
“그보다 중앙 원화가 좀 이상하지 않니.”
“네……. 사정을 알면서 범죄자라고 험담을 한 거잖아요?”
“이제 보니 현명한 게 아니라…….”
“생각이 얕은 거죠.”
실린의 얼굴이 화르르 불타올랐다.
* * *
나는 잔느와 함께 홀을 나섰다.
잔느는 눈을 동그랗게 뜨고 나를 쳐다봤다.
“응?”
“아……. 정말 대단하시다는 생각이 들어서요.”
“뭐가?”
“일부러 습격당했음을 밝히고 <장막>을 언급하신 것 말이에요.”
“응.”
“고위 귀족들에게 장막이 임무에 실패했음을 알린 것이지요? 더는 장막을 쓰지 못하게 하려고 말이에요.”
“응, 맞아.”
“거기다 장막이 앞으로 조사를 받게 될 거란 것도 알리셨으니, 더욱 장막을 쓰지 않을 테고요.”
그 말이 맞다.
나는 씩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
“또 일부러 ‘구울 토벌’ 전에 일어난 일임을 강조하신 것도…….”
“응, 사람들이 장막과 중앙 원화가 관계되어 있을 거라고 생각하도록.”
“또 중앙 원화를 떠보기도 한 것이겠죠.”
“반응으로 보아하니 범인일 확률이 99퍼센트 정도 되더라고.”
첫 번째 삶과 두 번째 삶에서 평생 눈치만 보고 살던 나다.
눈치 하나는 최고라고 자부한다.
‘내가 장막을 언급하자마자 표정이 굳어졌어.’
그 눈에 비치던 당황을 보았다.
‘의뢰인은 실린이 확실해.’
그렇게 생각하고 있는데, 옆에서 지긋한 시선이 느껴졌다.
잔느가 눈을 가늘게 좁히고 나를 보고 있었다.
“이렇게 영리한 분이시라면…… 제게 접근하셨던 것도 우연이 아니었겠네요.”
앗.
나는 움찔하고 잔느 쪽으로 몸을 돌렸다.
“나쁜 의도는 아니었어!”
“흐응.”
“진짜야! 잔느는 진짜 착한 사람이잖아. 그러니까 이용해먹지 않…….”
─까지 말하다가 멈칫했다.
“……는 건 아니고. 난 착한 사람도 가끔 이용해먹긴 해. 아주 가끔.”
“으음.”
“그치만 잔느는 이용하려던 게 아니고, 그냥 유모로 데려오고 싶어서. 이건 진짜, 진짜야!”
“…….”
“하지만 몰래 뒷조사를 하고, 우리 집으로 오도록 만든 건 잘못했다고 생각해요…….”
나는 손가락을 꼬물꼬물 매만지며 웅얼거렸다.
잔느가 내 눈을 빤히 쳐다보다가 픽, 실소를 흘렸다.
“괜찮아요.”
“……정말?”
“네. 저는 귀여운 여자아이에겐 아주 약해서요. 그리고─”
잔느가 손끝으로 내 뺨을 콕, 찌르고서 말했다.
“저도 똑같은 일을 했으니까요.”
“똑같은 일?”
“아기님에게 사랑받고 싶어서 뒷조사를 했지요.”
“……어?”
“좋아하는 음식, 색깔, 동물…… 향 취향까지 공부하고 또 공부했답니다.”
잔느가 양팔을 가볍게 펼쳤다.
“열심히 준비했는데, 어떠신가요?”
“좋아…….”
“그럼 이 유모를 안아주셔요, 아기님.”
얼른 잔느의 품에 뛰어들었다.
가만 생각해보면 난 ‘엄마’ 같은 사람에게 엄청나게 약하다.
‘평생 엄마가 없었어서 그런가…….’
아니지. 두 번째 삶에선 있었지만, 그 사람은 이부동생인 세은이의 엄마였다.
정말로 사랑한 건 세은이 하나였으니까.
‘어쨌든, 잔느 너무 좋아.’
엄마가 있다면 꼭 잔느 같을 것이다.
잔느는 내 등을 다정히 두드려주었다.
“비밀을 하나 알려드릴게요.”
“비밀?”
그녀가 내게로 몸을 낮추고, 내 귓가에 양손을 모아서 속삭였다.
“사실은 골목에서 처음 보았을 때부터 아기님이 사랑스러웠어요.”
나는 까르르 웃음을 터뜨렸다.
* * *
깊은 밤, 아스트라 제 2백작저.
발자크와 요슈아, 리시먼드가 복도를 황급히 내달렸다.
쾅─!
문을 부숴버릴 듯 연 발자크가 소리쳤다.
“외궁 파티홀에서 습격이 있었다니!”
그렇게 말한 발자크는 에릴로트의 방 안으로 뛰어들었다.
요슈아와 리시먼드도 그 뒤를 쫓았다.
“괜찮은 거야?”
“다친 덴 없…….”
굳은 얼굴로 묻던 리시먼드가 말을 멈추었다.
발자크와 요슈아도 멈칫, 침대를 봤다.
정확히 말하면 침대에 걸터앉아 다리를 까딱까딱 움직이고 있는 에릴로트를…….
“어…… 다쳤나?”
머리를.
발자크가 당황한 얼굴로 슥, 형제들을 쳐다봤다.
형제들도 처음 보는 광경이 낯선 모양이었다.
“그래서, 그래서 이세즈가 제대로 된 마력 운용법을 배워서─!”
한껏 들뜬 얼굴로 종알거리는 에릴로트라니.
‘이건 발자크의 상상에서나 있는 일인데.’
발자크의 상상 속 에릴로트는 이렇다.
“우웅, 그래서 내가 배가 이─만큼 고팠는데…… 하지만 오라버니를 기다리려구…….”
요슈아와 리시먼드가 절대 현실이 되지 않을 거라고 비웃던 그 상상.
‘비슷…… 한데?’
평소엔 딱 달라붙어서 ‘오늘은 뭐 했느냐’고 열 번쯤 물어봐야 한숨을 내쉬면서,
“사는 게 다 똑같지. 뭐 다른 일 있겠어?”
‘─라고 말하던 내 귀염둥이가…….’
‘그렇게 말하던 에릴로트가…….’
‘그렇게 말하는 막내가…….’
대체 에릴로트의 입에서 하루 일과를 끌어낸 저 여자는 누구란 말인가.
“능력에, 열정까지 있는 자는 귀중하지요.”
“응!”
“그런데 아기님, 도련님들께서 할 말이 있는 모양이신데요.”
에릴로트는 발그레한 표정으로 아이처럼(에릴로트는 아이가 맞지만, 평소 행동은 전혀 아이답지 않았다) 고개를 크게 끄덕였다.
그리고 자신들을 향해 시선을 돌렸을 땐.
“뭐야. 왜.”
……세상 차가운 평소의 동생이었다.
이것이 바로 데이몬드 관할령 모두가 ‘에릴로트의 사랑’을 두고 겨뤄야 하는 라스트 보스의 등장이었다.